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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19화 (219/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19화

작금의 이러한 한국 선거판 사정을 전부 보고 듣고 있던 정환은 예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회의실에 모인 주위 간부들과 방금 보고를 마친 김용건에게 물었다.

“참 요지경 세상이군. 이현창 대통령은?

“고속철 자체야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 본인도 쌍수 들고 환영하는 일이라고 전했지만, 아무리 새나라당이 남조선 재벌들과 친하다고 해도 총선이 바로 앞인 만큼 갈등을 겪고 있는 듯합네다. 이대로 가면 총선 이후에나 답을 들을 가능성이…….”

김용건이 뒷말을 흐리자 장성택을 비롯한 주위 간부들의 얼굴도 ‘이걸 왜 바로 결단 못 해?’라는 표정으로 찌푸려졌다.

김정환이라는 유능한 독재자가 모든 걸 결정하고 또 그렇게 결정된 일이 이제까지 전부 성공하는 걸 봐온 당정의 간부들 입장에서는,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적합하고 국가수반 자신도 찬성하는 사업의 추진을 망설이는 게 자못 한심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사실 이현창 자신도 새나라당 내에서의 분류는 이미 그 세가 크게 꺾인 극렬 반공 보수라기보다는, 경제 성장과 개발독재를 긍정하는 친기업 보수에 가까웠으니 그로서도 고속철 연결 제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어쨌거나 총선이 눈앞이고, 이 일로 수혜를 보게 될 남조선 기업인들보다는 일반 남조선 인민들이 머릿수는 훨씬 많고 말이지. 투표라는 건 한 사람당 한 표씩이니까.”

“국회에서 인준을 해주지 않으면 국가 원수라도 함부로 결단할 수 없다니……. 보면 볼수록 답답한 처사이고 바보 같은 나라이지요. 민족의 중대사를 앞에 두고 총서기께서 영단을 내리셨는데 이 원…… 쯧…….”

정환이 미묘한 의미를 담아 그렇게 말하자 혀를 차는 장성택을 필두로 몇몇 간부들이 그렇게 불평을 토했다.

하지만 그런 간부들의 불평과는 별개로, 정환이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이현창 외에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다.

‘이 사람이지, 현 민주당 총재 노윤현.’

원 역사에는 지지난해 대선에서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어야 할 테지만, 현재는 이현창이 대통령이 되어버린 관계로 야당인 민주당의 당수가 되어 있었다.

물론 민주 진보계에서도 비주류에 속하는 정치인이라, 어디까지나 ‘악의 대마왕 새나라당과 이현창에 가장 잘 맞서 싸운 야당 정치인’이라는 정치적 입지 덕분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시갔습네까, 총서기 동지. 아무래도 저쪽이 별로 간절하지 못한 거 같으니 일단 신칸센이나 다른 쪽으로 알아본다는 정보를 남측에 흘려서 바람을 살살 불어주는 거이…….”

“그럴 필요 없네. 이미 불고 있으니까.”

“그럴 필요 없으시다 하시면……?”

“그 연유는 여기 김 실장이 설명해 줄 걸세.”

정환의 소개와 함께 테이블의 모든 시선이 저기 하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초로의 한국인, 그러니까 37호실 실장을 맡고 있는 남조선인에게로 쏠렸다.

이런 공화국의 중차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회의석상에 아무리 전향했다고 해도 남조선인이 앉아 있는 것에 일부 당 간부들, 특히 장성택은 은밀하게 눈살을 찌푸렸지만 감히 그 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이윽고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김 실장의 입이 열렸다.

“흠흠, 다들 잘 아시겠지만 남측…… 그러니까 한국 정부에서 공화국의 고속철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현 여당, 그러니까 새나라당이 이겨야 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야당인 민주당계가 지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렇지비. 그런데? 그런데 우리가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아도 그게 가능하단 말이간?”

“그렇습니다. 아, 정확히 말씀드리면 초기 고속철 사업 구상에 약간의 수정만 가해주시면 됩니다.”

“약간의 수정이라?”

장성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 실장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장성택은 그 미소를 보자 더욱 기분이 안 좋아졌다.

“어렵지 않습니다. 북남 철도…… 그러니까 이번 한반도 종단(縱斷)철도 세부 계획 초안에서 철도 개통 시 북조선- 중국 국경에서 남으로 내려가는 화물은 무조건 북조선 국적 운송사만 운반해야 한다는 상호 합의 사항이 있지 않습니까?”

“기거야 우리 운송 기업소들 먹거리를 만들어줘야 하니 당연한 거 아니간? 우리 공화국 밥그릇을 와 남조선 놈들에게 줘?”

“조금만 양보하시죠. 한국 운송 기업들도 허가 아래 참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니, 선거 끝날 때까지 양보할 수 있다는 의사만 다음 협상 때 내비치셔도 좋습니다.”

“아니……!!”

김 실장의 말에 장성택의 표정에 황망함을 넘어 노기가 서렸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당 간부들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김 실장 동무 제정신이간? 당장 왜 그런 우리 공화국의 존엄과 이익을 해치는 개나발을 불었는지 설명하지 않으면…….”

“……이번 한반도 종단 철도 계획, 그러니까 현재 계획이 실현되면 가장 희비가 갈리는 곳 중 하나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남조선 부산입니다. 정확히는, 부산 해운사들이죠.“

김 실장이 장성택의 말을 슬쩍 끊으며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가자 장성택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뭐라 말하지는 못했다.

당장 최상석의 정환이 김 실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 잘 알고 계시겠지만, 부산은 인천과 함께 남조선의 가장 중요한 물류 대동맥 중 하나이자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화물 선적, 하역 능력을 가진 항만이죠. 그리고 종단 철도가 개통되면 당연히 부산 인민들은 큰 이익을 보게 됩니다. 제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종단 철도 개통도 주로 호남권에서 반대하지, 경남 부산은 개통에 대해 찬반이 크게 엇갈리는 추세라고 하더군요.”

“……기런데?”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리면 부산 내 새나라당 강세 지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찬성이고, 그나마 얼마 없는 민주당 지지 지역구에서도 운송사 영업에 제한을 걸어놓은 것만 아니면 찬성했을 거라는 의견이 대세입니다. 그런데 그 제한을 풀어준다면, 당연히 그들도 이번 철도 개통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겠습니까?”

“……거기까지는 알갔는데, 왜 우리가 남조선 좋은 일을 해줘야 한다는…….”

대부분의 당 간부들은 여기까지 듣고도 여전히 통 모르겠다는 투였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선거를 치러 본 일이 없으니, 공약이나 지역 바닥 민심, 그리고 지역별 정치 성향이 빚어내는 복잡다단하면서도 오묘한(?) 세계를 그들이 한 번에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김 실장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서렸다.

“지금 종단 철도 개통에 반대하는 야당인 민주당의 당수…… 그러니까 당 서기장 노윤현이가 이번에 출마한 지역구가 바로 부산입니다. 그러니 노윤현이 입장에서는 대단히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지요.”

“……!!!”

“게다가 현 민주당은 일치단결한 새나라당에 비해 여당과 이현창에 반대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을 대충 기워서 만든 누더기 정당. 그리고 당수 노윤현이도 당내에서 근본도 세력도 영세한 비주류파입니다. 그런데 당론(黨論)으로 정해진 종단 철도 반대에 노윤현이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면 당내에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되겠습니까?”

“……선거에서 제 목숨 하나 지키려고 면종복배, 구밀복검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갔지. 기러니까 저쪽에 분열을 일으키자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말 그대로 남남갈등이지요. 장 부부장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한국 정치판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보수파는 부패 때문에, 진보파는 분열 때문에 망한다’고. 이 북조선은 선거 같은 게……음…… 항상 결과가 정해져 있으니 들을 일이 없으시겠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

통쾌하다는 듯이 김 실장은 하하 웃었지만 장성택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난 후에도 여전히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는 슬쩍 정환 쪽을 곁눈질하면서 마지막까지 반대 의사를 표명하려 했으나 이내 실패로 돌아갔다.

“음…… 그거이…… 묘안이기는 하지만 기건 사실상 남조선 이현창이 패거리 선거 운동을 우리 공화국에서 대신해 주는 거이 아니간? 아무래도 그건 좀…….”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게. 허가를 내려주지.”

‘에이! 저 밥맛 없는 남조선 놈!’

최고지도자가 결단을 내리자 장성택을 포함한 다른 당 간부들도 김 실장에게 가진 불만과 관계없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자신들이 남조선 지도체제는 국가원수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고 제멋대로 운운한다는 말을 해놓고 정환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정환의 허가에 김 실장은 머리를 깊게 조아리면서 마지막까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를 봐서 실제로 양보할 필요까지는 없고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낌새만 흘려주셔도 좋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노윤현이는 당 내부고 밖이고 할 거 없이 적이 아주 많거든요. 그러니 살짝 피 냄새만 흘려주셔도 승냥이들이 달려와 물어뜯기 시작할 겁니다. 그거 하나는 확실히 장담 드리지요.”

그리고 이내 김 실장의 이러한 장담은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열린 남북 철도 분과 회의에서 ‘당 윗선에서는 남조선의 이익을 좀 더 존중할 수 있다’라는 발언이 나온 지 채 삼일이 못 가서, 고려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사에서는 남북 철도 연결이 가진 ‘민족적 당위성’과 경제적 이익, 그리고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낸 이현창에 대한 찬양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기사들 바로 옆에는 이런 민족적 대사업에 대해서 반대하는 야당인 민주당과 그 당수 노윤현의 근시안적이고 구시대적인 발상에 대해 성토하는 핏대 올린 기사들이 자리했음은 물론이었다.

-경제 주권 위기 단 5년여 만에 채권국 북한으로부터 명백한 양보를 이끌어낸 이현창 대통령의 역사적 리더십!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총선, 코 앞에서 터진 진보 야당의 악재, 전경련 회원사 사원 중 92%가 남북 종단철도 연결에 ‘매우 찬성한다’에 투표.

-오락가락하는 민주당과 노윤현, 총재,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계 공천 위원의 불만 토로, ‘당내에서 자기 지역구만 생각하는 盧 총재에 대한 반발 터져 나오는 중, 당신 대체 어느 편이냐?’

-북한 지도자 김정환의 대국적인 양보와 배짱에 새삼 주목받는 그의 배경과 국가 개발 정책. 일각에서는 근시안적인 남 일부 정치인들이 그에게 배워야 할 점 있다는 말도.

상당히 전부터 진행된 일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에 이은 98년 북남 대타협 이후 크게 재구성된 보수 세력에 발맞추듯 바뀐 고려일보의 논조를 실감할 수 있는 일주일이었다.

일부 고려일보를 극렬히 혐오하는 사람들은 ‘깃발의 방향만 바뀐 거지 고려일보는 예전의 기회주의적인 본질 그대로’라고 비판했지만, 점차 17대 총선이 새나라당의 승리가 확정되는 조짐이 짙어지자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지면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이현창과 새나라당의 지지율이 무려 78%에 육박한 총선 3일 전, 고려일보는 감격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사설란을 빌려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기까지 했다.

-북방을 향한 남북공동합작을 앞둔 지금, 凍土의 鐵人 지도자 조선로동당 총서기 김정환에게서 보이는 유신維新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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