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03화
“Che cazzo vuoi? Figlio di puttana!!! (뭐 이 x끼야? x 까!!!)”
청천벽력 같은 레드카드 선언에 이탈리아 선수들은 그야말로 눈이 뒤집어 져서 길길이 날뛰었지만, 모레노 주심은 무표정으로 전혀 변화가 없이 치켜든 레드카드를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과격한 반응은 충분히 이해가 갈 수 있는 게, 방금 레드카드를 먹은 파올로 말디니는 이탈리아 수비진의 에이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선수였던 것이다.
안 그래도 익숙지 않은 기후에 후반전 들어 슬슬 지쳐가는데, 수비진영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생긴 판이었다.
“Minchione!!! Fai schifo!!”
“그래 봐야 판정은 바뀌지 않소! 경기 속행하게 어서 제 위치로 돌아가시오!”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이태리 선수들은 분노를, 북조선 선수들은 희망의 불씨를 안고 경기가 속행되었다.
그리고 그때, 관중석에서는 어떤 특정한 변화가 일어났다.
“야~~! 힘내라! 이태리 코쟁이들한테 매운맛을 보여줘!”
그 변화란 바로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응원의 변화였다.
사실 경기장이 라선, 즉 북조선의 홈 그라운드에 위치한 데다 공화국 내에서 이번 경기와 월드컵에 쏟아진 인민들의 관심을 증명하듯 북조선 선수들은 이미 그야말로 열화와 같은 인민들의 응원을 받고 있었다.
(왕년의 매스 게임 실력을 발휘해서 만든) ‘자랑스럽게 나아가 체육 영웅이 되어 돌아오라!’ 같은 카드 섹션이 관중석을 뒤덮고 좀 덜 조직된 응원도 꽹과리와 장구까지 동원하여 그야말로 12번째 선수 역할을 확실하게 해주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응원에 제3의 세력이 가세했다.
그 제3의 세력이란 바로 월드컵 구경을 위해 일시적으로 관대해진 입국 비자를 받고 라선까지 올라온 남조선, 한국 관중들이었다.
“더티 플레이에 지지 마라! 아니면 너희들도 다리 몽댕이 까버려!”
“우리랑 같이 본선 가서 한민족 매치 한 번 해보자!”
“1966년 때 한 번 더! 서울이랑 평양에서 결승전 직관 함 보자!”
“……!!!”
흔히들 ‘초록은 동색’,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있다.
스포츠가 국수주의를 조장한다고 하지만 또 목적의식만 공유한다면 ‘내 적의 적은 내 편’식으로 순식간에 경계를 없애는 것 역시 스포츠다.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거니와 서울에서도 방송 중계를 통해 라선에서 북조선이 이탈리아와 경기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원 역사와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해도, 또 굳이 언더독(Under Dog) 운운하지 않아도 여전히 (비자 완화된 김에 소리소문없이 몰려와 경기장 관객석에 티 안 내고 앉아 있던) 한국 관객들에게는 이탈리아보다는 북조선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어느새 남북 관객들은 하나가 되어 이탈리아 선수들의 러프 플레이를 규탄하면서 북조선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이겨라! 16강 가자!”
“코리아! 코리아 파이팅! 사우스든 노쓰든 하여간 코리아팀 파이팅!”
어느새 하나가 된 남북 양국 응원단들의 환호성 속에 어느새 후반전은 반을 지나 30분에 가까워져 가고 있었으나, 1:1의 팽팽한 상황은 도무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질 줄을 몰랐다.
졸지에 10명이 되어버린 이탈리아 선수진은 교체 선수를 투입하고 더욱 공세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그걸 지켜보는 관중들, 그리고 물론 정환과 당 간부들의 속도 바짝바짝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저쪽은 교체 선수를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지만, 우리 공화국 팀은 아직 선수 풀이 부족해서 교체 선수 중에는 실력이 크게 떨어지는 선수들뿐이다. 그렇다고 무승부를 내면 또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데…….’
더군다나 어렵게 섭외(?)한 모레노 심판도 조금씩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정환이 FIFA를 움직여 심어놓은 사람이었지만, 애초에 매수를 한 것도 아니고 출장 경기를 바꾼 것뿐이니 북조선에게만 유리한 판정을 할 리도 없었다.
피지컬에서 앞서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북조선 선수들에게 팔꿈치와 무릎을 동원해서 몸싸움 반, 반칙 반 정도의 공격을 가하는데도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번번이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점차 북조선 선수들이 바닥에 구르는 일이 많아지자 관중석에서도 심판에 대한 불평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저저……! 방금 분명히 쳤잖아, 저거! 저 주심 저놈 눈이 삐꾸 아니가?”
“오프사이드! 오프사이드인데 휘슬 불어야지!”
“야! 집어치워라! 주심 이태리 놈들에게 얼마 받아 처먹었냐!”
마침내 후반 40분.
양 팀 모두, 그리고 관중들까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황, 그때 다시 한번 이변이 벌어졌다.
“파울! 프란체스코 토티 파울!”
“Cosa?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파울! 당신 방금 팔꿈치로 노쓰 코리아 수비수 배를 때렸잖아! 프리킥을 선언하겠습니다!”
이탈리아팀의 에이스 프란체스코 토티가 반칙을 범한 것에 모레노 주심이 북조선 측에 프리킥을 준 것이다.
점점 빠르게 가는 듯한 초침에 탈진한 관중석의 함성이 순식간에 두 배로 커졌다가 프리킥이 선언되는 순간 다시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이미 시간은 후반 43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프리킥이 사실상 북조선의 마지막 기회였다.
“말도 안 돼! 저 선수 할리우드 액션이라고!”
“설령 파울이라 해도 프리킥은 너무 심하잖아!”
“다시 말하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소! 어서 스크럼을 짜고 프리킥을 속행하시오!”
‘그렇지! 역시 저 양반을 데려온 건 실수가 아니었어!’
이탈리아 선수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모레노 주심이 고집을 꺾지 않는 것을 보며 정환은 속으로 쾌재를 질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비론 모레노라는 이름은 사우스든 노스든 코리아에 행운의 신이 되어준 셈이었다.
“초, 총서기 동지. 과연 홍영조 선수 동무가 저 벌차기(프리킥)을 성공할 수 있을…….”
“나도 모르겠으니까 나 좀 건드리지 말게. 내가 무슨 축지법이라도 발휘해서 공과 골대 사이를 줄일 수 있을 걸 기대하나? 제발 그냥 입 다물고 보지!”
북조선 대표팀의 젊은 에이스, 홍영조가 이탈리아 선수들의 벽 앞으로 다가갈 때, 박스석에서 눈치 없는 당 간부 하나가 손까지 떨면서 그렇게 물었지만 정환은 역정만 내고 경기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느새 심드렁하던 정환도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김정환 총서기뿐만 아니라 박스석의 모든 당 간부들, 장성택, 백승철, 현영숙, 김용건, 유혜림 등 모든 사람이 관중과 같은 심정이 되어서 눈이 빠져라 경기장만 보고 있었다.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북조선 인민들도 이 순간만큼은 기도를 올리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공이 잔디밭을 떠났다.
파앙!!
“……!”
“어어어……!”
“저, 저거, 저거는……!”
“골! 골입네다!!!! 골!!! 홍영조 선수가 이탈리아 기적 같은 골을 성공시켰습네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 인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이것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6강에 진출하게 되었습네다! 력사상 두 번째 16강 진출! 다시 한번 이태리를 꺾었습네다! 공화국 건립 이래 력사에 남을 위업을 홍영조 선수가 이루어 냈습네다!”
감격에 겨워 눈물까지 흘리는 북조선 아나운서는 아직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16강에 진출한 마냥 마이크에 대고 고함을 질러댔지만, 이내 그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사실상 경기를 결정지어버리는 골이 터진 직후 불과 20초 후에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이탈리아의 16강 진출권을 건 경기는 2:1 북조선의 승리라는 믿기지 않는 결과로 끝이 났다.
경기장은 그야말로 남북 관중들, 심지어는 멀리 연변에서 구경하러 온 중국에 조선족 관중들까지 하나가 되어 서로 얼싸안고 지르는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경하드립네다! 총서기 동지! 력사에 남을 혁명적 위업을 이루셨습네다!”
“총서기 동지! 축하드립네다! 참으로 축하드립네다! 이게 모두 동지의 령도력과 지략 덕분…….”
“……내가 축하받을 게 뭐가 있겠나? 정문영 회장 동지가 축하를 받아야지. 참으로 축하드리오, 그리고 고맙소, 회장 동무. 축구뿐만이 아니라 이제까지 북남을 위해서 해온 모든 과업에 대해서. 조선인민공화국 최고지도자로서 새삼스레 감사를 표하는 바이오.”
“아닙니다. 저야말로 총서기 동지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이 광경을 보게 해주셔서. 이 정문영이는 바로 오늘의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이 질긴 목숨을 이어왔던 것만 같습니다.”
당 간부들이 체통도 잊고 서로 만세 삼창을 하며 환호성을 지르는 박스석에서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 있는 둘 중 한 명, 정환이 그에게 감사를 건네자 정문영은 그저 어깨를 떨며 눈가를 훔쳤다.
그의 시선은 경기장이 아니라, 남북 관중이 하나 되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관중석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새 노인의 주름살이 가득한 눈은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정환이 다시 뭐라고 입을 열 찰나, 당 간부 중 하나가 휴대폰을 들고 급히 연락을 받고는 목소리를 높여 소식을 알렸다.
“방금 도이췰란드(독일)와 카메룬의 경기가 도이치의 2:1 승리로 끝났답네다! 이로써 도이췰란드와 공화국의 각각 H조 1위와 2위로 16강 진출이 확정되었습네다!”
“후우, 정말 남이나 북이나 그놈의 경우의 수라는 게 무섭군. 그래도 아직 방심은 하지 말지. 이제 16강. 진짜로 중요한 싸움이니까 말이야. 어서 내려가 봐야겠군. 선수들을 만나서 악수라도 해야 하니까. 뭐하나? 어서 준비들 하게. 평양에 연락해서 미리 훈장도 준비해놓고.”
그날 경기장에서 뛰던 모든 북조선 축구 국가종합팀 선수들은 그야말로 일평생 영광으로 남을 최고지도자와의 축구장 사진을 찍게 되었다.
특히나 마지막 순간 골든 볼을 넣은 젊은 에이스, 홍영조는 무려 정환과 단독으로 악수를 하는 투샷 사진을 찍는 영광을 누리기까지 했다.
이제는 3S 정책이라는 정략적 목표 반, 본인의 진심 반을 넣은 정환은 내친김에 그날을 북조선의 임시공휴일로 선포하고 선수들에게 이런 공약(?)까지 내걸었다.
“만약 40년 만에 다시 8강 진출에 성공하면 그때는 선수들 전원, 1군, 2군 선수들을 가리지 않고 모든 선수와 각각 악수하는 사진을 찍지. 그리고 그 모든 사진을 로동신문 1면에 게재하도록 하겠네.”
예전에는 공화국에서 지도자와의 악수는 물론이고 공동촬영 정도라도 그 자체만으로 신분증명수단이자 일종의 훈장, 노령 연금증명서였다.
비록 지금은 그 정도의 가치는 없을지라도, 이미 북조선 주민들에게 김일성 주석의 재래이자, (사실 그 김일성도 이루지는 못한)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준 김정환 총서기와의 사진, 그것도 독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그걸 뛰어넘는 무형의 가치가 있었다.
그렇게 그날,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신승을 거두고 16강에 진출한 그 날은 선수들과 정환에게는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대한민국에게도 잊을 수 없는 어떠한 날로 또렷이 뇌리에 아로새겨지게 되었다.
* * *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사진이 로동신문 1면에 실리는 일은 없었다.
이탈리아와의 사투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북조선 국가종합팀은 이어지는 16강전 첫 상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주력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닥터스톱을 당하고 체력과 정신력을 소모할 대로 소모한 결과라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반면 큰 난관 중 하나였던 이탈리아가 조별리그에서 떨어져 버리는 등 대진운에서 여러모로 운이 따라준 한국은 어부지리로 원 역사보다 좋은 성적, 무려 결승까지 진출에 성공했으나 하필 브라질을 만나 좌절하고 말았다.
어찌 보면 결국 남조선 좋은 일만 해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월드컵 폐막식이 끝난 후에도 평양에는, 나아가 북조선 전체에는 한동안 축구의 열기가 식지 않았다.
프로 축구 리그의 관중들이 급격하게 불어나고 축구 선수를 장래의 목표로 정하는 북조선 아이들이 많아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북남이 본선에서 서로 만나는 일은 어찌 되었건 간에 없게 되었군.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글쎄요, 제 생각입니다만 아마 서로 만나게 되었다고 해도 총서기께서 우려하시는 갈등이나 원한의 폭발 같은 건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서로의 기량을 존중하며 더 나은 팀이 승리를 가져가는 아름다운 축구를 했겠지요. 최소한 이번 월드컵부터는 북남 대표끼리 축구 경기를 하더라도 확실히 그렇게 될 겁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건가, 정 회장 동지?”
평양에서 열리는 월드컵 폐막식을 지켜보면서 정환이 옆에 앉은 정문영에게 그렇게 묻자 정문영은 주름이 진 입가에 알 듯 모를듯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허허, 그냥 노인네의 직감입니다. 굳이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월드컵 경기 중에 어떤 장면, 제가 그토록 보길 원했지만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장면을 봤기 때문이라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참으로 마음이 편하군요. 이제 저는 이룰 것을 다 이뤘습니다. 남에서 올라와 여기 고향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도 이렇게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제 더는 여한이 없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바로 이런 날, 이런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만 같군요. 이제는 언제 떠나더라도 모든 걸 내려놓고 감사히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편안한 미소를 짓는 정문영의 얼굴에는 모든 것을 이루고 해탈한 사람의 표정마저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마치 자신의 임종을 미리 예언이라도 한 듯이 남북 공동 월드컵 폐막식 불과 한 달 후, 근대그룹 창업주 정문영 회장은 자다가 편안하게 숨을 거두었다.
빈소는 한국 서울과 평양에 공동으로 마련되었다.
정환은 사상 처음으로 남조선 인물을 위한 애도 기간을 당에 선포하고 죽은 정문영 회장에게 공화국 산업 영웅 1급 훈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