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00화
“저 역시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유 대통령님.”
“허, 전화상으로도 느꼈지만 서울 말씨가 아주 능숙하시군요. 제가 들어도 구분 못 할 정도입니다.”
“북남 간에 많은 사람이 오가면서 언어적 차이가 사라지고 있는 덕분이지요. 사실 민족이나 말투나 결국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인데, 서로 왕래하고 소통하다 보면 차이는 이른 시일에 메워지지 않겠습니까.”
기자들의 플래시가 소낙비처럼 터지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긴장 어린 표정으로 침을 삼키는 가운데, 정환과 유민중, 두 정상은 미소를 띄우며 악수를 나눴다.
이윽고 장관, 국무총리를 포함해 수행 인원들 전원을 소개받은 후, 그들은 다음 일정, 정환이 한국에 방문한 공식적 이유라고 할 수 있는 일정을 진행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월드컵 경기장으로 이동할 차례인데, 저와 같은 차에 타고 가시겠습니까?”
“영광입니다.”
‘그래, 안 그래도 나도 이 사람과 한 번쯤 두 눈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기는 했어.’
이미 통보받았던 일정을 논의하면서 남측에서 이런 제의를 할 수도 있지만 거부하는 게 어떻겠냐고 간부들이 제의했던 일에 정환은 거절했었다.
민주화 운동의 거목이자 한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 15대 대통령과 임기 말에나마 서로 같은 공간에서 어떤 주제로든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평화의 집을 나와 판문점 밖에서 줄을 지어서 대기하고 있는 관용차량으로 이동할 때, 문득 정환의 눈에 한 사람이 띄었다.
단순히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 개막을 넘어, 한국에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행사인 만큼 입법부.
그러니까 한국 국회에서도 각 당들이 정환을 맞이하기 위해 평화의 집으로 대표를 보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정환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바로 현재 새나라당 대표 그리고 다가오는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당선 후보로 점쳐지고 있는 이현창 새내라당 총재였다.
* * *
“평양에서도 월드컵으로 열기가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남북이 같은 주제로 하나 되는 것을 임기 말에라도 보게 되니 참으로 가슴이 벅찹니다.”
“그렇습니다만, 현재 남쪽은 월드컵 말고도 다른 의미로도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당별 경선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이라지요? 다른 뜻은 없습니다만, 북에서도 여러 가지 의미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정환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그런 이야기를 꺼냈지만, 유민중은 잠시 흠칫하며 대답하는 걸 망설이는 듯했다.
선거나 투표하고는 인연이 있으려야 있을 수 없는 북한의 지도자가 한국의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
다음 한국의 지도자가 누구일지 그저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식으로든 논평이나 성명 혹은 무력행사를 통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정환을 보며 유민중은 직감적으로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제까지 이 총서기가 해온 행보를 볼 때, 결코 그런 구시대적이고 퇴행적인 수단을 쓸 사람은 아니다. 체제 유지나 권력안정은 그에게 있어서 수단이지,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닐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정계의 투쟁과 탄압 그리고 정치적 이합집산, 그 와중에 겪은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유민중은 자신이 가진 사람 보는 눈을 믿었다.
그리고 그가 이제까지 봐온 정환의 행보와 정책 그리고 전화상으로나마 접한 그를 되돌이켜 보면, 그가 보는 견지에서 정환은 결코 권력과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 순위에 놓는 유형의 권력자는 아니었다.
비록 그 형태를 자신이, 혹은 세상 대다수가 이해할 수 없을지언정, 분명히 그 속에는 자신이 인생을 바쳐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어떤 정치적 신념이나 이상이 있다는 게 유민중의 판단이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유민중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근심을 조금이나마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 임기가 끝나가니 이런 말씀을 비교적 부담 없이 드릴 수 있습니다만은…… 대통령이 된 입장에서는 솔직히 여러모로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나라당 이현창 총재 선생이 유 대통령님의 뒤를 잇게 될 것 같아서 말입니까? 하기야 벌써 현 정부와 여당에 단단히 각을 세우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는 하더군요. 저희 공화국에 대한 유화적 대응과 좌파적 경제정책으로 인하여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내줬다는 말이 아직도 외환위기 당시 기억이 생생한 남조선 인민들에게는 잘 먹히겠지요.”
“좌파적 경제정책이라…… 하기야 가계나 개인보다 기업에게 초점을 둔 새나라당 경제 정책팀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만도 하겠지요.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그리고 이후에도 전경련을 주축으로 줄곧 제기된 계약직 법안이나 공기업 민영화 같은 건 제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처였습니다.”
유민중은 더욱 말에 힘이 들어갔다.
“IMF로부터 차관을 받았더라면 꼼짝없이 그렇게 구조조정을 해야 했겠지만…… 다행히도 그건 총서기님과 북의 지원으로 피했지만 말입니다.”
지금 유민중의 말은 16대 대선을 앞에 둔 한국의 일반 국민들과 기업의 심리를 요약해서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외환위기 이후, 큰 국가적 치욕을 당한 한국 정재계, 그리고 민간에서까지 그동안 한국 경제 전체가 지나치게 자만했으며 방만하게 운영되어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그리고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련을 중심으로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수출 경쟁력 회복을 위하여 시장과 기업의 자유를 크게 강화하고 규제 철폐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유연한 고용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게 힘을 얻었다.
비록 대부분 서민이 아닌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친기업적인 정책 일변도였지만, 외환위기 당시 북한의 경제력이 가진 잠재력을 여실히 맛봤기에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중에는 숫제 나라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었다.
‘국민 여러분! 우리 경제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이 북으로 넘어가고, 3년간 청와대가 아닌 평양의 로동당 당사에서 우리나라 경제 주권을 주물럭거리는 참혹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그 정신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장에 모든 여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외환위기를 일으킨 주된 요인 중 하나가 기업들의 무분별한 차입 경영이었음을 생각하면 상당히 뻔뻔스러운 소리였지만, 한국 일반 국민 처지에서도 그러한 정책들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덕이 그러한 논의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고려일보 덕분이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그 판세도 바뀌고 있었다.
“그게 아닙니다. 물론 그 이유도 있기는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이 선거로 인하여 이 나라가 분열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분열이라, 어느 쪽과 어느 쪽으로 말입니까?”
“모든 사안에서지요. 진보와 보수, 새나라당과 반(反) 새나라당, 고려일보와 안티 고려일보.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 시발점이고, 선거에서 이기는 측이 지는 측을 탄압하고 나아가 완전히 말살하려 하지 않을까 저는 그게 두렵습니다.”
“……정치에는 항상 적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것과는 다릅니다. 그건 적대적 공생이기는 해도 어쨌거나 공생이지요.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기류…… 이건 상대에 대한 적의고 혐오입니다. 패배한 쪽은 이긴 자에게 악의 뿌리로 몰리고, 패배한 진영은 다음 선거까지 칼을 갈다가 다음 선거에서 더욱 잔혹하게 보복의 칼을 휘두르고…… 보복의 정치, 복수의 정치가 다시 이 대한민국에 재림하는 것입니다. 아스팔트 위에서가 아니라, 국회와 모든 사무실, 교실, 회의실, 시장 바닥에…… 어쩌면 사이버 공간에서까지요. 어쩌면 지역감정은 예고편이었을지도 모르지요.”
“…….”
“제 한평생 개인적인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런 일들을 막아왔는데…… 이번 월드컵으로 그러한 불씨가 사그라들고 국민 전부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월드컵 기간 동안이나마 뭉쳤으면 하는 게 제 작은 바람입니다.”
정환은 그런 유민중의 탄식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모처럼 찾아온 서울인데, 왠지 입맛이 썼다.
* * *
첫날 개막식과 함께 치러졌던 2002 남북 월드컵 첫 경기는 화려했던 개막식을 묻어버릴 만큼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세네갈이 강호 프랑스를 1 대 0으로 격침시키면서, 전 세계 언론들과 관중들의 관심은 남북 정상 간 세기의 만남과 공동 개회 선언이라는 이벤트에서 경기 자체의 내용으로 순식간에 다시 옮겨갔다.
아무리 프랑스 국가대표팀이 자랑하는 지네딘 지단이라는 특급 에이스가 부상으로 인해 결장했다고는 하지만, 설마 세네갈 같은 약체 팀에게 지난 회 우승국이 패배하는 것을 보며, 모든 선수와 관중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뭔가 일어나도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경기장에서 오로지 단 한 사람, 정환만큼은 그 예감이 곧 사실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었다.
사실 스스로 만들어낸 변수기에 변수라고 불러야 할지 좀 의문이기는 하지만.
“우리 공화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H조에 배정되었습네다.”
“남조선과의 경기 하루 뒤인데, 그럼 보고 가도 되겠군. 남조선은 B조에…… 첫 경기가 이틀 후군. 첫 상대가 폴란드라…… 거기에 경기장이 서울? 우리 팀의 첫 상대는 어디인가?”
“카메룬입네다. 약체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상대지요. 특히 이번에 사우디를 격파한 우리 동무들의 실력을 감안해 본다면…….”
“그거야 모를 일이지.”
‘진짜 모를 일이야.’
옆에서 함께 서울에 따라와 싱글벙글 운을 띄우는 간부들의 추측을 한 마디로 잘라내며 정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역사대로라면 여기서 한국 대표팀은 폴란드와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를 연이어 격파하며 독일에게 준결승의 꿈이 좌절될 때까지 4강 신화를 써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한일 월드컵이 남북 월드컵으로 바뀌면서 경기장도 바뀌고 경기 조건도 바뀌었다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이번에도 한국 대표팀이 비슷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정환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당장 원래 부산에서 치러졌어야 할 폴란드와의 첫 경기도 경기 장소가 서울로 바뀌어버리지 않았는가.
‘게다가 내가 진짜로 우려하는 건…….’
이런 정환의 고민도 잠시,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역사대로 2:0의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서의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기는 했지만, 한국 응원단과 붉은 악마는 그야말로 폭발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응원을 펼치며 경기장 전체를 흥분으로 달구었다.
유민중 대통령과 함께 박스석에서 관람하던 북조선 간부들조차 내심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자발적이면서도 뜨거운 열성이었다.
하지만 정환은 이 엄청난 열기를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이 열기가 다른 방향, 그러니까 경제적 굴욕을 안긴 상대방에게 대리 복수하는 형태로 옮아간다면…….
기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32분의 1이면 현실에서는 충분히 높은 확률 아닌가.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환호와 응원 소리를 들으며 정환은 함께 박수를 치면서도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있던 평양 월드컵 준비위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장성택 귓가에 속삭였다.
“부부장 동무. 이번에 혹시 본선에서 우리 공화국 팀과 남조선 팀이 만날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