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99화
71장. 전설들의 리그 (League of Legends)
‘아니, 돌이켜보면 나도 평범하게 게임 좋아하는 남자라고 아니, 남자였지. 그리고 미래에 게임 산업의 잠재력을 생각해봐도 지금쯤 국가적으로 투자를 하는 게 맞잖아? 이건 절대 내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야. 그렇고말고.’
과정이 좀 웃기긴 했지만 (그리고 최고지도자의 사심도 잔뜩 들어가기는 했지만) 하여간 이 4S 정책의 마지막 하나는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게임 산업이었다.
사실 98년도에 미국에서 발매된 게임인 데다 컴퓨터와 모뎀, 즉 인터넷 보급이 한국보다 빨랐던 북조선인만큼 이미 온라인 게임 자체는 북조선 청소년과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퍼져 있었다.
단지, 동시기 한국과 비슷하게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고 이걸로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이룰 수 있다는 상상은 아무도 못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너 지금 뭐하니? 밤에 자지를 않고.”
“조금만 더 하고 잘기요, 오마니. 이번 판만 이기고…….”
“요놈의 간나 새끼! 또 공부는 안 하고…… 그러라고 비싼 돈 들여 콤퓨타 사준 줄 아는 기야! 당장 집어치우지 못해?”
“으아아악!!! 아무리 기래도 선을 뽑으시면 어떻게합네까! 안쪽 프로그램 다 망가진단 말입네다!”
북조선이나 한국이나 체제는 달라도 기본적으로 권위주의, 학벌중심주의 사회였고, 그러니 자연히 자식을 가지고 있을 나이대, 즉 4050대 성인들의 게임에 대한 시선은 한국처럼 ‘공부에 방해만 되는 장애물’ 정도였다.
이미 유학 등을 통해 선구자적인 비즈니스 감각을 가지고 있는 북조선 사업가들 몇몇은 일본 닌텐도 등에서 이 게임 산업의 가능성을 보고 게임 회사를 만들고 있었지만, 아직 당국의 투자나 관심에서 한참 소외되어있는 게 현실이었다.
일단 지원제도를 만들고 산업을 분류하는 관료들부터 게임이라고 하면 테트리스 정도밖에 못 떠올리는 시대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하지만 일당, 일인 독재체제의 장점은, 최고지도자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관련 연구가 이루어지고, 공론화가 돼서 국회에서 위원회를 거치고 법안을 상정하는 등의 절차를 모조리 생략하고 빠르게 자원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당 부서 산하에 직접 관리되는 온라인 게임 협회부터 만드는 것부터 할까? 1년에 한 번씩 협회배 전국 대회도 열어서 양강도, 황해도, 강원도, 평안도 등 홍보 및 전국 랭킹을 가려보자고. 아, 물론 상금도 두둑하게 줘야겠지. 모름지기 머리 굳은 기성세대들에게 신세대들의 문화를 납득시키려면 그걸로 고액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가장 빠른 법이니까.”
‘정말 재미있는데, 이거. 왜 한국 재벌 회장들이 그룹 주력산업하고 관계도 없는 승마나 요트 같은 거에 뜬금없이 투자 지시를 내리는지 알겠네. 이게 그 소위 말하는 일과 취미의 일치라는 건가?’
월드컵 홍보와 선전을 현영숙과 선전선동부에 맡겨 놓은 채로 평양이 월드컵 분위기에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젖어갈 동안, 정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겁게 ‘조선 온라인 게임 연맹’을 창설하고 구성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아주 확실해서, 월드컵이 열리기까지 고작 6개월여 만에 북조선 역사상 첫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창립과 협회 구성, 전국 대회 이 완료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요즘 들어 자고 일어나면 날마다 신설되는 당 전문부서 산하의 수많은 분과나 연구원 중 하나인가 싶어 시큰둥했던 연맹 창립 준비위원들도 서기실에서 나온 일꾼이 슬쩍 ‘총서기께서 동무들의 과업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해주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지어 연맹 출범 당일 겸 1회 전국 대회 날에는 무려 총서기 정환이 직접 회장을 찾아 축사를 해주자 당 안팎에서 ‘대체 그 콤퓨타 게임 위원회인가 뭔가가 얼마나 중요하길래 서기실에서 저렇게 관심을 가지나’하는 주목까지 받는 일도 있었다.
“동무들은 지금 스스로 하는 일을 부모님에게 말하기 힘들다고 푸념하는 걸 들었지.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공화국 최고의 신랑감 직업은 광부였소, 지난 20년간 이 당이 최고 영웅으로 인정하는 일꾼이 바뀌었는데,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소?”
연맹과 리그 창립 당일, 전혀 예기치 못하게 국가 원수를 만나 잔뜩 긴장한 첫 스타크래프트 전국 리그 본선 진출자들에게 정환이 직접 어깨까지 두드려가며 당부한 말이었다.
그나마 그중 가장 대담한 선수 한 명. 아직 20살 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선수 하나가 용기 있게 던진 질문은 회장 전부를, 나아가 공화국 전체를 은밀하지만 확실하게 뒤집어 놓았다.
“……저기…… 혹시…… 총서기 동지도 콤퓨타 온라인 게임을 즐기십네까?”
“물론이지. 지금도 밤마다 공무가 끝나면 자주 즐긴다네. 그런데 자네는 제일 잘하는 종족이 뭔가?”
정환의 대답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지만, 이 역사에 길이 남을 짧은 대답이 게임에 대한 북조선 내부의 인식과 프로 선수들에 대한 시선을 크게 바꾸어 놓았음은 불문가지였다.
하여간 이렇게 정환이 간만에 공사 구분을 내팽개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도, 정치국 간부들로 꾸려진 준비위원회의 주도 아래 월드컵 선전은 열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이제는 평양의 그 누구도 남포에서 발생한 화물차 시위에 대한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모든 저녁 식사, 모든 술자리, 모든 흡연실에서는 오로지 평양에서 치러질 월드컵 준결승과 4강, 8강 경기만이 유일한 대화의 주제였다.
그제야 당과 체제의 간사한 수작을 알아차린 대학가의 시위 학생들은 분통을 터트리며 남은 시위의 동력을 그러모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리고 마침내 서울에서 열리는 개막식이 가까워지자, 그때쯤 남북한의 인민들과 국민들은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자신들이 잠시 잊고 있었던 너무나도 당연한, 하지만 생각해보면 대단히 큰 의미를 지닌 사실을 하나 새삼스레 기억해냈다.
유민중 남조선 대통령과 함께 정환은 두 공동 개최국 중 하나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원수로서 곧 있을 2002년 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정해졌다.
개막식은 서울에서 열린다.
그러니 당연히 개막식에 참석하려면 정환은 서울에 직접 가야 한다.
즉, 이번 월드컵 개막식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서기 김정환이 취임 이래 처음으로 한국, 그것도 서울을 방문하는 간이 정상회담의 형식도 띄고 있는 것이다.
* * *
“솔직히 말하지. 떨리는군.”
“……그렇게 동지께서 소리 내어 말씀하시는 건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습네다.”
북쪽에서의 행사를 모두 마치고 이제 월남(越南)해야 할 시각이 가까워지자, 솔직하게 털어놓은 정환의 말에 유혜림이 한 대답이었다.
남북 공동 월드컵이라는 기획 의도(?)에 걸맞게, 북조선에서도 남쪽의 개막식 일정에 맞춰서 성대한 규모의 축하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준결승을 포함한 경기의 입장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중계권에 티셔츠에 공인구, 각종 캐릭터상품까지 진작에 비싼 값에 매진된 후였다.
장소는 류경 정문영 축구 경기장, 조선축구협회 명예 회장인 근대 그룹 회장 정문영의 이름을 따 건립된 경기장에서는 아침 9시부터 서울에서 진행되는 개막식 식전 행사를 거대 LED 스크린(근대전자 제)으로 중계해주며 흥을 돋우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공동 개최자인 정환이 판문점을 넘어 그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유민중 한국 대통령과 합류,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개회를 선포하면 되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게 된 한일월드컵과는 달리 공동 개최지인 서울과 평양 사이의 거리가 자동차로 달려 두 시간도 걸리지 않기에 가능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정환이 떨린다고 중얼거린 이유는 월드컵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려 20여 년 만에, 그것도 2002년의 한국에 가보는 거군. 심지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신분과 다른 이름으로 말이야. 이런 경험을 할 사람이 이 세상에 나 말고 또 몇이나 될까.’
정문영 경기장에서 열광적으로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북조선 인민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면서 당 간부들, 경호원들, 그 밖의 수많은 수행인단과 함께 차에 타면서도 정환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뿐이었다.
고향이지만 이제는 고향이 아니게 되어버린 땅, 한평생 살아왔지만, 이제는 거리와는 무관하게 가고 싶어도 못 가게 되어버린 땅, 대한민국 서울에 돌아간다는 것.
어쩌면 E 스포츠 리그, 온라인 게임 연맹의 창단이 정환으로 하여금 불현듯 과거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 걸지도 몰랐다.
‘내 정신 좀 보게. 이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닌데.’
모든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가 따지고 보면 다 그렇지만, 이번 남북 공동 월드컵은 그 특성상 특히나 그 정치적 색채가 짙었고, 그런 만큼 세계 언론들의 관심도 지대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그 관심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어서, 이미 고려일보를 비롯한 유수의 언론들은 월드컵보다 오히려 개막식의 형태를 빌린 이 남북 두 정상의 만남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연일 기사를 쏟아내는 판국이었다.
박이삼 이래 처음으로 열리는, 나름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이다.
뭐니 뭐니 해도, 취임 직후부터 지금까지 북조선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한국과의 경제적 레이스에서 승리를 따낸 북조선의 지도자가 처음으로 직접 한국에 오는 것이다.
관심이 적으려야 적을 수가 없었다.
“유민중은 별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총서기님. 어차피 임기라고 해봐야 내년까지고, 레임덕 닥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말이야 으레 오가는 덕담, 아니면 양국 비자 발급 확대 및 금강산 공동개발 의제 정도겠지요. 진짜 중요한 문제는 차기 대통령과 논의하게 되실 확률이 큽니다.”
‘그렇다고 해도, 꼭 한 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기는 했어.’
유민중과의 만남에 대비한 김 실장의 조언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정환은 관용차 뒷좌석 차창으로 뜨거운 공기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서울은 7월 한여름이었지만, 정환은 꽤 오랫동안 여름 더위를 잊고 살았다.
평양은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고 야외 활동과도 거리가 먼 그가 여름 더위를 체감할 일은 별로 없었으니까.
마치 서울에 가까워져 갈수록 잊고 있던 가슴속 열기가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도착했습네다, 동지.”
“……남쪽 일행들은?”
“지금 평화의 집에서 기다리고 계십네다. 저희 측 인원과 합류한 후, 함께 서울 월드컵 경기장으로 갈 계획입네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서 내린 정환은 당 간부들 전원을 뒤에 거느리고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계획했던 대로, 평화의 집 1층 정문에는 한국 문화관광부 위원장과 국무총리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정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환이 다가가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이자 전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유민중은 손을 내밀어 먼저 악수를 제의하면서 인사를 건넸다.
“대한민국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김정환 총서기님. 그럼 이제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