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28화 (228/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28화

81장. 성장통의 시기

당장 중국과 석유 동맹을 자처한 사우디아라비아부터 외교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명목상으로 테러리스트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것은 좋지만, 전 인민해방군 장병들에게 생중계하듯 방영했다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우디가 인권침해 운운할 처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상의 불만을 표시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사우디, 정확히는 사우디 왕실이 이슬람보다 더 세속에 가까운 성향을 보여왔다고는 하지만, 이미 예전부터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들의 인력 공급처 역할을 했고, 왕족들 중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암암리에 있는 만큼, 빈 라덴의 사형 집행에 대해 불편한 낌새를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은 이를, 중국의 권리를 행사한 것뿐이라고 응수했지만, 빈 라덴 사형으로 인한 진정한 여파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났다.

사상 처음으로, 아프간이 아닌 중국 본토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 * *

“범인이 위구르족 출신이라…… 이걸 빌미로 당과 정부 당국은 통제를 더 강화하겠군. 이 기회에 소수민족들 더 잡을 겸 해서 말이야. 그럼 또 테러가 일어나고…… 그야말로 악순환이지.”

“안타깝습네다. 안 그래도 중국 동무들이 당에 반발하는 소수민족을 눈에 불을 켜고 때려잡는다고 하던데…… 그게 더 심해지겠군요. 이럴 때 보면 공산당뿐만 아니라 중국 동무들 전체가, 테러 이전에 자기들과 다른 외국 사람들을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마저 듭네다.”

“오랜 중화사상과 그걸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공산당의 민족주의 교육이 먹힌 결과지. 그런데 내가 지난번 후진타오 주석과 만나서 이야기해 본 바로 볼 때는 이제 자기들도 그 역풍에 휩쓸릴 차례인 거 같군.”

정환이 신문을 접어 내려놓으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그에게 신문을 넘겨준 유혜림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영어로 적힌 신문 1면에는 ‘광저우에서 4명 사망, 수십 명 부상’이라고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위구르족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오사마 빈 라덴의 ‘순교’에 반발하며 광저우에서 일으킨 총기 난사의 결과였다.

“중국 소식에 이제 1선급 도시 공안들은 금속 탐지기를 1인당 1개씩 들고 다닌다고들 합니다. 선저우 IT 단지에서는 중국 스타트 업들이 복면이나 가방 속도 들여다볼 수 있는 스마트 글라스인가를 개발한다고 공안에서 투자금을 받아간다는 말도 있고…… 하여간 무서운 세상이 됐어요.”

“벌집을 건드린 거지. 하지만 이제 시작인 게 더 무서운 점이야. 이 기사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이제는 알 카에다, 아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수니, 시아, 파슈툰족, 튀르크족, 위구르족에 이르기까지 종파, 민족, 언어를 넘어 대동단결하는 중이라고. 원래 내부 갈등을 잠시 잊어버리는 데는 공동의 적의 출현만큼 효과가 좋은 게 없으니까.”

정환의 평가대로 빈 라덴의 사형이 알려진 직후, 알 카에다는 당연히 광분했다.

곧장 그들은 빈 라덴의 순교를 기리는 동시에 중국과 중국 공산당에 지하드, 성전(聖戰)을 선포하는 비디오를 촬영하여 공개하는 등 피의 복수를 맹세했다.

눈에 띄는 모든 중국인을 죽이겠다, 자금성을 폭파하겠다, 중국에 억압받는 이슬람을 해방시키자 등의 과격한 구호가 중동 각지의 무장 단체 집회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하면서도 특기할 만한 문제는, 정환의 말처럼 이제는 중국을 표적으로 삼는 테러리스트들, ‘이슬람 전사’들의 숫자 자체도 크게 불어났지만, 인종과 국적이 점점 다양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장 이번 테러의 주범인 위구르족은 물론이고, 어떤 날에는 파키스탄인 유학생이 중국 국기를 불태우다 붙잡히고, 또 어떤 날에는 이라크인 기술자가 쿠란을 인쇄해서 나눠주다가 체포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날이 새면 나이지리아인 중국 슈퍼리그 축구 선수가 이슬람을 비방하는 중국인을 시내 술집에서 폭행해서 추방, 이집트인 교수가 알 카에다 영상을 구해서 보다가 역시 강제 추방당하는 등, 중국은 사실상 거의 모든 국가, 인종, 계층의 무슬림들에게 미국과 함께 양대 대적(大敵)으로 등극해 버린 모양새였다.

그들 중에는 이전에 무슬림이기는 해도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폭력 및 테러에 반대한 자들, 극단적 수단의 사용까지 찬성해도 수니파 – 파슈툰족이 주류가 된 알 카에다에 거부감을 느낀 자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자들까지 한목소리로 복수를 외칠 정도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대외정찰총국의 첩보에 따르면, 중동을 넘어서 저 멀리 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조차 극단주의자들이 산 넘고 물 건너 알 카에다에 가입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는 와중이었다.

이미 서방의 언론들, 미 국방부와 특히 (이미 노하우와 경험이 많은) CIA는 신임 존 맥케인 대통령이 ‘중국에 적대하는 테러 단체들이 정확히 몇이나 되느냐’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중동, 위구르, 동유럽, 북아프리카, 체첸, 말레이시아에 이르기까지 전부 다입니다. 빈 라덴 사형 이후 이제 전 세계의 무슬림은 두 부류로 나뉘었습니다. 중국을 이미 공격한 무슬림, 그리고 앞으로 중국을 공격할 의사가 있는데 아직 못한 무슬림, 이렇게 둘로 말입니다. 각하.

‘그나마 아직 점조직 체계에, 빈 라덴 이후 구심점이 되어줄 만한 리더가 없는 건 불행 중 다행이군. 아니, 어쩌면 아직까지 나타나지만 않은 걸지도…….’

원래 테러리스트 단체의 특성상 고정된 리더보다는 여러 소규모 조직들이 하나의 대의 아래 느슨하게 뭉쳐져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사마 빈 라덴처럼 한 명의 카리스마적인 리더 아래 조직적으로 활동한 알 카에다는 예외적인 경우였고, 이제 그가 죽은 이상 숫자는 많아져도 조직되지 못한 상태니, 결국 중국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국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는 힘들 거라는 게 정환의 예상이었다.

중국 공산당이 아무리 부패하고, 근시안적이고, 폐쇄주의에 자리를 세습하고 이념적으로 자가당착적이라도 군소조직의 산발적인 테러에 나라를 내줄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다.

공산당이 무너진다면, 그건 외부적 압력보다는 내부적 모순과 부조리가 더 큰 이유일 거라고 정환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농일가(一農一家)라…… 우리의 보시라이 신임 군사위 주석께서는 농민공들의 환심을 사고 싶은 게 확실하군. 하기야 마오도 원래 농촌에서 혁명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창했고 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홍군(紅軍), 팔로군(八路軍)도 농촌을 기반으로 했으니까 뭐 구실은 참 좋군.”

이번에 정환이 집어 든 건 중국어로 된 신문이었다.

관영 신문 중 그나마 좀 말을 가리는 수준인 인민일보(人民日報)가 아닌, 당내 강경파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속내를 그대로 대변한다는 환구시보(环球时报)였는데, 그걸 증명하듯 1면에는 군복을 입고 인민해방군 군부대를 순시 중인 보시라이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사진 옆에는 ‘인민해방군 공병부대 장병들, 3대 구호 중 일농일가 목표 내몽골 자치구 임대주택 건설에 자발적으로 지원하다. 보 주석은 국영은행에도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를 촉구’라고 적혀 있었다.

저 사진의 병사들이 정말 ‘자발적으로’ 지원했을지는 하늘만 아는 일이지만 말이다.

“저도 그 3대 구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겉으로 들어서는 좋은 정책 같은데, 당장 우리 공화국에도 평양에 집을 얻는 게 일반 공민의 일생일대의 과업 아닙네까? 값싼 주택을 많이 공급하고 농민들이 대출을 받기 쉽도록 하자는 게 그다지 나쁜 생각 같지는…….”

유혜림은 시니컬하게 중얼거리는 정환과 생각이 좀 다른지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날로 치솟아 오르는 평양과 남포, 라선의 부동산 가격을 잘 아는 그녀로서는 ‘모든 농민에게 집 한 채씩을!’이라는 일농일가의 구호가 그렇게 나쁘게 들리지 않아서였다.

실제로 보시라이가 들고나온 3대 구호 중 경제를 설명하는 저 ‘일농일가’ 경제 정책은 벌써 농민공부터 중국의 중하류층 인민들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고 있었다.

-지금 상하이와 베이징의 거리를 보라, 날이면 날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건설되며 중국 경제의 새로운 자부심이 되어가고 있지만, 그 마천루를 건설한 이들은 하루에 10위안(3천 원) 정도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며 도시 밖으로 내쫓기고 있다!

-이들 농민공들은 제대로 된 후커우(호적)도, 거주지도, 일자리도 없다. 그리고 부유한 도시민들의 멸시를 받으며 하루하루 짐승처럼 생계를 이어나간다. 부유한 국영은행 경영진과 당 간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영은행 경영진에 농민공들이 당장의 생계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할 전용 소액 대출 상품을 만들기를 촉구한다.

보시라이가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환구시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극도로 폐쇄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중국 공산당 직제에서 주석급 요인이 직접 언론에 모습을 보이고 인터뷰를 진행한 것은 가히 파격적인 일이라 중국 내에서도 반향이 컸다.

실제로 그가 인터뷰에서 지적한 문제점들, 끔찍한 빈부 격차, 도시와 농촌 간 개발 격차, 실업, 부패 등은 전부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 더욱 다가오는 바가 컸다.

하지만 이미 보시라이가 노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후진타오에게 들은 정환에게는 이것이 재앙의 예고편 정도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유혜림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정환은 별로 기분 나쁜 기색도 없이 신문을 덮으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게다가 정부 정책으로 부동산 가지고 장난치다가 피 본 사례를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문제는 중국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거지, 우리는 어떨까?”

“네?”

“우리 공화국은 어떨까 라고 묻는 거야, 지금 중국에서 발생하는 저 문제들은 그 규모 면에서 차이가 나도 이미 발생하고 있고, 발생한 문제들이야. 도농 간 격차, 치솟아 오르는 땅값, 인민들 간 빈부 차이…… 고위층 부패 단속은 그나마 우리가 훨씬 낫다는 게 한 줄기 위안이군. 하지만 내가 진짜로 걱정하는 건…….”

심란하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정환을 보며 유혜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난번 후진타오와의 만남 이후로 정환이 부쩍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는 걸 꽤 많이 목격했는데, 지금도 딱 그런 모습이었던 것이다.

“유 소좌. 우리 공화국 인민들이 다른 민족들, 다른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을 가진 타국 인민들과 화합하고 교류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

“…….아니면 지금 중국인들이 위구르와 티베트, 그리고 이제는 아프간인들까지 타민족에게 대우하는 것처럼 할까.”

정환의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질문에 유혜림은 잠깐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국 3대 구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지만 정환이 진지한 듯 보이자 그녀는 잠깐 생각해 보다가 이내 현시점에서 가장 공화국 인민의 일반적 정서를 대변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글쎄요…… 동지도 아시겠지만 요즘 공화국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서 인민들의 공화국 바깥에 대한 인식도 날이면 날마다 변하는 듯합네다. 확실한 건 이제 더 이상 예전 김일성 민족이 세계 최고니 하는 건 아무도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서방, 미국인들과도 직접 만나보니 잘 지낼 수 있어서 놀랐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고요,”

그건 당연했다.

개혁개방의 성과로 외국의 문물, 서적, 지식, 그리고 국제지식이 통제하에, 하지만 확실하게 보급되면서 ‘국제적 괴롭힘을 이겨내고 자력갱생의 씩씩한 길을 가는 조선민족’이 프로파간다에 불과했다는 것을 모든 인민들이 알게 되었으니까.

북한이 세계 최고의 국가와는 거리가 멀고 다른 국가들이 이유 없이 북한을 괴롭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무엇보다 (주로 사업 관련해서)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점점 인민들의 대외관은 깨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예를 들어 저기 남조선 사람이나…… 아니면 바다 건너 일본인은?”

“음…… 남조선이야 여러 일이 많아도 일단 말 통하고 피 통하는 동포지 않습니까? 게다가 지금도 공화국에서 일하는 남조선 사람들도 많고…… 일본인들은 솔직히 처음에는 조선민족 불구대천의 원수, 미개한 섬 쪽바리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제가 일본에 가본 바로는 그렇게 못 어울려 살 족속들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렇군, 그럼 아예 피부색이 다른 백인, 흑인, 중동인들은?”

“글쎄요…… 그건 아무래도 그건 좀…… 딱히 그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살색이 다르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들어 하는 인민들이 먼저 아닐까…….”

“그럼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은?”

“…….”

“거봐, 우리도 까딱하면 저런 함정에 빠질 수 있어. 괜히 민족주의가 정치인들의 만능열쇠라고 불리겠어? 남 일이 아니지.”

최근 서기실에 올라온 보고서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리며 정환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언젠가, 늦든 빠르든 이 북조선은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홍역을 겪어야 할 것이다.

정환은 이 북조선이 경제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비슷한 경로를 밟아왔던 후발 개도국인 이상,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줄이거나 늦춰보려고 그동안 많은 애를 써왔는데 요즘은 점점 자신이 없었다.

물론 지금 북한의 상황은 정환의 존재와 인구 지정학적인 요인들로 인해 중국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지만, 그래도 사회 전체가 한 번 큰 시험의 시기를 맞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그해 중순쯤 그 시험의 시기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화물차 노조 시위 무산 이후, 잠깐 고개를 숙였던 학생 민주주의 세력이 다시 시위를 일으켰던 것이다.

중국에서 일어난 포퓰리즘의 붉은 물결이 정보화 시대의 정보 전달력에 힘입어 북조선에도 첫발을 디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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