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23화
땀을 뻘뻘 흘리는 화면 속 사라 페일린을 ‘저게 내가 알던 미국이 맞나?’ 싶은 눈으로, 불쌍하게 바라보며 묻는 백승철에게 정환은 심드렁히 대답했다.
“원래 미국이란 100만 명의 천재들이 2억9천9백만 명의 바보들을 이끄는 나라일세. 장담하는데, 국민 전체 평균치를 내면 저 여자는 일반적인 미국인보다 나은 축에 속할걸.”
“하지만 아무리 기래도 기렇지 저 여자는 미국 최고 간부가 될 후보 중 하나인데…….”
“정말일세. 평범한 미국인들 중 상당수는 대서양과 태평양도 구분을 못 해. 공교육 붕괴와 두뇌 로동자에 대한 저평가가 만들어낸 결과지. 사실 평범한 인민들만 그러는 게 아니라 최고 엘리트들도 알고 보면 허탕인 경우가 상당히 많고.”
대표적으로 당장 저기 앉아서 벙찐 표정으로 자기 러닝메이트 후보를 바라보는 조지 부시 2세라든가 말이지!
정환은 여전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는 간부들을 쓸어 보며 서기실과 연결된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아무래도 지금부터 보게 될 것들은 뭔가를 씹으면서 봐야 제맛일 듯했다.
“거기, 누가 청사 조리실에 연락해서 팝콘 좀 가져오게. 이제 본격적으로 재밌는 부분이 시작될 테니까.”
* * *
그리고 정환의 말대로, 그 이후로 약 1시간여 정도 이어진 후보 토론회는 그야말로 눈 뜨고 볼 수 없는 재앙이었다.
물론, 그 재앙이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은 라이스 – 맥케인 진영이 아니라 페일린 – 부시 진영이었다.
단 1시간 동안의 토론회 동안 페일린은 자신이 후보 지명 후 구축해 놓았던 자신의 좋은 이미지는 물론이고, 러닝메이트인 부시의 이미지까지 산산조각내기 시작했다.
대외문제와 중국에 대한 대응 부분을 어떻게 어떻게 넘기고 이어진 질문에 대해서 응답한 페일린의 (주옥같은) 대답들은 다음과 같았다.
“지구 온난화에 관련된 질문입니다. 민주당의 앨 고어 지지자들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게 되면 태양광 보조금을 비롯한 환경정책들이 전부 크게 퇴보할 거라고 주장하는데요, 이런 비판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주 부적절해요. 왜냐하면 지구 온난화는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진다는 건데, 그게 대체 무슨 문제인가요? 그럼 민주당원들은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변도 싫어한다는 이야기인가요? 제가 알래스카 출신이기는 해도 여름 해변이 환상적인 건 아주 잘 알아요. 대다수의 양식 있는 미국인들은 지구 온난화가 더 진전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Fed(Federal Reserve System, 연방준비제도)의 최근 정책 변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금리 인하가 정말로 의도한 경기 부양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보시나요?”
“물론이죠, 페덱스(Fedex)는 미국에서 가장 큰 택배 회사 가운데 하나고 페덱스의 요금 인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잘 찾게 도와줄 거예요. 왜냐하면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이사를 가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 이삿짐 운송 서비스는 너무 비싸잖아요?”
“러닝메이트이신 부시 대통령 후보님께서 주창하신 ‘부시 독트린’이라는 대외정책에 대한 새로운 기조를 부통령 후보로서 간단하게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음, 저는 저 러닝메이트인 조지 워커 부시 주지사님에게 항상 엄청난 존경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어요. 물론 부시 독트린도요! 그러니까 부시 독트린은……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우리 미국이, 부시 후보님이 백악관에 들어가서…… 음, 그러니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부시’ 대통령님이 ‘부시’적으로 ‘부시’해 버리는 거죠! 다른 나라들을 ‘부시’되게 만드는 거예요! ‘부시’가 ‘부시’해 버리는 것, 그게 바로 부시 독트린의 간단명료하고도 완벽한 설명입니다.”
단 한 시간 만에 부시 – 페일린 지지율이 하늘에서 지하까지 추락하는 게 거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무리 공화당원들이 민주당보다 마초적인 성향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마초적인 것과 심각하게 무식한 것을 구분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
한편 페일린의 러닝메이트인 부시는 어떻게든 파트너의 난장판을 수습하거나 최소한 질문을 중간에 가로채려고 시도했지만, 설마 자신의 파트너가 이 정도로 자격 미달일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부시의 언론 대응능력도 평상시의 반 이하로 추락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 모든 수습 시도는 (안 그래도 별로 좋지 못했던) 부시 자신의 말솜씨나 교양도 페일린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다는 것만 백일하에 드러나게 했을 뿐이었다.
“그, 그럼 이번에는 전후 민주주의 정착에 관한 질문입니다. 우리 군대가 해외에서 독재자의 폭정을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현지에 정착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잠깐만요, 그 질문은 페일린 후보 말고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민주주의 정착이라, 흠! 그건 제가 항상 고민해 왔던 질문인데, 그리고 그 결과 내린 결론은, 답은 아주 간단하죠.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테러리스트들은 테러를 좋아하고, 또 테러를 자주 하니까요. 테러가 계속 확산되는 건 테러리스트가 테러를 일으키기 때문인데, 그건 결과적으로…… 또 다른 테러리스트가 테러를 확산시키도록 하는 거죠.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죠?”
“…….”
물론 중간중간에 콘돌리자 라이스와 맥케인에게도 질문이 날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특히나 이런 상황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대처에게 전달받은 라이스는) 핵심만을 짧고 굵게 요약해서 인상적인 대답만 한마디씩 던지고 차례를 다시 페일린 – 부시에게로 넘겼다.
라이스는 물론이고 맥케인도 슬슬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저 여자와 부시가 계속 떠들게 두어서 그들이 얼마나 바보인지 미국 유권자들에게 보여주는 쪽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그리고 슬슬 콘돌리자 라이스는 알아서 자멸해 가고 있는 부시와 페일린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로 결정했다.
“페일린 후보님. 낙태 문제에 관한 질문입니다.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낙태를 반대하시는 걸로 아는데, 이 일과 관련하여 연방 대법원이 1973년 이후 고수하고 있는 낙태 전면 금지 반대 기조와 충돌할 경우 이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인지 후보님의 소견을 알고 싶습니다.”
“아!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저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낙태시술은 미국인의 보편적인 가치관과 건국 이래 줄곧 지켜온 우리의 자랑스러운 헌법적 권리에 심각하게 위배된다고 생각해요! 이러한 여론이 모이고 표면화되면 연방대법관들은 자신들의 다음 임기를 위해서라도 이 나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진정한 미국인들의 생각을 무시할 수 없을…….”
“……맙소사, 더는 못 들어주겠네요.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페일린 후보님. 연방대법관들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는 종신직입니다. 지방검사처럼 투표로 뽑히는 게 아니고요!”
마침내, 자신이 좀 아는 주제가 나오자 누군가가 열성적으로 떠들어대는 페일린을 한심하다는 듯이 지적하며 끼어들었다.
물론 그 누군가는 그동안 페일린 – 부시를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투로 관망하던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 어찌 보면 (지금 라이스를 믿음직하게 바라보고 있는) 맥케인보다 더 주목을 받던, 콘돌리자 라이스였다.
“이렇게 무례하실 수가! 라이스 후보님! 지금은 제가 발언하는 차례…….”
“이미 충분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봐온 바로는, 페일린 후보님은 대외관은 둘째 치고 이 나라의 기본적인 법체계와 행정지식에 대해서조차 심각하게 무지한 것 같군요. 제 생각에는 부시 후보님도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거 같은데, 이런 분들이 대선에 나간다면 우리 공화당은 지금의 우위조차 전부 놓치고 민주당에게 또다시 정권을 양보해야 할 거예요!”
“무슨 그런 터무니 없는 모함을! 당장 그 말 취소하시오! 라이스 후보!”
“제 말이 틀린가요? 링컨, 그랜트, 레이건을 배출해 낸 자랑스러운 공화당 당원 동지 여러분, 우리는 현재 태평양 건너편에서 새로운 제국이 그 이빨을 드러내며 서서히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만약 제때에 조치하지 않는다면, 이 제국은 우리 미국의 국익은 물론이고 우방국들과, 나아가 전 세계의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와 시장경제 체제에 기반한 질서를 심각하게 붕괴시켜 버릴 겁니다. 아프간은 그 시작일 뿐이고요!”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라이스의 열변에 방청석에서 이상한 열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강한 미국, 전 세계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 미국, 세계 경찰 미국을 바라는 공화당원들의 마음에 라이스가 서서히 불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공기가 바뀌고 있음은 부시와 페일린도 인지하기 시작했는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콘돌리자 라이스는 나직하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었다.
“제 멘토이신 마거릿 대처 동북아 재단 소장님께서는 1938년에 네빌 체임벌린 수상이 히틀러와 뮌헨조약을 맺지 않았다면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중차대한 시기에 베이징이 지도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부통령을 백악관에 들인다면, 이 미국은 거대한 재앙, 3차 세계대전을 손 놓고 방관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후손들은 그 재앙의 진원지로 이 공화당을 지목할 것이고요!”
“그건……! 그건 부당한 모함이에요! 저는 베이징이 어디 있는지 틀림없이 알아요! 저는 제 앞에 놓인 모든 신문이나 책을 빠짐없이 읽는다고요!”
“정말이십니까? 베이징이 어디 있는지 정확하게 안다고요? 제가 지도 갖다 드리면 손가락으로 짚어보실 수 있어요? 부시 후보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후보님의 러닝메이트가 베이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얼간이가 아니라고 약속하실 수 있나요?”
“그래요! 젠장! 알고말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안 되지! 매케인 후보님! 그쪽 러닝메이트가 지금 제 파트너를 중상모략하고 있는데 가만 놔두실 거요? 항상 정의는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느니 운운하시던 분 아니었습니까?”
부시와 페일린의 반격에 이번에는 모든 시선이 존 맥케인에게 쏠렸다.
그리고 맥케인은 그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답을 주었다.
“저는 제 러닝메이트, 라이스 후보를 전적으로 믿습니다.”
“아니……!!!”
“그리고, 의심나면 지도 가져와서 시험해 보면 될 거 아닙니까. 이 자리에서 모든 당원들과 시청자 앞에서 페일린 후보가 베이징이 어디 있는지 지도에서 정확하게 짚어 보이면 방금 전 제 동료인 라이스 후보가 페일린 후보에 대해서 제기한 모든 비판에 대해서 저도 공동으로 책임을 지고 두 후보님께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약속하신 겁니다?”
“물론입니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한 입으로 두말하면 안 되겠죠. 사회자님.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곧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닌 결과 지역명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대축척 세계지도가 스튜디오에 준비되었다.
진지하기 그지없어야 할 공화당 경선 토론회가 느닷없이 (중학생용) 리얼리티 퀴즈쇼쯤으로 변질된 분위기였지만,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일단 스태프들과 방송국 관계자들은 극적으로 시청률이 오르고 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방청석의 공화당원들은 ‘그래도 설마 대중국 강경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베이징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라며 조마조마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자, 페일린 후보님. 이 지도에서 베이징 위치를 한번 짚어보시죠. 대략적이기만 해도 좋습니다. 최소한 우리 미사일이 어디를 조준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는 걸 확인하면 되니까.”
“…….”
모든 사람들의 목구멍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특히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라이스, 담담한 맥케인과는 대조적으로, 부시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시청자들 앞에서 페일린이 바보가 아니라는 것만 증명하면, 오늘의 모든 실수들을 다 만회하고 맥케인의 사과까지 받아내는 역전 홈런을 날릴 수 있다.
반대로 페일린이 틀린다면, 부시 자신은 중국 수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바보를 부통령으로 지명한 더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페일린이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지도를 앞에 놓고 시선을 이리저리 방황시키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도를 보자마자 짚어도 오늘의 모든 실언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인데, 아무리 봐도 떠오르지 않는 걸 애써 떠올리려는 표정이라 부시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10년처럼 느껴지는 10초의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페일린이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이며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툭.
“……여기요! 베이징은 여기가 100% 확실해요.”
“…….”
“…….”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라이스도, 맥케인도, 부시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방청석 전체가 고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라이스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페일린과 부시를 앞에 두고, 예상은 했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베이징이 네팔 카트만두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 줄은 저도 오늘 처음 알았네요, 페일린 후보님. 혹시나 해서 묻는데 사우쓰 코리아와 노쓰 코리아는 구분하시죠?”
“……그, 그럼 이상으로 공화당 경선 후보 토론회를 마치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당황한 사회자의 수습 시도와 함께 그날의 토론회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은 퇴임하는 앨 고어의 뒤를 이을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었다.
* * *
“아아, 실컷 웃었다. 참 선거라는 건 가끔 보면 어떤 할리우드 영화보다도 재미있다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유 소좌?”
“뭔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알다가도 모를 나라인 거 같습니다, 총서기 동지.”
보기 드물게 싱글벙글하는 정환과 함께 유혜림은 취임식을 생중계하는 CNN을 보면서 떨떠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화면 속에서는,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제43대 미국 대통령 존 맥케인과 그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부통령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공화당은 부시 – 페일린 조의 삽질로 잠시 휘청거렸던 위기를 무마하고, 기존 남부 텃밭 주에서의 표는 물론, 일부 진보적인 동부와 서부 주에서도 기대했던 선거인단 이상을 획득하며 무난하게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 전문가들은 이런 선전의 제2 요인을 바로 콘돌리자 라이스가 경선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모습을 지목하고 있었다.
당연히 제1 요인은 말할 것도 없이 경선 경쟁자였던 페일린 – 부시 팀의 이루 형용하기 힘든 무식함이었고.
“그건 나도 그래. 하지만 세계의 인재를 민족과 인종에 상관없이 받아들이고 차별을 적극적으로 타파하는, 최소한 타파하려는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야. 저런 일이 가능한 게 그 사실을 증명하지.”
“라이스 후보는 최초의 흑인, 최초의 여성 부통령 업적을 동시에 이뤄버렸군요. 미디어도 맥케인과 라이스를 거의 비등한 비중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대처 소장 동지도 뿌듯하시겠어요.”
“이번 선거는 거의 공화당 경선이 본선보다 주목받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었으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경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라이스였고, 공화당의 에이스이자 새로운 정치스타의 탄생이지. 아마 몇 년 후에는 대통령을 노려도 위화감이 없을 거야.”
정환과 유혜림이 이렇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어느새 화면 속 워싱턴에서는 맥케인이 선서를 끝내고 취임 연설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환은 ‘닷컴 버블 붕괴 당시 무분별한 대출로 일을 키웠던 은행들을 규제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하여 중국의 인권침해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보며 북조선과 세계에 새로운 미래가 다가왔음을 절감했다.
사상 첫 여성 흑인 부통령을 탄생시킨 이 역사적인 선거에서 의외의 뒷이야기를 하나 꼽자면, 북조선 선전선동부에서 자국 방송에 이례적으로 이 공화당 경선 토론회의 방영 허가를 내려준 것이었다.
부시와 페일린의 멍청함을 보여주는 장면 위주로 편집된 걸 볼 때, 그 의도는 아마도 ‘미국식 민주주의는 이렇게 멍청하고 무식한 지도자를 뽑을 수도 있는 정치체제’라는 사실을 선전하기 위함인 듯했지만, 진실은 오로지 선전선동부 부장인 현영숙만이 알 터였다.
하여간에 어느새 시간은 흘러 2005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