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09화
“……?! 서기장 동지, 그게 무슨 소리야, 대체?”
착륙장을 벗어나 차를 타고 평양의 인민무력부 청사 안에 들어올 때쯤 정환이 한 정체불명의 말에 안토노프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재차 물었다.
도심지를 걷다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아프리카 흑표범을 마주친 사람의 표정 같았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전술 무기도 아니고, 미사일 같은 전략무기를 민영화한다고?
하지만 정환은 곧 그를 진정시키며 설명을 계속했다.
“진정하게, 어디까지나 비유해서 설명을 한 거니까.”
“총서기 동지. 이건…….”
“알고 있네. 하지만 이제 인민무력부 건물 안이고, 여기 안토노프 동지는 이제 확실히 우리 사람임이 증명되었으니 슬슬 알 때도 되지 않았나?”
함께 동승하고 있던 백승철이 비밀이 샐까 무섭다는 듯 입을 열었지만 정환은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게다가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을 거라고는 애초에 생각 안 했네. 아마 지금도 태평양 건너 미국 버지니아주에서는 지금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겠지.”
“……미안한데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건 나뿐인가? 대체 미사일 민영화라는 게 무슨 소리야?”
“좋아, 지금부터 보안실에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사실, 정환의 이러한 짐작은 타당했다.
그들이 인민무력부 내부에 마련된 도청 불가능한 보안실에서 북조선의 궤도 발사체 연구 브리핑을 들으러 갔을 때쯤,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동일한 주제로, 하지만 정 반대 목적의 브리핑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여기, 각자 나눠드린 위성 사진을 보시면 노쓰 코리아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미사일 발사대로 보이는 건축물이 건조된 것이 보입니다. 게다가 근처에 이 유조차들로 보이는 작은 물체들은 아마도…….”
“……보나마나 로켓연료겠지. 지금 CIA에서는 노쓰 코리아가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국무부 장관님 그리고 대통령 각하.”
버지니아주 랭글리, 미국 중앙정보국, 혹은 CIA로 불리는 건물 안의 한 회의실에서는 서로 다른 두 공간의 합동 보고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한쪽은 당연히 이번 보고의 주체가 되는 중앙정보국 그리고 다른 한쪽은 얼마 전부터 쓰이기 시작한 화상 회의 시스템으로 워싱턴에 앉아 이 보고를 듣고 있는 백악관이었다.
잠시 침묵이 감돌았지만 이내 국무장관이 총대를 메고 헛기침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질문부터 던졌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대통령 각하.”
“자, 여러분. 일단은 저…… 발사체가 민간 로켓인지 군용 미사일인지부터 알고 우리의 행동 노선을 정해야 합니다. 노쓰 코리아가 독재국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방국이니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대통령 각하, 원래 민간 로켓과 군용 미사일이라는 게 뉴욕 피자와 시카고 피자 정도의 차이밖에 안 나지 않습니까. 토핑을 인공위성으로 하느냐 핵탄두로 하느냐 정도의 차이지…….”
스크린 속 대통령의 뭔가 미지근한 반응에 CIA 국장이 살짝 불만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만, 미합중국의 제43대 대통령, 앨버트 아놀드 고어, 앨 고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 기본적으로 북한의 자주권 문제 아닙니까. 핵무기라면 모르겠는데, 자주국방을 천명한 나라가 미사일을 개발한 것 가지고 딴지를 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도 우리 우방국이자 경제적으로도 나날이 밀접해지는 국가한테.”
“그래도 외교적으로 우려 성명 정도는 발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한국이나 일본을 의식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액션은 보여줄 필요가 있고, 게다가…….”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아무런 명분이 없지 않습니까. 한미 미사일 사거리 협정처럼 우리가 북한과 사거리 제한 협정 같은 걸 맺은 것도 아니고.”
“…….”
”게다가,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진짜 동북아시아의 팍스 아메리카나 아니, 나아가 세계 인권과 평화의 증진을 방해하는 나라는 어딘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앨 고어의 단호하면서도 현실적인 말에 방 안(그러니까 정확히는 정보국 청사 회의실 안과 워싱턴 집무실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 중 대통령의 질문에 답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이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의 엉덩이에 박혀 있는 아픈 가시고. 그런데 안 그래도 지금 정보국으로 중국이 아프간에서 아우슈비츠를 재현하고 있다는 소식이 날로 들려오는 판에, 우리가 그 가시를 알아서 빼주자는 말입니까?”
“……그건 물론 아닙니다만…….”
“북한은 우리가 중국에게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이자 나아가 러시아까지도 시야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요충지입니다. 물론 독재체제이기는 하지만, 뭐 그거야 사우쓰 코리아도 한때는 그랬고 직접적인 인권침해도 현재까지는 관측된 바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대통령님, 이미 여러 번 의회에서 목소리가 나온 거로 아는데…….”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헛기침을 한 CIA 국장이 드디어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우리가 미사일 개발에 우려를 표시하는 것 정도만으로도, 북한은 알아서 우리 눈치를 보고 톤 다운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국장님.”
“대통령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현시대를 보십시오, 우리, 미합중국은 전 세계에서 아니, 전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강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세계제국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영향력으로 눈치를 봐야 할 일이 뭐겠습니까?”
자부심 가득하다 못해 거만하기까지 한 내용과 목소리였지만,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이 방안이 아니라 현시대에서 먹물 좀 먹었다 하는 사람이면 싫어하든 좋아하든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한 것이다.
“중국 문제도 그렇습니다. 인권 문제는 둘째 치고서라도, 지금 누가 봐도 아프간과 상하이 테러 핑계를 대고 석유를 목적으로 점점 중동에 가까이 접근해가는 게 보이는데, 사우디가 돌아선 사태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제 말은, 이쯤 해서 외교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북한 같은 현지 독재자를 통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중국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쨌거나 우리의 수정 헌법에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명기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신성한 헌법 정신에 입각하여 독재자의 무기고를 모른 척해주는 일은 그만하고 중국에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네오콘(Neo-con) 이념에 강하게 경도되어 있는 듯한 이 말을 이 자리에서 정환이 들었더라면 ‘댁들이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라고 반문하겠지만 지금 그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원 역사와는 다르게, 여기서의 미국은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지지도 않았기에, 또 그로 인해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현실에서 직접 증명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에 몇 명은 그 팍스 아메리카나 가치관에 말없이 동조할 태세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통령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민주당 대통령 앨 고어였다.
“여러분, 지금 북한 미사일 이야기를 하다가 왜 중국의 인권유린에 대한 미국의 대응 이야기가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항상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할 CIA가 대체 언제부터 인디펜던스 데이나 람보 같은 할리우드 총질 히어로 물에 빠지게 된 겁니까?”
“…….”
“차라리 중국이나 다른 개발도상국의 환경 파괴문제처럼 화급하면서도 외교와 협상을 통해 현실적으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문제라면 모를까, 독재국가에 민주주의 정착 같은 문제처럼 모호하고 현실적으로 잘 될지 어떨지도 모를 문제를 논의하자고 여기 부른 게 아닙니다.”
‘역시나 민주당원다우시군, 하지만 뭐 좋아, 어차피 임기도 끝나가겠다, 이제 저 석유산업계의 적을 백악관에서 내보낼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앨 고어가 그렇게 단호한 거부 의사를 표하자 안 그래도 공화당 성향이 강한 CIA의 일부 간부들은 속으로 이죽거리며 그렇게 냉소를 흘렸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겉으로는 대통령의 말에 수긍하는 척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밖에도 대통령님이 꼭 보셔야 할 게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이미 이메일로 이 백악관에서도 전달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대체 뭡니까? 미국인이 맞습니까?”
“네, 말씀대로 미국 시민입니다. 원래 실리콘 밸리에서 전자 결제 시스템인가 하는 걸 만들던 민간 사업자인데 현재 북한에서 김정환과 북한 정권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으며 로켓 개발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NASA 전 엔지니어나 관계자인가요? 그럼 그건 기술 유출 아닙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만…… NASA에 자기 아이디어를 들고 오기는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도 하는 말이 황당해서 돌려보냈더니 후원자를 찾다가 마침내 저 동네까지 간 모양이더군요. 투자를 받고 부지까지 제공해주니 안 갈 이유가 없었겠지만, 저희 입장이 좀 곤란해진 것이…….”
“압니다, 즉 국가 주도 개발이 아니라 민간기업에 투자했다는 이야기인데…… 이러면 저희가 외교적으로 행동할 폭이 더 좁아진다는 뜻이죠. 그런데 그 아이디어라는 게 뭔지 궁금하군요, 어디 보자…….”
화면 속의 앨 고어는 전달받은 파일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한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가 NASA에 보여준 아이디어들이 짤막하게 소개되자 앨 고어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IT 기술과 친환경 에너지, 그리고 PDA 워싱턴 도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그로서도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이거 참…… 어쩌면 북한 정권은 중국인들의 반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들로서도 이건 김정환이 망상병 환자한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대체 화성에 온실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한테 이 많은 돈을 투자하다니…….”
“총서기님, 장쩌민 주석께서는 조선의 미사일…… 아니, 흠흠, 발사체 개발 사실에 대해 확인을 요청하셨습니다. 부디 양국 관계를 고려하여 사실만을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그러니까…… 조선에서 궤도 진입 발사체를 개발하고 건조 중인 것이 사실입니까?”
“사실이오. 거 소문이 참 빠르군.”
“……!!!”
시원하게 인정하는 정환에게 중국 대사는 한동안 놀란 표정을 감추기 힘들어하다가 이내 입술을 깨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안 그래도 아프간 때문에 골치 아파 죽겠는데 왜 이놈들까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난리란 말인가.
“총서기님, 장쩌민 주석께서는 그 의혹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미사일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응, 필요해. 바로 너네들 때문에 말이지!’
앨 고어의 예상대로, 이미 평양의 서기실에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감지한 중국 대사가 헐레벌떡 달려와 있었다.
미국의 정찰 위성이 감지한 것과 거의 동시기에, 중국의 정찰 위성 역시 지하에서 나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드러낸 무수단의 발사대를 찾아낸 것이다.
아직 미사일인지 민간 로켓인지 확실하지도 않을 시점에서 당장 대사를 보내 ‘유감’ 따위의 속이 훤히 보이는 미사여구를 동원하는 중국 대사를 보면서 정환은 속으로 코웃음이 나왔다.
조중동맹 조약 체결 당시에 한미 미사일 사거리지침 같은 걸 안 넣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뭔가 오해하나 본데, 우리 공화국에서는 군용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게 아니오. 우리도 다른 나라에서 뭐 만들면 바로 알 수 있게 신형 인공위성이나 하나 날려보려 하는 거지, 설마 인공위성까지 동북아의 긴장을 증폭시킨다고 할 생각은 아닐 거라 믿소.”
“하지만 이미 몇 년 전에 이미 통신용 인공위성을 궤도권에 진입시키신 거로 아는데…….”
“세상에 인공위성을 하나만 날리는 나라가 어디 있소?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 공화국은 그쪽 대국과는 달리 씀씀이도 작고 절약 정신이 좀 투철한 편이라, 그 무시무시한 로켓 값 소모를 좀 줄여주겠다고 제의하시는 분이 나타나자 그 제안을 받아들였소.”
“……?? 대체 그분이 누구입니까? 아니, 그 전에 로켓값을 줄여준다는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성공까지는 좀 오래 걸릴 거라고는 했지만, 본인과 피오니 홀딩스는 장기적 전망을 중요시해서 말이지. 다른 나라에서는 다 터무니없다고 쫓겨났는데, 다행히 우리 공화국에서는 본인의 비전을 마음껏 펼치고 있는 중이오. 마침 들어오시는군.”
정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서기실 문이 열리며 대사의 시선 역시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백인 남성을 보며 중국 대사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로켓 공학에 평생을 바친 나이 지긋한 박사를 생각했는데, 너무 젊어 보이지 않는가?
이내 그 젊은 백인 남성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 음…… 안녕하십니까? 영어를 하실 줄 아리라 믿는데…… 음…… 하여튼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앨런 머스크라고 하고, 혹시 아실지 모르겠는데 ‘스페이스 X’라는 민간 우주개발업체의 사장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남성, 앨런 머스크는 자신의 말을 찬찬히 곱씹어보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는 중국 대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다들 똑같이 사기꾼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 거야?
“하아…… 네, 제대로 들으신 거 맞습니다. 제가 방금 말한 ‘민간’이라는 뜻은, 국가가 아니라 개인이,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저와 제 회사인데, 하여간 개인이 로켓을 쏴서 우주에 간다는 걸 말합니다. 터무니없이 들리는 건 아는데 저기 앉아계신 총서기님께서는 저를 믿어주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