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98화
“그건 어려울 거 없네. 내가 남조선의 유민중 대통령과 통화해서 잘 성사시키도록 하지.”
의외로 정환은 이 난제에 직면해서 대수로울 것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 말에 장성택은 비롯한 좌중은 깜짝 놀라서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네? 그게 정말이십네까? 최고 지도자 동지?”
“물론이지. 어차피 유민중 대통령 측에 지난번 서해 분쟁 때 일로 보상을 주기로 약속한 게 하나 있으니, 받는 김에 선심을 좀 더 쓰라고 하면 될 것이네.”
“대체…… 그 보상이 뭐이기에……? 하지만 유민중이 받아들일까요? 어차피 받아낼 것을 우리 측에서 과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유민중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네. 사실, 우리한테야 그 보상이 별 가치가 없어도 남조선 인민과 유민중에게는 매우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진 것이니. 보상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돌려받으려 할 것일세.”
곧이어 정환이 갸우뚱거리는 좌중에게 ‘보상’을 설명하자 그제야 그들의 얼굴에 납득의 빛이 나타났다.
과연 정환은 기대대로 과감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남조선 해방전쟁 당시에 인민군에 포로로 잡혀 아직도 공화국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는 남조선 군, 그러니까 그쪽 말로 하면 국군 포로들 전원을 남으로 송환하도록 하지. 그 정도면 되지 않겠나?”
“음…….”
“……분명히 그쯤이라면……!”
정환의 대담한 결단에 회의실의 간부들은 김 실장을 포함해 각양각색의 탄식 같기도 하고 경악 같기도 한 소리를 토해냈다.
특히 현영숙은 정환의 의도가 이해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번 월드컵을 유치할 때의 명분이 민족화합과 분단으로 인한 갈등 해소였음을 생각하면, 시의적절한 조치이기도 하네요. 유민중도 오랜 난제를 해결한 대통령으로서 남조선 내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테고, 월드컵 즈음에 보내는 게 세계 각국들이 보기도 모양새가 살 테고…….”
“김 실장이 보기는 어떤가? 남조선 사람이니 아무래도 우리와는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을 텐데…….”
정환이 슬쩍 질문의 방향을 돌리자 ‘유민중’이라는 말에 뭔가 떫은 감을 씹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 실장은 재빠르게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총서기님의 정치적 결단력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습니다. 유민중이야 당연히 남조선 국민들에게 드디어 남북통일에 가까워졌다느니 국민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돌아오게 했다느니 하면서 자기 치적으로 자랑할 수 있을 테니 거부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나는 유민중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남조선 보수 야당이나 고려 일보 같은 곳의 시각을 알기 위해 물어본 거야. 이번 월드컵으로 인민들을 최대한 즐겁게 해주고 공화국의 국격을 높이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자네가 모르지는 않으리라 믿네.”
“…….”
“그러자면 유민중이 반드시 내 제안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보나마나 남조선 보수파들은 북조선에게 서해도 빼앗겼는데 이번에는 월드컵까지 빼앗긴다고 불만을 토하지 않겠나?”
다시 한번 모든 사람의 시선이 김 실장에게 집중되었다.
심지어는 장성택까지도 어딘가 불만스러운 기색을 여전히 숨기지 못했지만, 그도 김 실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속으로 뭔가 재보던 김 실장은 이내 조심스럽게 단서를 붙였다.
“몇 명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총서기님께서 통 크게 결단하셔서 전부 돌려보내신다면…… 확실히 그 정도라면 새나라당 같은 남조선 보수 야당이나 언론에서도 유민중에게 할 말이 없을 겁니다. 보상을 넘어 월드컵 준결승 정도는 평양에서 치를 수도 있게 해달라고 해도 체면이 서고 말입니다. 결승전까지는 좀 어렵겠지만…….”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한국전쟁…… 아차차, 남조선 해방전쟁은 우리, 흠흠. 아니, 남조선 보수진영의 가장 큰 금기이자 트라우마라서 말입니다. 선거 때도 유용하고…….”
“좋아, 김 실장 자네의 그 말을 믿도록 하지.”
정환의 선언과 함께 그 날 회의는 종결되었다.
지도자의 간단한 말 한마디였지만 그 회의에서 내려진 결정은 실로 중차대한 것이었다.
곧 유민중을 포함한 남측 정부 인사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촉할지 방식이 논의되었고, ‘보상’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이 논의되었다.
평양 핵심부의 정보에 항상 목말라 있는 남조선 측 언론에도 미리 정보를 흘려주어 기정사실처럼 만들고 유민중 정부가 다른 선택을 할 여지를 원천차단하자는 제의가 김 실장에게서 나왔다.
서울은 평양과 달리 언론 통제가 여의치 않으니 그 이점을 이용하자는 실로 악랄한 발상이었지만, 곧바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 모든 논의의 와중에도, 장성택의 불만스러운 눈빛은 여전히 김 실장에게로 향한 채로 떠날 줄을 몰랐다.
* * *
“현 부장 동무. 잠시 나 좀 보지.”
“……왜 그러세요? 장 부부장 동지?”
회의가 끝난 후 급하게 선전선동부로 향하는 자신을 따라온 장성택의 목소리에 현영숙은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미 남측이 월드컵 준결승을 비롯한 상당수 경기의 개최를 북에 양보할 것은 자명했고, 당장 개막이 6개월도 안 남은 이 시점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선전선동부였다.
이번 급작스러운 일정 변경의 진짜 목적을 생각하면 ‘인민들이 월드컵을 공화국 안방 평양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공화국의 경제 승리이자 겨레에 남을 총서기 동지의 불후의 업적’ 등등의 기사와 사설을 바로 실을 수 있도록 관영신문과 방송사를 준비시키는 게 가장 급선무였다.
이제까지 시큰둥했던 만큼 월드컵 홍보 방송과 북조선 대표팀의 월드컵 참가 역사와 전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선전물이나 유인물도 당장 대량으로 제작해야 했다.
거기다 특별 방송을 위해 일정도 비워야 하고, 하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사무실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입을 연 장성택은 괜한 목적으로 그녀의 시간을 낭비시키려는 목적이 아닌 듯 했다.
“그 김 실장이라는 동무 말일세, 아니, 남조선 놈이니까 동무라고 해서도 안 되나?”
“……아, 하기야 동지께서는 신경 쓰이실 만도 하시죠. 하지만 총서기 동지께서 쓰시기로 결단하셨으니 우리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장성택이 말을 꺼내자마자 현영숙은 그 말할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미리 선을 그었다.
당사자인 장성택 역시도 그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바로 거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현 부장 말대로 총서기 동지의 영단이야 내 의심할 여지는 터럭만큼도 없지비. 하지만 나도 명색이 조직지도부 부부장인데 당 핵심 체계에 대해 이렇게 몰라서 되겠나? 특히나 남조선 놈이라면 말이야.”
“…….”
“물론 3년 전 북남 대타협 이후 공화국으로 살 길을 찾아, 혹은 남조선에서 누리지 못한 권세와 영화를 찾아온 놈들이 많다는 거이는 알지만…… 내래 알기로 그 김 실장이라는 작자는 언론인, 그것도 대타협 이전에는 허구한 날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언사를 반복한 남조선 보수파 언론인 출신 아닌가?”
“……그거야 그렇지만, 눙토히 말해 그런 남조선 보수파 언론들의 언사가 오히려 당과 체제 유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는 점은 부부장 동지도 모르시지는 않을 터인데요. 당장 박이삼 이전의 남조선 대통령들만 봐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지 않느냐’라는 투로 현영숙이 대답하자, 장성택은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기거야 전대 주석님, 수령님들 시절 이야기 아닌가, 요즘은 예전처럼 서로 겉으로는 으르렁대면서도 뒤에서는 접촉을 하는 거이 아니라, 앞에서는 서로 동포니 민족이니 하면서도 뒤에서는 경제지표상 올해는 남측 성장률이 더 위네 북이 더 아래네 하는 판국인데, 고려 일보 같은 남조선 보수파 언론인 출신이니 우리와 한 둥우리에 속한다는 거이는 납득하기 힘들지 않나.”
그제야 현영숙은 장성택이 자신을 불러다 놓고 이런 말을 늘어놓는 이유가 자신의 지위가 남조선인들에 의해 위협받을까 해서였다는 말 못할 고민 때문이었음을 눈치챘다.
하기야 실제로 요즘 근대를 중심으로 해서 남조선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점점 평양을 비롯한 공화국에 자리를 잡으면서 기존 북조선 인민들과의 충돌, 텃세라면 텃세라고 해야 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기도 했고.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고려 일보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요. 최근 일자 우리 총서기 동지에 대한 고려 일보 사설 보셨나요? 제가 한 수 배워야 할 지경이더군요.”
“……?”
장성택이 모르는 눈치이자 현영숙은 대답 대신 책상 서랍을 열어 근래 날짜의 고려 일보 한 부를 꺼내 장성택에게 넘겨주었다.
아직 일반 인민들에게는 남조선 언론이 엄금되어 있지만 장성택 정도 되는 당 간부급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고, 특히 현영숙 같은 인민사상교양 지도사업에 종사하는 간부라면 더더욱 쉬웠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사설란을 읽어본 장성택의 얼굴은 점점 이상야릇하게 변해가더니, 나중에는 웃는 얼굴인지 우거지상인지 모를 얼굴이 될 정도였다.
잠시 후 다시 현영숙에게 신문을 넘겨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려 일보 간나들 참으로 대단하구만 기래, 북남 협상 시에 남조선 정치인들이 왜 그렇게 언론에 역성을 내는지 몰랐는데, 이제 보니 알갔어. 그 동무들에게 동정심이 들 지경이군.”
“그렇죠? 참 살아남는 수완 하나는 대단한 족속들이에요. 그 김 실장이라는 동무도 이런 곳에서 일하다 왔으니, 총서기께서 출신성분에 신경 쓰지 않고 끌어다 쓰시는 것도 이해가 가죠.”
그리고 앞으로 컴퓨터를 비롯한 하이퍼미디어 시대가 점점 닥치면서, 이런 언론의 힘은 단순히 정보전달 역할을 넘어 점점 더 커질 게 분명하다고 현영숙은 오랜 경험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럼 그때 가서 자신은, 그리고 선전선동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아니, 어쩌면 총서기는 이미 이것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제 당 간부도 간부가 이끄는 부서도 21세기 자본주의 공화국에 맞춰 변해야 한다는 건 명백했다.
이제는 당 내부에서 같은 동지들뿐 만이 아니라, 아랫동네에서 올라온 남조선 동무들하고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같으니까 말이다.
* * *
국군 포로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2002년 월드컵 준결승을 포함한 몇 가지 경기들을 평양에서 치른다는 한국과의 협상은, 예상대로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유민중을 포함한 국민의 정부는 북측 제안을 접수한 지 12시간이 안 되어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고, 이는 곧 남북 양측의 언론에 발표되어(물론 논조는 각각 많이 달랐지만) 기정사실로 공표되었다.
한국은 보수, 진보 양쪽에서 북에 또 당했다느니, 이 정도면 괜찮은 조건이라느니, 다 정해놓고 북이 제 입맛대로 바꾼다느니 등등 말들이 많았지만, 한국 보수 진영 측에서도 이번 협상만큼은 군소리를 크게 하지 않았다.
6.25 전쟁이라는 과거의 트라우마 극복 차원에서라도 ‘유민중이 또 친북성향을 드러냈다’식의 언론 플레이를 함부로 하다가는 정치적 역풍만 맞을 뿐이라는 것을 빠르게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이현창을 총재로 하는 새나라당에서도 ‘스포츠 경기 몇 개 양보하고 얻어온 것치고는 남는 장사’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한국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북조선 내부적으로도 이번 월드컵 경기 국내 관람은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발표 직후 뜨겁게 달아오른 인민들의 흥분과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었다.
단기적으로는 운송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을 불식시키고 장기적으로 중진 신흥 공업국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물가 상승을 마비시키기 위한 3S 정책이 바야흐로 그 막을 올린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당연히) 3S라는 명칭 대신 ‘인민 일반 문화생활 증진 사업’이라는 미명 하에 이루어졌기에, 그 본질을 아는 자들은 아직은 극소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순식간에 월드컵 잔칫집으로 변모한 평양에서는 마침 때에 맞춰 중앙검열위가 (주로 젊은 남자들에게) 또 하나의 희소식을 발표했다.
-앞으로 성인물의 제작과 방영에 대한 규제와 검열을 크게 완화할 것임.
지정된 수입상은 당국의 허가 아래 해외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공식적 수입 및 판매가 허가될 것이며, 전파상에서의 성(性) 표현 역시 성기 노출 이하라면 케이블 한정으로 허가됨.
이미 수입되거나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 등도 검열된 부분이 없는 무삭제 판의 방영 및 판매도 성인 한정으로 허가할 계획임.
동독 시절 존재했던 누드 비치에서 알 수 있듯이, 사실 사회주의 국가들은 의외로 성적인 면에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자유로운 면이 있었지만, 유교 자체는 배척하면서 유교 특유의 성적 엄숙주의에 경도된 북조선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의 은총이었다.
곧 정책 입안자들의 목적대로, 불만 많은 대중, 특히 시위와 파업의 주동세력이던 2030대 남성들의 관심과 열정은 빠르게 분산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절대 꺼지지 않을 것처럼 격렬했던 남포 운송회사 시위는, (평양에서는 말로만 듣던) 호나우두가 뛸 가능성이 높은 월드컵 준결승전이 릉라도 경기장에서, 그것도 상당히 싼 입장료로 주최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참여 인원이 반으로 줄었다.
그리고 그 참여 인원도 평양 TV에서 ‘유씨 집안 남매 애정 이야기 ? 무삭제 성인판’을 초고화질로 제작하고 제한 상영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다시 반으로 줄었다.
끝까지 남아있던 시위의 지도부들, 평양의 새로운 운동권들은 동지들의 변심에 허탈함과 분노를 터트렸지만, 이미 체제에 대한 불만의 불길은 점점 말초적인 쾌락과 타성 속으로 침몰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쯤, 정환은 아직까지도 비밀로 하고 있던 마지막 정책 하나를 꺼내 들 준비를 했다.
* * *
“……뭐해요, 당신? 아니, 뭐하세요, 동지?”
평양이 월드컵 열기로 한창 (의도적으로) 뜨거워져가고 있을 무렵의 어느 날 밤, 유혜림은 거처에서 뭔가에 열심히 몰두하고 있는 정환을 보고 무심결에 물었다가 잠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무리 서로 볼 거 다 보고 할 거 다 한 사이에, 남들 눈이 없는 개인 처소라지만 이 나라의 최고 존엄에게 그녀는 아직도 이 호칭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정환은 그녀의 말을 듣지도 못한 거 같았다.
“으응?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쓸 거 없으니까 먼저 자. 나, 난 아직 할 일이 남아서…….”
“……?”
뭔가 움찔한 표정을 지으면서 드물게 말을 더듬는 정환에게 유혜림은 더더욱 뭔가 수상쩍다는 듯이 눈을 슬쩍 치켜떴다.
아내 몰래 산 비싼 장난감을 숨겨둘 곳을 찾다가 딱 걸린 남편의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 뒤에 뭔가요? 아직 콤퓨타가 켜져 있는데…….”
“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빌어먹을, 들켰군.”
애써 몸으로 시스템 책상을 가리려 하던 정환은 이내 될 대로 되라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 자체로는 딱히 흉볼 일은 아니지만, 명색이 40대에 접어든 국가지도자의 취미치고는 좀 많이 저렴해서, 특히나 이 시대 북조선에서는 거의 유별난 수준의 취미라서 자기도 모르게 숨기려 했던 것이다.
이내 유혜림의 시선은 책상에 놓여 있는 컴퓨터 모니터로 향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도 그게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요? 명백히 문서작업은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별 건 아니고…… 그냥 이번에 37호실에서 그 시위 참여한 녀석들 주동계층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20대 남성들이라서…… 그, 남자들이 좋아하는 것에는 스포츠, 성인물 그리고 이걸 도무지 빼놓을 수가 없더라고…… 특히나 20대 젊은이들이라면 그, 그게…… 나도 어디까지나 공무상의 필요로…….”
정환은 과연 이 사람이 그 철혈의 총서기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입을 우물거리며 변명을 주워섬겼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정환이 입안한 정책은 3S 정책이 아니라 4S였다.
그가 준비한 3S 아니, 4S 정책에는 Sex, Sports, Screen 말고도 ‘S’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S가 뭐의 약자냐 하면…….
“음…… 혹시 유 소좌, 혹시 콤퓨타 직결놀이 이행성 전쟁놀음…… 젠장, 모르겠다, 스타크래프트(Starcraft)라고 들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