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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16화 (21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16화

-지금 그걸 내가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나, 동무들?

처음 군사위 주석 자리를 내놓으라는 협상안을 태자당 세력에게서 전달받았을 때, 장쩌민이 첫번째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권을 내려놓으라는 뜻은 사실상 무장 해제하고 이후에 어떤 보복이 잇따르던 상대 계파의 처분을 기다리라는 말과 다를 게 전혀 없지 않은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는 유명한 격언의 창시자가 마오쩌둥이라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듯이, 길고 복잡한 중국 공산당의 내부 권력 투쟁의 역사에서 중앙 군사위 주석 자리는, 사실상 중국의 최고 영도인 자리와 동의어로 취급받는 게 현실이었다.

실제로, 장쩌민의 후계 플랜이란 일단 주석 자리와 공산당 당 서기 자리는 타 계파 후임자에게 넘기더라도 군사위 주석 자리는 끝까지 지키면서 군권을 넘기지 않고 버티는 게 목적이었다.

그래야 일단 자기 파벌인 상하이 방을 상대 파벌의 정치적 복수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서기와 주석직도 양보하지 않거나 후임 선정에 대해서 목소리라도 반영할 영향력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단, 날로 상하이 방, 나아가 주석인 장쩌민 자신에게까지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는 현 상황에서 군사위 주석직을 내려놓지 않으려면 필요한 게 하나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 이놈만 잡는다면 말이지!

그것은 바로 지난 2년 전, 공식적인 승전 선언을 하고도 여전히 손에 넣지 못한 상하이 테러의 주범,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목이었다.

장쩌민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상하이의 참극 이후 엄청난 현상금을 내걸어 아프간을 초토화하고, 인민해방군의 수많은 피를 흘린 끝에도, 현재 2004년까지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했다는 사실은 현 중국 주석이자 상하이 방의 수장, 그리고 인민해방군의 최고 군 통수권자인 장쩌민에게 막대한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었다.

물론 카불도 점령하고 승전 선언까지 했으니 일단 반쯤은 이긴 게 맞지만, 정작 전쟁의 명분이었던 상하이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을 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반쪽짜리 승리일 뿐이었다.

지난 2년간 온갖 외교적 부담과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써 가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자초하는 소탕전과 그에 필요한 생화학 무기 사용을 허가한 조치도, 장쩌민 정권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켜 줄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목적이 매우 컸다.

그러나 일단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면 그야말로 장쩌민은 일약 상하이에서 희생된 인민의 원수를 갚은 승전 지도자가 되는 것이며, 상하이 방도 현재 코너에 몰려 있는 정치적 위기를 일거에 타파하여 기사회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군 통수권자, 이 전쟁의 지휘자인 군사위 주석이 장쩌민 본인이었으니 적의 수괴, 오사마 빈 라덴의 목을 취한다면 정치적 위기 극복을 넘어 어쩌면 마오쩌둥의 권위에 버금가는 중국 공산당의 중시조(中始祖)격 위치에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아마 태자당과 장쩌민의 권력 연장을 경계하는 반대 계파에서는 아마 아직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히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프간 전역, 그리고 몰래몰래 특수부대를 동원해 파키스탄 국경까지 월경하여 이 잡듯이 뒤져도 오사마 빈 라덴은 여전히 연기처럼 사라진 상태였고, 그러면서 어느새 시간은 흘러 장쩌민 자신의 임기 말이 다가온 게 현재 상황이었다.

이미 전후 처리 실패와 그로 인해 끝없이 늘어나는 인민해방군 증파, 인명 손실, 국방비 부담은 그동안 장쩌민의 권위에 눌려 있던 태자당과 공청단의 목소리를 커지게 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 공산당 내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권력 이동은, 당연히 북조선을 포함한 주변국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듣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그런데 총서기 동지, 정말로 그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놈은 어디 있겠습네까? 역시 같은 동무들인 파키스탄 쪽에 은신해 있을 가능성이…….”

“……글쎄, 어쩌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을 수도 있지.”

주중 북조선 대사관과 김용건 외무부장 겸 총리, 대외정찰총국, 주 아프간 파병군으로부터 전해진 보고를 통하여 이 모든 정황들을 다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승철의 말에 정환이 되물었다.

현재 그들이 둘러앉아 있는 정치국 회의 석상은 이러한 관련 브리핑을 다 듣고 난 직후였는데, 누구라 할 것 없이 위원들 전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정환의 두루뭉술한 대답에 백승철을 비롯한 군 간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이 아는 최고지도자는 이렇게 하나 마나 한 대답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저기…… 그러니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곳이라면 정확히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인지…….”

“아니면 사실 어디에 있든 별로 상관없을 수도 있고 말이야.”

“……네?”

“장 부부장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무래도 중국 쪽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소식통으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장 부부장 귀라면 좀 들어오지 않겠나? 다음 10년간 중국을 영도해나갈 주자는 누가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

정환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백승철과 군 간부들을 내버려 두고 장성택에게 시선을 돌렸다.

군관들과 장령들을 외면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인정해 준 거 같아 내심 만족스러운 기분이 든 장성택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며 정환에게 답을 올렸다.

“고거이……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는 장쩌민 동지가 퇴임하며 주석직과 공산당 서기직은 태자당 쪽에 넘겨주되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끝까지 지킬 가능성이 높다고 봅네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말인가?”

“장쩌민 주석 동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양반이 아닙네다. 아무리 태자당과의 연합을 통해 제 은인인 덩샤오핑 전 주석을 몰아냈다고 해도 합리주의적인 외교 로선과 경제 발전 성과는 폭넓게 인정받고 있지요. 그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니 웬만해서는 단시간 내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봅네다.”

장성택의 식견에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그의 말대로, 덩샤오핑 때만 해도 개발도상국에 불과했던 중국을 현재 미국의 가장 유력한 미래 경쟁국이라는 위치까지 올려놓은 장쩌민의 당내 입지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장 부부장은 장쩌민 주석이 군사위 주석 자리까지는 끝까지 지킬 거라고 보는 것이군.”

“그렇습네다. 군권을 내주면 사실상 다 내주는 것과 마찬가지고, 또 흔히 태자당 내에서 장 주석의 정적으로 알려진 시진핑 동지, 보시라이 동지도 사실 대외에 알려진 것처럼 나쁜 관계만도 아닙네다. 사실 그 두 동지는 서로 간에도 암묵적인 경쟁 관계인지라, 장 주석이 그걸 리용한다면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겁네다.”

“그렇다면, 장 주석은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네까?”

자리하고 있던 상무위원 중 누군가가 그렇게 묻자 장성택은 그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아무래도 힘들갔지. 일단 현재 중국 내 여론이 매우 적대적인 데다가 덩 동지가 실각한 이래로 공식적으로 폐기된 적이 없는 10년 임기 제한도 있고……. 결정적으로 장쩌민 동지의 경제 정책이 중국 인민들에게 찬사만 불러온 거이는 또 아니거든.”

장성택의 대답에 눈을 동그랗게 뜬 정치국 위원들과 정환까지도 또다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장쩌민의 치세 아래, 중국은 그나마 겉치레로라도 남겨두었던 공산주의의 마지막 흔적을 벗어던지고 성장 제일주의의 길을 걸었는데, 그 과정에서 극심한 빈부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건 이미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사실이었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이 북조선에서만도 지금 김정환 총서기의 급진적이다 못해 파격적인 노선 전환으로 빈부 격차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이미 개혁개방 과정에서 거부를 얻은 신흥 돈주와 일반 인민들 간의 격차는 이미 날로 심각해져 조선로동당 내에서도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이제이라…… 그렇다면 다음 대권은 여러 파벌끼리 나눠 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말인가?”

“바로 그렇습네다. 이미 태자당이나 상하이 방 말고도 공산주의청년단(中國共產主義青年團), 공청단(共青团)의 대표로 부주석직을 맡고 있는 후진타오(胡锦涛) 부주석이 있는데, 후진타오 부주석은 태자당과도 사이가 나쁘지 않으니 그에게 국가 주석직을 물려주고, 공산당 총서기 직만 태자당에게 양보한 후 군사위 주석직은 끝까지 지키는 일종의 삼두 정치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겠습네까? 물론 그 체제가 영원히 가지는 않갔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왠지 느낌이 안 좋단 말이야. 설마 태자당에서 그 장쩌민에게 아무런 보험도 없이 이빨을 들이밀었을까?”

“……?”

장성택이 무슨 뜻이냐는 듯 정환을 바라봤지만 정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환이 아는 원 역사에 비추어보면, 사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초기 여러 번 잡힐 뻔한 위기를 넘겼다.

그가 미군에게 일찍 붙잡히지 않았던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무슨 불세출의 잠적 천재여서가 아니라 운, 그리고 미국 국방부와 정보 당국 간 불협화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는데…….

즉 오사마 빈 라덴이 전쟁 개시 후 10년이 넘게 잡히지 않았던 것은, 말 그대로 순수한 행운이 따라준 결과라는 것인데 이 역사에서도 그런 운이 따라줄지는 정환으로서도 영 의문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미 오사마 빈 라덴은 누군가에게 잡혀서 연금 상태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평양에서 전해 듣는 정보는 어디까지나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와 파병군을 통해 전해져 들려오는 단편적인 것들뿐이니까. 누군가 벌써 진작에 붙잡아놓고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일지도…….”

“누가,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하십네까, 총서기 동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지. 하지만 확실한 건, 현재 일촉즉발인 중국의 정국에 있어서 오사마 빈 라덴의 소재와 생사는 그야말로 권총의 방아쇠나 마찬가지라는 거야. 누가 먼저 당기느냐가 문제인데…….”

그리고 이 시점으로부터 조금 나중에야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이런 정환의 우려 섞인 추측은 사실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진작에, 정확히는 그해 중순쯤에 중국 인민해방군 특수부대에 이미 생포당한 상태였었던 것이다.

* * *

-명심해라,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 당과 인민을 위하여, 오사마 빈 라덴은 반드시 살려서 인민들이 지켜보는 베이징의 재판대에 세워야 한다.

-잘 알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완수해 내겠습니다.

얼핏 원 역사에서 아프간 전쟁을 치렀던 미군보다 정찰위성 등 정보자산이 크게 떨어지는 인민해방군이 미군보다 훨씬 먼저 빈 라덴을 잡은 건 이해가 안 갈 수 있었지만, 가끔은 최첨단 기계보다 발로 뛰어본 사람의 경험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다.

10여 년 전, 소련 –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KGB의 사주를 받은(그렇게 생각했던) 프룬제 일파의 북조선 쿠데타에 대한 보복으로 무자헤딘을 지원하며 그들의 전투 방법과 게릴라전 노하우를 습득한 중국 국가안전부의 정보제공과 분석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당시 경험을 토대로 파키스탄과 아프간 산맥 중 은신처가 될 만한 곳을 이 잡듯이 뒤지고 후보군을 좁힌 결과, 마침내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추종자들이 은신한 캠프를 알아내고 바로 산악전 부대가 투입되었다.

야음을 틈탄 40여 분간의 교전 끝에, 마침내 인민해방군 산악전 부대는 상하이 테러의 원흉, 현재 중국 13억 인민 제1의 대적(大敵), 오사마 빈 라덴을 산 채로 붙잡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이 기쁜 소식은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는 장쩌민과 상하이 방에게로 바로 전해지지 않고 중간에 어떤 세력에 의해서 차단되었다.

-……그런데 당 중앙에서는 이 정보를 알고 있습니까? 왜 이 중대한 작전에 베이징군구 특전여단이 아니라 청두 군구(軍球) 산악여단이 차출된 건지…….

-그건 알 거 없다! 입 다물고 기밀이나 엄수하도록!

중국의 군대는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군벌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중일전쟁 시절 난립하던 군벌의 군대들은 당이나 법이 아니라 군벌 개인 내지는 그 가문에 충성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러한 각 군구의 사유화 현상은 문민통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현대 중국에까지 상당히 짙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인민해방군 아프간 원정군을 이루는 병력은 주로 두 군구에서 차출되었는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신장의 부대는 위구르 족들을 경계해야 하니 뺄 수 없고, 두 번째로 가까운 청두 군구, 우방국 북조선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가장 부담이 적은 선양 군구가 그들이었다.

그리고 하필 빈 라덴의 체포에 동원된 청두 군구(成都 軍球)는 태자당의 거물이자 역시 중공 팔대 원로 중 하나인 보이보의 아들인 보시라이의 사병(私兵)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개인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한 부대였다.

결국 어떻게든 빈 라덴을 생포해 인민 앞에 세워 벼랑 끝 마지막 정치적 역전을 노리던 장쩌민은, 정적 태자당으로부터 ‘아프간을 거꾸로 뒤집어도 빈 라덴은 영영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통보를 듣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자신과 상하이 방이 패배한 것이다.

-내가 졌네……. 군사위 주석직을 내려놓고 물러날 테니 내 측근들은 건드리지 말아주게.

-주석. 인민들 보는 눈도 있고 우리도 일을 시끄럽게 처리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임기도 다 되셨으니 전통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만 내려오시지요.

결국 마지막까지 군사위 주석직만은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던 장쩌민은 태자당, 공청단과의 협상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만을 보장받고 쓸쓸하게 퇴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대회를 거쳐(라고는 하지만 사전에 결과가 다 정해진) 마침내 재편된 중국의 새로운 권력 구도는 다음과 같았다.

-중화인민공화국 제6대 주석 :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제4대 총서기 : 시진핑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제5대 주석 : 보시라이

“요즘은 중국도 우리 공화국 닮아가나? 말만 정권교체지 장쩌민을 중간에 끼운 사실상 2대 세습이잖아, 이건.”

나중에 해당 소식을 전해 들은 정환의 씁쓸함 반, 비웃음 반의 비아냥이었다.

공청단 후진타오에게 부여된 국가주석직이 내정에는 거의 영향력이 없는 반쯤 명예직, 공청단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체면치레 정도라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사실상 태자당의 독주, 대장정 시기 혁명 유자녀들의 전진 배치라는 건 누가 봐도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그나마 당 총서기직과 군사위원회 주석직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지 않고, 태자당 중에서 자신과 비교적 친한 시진핑과 보시라이에게 물려준 건 장쩌민과 상하이방의 마지막 저항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 사람이 복수의 직위를 겸임하는 게 관례였던 당, 군, 정의 수장직을 세 사람이 따로따로 갈라서 나누어 가졌다는 것은, 정작 장쩌민을 물리친 주역들인 보시라이와 시진핑도 자기들끼리 사이가 영 좋지 못하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필연적으로 권력 다툼이 예고된 이 불안한 인선은, 이후 장장 10여 년에 걸친 중국 공산당의 극렬한 당내 투쟁과 극도의 혼란, 그리고 파국에 이르는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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