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18화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정환의 입에서 처음 북남 철도 연결 –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연장 계획이 나온 지 한 달 후, 정환이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정확하게 예견했음이 드러났다.
바로, 북남철도 연결이라는 계획이 한국 국민들에게 대단히 ‘섹시하게’, 그러니까 언론의 순화된 표현에 따르면 ‘상상력을 크게 자극했다’는 점이었다.
-마침내 열린 북방으로의 가는 길! 멈춰 있던 철마(鐵馬)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가?
-초기 계획 장장 1500㎞의 대공사…… 십여 년간 구상에 불과했던 국토부 계획 테이블에 올려지다.
-부산항의 갈치, 라선으로! 백두산의 천지수, 서울에서!
그 규모와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세기의 대공사, 세기의 사업이 결정되는 것치고는 너무 빨리 결정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막 결정된 것만은 분명 아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북남 철도 통일 계획이 나온 2004년 당시에 북조선에서는 단 한 노선뿐이지만 어쨌건 이미 고속철도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떼제베(TGV) 시스템을 수입해 와서 내년, 즉 KTX가 개통하는 바로 다음 해인 2005년에 개통을 앞둔 ‘조선 고속철도(KRT, Korea Rapid Train)’가 바로 그것이었다.
-총서기 동지. 우리 공화국도 이제는 고속철이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습네다. 고속도로는 날마다 열심히 짓고는 있지만 아직 미개통인 구간도 많고, 인민들 소유 차는 늘어나는데 곧 포화상태가 되지 않겠습네까? 그렇다고 아직 날틀(비행기)은 많이 낯설고…….
-철도성(鐵道省)에서 보고 받았네. 아직 공화국에서 자체적으로 설계 및 제작은 많이 무리가 있을 테니, 일단 초기 노선은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들여오고 그다음 노선은 자체 개발을 하던 새로운 곳에 발주를 하건 생각해 보도록 하지.
고작 시장경제 체제 시작 10여 년 만에 고속철도 도입이라는 건 좀 이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원래 (사회주의 국가답게) 북조선의 주 운송 수단은 고속도로보다 철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딱히 이른 것도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고속철도든 일반 열차든 철도 좋은 줄 몰라서 안 굴린 게 아니라, 김일성 – 김정일을 거치며 철도 환경이 끔찍하게 낙후되는 바람에 못 굴린 것뿐이었다.
-무려 증기기관차를 현역으로 쓰고 있던 와중이었으니, 하아, 생각해 보면 그때로부터 참 멀리 왔군.
마침 정환 취임 직후부터 (중국의 지원을 받아) 복구된 표준궤 철도의 복구 및 개량 작업이 다 끝난 참이기도 했고, 이미 깔아놓은 철도 인프라 버리기 아깝다는 문제 이전에, 시장경제 체제가 급속도로 진전되며 고속철도를 안 도입할 수가 없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개방 직후인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물동량이 굳이 철도까지 필요가 없을 만큼 저조했기에 고속도로 정도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점차 시장 경제체제가 자리 잡으며 북조선의 지역 간 물자, 그리고 사람의 수송 필요성이 크게 증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써비차 못 타는 인민들은 지역 간 장사도 하지 말란 말이간? 여행 허가증 제도는 없어졌어도 내 원대로 못 다니는 거이는 김정일 인민이나 김정환 인민이나 다름없으니, 니X…….”
“피양(평양)도 별다를 바 없시요! 당장 돈푼 좀 벌어서 명절에는 고향에 내려가 볼까 했더니, 써비차 운전기사들은 웃돈을 몇 배로 받아 처먹고, 증기 철도 기다리다가는 고향 가기 전에 먼저 늙어 죽갔소!”
그러다 보니 90년대 중반에는 자동차 외에 급격하게 늘어나는 운송량을 분산시킬 교통수단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90년대 후반에는 1차적인 노선망과 예상되는 수요, 철도 기술 이전 및 축적 계획, 2차, 3차를 거쳐 러시아나 중국 노선망과의 연결까지 검토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98년 북남 대타협 직후, 철도성과 외무성, 군사 물자 수송은 중대문제 운운하며 꼽사리 낀 인민군까지 ‘일본 신칸센이냐 프랑스 TGV냐’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정환이 결단을 내려주었다.
-공화국 지형과 위대한 항일 빨치산 투쟁 정신을 놓고 볼 때 프랑스 TGV가 더 적절하다. 주프랑스 공화국 대사관과 외무성이 접촉하여 사업을 진행시키도록 하지.
‘이제 보니 처음부터 총서기는 다 계획이 있으셨군. 초기부터 남조선을 염두에 두셨던 기야. 로씨야, 중국으로 가는 땅만 빌려주고 저쪽이 개발해 피땀 흘려 개발해 놓은 걸 송두리째 먹겠다는 거이지만…….’
판문점에서 ‘KTX 도입 제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대답을 남조선 측에게 얻은 장성택은 돌아가는 차 안에서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항일 빨치산 운운할 때부터 평상시에는 그런 사실 여부도 불분명한 당 이념 따위 신경도 안 쓰는 최고지도자가 왜 저런 걸 입에 올리나 했는데, 지금에서야 남조선 고속철이 딱 그때쯤 프랑스 TGV를 기반으로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궤간도 마침 같은 표준 궤겠다, 인구는 3천만 조금 넘는데 산투성이인 공화국에서 고속철도까지 자체개발하기에는 영 돈도 아깝고 성공도 장담하기 힘드니, 쓰는 말도 같은 남조선에서 제 돈 들여 고속철도 시스템을 개발하면, 시베리아 철도 연결을 미끼로 그걸 기술 채로 싼값에 들여와 쓰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
물론 정작 남조선에서 고속철도 자체 개발에 실패하거나 성공해도 공화국의 철로 수요 증가에 맞추지 못하고 지연되거나 하면 남조선만 믿고 있던 공화국은 매우 난감해진다.
하지만, 남조선 놈들이 고속철 국산화의 위업(?)을 대신 이뤄준 덕에 기술 이전을 받아낼 궁리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북조선이 첫 노선 입찰 과정에서 별다른 경쟁사를 알아보지 않는 걸 보고 장차 자기들이 나머지 노선도 다 수주할 줄 알고 있던 TGV 놈들은 펄펄 뛰겠지만, 애초에 확답을 준 것도 아닌데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리고 프랑스 국철에서 시공하여 신의주, 정주, 신안주, 평양, 사리원, 해주, 개성을 잇는 KRT의 첫 번째 노선인 시속 330㎞의 ‘경의고속선(京義高速線)’ 개통이 내년으로 다가온 현 2004년.
방금 장성택 자신이 힘들여 개발하고 개통을 앞둔 KTX 북조선 노선 수주 대금으로 대단히 눅은(싼) 값을 제시하고 기술 이전까지 입에 올렸음에도 남조선, 한국 관계자들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총서기의 호언장담대로 ‘북남 철도 연결 및 시베리아 진출’이라는 이상이 정부 관료든 민간인에게든 어지간히 ‘섹시’하기는 했던 모양이었다.
’참 묘한 것이, 그 계산적인 남조선 놈들도 자기들이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란 말이디. 혹시 총서기는 이것도 생각해 두고 대타협 때 차관 지원을 결단한 길지도…….‘
그게 사실이라면 참 대담한 배짱이 아닐 수 없다고 장성택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그가 평양으로 돌아가 고속철 연결 협상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전달한 지 머지않아, 한국 국내 정치권에서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번 불협화음은 ‘6.25때 국토강산을 피로 물들이고 아직도 적화통일 야욕을 버리지 않은 북괴’를 단골 레퍼토리로 잘 이용하던 한국 보수진영에서 나온 게 아니라, 진보 진영, 정확히는 새나라당에게 여당 자리를 넘겨준 민주당 측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 * *
“포대갈이 무역이라…… 하기야 그동안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 기업가들의 수혜를 많이 누리기는 했지.”
“눙토히 말씀드리면 공화국이 경공업 복구와 발전을 이렇게 빨리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도움이 컸습네다. 당장 아직도 공화국 녀성들 옷가지의 반은 남조선 자본 의류 공장에서 나온다니…….”
“거기다 남조선은 올해가 총선 아닌가. 이현창 대통령이 임기 첫 도전에 직면한 거 같군그래.”
‘민생 경제 파탄 내는 독재 북한에게 고속철까지 넘겨주지 말자!’라고 상임위에서 열변을 토하는 한국 민주당 의원들을 보면서 정환과 김용건이 나눈 대화였다.
고려일보를 비롯한 신문을 한 손에 들고 흔드는 그들의 입에서는 북조선 인민들에게는 아직 생소한 ‘포대갈이 무역’이라는 이름이 몇 번이나 나오고 있었다.
근래 한국 진보 진영 언론들을 중심으로 쓰이기 시작한 이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했는데, 모든 것의 시작은 98년 북남 대타협과 그로 인해 북남이 양국의 자본, 노동 시장을 제한적으로나마, 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개방적으로 열면서부터였다.
-박 사장. 요즘 그쪽 목우 실업 공장 다 북으로 옮긴다면서? 그래도 걔들 빨갱이들인데, 갑자기 따발총 들이대면서 다 빼앗아 갈까 봐 걱정 안 돼?
-임 사장. 그 빨갱이들이 얼마 전에 쌍용 자동차랑 고려 증권도 지들 나라로 사 간 거 기억 안 나? 임금 싸지, 노조 없지, 경쟁업체 없지…… 게다가 거기로 공장 옮기면 노다지가 한 군데 더 생기거든.
-노다지 한 군데 더? 그게 어디인데?
-중국! 세관 통과할 때 중국 애들이 ‘Made In North Korea’로 된 물건은 관세도 잘 안 물리고 법인 주소가 평양으로 되어 있는 건 외국 기업 텃세나 뒷돈 요구도 잘 안 한다나? 같은 빨갱이 나라라 서로 무슨 관세동맹 뭐 그런 걸 맺었다나……. 그래서 그런지 별로 꼬장꼬장하지 않은 모양이야.
-정말? 기가 막히구만 그거! 안 그래도 요즘 경제신문이란 경제신문은 중국 시장이 다 다음 10년 노다지판이라 떠드는 판에…….
-공장 관리하느라 말 낯설고 물 낯선 동남아까지 날아가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서울에서 차 타고 2시간 거리인 평양에 공장 놔두는 게 편하지. 그리고 필리핀 애들 일 시키려고 영어 배우는 것보다는 문화어 사투리 조금 배우는 게 훨씬 편하잖아?
98년 북남 대타협,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위기 이후, 한국에는 기업 가계 할 것 없이 혹독한 찬바람이 몰아닥쳤다.
북한의 차관으로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경제계 전반에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팽배하면서 유민중 같은 진보 정권이라도 비정규직의 도입과 고용 유연화, 임금 상승률 완화라는 처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불어오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긴축 경영 바람의 첫 타자는 당연히 원가절감을 위한 하청, 아웃소싱의 대대적인 유행이었는데 이렇게 아웃소싱 대상을 찾던 한국 기업들의 제1 후보는 당연히 가까이 있는 북한이었다.
일단 말도 통하고 거리도 가깝다는 장점도 컸지만, 이미 94년도 장쩌민 집권 즈음에 정환이 (물론 정치적 이유로) 중국과의 상호 관세 우대 조약을 맺어 외국 자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중국 시장 진출이 한국 기업들보다 훨씬 쉽다는 이유가 매우 컸다.
기업도 자본도 기술도 전부 한국산인데, 노동자만 북한인들 손을 거치니 정작 (물론 중국 수출용 한정) 상품에는 ‘Made In North Korea’가 찍히는 속칭 ‘포대갈이’ 수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게다가, 이제는 타계한 정문영 회장과 근대그룹이 증명해 주었듯이 노동자들이 노조 만들겠다고 설칠 일도 없고, 최근에 벌어진 화물기사 시위로 북조선 당국이 1970년대 한국 못지않게 시위자들 때려잡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았나.
더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일로 많은 남조선 기업들이,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북한 당국이 외국 기업들의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것이라는 의지를 체감했다는 데에 있었다.
-회장님. 이제 우리나라는 개발경제학적으로 볼 때 저임금 이점을 누리는 게 가능한 시기를 지났습니다. 광주랑 충남에 있는 2공장, 3공장, 아예 수원에 있는 제1공장도 옮기는 걸 고려해 보시지요.
-그래, 서울에는 개발 연구소랑 본사만 놔두고, 단순 공정 라인은 전부 개성이나 신의주쯤으로 옮기자고! 아니, 윗동네에서 더 잘해주면 장차 본사도 거기로 옮기는 걸 고려해 보지!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기업들의 공장 월북 러쉬는 아무리 단순 공정이라도 엄연히 한국인들의 일자리가 북조선으로 옮겨간다는 뜻이다.
그 말인즉슨, 외환위기 후 한파가 몰아닥친 취업시장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제 북한인들과도 경쟁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고학력 고임금 전문직종이 몰려 있는 서울에서는 비교적 체감하기 어려울지라도, 대기업들의 공장에 직접적으로 지역경제가 달려 있는 지방에서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적 변화는 당연히 정치권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좀 더 정확히는 보수여당, 새나라당보다는 진보성향 민주당이 이러한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의원님, 생각해 보니까 우리의 저 북녘 동포들…… 아니, 북한 인민들…… 아니, 저 김정환이 파쇼 독재가 떨어뜨려 주는 설탕물에 중독된 북한 놈들, 생각해 보면 80년대 유신, 신군부 독재를 추종하는 놈들이랑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그동안 한국 보수 정치권이 북한의 개혁개방으로 한 차례, 그리고 박이삼 시절 쿠데타 기도 미수 및 체포로 다시 한 차례 재편의 과정을 겪었듯이, 진보 정치권도 큰 변화를 겪었다.
일단 적으나마 서로 왕래가 되고 남북 간 사람들이 오가며 정보가 교환되기 시작하자, 한때 북한을 사회주의 지상 락원으로 숭배하던 주사파들은 완전히 소멸했다.
또한 7, 80년대 유신, 신군부 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며 민주당의 주류로 올라선 운동권들은, 은근히 같은 민족과 동포로서 대립하기보다는 타협, 나아가 통일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북한이라는 나라가,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하고 독재의 하수인쯤으로 보던 한국의 대자본, 대기업들과 끈끈하게 결탁한 것을 목격했다.
아니, 다른 모든 이념 문제를 다 제쳐놓고서라도, 당장 자신들의 지역구 사무실에 ‘북한 놈들이 우리 일자리 다 빼앗아 가는데 의원님은 어디서 뭘 하고 계시냐, 국회에서 주무시냐?’라는 항의가 쇄도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역구에서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민주당뿐만이 아니라 보수 여당, 새나라당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월북 하청 러쉬의 직접적인 수혜자인) 한국 재벌 대기업들과 오래전부터 소울메이트 관계였던 그들 새나라당보다는 민주당 쪽에서 이 일자리 유출 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온 건 당연했다.
게다가 새나라당 의원들의 지역 기반은 (지역주의 반, 개발 용이성 반) 계획발전의 수혜를 입어 일자리 유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영남, 반대로 범 민주 – 진보 계열 국회의원들의 지역구는 호남권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일자리 유출 문제는 북과 남 사이에 고속철이 뚫려 교통이 용이해지고 장차 유라시아 경제권이 한국 기업들의 가시권에 들어오면 더더욱 심화될 게 분명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북조선에서 한국 측에 KTX 도입 타진 및 시베리아 철도 연결 문제를 안 그래도 어지러운 2004년 17대 총선판에 던져놓을 무렵, 한국의 보수 – 진보 진영의 선거 구호는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민주 시민 유권자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아니라구요? 이게 다 북한의 파쇼 독재자, 김정환이 때문 아닙니까? 기억하십시오! 경제는 2번! 일자리도 2번! 경제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지키고 여러분들의 일자리를 지키는 건 기호 2번 민주당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의 민주당을 찍어주십시오!
-존경하는 애국 시민 여러분! 남북 갈등을 조장하는 저 반민족적 민주당 세력의 분열 수작에 넘어가시면 절대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저 북녘 동포들과 손잡고 민족의 일대 거사를 치를 때가 도래하였습니다! 저 드넓은 시베리아, 간도가 우리 한민족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호 1번! 애국 보수 평화 경제 새나라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