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08화 (208/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08화

74장. 민영화, 어디까지 해봤니?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것 아닌가? 동무는 자존심이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그 정도를 실패라고 엄살을 부리는 건 좀 많이 의외인데?”

안토노프의 고백을 들은 정환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해가 안 간다는 투로 다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정환은 눈앞의 이 북조선 첫 군용 수송 헬기가 Mig-26의 80% 정도의 성능이나마 가졌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어진 조건을 생각해본다면 아주 잘한 거 아닌가? 동무. 나는 기적을 요구한 게 아니야. 고작 10여 년 만에 이 공화국에서 소련제의 데드 카피 버전이나마 헬기를 만들어 낸 게 얼마나 대단한 위업인지 잘 알고 있네. 칭찬해주고 싶군. 맨입으로 이러는 게 아니라 훈장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어차피 그런 거 바라지도 않을 테니 생략하지.”

정환의 이런 말은 진심이었다.

비록 그는 엔지니어도 항공 공학자도 아니었지만, 어느 분야든 기술과 노하우는 절대로 일조일석에 쌓을 수 없다는 걸 아는 연구원이었다.

항공 산업은 고사하고 자동차 하나 만족스럽게 못 만들던 이 나라에서 불과 10여 년 만에 마이너 그레이드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군용 수송 헬기를 만들어 내다니.

사실 원래 성능의 80% 정도가 아니라 50% 정도만 만들어주더라도 정환은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지.’라고 그와 연구진들을 격려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안토노프가 아직 모든 사실을 다 보고한 게 아니라는 것이 곧 드러났다.

“기술 국산화와 자체 개발의 지난한 과정을 이해해주는 물주…… 아니, 지도자를 만나게 돼서 나도 기쁘군. 하지만 끝까지 들어줘. 당신 말대로 어지간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까.”

“말해보게. 경청하지.”

“우선 목표 달성 실패의 이유부터, 일단 애초에 이 사업은 초기 목표가 너무 높았어.”

“……안토노프 동지! 지금까지 10년 간 총서기 동지의 배려 아래 인민의 혈세를 받아와 놓고 그게 지금 무슨 소리요!”

안토노프의 거침없는 지적에 함께 참관하던 정치국 위원들과 장령들이 언성을 높이고 정환의 눈썹도 꿈틀거렸지만 이내 그는 손을 들어 안토노프에게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안토노프는 다시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업 목표는 중형 수송 헬기를 이 나라의 군의 요구에 시간을 맞춰 양산해내는 거였지. 말 그대로 그냥 카피 해내는 거라면 그리고 우리는 그 요구에 맞춰 바람이 심한 산간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도록 원안 설계를 변경하고 그에 맞춰 개발과 제작에 들어갔어. 그리고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엔진과 주 로터까지는 자체 생산하는 데 성공했지. 사실상 그게 이번 국산화 사업의 주 의미이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다른 부품들이야.”

“그거야 수입하면 되지 않나. 나도 애초에 국산화율 100% 같은 비현실적인 목표는 바라지도 않았어.”

정환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지만, 안토노프는 여전히 심각했다.

“그 부품이라는 게 동력전달장치라는 게 문제거든. 동력전달장치가 기존 Mig-26 설계에서 바뀐 이상 당연히 연동되는 다른 상당수 부품도 수입하는 게 아니라 이 나라에서 자체 제작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나라에는 그 동력전달장치와 그걸 조율할 다른 부품들을 양산할 기술도 설비도 없어.”

드디어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한 정환의 얼굴이 슬슬 굳어졌다.

애초에 개발을 명령했을 때부터 나사 하나까지 공화국 제로 국산화에 성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 고작 10년 안에 군용 항공기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목표가 그리 쉽게 달성될 리가 없었다.

당장 원 역사에서도 현재의 북조선보다 훨씬 높은 공업력을 가진 일본이나 한국도 번번이 미역국을 마셔서, 외국 기업과의 협업 아래 라이센스를 받아와 조립만 하거나 일부 기술을 이전받을 수밖에 없지 않았나.

“그 뜻은…… 국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만들 수 없다는 말인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우리 기술진들이 공장 안에서 전부 일일이 수제작 해야 하는데, 그럼 죽었다 깨어나도 그쪽이 요구하는 수량과 시간에 맞출 수 없어. 1차 요구 수량이 수송용, 의료용, 기타 등등 다 합쳐서 230대인데, 양산에 들어가서 230대 분량의 동력전달장치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조립하다가는 10년이 지나도 현장 배치가 불가능할걸.”

“잠깐, 만들 수는 있는데 시간이 문제라면 단기간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지으면 되는 거 아닌가? 기술은 그쪽이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가르치면 되는 것이고…….”

정환은 급하게 그렇게 물었지만, 안토노프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번에는 또 돈이 문제야. 230대라는 게 수제작 하기에는 너무 많아도 그 분량 만들자고 공장 라인을 깔기에는 또 애매한 숫자란 말이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라는 게 뭔지는 잘 알지? 민간 회사라면 군용 외에도 여러 가지로 헬기 수요가 있을 테니 통 크게 투자 선점한다 치고 깔면 되지만, 여기 국책연구기관이니 그것도 안 되고……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까지만 해도 정말 큰 진보를 이뤄낸 거야.”

“…….”

“……생각해봐, 개발 기간 내내 투자가 후했고, 도중에 근대 자동차, 쌍용처럼 내연기관 제작 노하우가 쌓인 엔지니어들이 합류하고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노하우에 나중에는 그쪽에서 산업 스파이 행위까지 해줬다는 걸 고려해도 다른 나라들이 30년은 걸리는 과정을 고작 10여 년 만에 뛰어넘은 건데, 뒷사정을 모를 타국 입장에서 보면 거의…… 아니, 문자 그대로 무에서 유를 만든 거라고!”

여기까지 말한 안토노프의 눈에는 불이 이글거렸고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정환은 여전히 뭔가를 생각하는 마냥 묵묵하게 듣고만 있었다.

이내 자신이 좀 흥분했다는 것을 깨달은 안토노프는 드물게 헛기침을 하더니 이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을 이었다.

“흠, 흠, 이제 알았겠지만 내가 앞서 말한 이유들로 인해…… 미안하지만, 이놈은 군용 양산이 불가능한 실패작이야. 현실적으로 조언하자면 기술축적을 위한 시범기라는 차원에서 몇 대만 더 만들어보고 장기 프로젝트로 돌린 뒤 당장 필요한 수량은 수입해오던가 하는 게…….”

“아니, 그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겠군.”

“……뭐?”

정환의 말에 안토노프는 ‘정말?’ 하는 표정으로 잠시 얼굴이 정지했다.

이내 그는 게슴츠레 눈을 뜨며 다시 정환에게 물었다.

“이봐, 서기장 동지…… 당신이 이 국방기술력 자립에 관심이 보통 많은 게 아닌 것도 알고, 그걸 위해 예산을 통 크게 쓸 의향도 있는 걸 내가 제일 잘 알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정비창에서 소량의 실증기를 이리저리 만들어보는 것과 헬기 부품 전용 공장을 증설하는 건 이야기가 달라. 군용차량이라면야 상용 자동차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으니 모르겠지만…….”

“어떻게 다른데?”

“아니……!! 이 나라가 요즘 많이 부유해진 건 알지만 달랑 200여 대 만들고 말 헬기 부품을 자급하기 위해 공장 라인을 새로 깐다는 건 장난 아닌 비효율이라고! 미군이나 우리 구소련군처럼 최소 수천 대 단위의 헬기를 찍어내고 부품 수요도 지속적이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여기는 그게 아니잖아? 아니면 갑자기 당신의 소중한 인민군 장병들 발에 땀나게 걸어 다니게 하기 싫어서 이동을 전부 헬기로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안토노프 동무 말이 맞습네다, 동지. 류씨네 자매들 애정 이야기 같은 련속극에서야 대위 따라지도 직승기 타고 다닌다지만…… 저희 공화국 국고가 화수분도 아니고 이미 달러화로 20억 달러 가까이 이 사업에 배분하셨는데 이번 사업은 한 번만 다시 재고해보심이…….”

옆에서 둘의 대화를 입 다물고 듣고 있던 장성택도 ‘그건 좀……’이라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정환에게 조언했지만, 정환은 여전히 시큰둥한 태도로 손을 저었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돈이 문제라면 해결은 간단한 거 아닌가. 지금은 이 공화국도 시장경제체제인데.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비효율을 초래한다면 그야 방법이 있지.”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안토노프와 장령들, 간부들을 향해 선언하듯이 말했다.

“세금으로 안 되면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면 된다는 뜻이지. 이번 차기 직승기 개발 사업 일부분을 민영화할 것을 지시하는 바이네. 이제 직승기 부분은 여기 연구소가 아니라 평양 증권시장에 상장된 민간 기업에서 만들게 될 걸세. 공화국 첫 방위산업체의 탄생이로군.”

* * *

사실 말이 민영화, 민간자본을 끌어들인 것이지 사업의 민감성 그리고 무엇보다 보안을 고려해 볼 때 결국 새로 탄생할 방위산업체는 피오니 홀딩스, 조선 석유 집단처럼 반쯤은 국영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했다.

외환위기 당시 남조선을 떠나 청진에 자리를 잡은 구 쌍용 중공업과 성삼 항공우주산업 그리고 답답하고 관료주의적인 국립 연구소 생활에 지쳐서 모험을 해보고 싶어 하는 연구원들을 합쳐 설립된 ‘조선항공 유한공사’의 경영권은 결국 당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러 기업체들에게 자의 반 타의 반(애국하는 거 아니냐, 감세 혜택 주겠다, 구매고객이 나라인데 매출과 최소수익은 보장된다 등)으로 투자를 받아 설립된 이 회사의 ‘경영진’도 그런 논리로 선정되었다.

“안토노프 동무가 이사회에 들어가게. 어쨌거나 그동안 수고가 많았으니 스톡옵션도 10% 얹어주지. 기술 담당 이사로서 평상시는 추격기 개발에 집중하되 지금처럼 필요할 때마다 자문을 해주면 되네.”

“……결국은 배당금 받고 싶으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이야기군. 뭐 좋아, 냉전도 끝났는데 총이랑 미사일 안 달린 비행기도 만들어봐야지.”

유한공사는 곧 개발명 KMIG-1, 정식명칭 ‘쇠매’라고 이름 붙여진 중형 수송 헬기의 부품공장 건립에 착수했다.

그래도 나름 민간 회사니 수익성 있는 그럴듯한 사업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 하고, 동력공급장치 만드는 만큼 생산 대수를 늘리는 게 손해가 줄고, 결정적으로 첫 사업부터 너무 큰 중량의 헬기를 개발하려 한 게 양산 실패의 원인이라는 안토노프의 지적을 받아들여 새로운 프로젝트에 착수한 건 덤이었다.

“미국 더글라스 맥도넬 사(社)의 500MD 같은 소형 기동직승기를 만들어보게. 무장을 부착하면 소형 무장직승기로도 쓸 수 있고, 작고 가격이 눅은 만큼 민간에서도 수요가 있을 것이고…… 또 무엇보다 개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500MD 같은 경 헬기는 이미 80년대에서 공화국에서도 유럽을 경유해서 밀수입해서 이리저리 굴려본 만큼, 훨씬 짧은 기간에 완성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이번에는 진짜로 이륙한 공화국산 중형 다목적 직승기, 쇠매 시제기 1호를 타고 창공에서 평양 시내를 둘러본 후 다 못 본 보병용 신형 대전차 미사일 시범 발사까지 보고 난 정환에게 안토노프는 그때야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이걸로 그 3대 목표 5대 과제인가 하는 것 중에 5대 과제는 얼추 완성이 된 거로군. 그런데 서기장 동지.”

“지난번부터 생각했는데 제발 총서기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하여튼 뭐지?”

“미사일 하니까 생각났는데 말이야…… 당신과 이 나라 군이 가상적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이제는 사우쓰 코리아가 아니라…… 우리의 중국 콤래드(Comrade : 동무)들이 뒤통수를 때릴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면서? 하기야 소련 당 간부들도 한 번도 중국을 믿은 적이 없기는 하지.”

“……연구소 내에 소문이 많이 돌아다니나 보군.”

하긴 안토노프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인민군이 개발하는 무기체계를 보며 언제건 눈치를 챘을 게 분명했다.

공공연한 비밀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인민군 국방 연구개발의 중심에 있는 그이니만큼 훨씬 이전에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다음 질문을 할 때, 안토노프의 목소리는 훨씬 낮아지고 은밀해졌다.

흡사 주변의 누군가가 듣기라도 할까 봐 무섭다는 듯이.

“……하지만 내 생각에 말이야, 정말로 중국으로부터 주권을 지킬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싶다면 수송 헬기 자체 개발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데. 정말로 준비해야 할 것을 잊고 있는 거 아닌가?”

“동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이런 재래식 전력 강화가 의미 없는 건 결코 아니지만, 시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수천 킬로미터 밖에서 적국을 박살 내는 무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대에 돌입했어. 알다시피 소련과 양키들이 그 분야에서 역사에 남을 한 획을 그었고 말이야. 직접 적군의 얼굴을 보면서 공격하는 무기의 시대는 이미 2차 대전 때 종말을 맞이했으니까.”

이제 안토노프의 목소리는 더더욱 낮아져서 거의 속삭이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환의 귀에는 마치 천둥 치는 것처럼 또렷이 들렸다.

“나는 전술단위의 병기가 아니라, 전략 단위의 병기를 말하는 거야. 서기장 동지. 넓게 보면 당신이 내게 요구한 F16급 전투기도 그 범주에 들어가고. 주제 넘는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동안 당신이 내게 보여준 신뢰를 고려해 충고 비슷한 걸 하지. 서로 거짓말은 안 했으면 좋겠어.”

“…….”

“이미 그 방면에 노하우가 있는 우리 엔지니어들을 데려간 걸 알아. 그 늙은 머저리 옐친조차 소련이 모래성처럼 무너질 때도 이것만큼은 넘겨주지 않으려고 FSK(연방방첩청, 연방보안국 FSB의 전신) 관리 하에 꽉 그러쥐고 있던 거로 아는데…… 하지만 핵탄두가 보드카 20병에 넘어가던 시절이니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상당수가 여기 와 있겠지.”

여기까지 말한 안토노프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침내 본론을 이야기했다.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생각은 왜 안 하는 거지? 어떤 상황에서도 베이징과 상하이는 확실하게 날려버릴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면 모든 협상에서 훨씬 유리할 텐데 말이야. 역시 외교적 압력이 부담되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아직 거기까지 이야기해 줄 만큼 내가 당신 신뢰를 사지 못한……?”

“동무 짐작이 맞네.”

정환은 안토노프만큼이나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그의 말을 끊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조용한 목소리에 담긴 내용은 안토노프의 머리를 그야말로 카오스에 빠트렸다.

“사실 이미 우리만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있지. 극비에 부치느라 본격적으로 착수한 건 얼마 안 되네만.”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군. 하지만 그럼 중국은 물론이고 당신의 좋은 친구인 양키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을…….”

“……민간 주도로 말이야. 중국은 그렇다고 쳐도, 설마 자유 시장 경제체제를 숭배하는 미국 양키들이 그걸 가지고 트집 잡기는 힘들겠지. 우리가 남조선처럼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무는 알지 모르겠는데, 요즘은 미사일도 민영화할 수 있거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