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15화
76장. 권력의 이동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부주석의 임기는 해당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임기와 같이 5년이며 2기 이상 연임하지 못한다.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제2절 제79조 2항.
21세기의 시작을 알 카에다에 의한 상하이 테러라는 초유의 대사건으로 시작한 지 3년, 2004년은 전 세계 패권국들의 일대 권력이동의 해였다.
당장 그해 말 8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미국 대통령 앨 고어의 뒤를 이을 미국 제43대 대통령이 선출되는 해였으며, 또한 10여 년간 중공의 주석이었던 장쩌민이 주석 임기를 끝내고 후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공개된 선거를 통해 그 절차가 치러지며 지속적인 여론조사와 다년간의 경험으로 데이터를 축적한 선거 컨설턴트들의 예측으로 인해 그 결과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이미 8년간 앨 고어의 대외 개입 자제(전혀 안 했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와 석유 중심의 에너지 구조 탈피, 이산화탄소 감축으로 대표되는 친환경 정책에 염증을 내고 있었고, 석유업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화당은 이미 반격의 칼을 날카롭게 갈아놓고 있었다.
아직 많은 미국인들은 석유를 자유롭게 소비하기를 원했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자유세계의 리더인 미국의 대외 무력 투사에 대해서 ‘이제 슬슬 중국한테 힘 좀 써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중국 차기 권력의 향방은 완전히 암흑 속이었다.
사실상 공산당이 쳐놓은 은막 뒤에서 계파들의 이전투구를 통하여 다음 지도자가 정해지는 구조에 부정이든 긍정이든 다음 후계 구도에 커다란 변수가 될 중국 – 아프간 전쟁이 점점 혼돈 속으로 치달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많은 부분이 암흑 속이었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말처럼 (주로 서방의) 대담한 언론인들의 탐사 보도 취재, 그리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인민해방군 전역 장병들의 증언을 취합해 보면, 손쉽게 이긴 듯했던 중국 – 아프간 전쟁은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의 주요 요인들 중 하나는, 인민해방군이 점령한 아프간 지역의 안정화에 이은 동화 정책, 즉 티베트와 신장 자치구에서도 실시해 성공을 거둔 중국 인민들의 대규모 이주 유도 정책의 처절한 실패였다.
사실 이러한 이주-동화 정책의 실패는 당사자인 중국 공산당은 물론이고 전 세계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파멸적이었다.
왜냐하면 전 세계 어딜 가든 볼 수 있다는 중국계 이주자들과 화교의 놀라운 적응력과 생존력, 단합력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었고, 그렇기에 초기 중국 당국에서도 게릴라들을 소탕하는 게 문제였지 정착 자체에는 매우 낙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불 주변의 주요한 저항 세력들과 게릴라들은 전부 소탕된 상태라는 인민해방군 장령들의 장담을 믿고 정부에서는 별 근심 없이 이주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현지에 뿌리를 내리고 동화 정책을 완전히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경제적 기반, 즉 일자리와 그것을 제공할 중국 기업들도 아프간으로 향하는 행렬에 합류했는데, 이 뒤에는 당연히 중국 공산당의 의도가 있었다.
-아무래도 현지인들의 반발이 좀 심한 모양이니 이제 대국의 관용을 보여줄 차례인 거 같군. 민사 작전의 일환으로 도로와 병원, 학교, 무료 급식소, 관공서를 짓자고.
-이미 인부가 되어줄 우리 국민들은 현지에 가 있으니 이제는 우리 중국 기업들이 아프간을 근대화시키면 되겠지.
-사람 가 있고, 기업 가 있고, 우리 중화 자본이 현지를 장악하면 멀어도 10년이면 군정이 없어도 전 세계가 아프간이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될 거요. 동화가 뭐 별거겠소?
바야흐로 현실에서보다 10년 더 빨리 나타난 일대일로(一带一路)의 시작이었다.
중앙정부의 동화 정책이라는 비호를 받아 아프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그들이 살 집과 그들이 쓸 병원과 학교, 그들이 아프간인들을 다스릴 전초기지가 될 관공서를 짓기 시작했다.
곧 카불을 중심으로 한 인민해방군의 중심 점령지, 즉 치안 안정화 지역은, 당국이 제시한 정착 지원금과 면세 혜택에 홀린 중국 출신 빈민들이 우선적으로 이주되었고 그들은 당연히 중국 기업들에서 일했다.
민사 작전의 명분이었던 아프간 현지 주민들에게는 단 한 푼도 안 들어간 것은 물론이었고, 오히려 군정 정부는 병원과 학교에 대한 건설, 사용비 명목으로 아프간 현지인들에게서 징세(徵稅)를 실시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춘절의 승전 선언 후 초기 1년이 지나서 시작된 이주 – 동화 정책들이 점점 성과를 거두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카불 거리에는 중국인들이 넘쳐나고 보통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슬람 성원인 모스크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차이나 타운의 상징인 패루(牌樓)가 세워지는 것은(물론 정복자인 중국인들에게) 자못 인상적인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간이 곧 중국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완전히 동화되어 이슬람을 잊어버릴 것이라는 게 누가 봐도 분명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완전히 엇나갔음이 곧 밝혀졌다.
꽈아아앙!!!!
-빌어먹을! 또 자폭 트럭이냐?
-이주 전에 꼬실 때는 안정화 지역이라서 100% 안전하다더니, 이건 완전히 말이 다르잖아!
카불을 중심으로 한 도심지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인민해방군 장령들의 장담은, 반은 맞았다.
그러니까 그들 자신, 공군의 항공 지원과 여차하면 쏠 수 있는 생화학 무기로 완전무장한 상태의 인민해방군 군인들에게는 안전했지만, 그건 군인들 이야기였다.
비무장에 말도 현지인들과 잘 안 통하는 중국 민간인들에게는 사정이 완전히 달랐다.
지난 2년간, 인민해방군과의 교전에서 처절한 핏값을 치르며 학습한 게릴라들이 훨씬 손쉬운 타깃으로 공격 대상을 바꿨던 것이다.
그리고 적의에 들끓는 카불 시민들과 그들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들에게 그 공격 대상이란, 이주정책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비무장한 중국 민간인들이었다.
즉, 중국 당국과 인민해방군에서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도, 생각조차도 못 했던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전쟁, 테러리즘의 대두였다.
-얼마 전에 중국식 동파육 가게를 열었는데 여기 터번 대가리 놈들이 더러운 돼지고기를 팔지 말라면서 총을 쏴대지를 않나, 어제는 가게 안에서 우리 동포들 손님이랑 패싸움까지 붙어서 비싼 집기가 다 박살 났다고!
-아침에는 창문으로 돌멩이가 날아들고, 점심에는 그 창문으로 다시 화염병이 날아들고, 저녁에는 폭탄 조끼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드는데 이런 곳에서 대체 어떻게 장사를 하고 먹고살라는 말이냐?
-아무리 정착지원금을 많이 줘도 이런 동네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못 살겠다!
게릴라들과 심정적으로 한패이자 지원세력인 카불 시민들은, 그들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인민해방군 부대가 아닌, 일반 중국 이주민들과 그들의 집과 가게와 공장에 은밀하게, 때로는 대놓고 공격을 가했다.
중국군 포병의 불발된 포탄, 질소비료를 이용한 사제 폭탄,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휴대용 티 포트를 응용한 폭탄들이 날이면 날마다 운이 좋으면 발견되고 아니면 폭발해서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좀 더 대담한 자들은 카불에서 식민지화에 여념이 없는 중국 기업들의 지사와 건설현장에 폭탄을 설치해 중국 기업들이 심혈을 기울인 몇 개월간의 노고를 하늘로 날려 버리기까지 했다.
물론 인민해방군 측에서도 당연히 가만히 있지는 않아서, 무경들은 눈에 불을 켜고 시내를 순찰하다 수상해 보이는 현지인들을 전부 불심검문하고 CCTV를 연결해 치안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등만 돌리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폭탄이 날아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적으로 돌려 버린(사실상 모든) 아프간 현지인들을 다 죽이지 않는 이상, 순조로운 동화는 이미 원래 일정보다 훨씬 더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체포와 알 카에다 와해만큼이나 중요한 전쟁 이유 중 하나였던 아프간산 헤로인 소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러한 안정화 작전의 실패로 인해 연쇄 작용을 일으켜 더더욱 최악의 상황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 두 번째 문제는 현지의 아프간 게릴라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시달리다 못해 정착을 포기하고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국 이주민들이 원인이었다.
아프간 전쟁의 전후 처리 실패로 중국에 닥쳐올 악영향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봐, 장 씨. 오늘 원래 살던 충칭으로 다시 돌아간다며? 근데 거기에 감춘 그건 뭐야?
-쉿! 입 다물어! 잘 살던 고향에서 운영하던 가게 다 헐값에 처분하고 그놈의 지원금에 눈이 멀어 이 허허벌판에 노다지 찾아왔더니, 폭탄에 다 하늘로 날아가고…… 젠장, 그러니 이거라도 챙겨야지. 이대로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가면 나랑 내 가족들은 그대로 길바닥에 나 앉는 거지 신세라고!
-이, 이봐……! 그거 아편 아니야? 혹시 그거 걸리기라도 하면…….
-여기로 꼬여낼 때는 언제고 보상금을 달라고 해도 당에서는 모른 체하니 나도 내 먹고살 길을 찾아야 할 거 아니야! 요즘 돈 많은 집 도련님들은 미국 유학 갔다가 대마초 맛 들이고 온다더니 오히려 잘된 걸지도 모르지. 어때, 자네도 이 목숨 왔다 갔다 하는 동네에서 오래 버티고 있지 말고 나랑 같이 본토로 돌아가서 이걸로 한몫 잡자고!
물론 마약의 제조와 유통은 중국에서는 사형까지 언도 받을 수 있는 중죄라는 건 사실이다.
하나뿐인 목숨 안 아까운 놈 없다는 말도 있지만, 세상은 넓고 넓어서 잘 찾아보면 자기 목숨보다 일확천금의 꿈이 더 소중한 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역시도 사실인 것이다.
게다가 장쩌민의 치세에 급격히 산업화 되어가는 중국에서는 산업화의 부산물인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와 함께 동부 해안가 1선급 도시들을 중심으로 마약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이 마약의 공급자들은 바로 현지의 극렬한 저항에 정착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주민들과 전역한 인민해방군 장병들이었다.
-제기랄! 마약 유통으로 공안한테 죽으나, 돈 다 잃고 길바닥에서 구걸하다 죽으나 매한가지인데 나도 부자 되지 말란 법 있어? 덩샤오핑 동지도 부자 될 능력이 있는 놈이 먼저 부자가 되라고 했잖아?
아프간으로의 이주에 지원했던 중국 인민들은 원래 중국에서도 ‘어딜 가든 지금보다는 낫겠지’라는 심정으로 자원했던 빈민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미국 서부시대 골드러시에 참여했던 ‘개척민’들과 비슷하게, 이 이주민들은 돈만 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아프간 정착까지 실패해 버리니 그야말로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정도로 눈이 뒤집힌 것이다.
곧 이러한 귀향민들이 별의별 수단을 동원해 가지고 들어온 아프간산 헤로인은, 충칭의 뒷골목 베이징 상류층 클럽 VIP룸과 상하이 증권회사 중역실까지 돌기 시작했고, 이렇게 정착에 실패한 아프간 인민들이 유통시킨 헤로인을 일컫는 은어까지 생길 정도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착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이주민들을 항상 있었던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보내줬던 중국 당국은, 자신들이 새로운 마약 유통 경로만 하나 만들어줬다는 걸 알고 펄쩍 뛰었지만, 이미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당연히 중국 공안은 전력을 다하여 일단 사태를 은폐한 후 단속에 나섰고 그렇게 붙잡은 모든 마약사범들에게 20년 형 이상의 중형 내지는 사형을 구형하는 강경 대응을 펼쳤지만 이미 헤로인은 오히려 전쟁 전보다 깊게 중국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정제된 헤로인이 아니라 양귀비 씨앗만 아프간에서 숨겨서 들어와 중국 내에서 ‘자체생산’ 후 유통시키는 범죄조직, 게다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부패한 공안 일부가 그들과 결탁해 수익을 나눠 먹는 사례까지 적발될 정도로 상황은 극을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사회 분위기가 흉흉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3년 홍콩에서 발생해서 광동성까지 퍼져 수많은 인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까지 겹친 것이 중국의, 좀 더 정확히는 현 중국의 수권세력인 장쩌민과 상하이 방의 불운이었다.
그리고 광동성 지역당과 정부는 이 사태에서도 방역은 고사하고 전염 상황을 감추기에 급급한 한심한 모습만 보여줌으로써, 마침내 베이징을 중심으로 마오쩌둥의 건국 이래 중국 공산당이 가장 두려워해 왔던 어떤 여론이 조용히, 하지만 확실하게 당 내외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바로 이 13억 중국 인민을 이끌어갈 중국 공산당의 통치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여론이었다.
마침내 저 멀리 아프간에서 시작된 파문이 중국 권력의 핵심인 공산당을 뒤흔드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누군가 책임을 져라! 이 지경을 만들어놓고 아무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인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공산당 전체가 창당 80년 만에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혼란에도 아직 인민의 대적(大敵), 오사마 빈 라덴도 못 잡았지 않나!
-상하이 방이던 누구건 중공의 일당제 체제 자체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으면 민심을 참작해야 한다! 장쩌민 주석과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분노한 인민과 당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장쩌민 주석! 아프간 전쟁의 전후 처리 실패와 최근의 아편, 전염병 범람에 대해서 읍참마속, 대의멸친의 모습을 보여주시오!
사실 이제까지 모든 중국의 집권세력 중 한 번도 큰 과오를 저지르지 않은 세력은 국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포함해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문제는 그게 진짜 과오냐 아니냐가 아니라, 성공적으로 은폐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다.
어떤 과오든 은폐가 가능하면 과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 있지만, 그게 불가능할 경우 정적의 거센 역풍에 직면하기 때문이었다.
그 은폐에 실패한 중국 주석 장쩌민과 상하이 방이 아프간 전쟁 실패와 그 여파로 태풍을 만난 배처럼 흔들리고 있을 때, 마침내 장쩌민의 주석 임기 제한이 다 하는 2004년이 다가왔다.
그리고 불거지는 책임 여론 속, 아니나 다를까 이제까지 상하이 방에 묻혀 조용히 지내던 중국 공산당 내 새로운 세력들이 이 틈을 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바로 덩샤오핑을 실각시킨 중공팔대원로들의 2세들로 뭉친 태자당과 그 동맹 세력이 그들이었다.
천윈(陳雲)의 아들인 천위안(陳元), 양상쿤(楊尙昆) 전 국가주석의 아들인 양샤오밍(楊紹明), 시중쉰(习仲勋)의 아들 시진핑(習近平), 그리고 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薄熙來) 등을 중심으로 뭉친 이들이 장쩌민과 상하이 방에게 내놓은 절충안은 한 가지였다.
상하이 방의 전면퇴진과 장쩌민의 주석직 퇴임, 그리고 중국인민해방군의 군권을 책임지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