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05화
“발사---!!”
쿠우우우우웅!!!!
발사 신호가 떨어지자 125㎜ 활강포가 불을 뿜으며 사격장 저 멀리에서 움직이는 이동식 표적을 박살냈다.
그렇게 표적을 파괴한 전차, 구소련인들 주축으로 이루어진 개발진들 사이에서 임시로 ‘T-94’라고 불리는 전차는 곧 경사면을 올라 얕은 하천을 도하하는 등 험지 주행 능력을 시험하는 순서에 돌입했다.
이번에도 사격 시험처럼 어렵지 않게 끝내자, 실험장 통제실에 자리한 좌급 군관들 그리고 장령들 사이에서 낮고 자그마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60년대에 개발된 전차를 현역으로 굴리다가 수령을 잘 만나 천지개벽을 한 이후 이런 상전벽해의 날이 온 것을 생각하면 탄성의 데시벨은 한참 더 올라가야 했지만, 그들 중 누구도 그럴 수 없었다.
문제의 바로 그 수령, 공화국의 모든 것을 한 손에 틀어쥐고 지금까지 끌어온 거나 다름없는 총서기가 긍정적인 의사를 표시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럴 수 없었으니까.
“멋지군. 하지만 중요한 건 보여주기가 아니지. 자세한 제원은 어떻게 되나?”
“개발명 T-94, 58 톤, 최대 가속력 평지 기준 75㎞, 야지 기준 60㎞, 전장 9.8m, 전고 2.4m, 엔진은 1300마력에 탑승 인원은 전차장, 포수, 조종수 3명. 주무장은 방금 봤던 125㎜ 활강포, 부무장은 중기관총 1정과…… 그 뭐냐, 대대(大大)기관총인가 하는 PKM 베낀 그거 하나 더.”
오늘 예정된 일정, ‘조선인민군 종합 화력 시범 겸 8대 과업 중간 보고회’의 발표를 맡은 사람 중 하나는 안토노프였다.
비록 그의 전문 분야는 항공 분야였지만 자신이 말했던 대로 여러 육전 병기 개발에도 들락날락하는 데다가 은연중에 구소련 출신 기술자들의 대표 격을 맡고 있어서였다.
게다가 최고 지도자이자 ‘물주’인 자신에게 공에 눈이 멀거나 추궁이 두려워 보고를 더하거나 빼는 것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정환이 그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의 기대대로 안토노프는 평상시의 퉁명스러운 침묵을 깨고 자신이 공을 들여 손질한 정원을 보여주는 정원사처럼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
“……솔직히 부무장 쪽은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기관총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보병용 소화기 개선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대충 이걸로 달아놔야지. 그리고 자동장전 장치에 열 영상 장비, 화학전용 가스 여과기…… 그리고 나중에 선택적으로 보병용 대공 무기를 장착할 수 있고 삽날 같은 거 달아서 공병 전차로 전환도 가능하지. 앞으로 최소 10여 년간은 주력 전차로 써먹어야 하는데 다목적성이 중요하니까.”
“장갑은?”
“전면에는 복합장갑(Composite armor)을 달았고 차체와 포탑의 측면에는 폭발성 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으로 강화해놨어. 나도 그쪽 전문 분야는 아니라 잘 모르지만 에이브람스를 비롯해 양키들 설계 사상을 좀 많이 들여놨다고 하더라고. ……하기야 이라크에서 그렇게 얻어맞았는데 보고 배우는 게 없으면 접싯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쯧.”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뭔가 자존심 상한다는 안토노프의 말에 옆에 서 있던 또 한 명의 공동 발표자, 백승철이 이라크라는 말이 나오자 험험 거리며 자신에게도 말할 기회를 좀 달라는 듯 헛기침을 했지만, 여전히 안토노프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설명을 계속했다.
“그리고 장갑, 청진의 당신들 공장 기술자들이 신신당부해서 이건 좀 설명하고 넘어가야겠군. 설계 당시에는 복잡미묘한 장갑용 강판 재질 중 8할을 이 북조선 내에서 자체 생산할 도리가 도무지 없어서 모조리 수입하는 게 초기 안이었지만…….”
“……험, 안토노프 동무, 이제 본인도 좀 설명을…….”
“……다행히도 여기 우리의 전능하신 서기장 동지께서 몇 년 전에 사우쓰 코리아 중화학, 완성차 기업들을 뜯어낸 아니, 사 와주신 덕에 이게 가능했지. 그래, 내가 원래 칭찬 같은 건 잘 안 하지만 아무리 국가적 투자와 지원이 있었어도 현대적 복합장갑을 100%는 아니라도 자체적으로 3년 좀 넘는 기간에 생산에 성공한 건 정말 대단한 거야. 인정하지.”
“……이보시오, 동무. 잠깐만…….”
“특히나 10여 년 전 당신들의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는, 눈물 나오는 공업력 수준을 감안해보면 더더욱 그렇지. 중간에 우리와 근대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의 자의 반 타의 반 기술원조가 있었다고 해도 이 공화국이 현세대에도 통할 수준의 복합장갑용 세라믹 충전제를 자체적으로 생산 조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정말로…….”
병기 개발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멈출 줄 모르는 안토노프에 백승철은 마침내 더 참지 못하고 중간에 그의 말을 끊고 앞으로 나섰다.
“……정말 지난하기 그지없는, 피와 땀과 눈물의 혁명적 여정이었습네다! 러시아와 남쪽 기술을 소화해내고 설계에 요구하는 재질을 연구 생산하기 위해 수도 없이 날밤을 샌 김책 공대의 연구원들, 그리고 라선과 청진의 우리 중화학 로동자들의 피와 땀이 있었지요. 하지만 국방 기술 자력갱생을 이루라는 동지의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총참모부와 여기 연구원 공동의 노력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오늘의 위업을 이룩한 것입네다.”
“아…… 그래, 수고 많았네. 앞으로 이 사업에 공훈을 세운 모든 군관, 과학자 동무들에게 상응하는 포상과 승진이 있을 것임을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그럼 이제 전차 말고 다음 점검을…….”
“……하지만 이 땅크에서 특별히 주목해주시기를 바라는 점이 하나 있습네다. 안토노프 동무와 로씨야 기술진들, 청진 공장 로동자 동무들도 물론 고상(고생)이 많았습네다만 여기 연구원의, 그리고 불확실한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오직 애국심만으로 이 사업에 자원한 평양의 정보화 기술 기업소 동무들이 총서기 동지께 반드시 알려드리라고 저에게 청했던 말이 있습네다.”
“이보시오! 백 동무. 군과 총참모부, 그리고 총국까지 이 8대 과업 추진에 노고가 많았던 것도 알고, 특히 백 동무가 최종책임자라 공훈을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알지만, 총서기 동지께서 교시하시는 데 이 무슨…….”
정환이 다음 순서로 넘어가려 할 때 급하게 백승철이 끼어들자 함께 참관하던 장성택이 눈살을 확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딱히 장성택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안 그래도 인민군과 영 편치 않은) 당정의 중앙위 정치국 위원들도 얼굴이 굳어졌다.
수령이 지엄한 교시를 내리는데 말을 끊는 건 무시무시했던 옛날 같았으면 아무리 인민군 최고위급이라도 목이 날아가기 딱 좋은 일 아닌가.
하지만 정작 정환은 잠시 침묵하면서 백승철의 눈빛을 찬찬히 훑어보다가 이내 허가를 내렸다.
“괜찮네. 어차피 오늘 하루 일정은 거의 비워뒀으니까. 말해보게. 하지만 그럴 만한 일이었으면 좋겠군.”
“……설계부터 엔진이나, 장갑재 문제는 당시 공화국의 경공업, 재료공학 능력이 심히 부족하여 말이 국산화지 사실상 남과 로씨야의 기술자들의 손에 맡겼지만, 땅크의 뇌가 될 탄도 콤퓨타 같은 전자 장비들 중 일부는 총서기 동지의 선견으로 90년대 초반부터 투자를 해온 덕에 기것만큼은 10할 공화국 기술로 자체 개발을 시도해봄직 하다는 의견이 나왔고, 격론이 오간 끝에 기술적 모험을 해보자는 안이 통과되었습네다.”
“……그래서?”
“총참모부에서 홍계성 차수 동지 연줄로 김대 물리학과 교수까지 모셔온 끝에 순수 공화국 기술로 탄도 콤퓨타와 레이저 측정기를 포함한 어디 내놔도 뒤지지 않는 사격통제장치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으며 현재 저 신형 땅크에 장착된 상태입네다. 기런데…….”
정치국 위원들은 대체 백승철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나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정환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백승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기런데 마침 김대에 다니다 초모(징집)되어 땅크 개발에 종사하던 젊은 연구원 동무 둘이 나흘 밤을 새다가 과로로 사망했습네다. 부디 총서기 동지께서는 다른 연구원 동무들의 차후 사기를 고려하시어 이 동무들의 노고에 특별히 인정을 베푸셨으면 하는 거이 저의 건의입네다. ……교시 중에 방해를 끼친 점 사죄드리며 처벌을 달게 받겠습네다.”
“……공화국 영웅 훈장과 후방 가족에 준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두지.”
‘과로에 지친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의 죽음이라…… 이거 남 이야기 같지 않군.’
정환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장령급 군관 가족들을 일컫는 후방 가족급 처우를 약속하면서 한 생각이었다.
뜻밖의 죽음 소식에 잠시 사위가 고요해졌다.
심지어는 방금 전까지 평소답지 않게 말이 많았던 안토노프도 씁스레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이번에도 백승철이었다.
“홍 차수 동지께서 본인이 직접 총서기 동지께 말씀드리려 하셨으나 아시다시피 얼마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지실 정도로 병환이 깊어지셔서 부득이하게 제가 말씀을 올렸습네다.”
“부득이하긴, 홍 차수 다음으로 인민군을 책임질 사람은 누가 뭐래도 백 상장 아니, 백 차수 동지 자네인데 뭐가 부득이하겠나.”
“……!! ……그럼 계속해서 참관을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네다.”
이번에도 침묵이 참관실 내를 장악했으나, 조금 전과는 달리 작은 경악이 섞인 침묵이었다.
요즘 병이 들어 자리보전만 하는 홍계성 차수 다음으로 인민군 총참모부를 누가 장악하게 될지가 평양과 로동당 내부의 은밀하지만 뜨거운 관심거리였는데, 정환이 방금 그 논란을 종식시켜 버렸다.
물론 홍계성이 반쯤 은퇴하면서 백승철이 현재 프룬제 일파 중 가장 핵심으로 떠올랐고 얼마 전에는 상장에서 다시 차수 직위까지 승진하기는 해서 가장 유력한 후보기는 했다.
하지만 백승철이 집권 초기 그가 총서기 정환과 영 불편한 관계였다는 건 꽤 많은 간부가 알고 있어서 정환이 아예 이 기회에 다른 사람을 앉혀놓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적지 않게 나돌았는데, 이번에 보기 좋게 부정당한 것이다.
이렇게 최고지도자의 등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당과 내각의 간부들의 계산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환은 슬쩍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안내를 재촉했다.
“그러지. 다음이 아마, 차기 주력 보총 사업이었나?”
* * *
이윽고 한층 조심스러워진 당 간부들과 내각 구성원들, 군관들은 정환의 뒤를 따라 실험장 내에 마련된 사격장으로 향했다.
테이블에는 이미 이번에 개발이 완료된 차기 주력 보총과 기관총, 권총들이 나란히 올려져 있었고, 오늘을 위해 선발된 (잔뜩 힘이 들어간) 사수들도 이미 시범 사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지금 보시는 놈들은 앞으로 인민군의 주력 보총이 될 01식 따발총(기관단총), 02식 자동보총, 03식 기관총입네다.”
“……!?!? 말끔하기는 한데, 그건 새것이니 당연하고 겉보기에는 별 다른 점이 없소만…… 아, 이 윗부분에 이건 뭐요?”
“이제 사격을 시작할 참이니 곧 알게 되실 겁네다.”
이윽고 시범 사격이 시작되자, 군관들보다 비교적 서방의 무기체계에 익숙하지 못한 당 간부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정환은 안토노프를 대신해 참관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백승철이 준비한 새 자동보총의 혁신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당장 자신이 오래 전에 지시한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조선광학공사에서 오랜 연구 끝에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에 성공했고, 적극적으로 주장해 이번에 자동보총에 채용한 첨단 조준경 체계를 새롭게 도입했습네다.”
이제까지 조선인민군의 주력 보총, 즉 보병용 돌격소총은 한때 소련의 영향권의 나라에 있던 나라들 거의 전부가 그랬듯이 칼라시니코프 소총, AK 47로 대표되는 AK 시리즈의 마이너 카피 버전이었다.
이전에 쓰이던 68식 자동보총 등이 아직 산처럼 쌓여 있는 데다 탄 보급 문제 등으로 신형 보총도 7.62㎜ 탄을 쓰기는 하지만 걸프전에 참전한 백승철의 강력한 건의 아래 신형 01식 보총에는 피카티니 레일(Picatinny rail)이 적용되었다.
물론 여전히 구소련권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피카티니 레일에 접이식 개머리판, 탈부착식 수직 손잡이를 달아놓은 총을 전군 배급 계획을 잡아놓은 건 확실히 수뇌부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파격적 조치라고 할 수 있었다.
“조준경의 경우 아직 일선 보병부대까지는 힘들지만, 정찰여단과 저격여단에는 전부 배치가 완료되었고, 01식 보총 자체는 이미 전 인민군에 절반 이상 보급이 완료되었습네다. 3년 안에 전군에 보급을 마칠 예정입네다.”
“흠, 고거 보총 변하는 거이 우리 공화국 외교 사업 상을 반영해주는 거 같구만 기래. 그런데 저격 보총이 안 보이는군?”
“그거이…….”
거침없이 설명을 계속하던 백승철의 얼굴이 이 부분에서 살짝 굳어졌다.
조선인민군 8대 과업의 요지는, ‘자강이라는 목표 아래 전면적 변화와 혁신을 도입하되 그대로 놔둬도 괜찮은 것은 그대로 놔두자’라는 국방사업의 기본 원칙에 충실한 점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 원칙에 충실하게, 사업 초기 한국식 표현으로 ‘사업타당성 평가’를 총참모부 내에서 해본 결과, ‘저격 보총 자체 개발은 아직 시기상조. 당분간은 그냥 수입산 채용이 나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물론 8대 과업에 명시된 것은 주력 보총뿐 이었으니 엄밀히 말해 목표 달성 실패라고 보기는 무리였지만, ‘현용 78식 저격 보총은 수입산에 비해 질이 떨어지니 아예 전량 퇴역시키고 외산을 수입’하자는 보충 결론도 함께 난 게 문제였다.
‘외세에 의존하지 않은 자력갱생’이라는 무려 김일성 시대부터 현 김정환 시대까지 살아남은, (정말 얼마 안 되는) 목표를 달성 못 했다고 충분히 책잡힐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환은 의외로 융통성을 발휘했다.
“됐네. 어차피 모든 걸 자체 생산, 전 방면 자력 생생은 이 세계화 시대에 터무니없다는 걸 잘 알지 않나?”
“하오나, 총서기 동지…….”
“국방기술력 자주는 공화국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너무 국산화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 당장 전대 수령 시대에도 그러지 않았나? 외산이 더 좋다면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력량의 하나인 법이지.”
“…….”
“그럼 이제 직승기나 보러 갈까?”
비현실적인 목표에 집착하다 낭패를 겪는 것보다는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 라는 건 조직 운영의 기본이다.
백승철을 비롯한 장령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지만 이내 직승기 시범 착륙장에 가까워지자 그들은 다시 온몸에 바짝 긴장을 가해야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놀랍게도 이제까지 방약무인하던 안토노프도 살짝 긴장해야 했다.
시범 이착륙장에 도착해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직승기(헬리콥터)를 보며 정환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표정이 왜들 그러나? 겉보기에는 괜찮은 거 같은데 말이야.”
“음…… 그게, 서기장 동지. 솔직히 말할게. 창피하기는 하지만, 그러라고 당신이 나를 채용한 거니까.”
“……뭐 문제라도 있나?”
백승철에게서 다시 안내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안토노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놈은 실패야.”
“……구체적으로 무슨 실패? 헬기가 못 뜬다는 건가?”
“아니, 그런 의미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사업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뜻이야. 지금 당신이 눈앞에서 보고 있는 이 중형 다목적 수송 헬기는 그냥 소련제 MI?26기의 데드 카피 판이야.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데드카피가 아니라 다운그레이드라고 해야겠군. 진짜 MI-26 성능이 1이라고 하면 이건 0.85, 조종사 기량과 운용에 따라 0.8 정도거든.”
여기까지 말한 안토노프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아무리 내 주전공이 아니라지만 큰소리 땅땅 쳐놓고 이건 좀 미안하군. 변명을 좀 하자면 애초에 무리한 목표 설정이었고 이거나마 자체 생산한 것도 우리 기술진이 없었으면 전혀 불가능했을 거야. 하지만 어쨌거나 요구사항에 부응하지 못한 건 맞으니, 문책은 달게 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