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97화
“……허기야 기거보다 좋은 거이 없기는 하디.”
장성택을 포함해 회의실 안에 있던 인물들 전원이 수긍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미 올해 7월부터 8월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사상 최초 남북 월드컵은 이미 벌써부터 남북 양쪽을 뜨거운 분위기와 기대감으로 술렁이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근 몇 년 사이 인민들 소득 수준이 크게 오르고 덩달아 삶의 질과 직결된 대중 스포츠 참여 및 관람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졌다.
북조선에서도 은밀하게 어느 나라 선수가 공을 가장 잘 찬다느니, 브라질과 도이췰란드(독일) 중 어느 나라 국가종합팀(대표팀)이 더 세다느니 하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경기 개최가 6개월 정도 남아서 아직은 본격적인 축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당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TV와 신문 등 온갖 미디어를 홍보와 분위기 띄우기에 주력한다면 북조선 인민 대중들의 관심은 금세 시위에서 멀어질 것이다.
국가 체육과 스포츠를 대중 선전과 고무의 수단으로 애용해는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 북조선에게는 이미 잔뼈(?)가 굵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 국가적 홍보 정책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기런데…… 알다시피 예정된 경기 대다수를 남측 경기장에서 치르게 되어 있어서…… 이름만 남북 월드컵이고 변죽만 요란한 공갈빵 경기라는 말이 인민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겠나? 일단 8강부터는 죄 남측에서 치르기로 합의 보지 않았네?”
* * *
시곗바늘을 잠시 8년 전, 그러니까 2002년 월드컵 개최지를 선정하던 1994년으로 돌려보자면, 당시 FIFA에서는 원 역사대로 아시아에서의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 사이의 (국가 감정이 다분히 섞인) 불꽃 튀는 로비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당시 FIFA 회장이던 주앙 아벨란제(Jean Havelange)는 노골적인 친일파였고 축구의 황제 펠레까지 일본 손을 들어준 데다, 결정적으로 당시에는(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국가 인지도 면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북조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이 양국 간의 신경전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었는데, 당시 북조선 입장에서 월드컵이란 말 그대로 먼 나라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북조선 단독 개최는 언감생심이니 타국과의 공동개최가 그나마 현실적인데 유일한 상대인 남조선은 박이삼 취임 직후여서 분위기가 영 아니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북조선 로동당에서도 월드컵 같은 국제적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주최할 능력도 의지도 영 시원찮았던 이유였다.
“저…… 총서기 동지. 이번에 국제축구련맹에서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연다고 합네다, 뽑히기야 힘들겠지만 그래도 후보국 명단에 우리 공화국도 이름이나마 올려보는 거이 맞지 않갔습네까?”
“동무들. 미안하지만 월드컵이란 준비 안 된 국가가 연다면 월드컵 자체도 재앙이 될뿐더러 개최국 경제에 홍보 효과는 고사하고 후유증만 엄청나게 남는 짐 덩어리일세. 애초에 지금 우리 공화국에 국제 규모 축구 경기를 열 만한 경기장이 몇 개나 있는 줄은 아나? 얼마 전에 학생축전 연다고 달러를 퍼부은 양강도 축구 경기장도 지금 골조만 올리고 방치 해 놓은 상태인데, 지금 공화국은 월드컵을 열 만한 체급이 못 되네. 10년이나 15년 후 면 모를까.”
“그렇갔지요…….”
“아,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은 아닐세. 주 스위스 대사와 김용건 외무상을 부르도록 하게. 대외정찰총국장도.”
당시 정환은 풀이 죽은 당 간부들에게 말은 그렇게 해놨지만 당연히 속으로는 속셈이 다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창 최초로 아시아에서 열릴 월드컵 개최국을 놓고 경합이 벌어지는 동안, 취리히에 위치한 FIFA 본부에 한 장의 투서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 내용은 놀랍게도 현재 20년 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FIFA 회장인 주앙 아벨란제에 대한 비리의 고발이었다.
“존경하는 FIFA 집행위원회 여러분, 저는 오늘 이 익명의 투서를 통하여 주앙 아벨란제 회장의 비리를 고발하고자 합니다. 이번 아시아에서 열리는 2002월드컵의 유치를 놓고 아벨란제 회장은 일본 월드컵 유치위원회로부터 대량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있습니다. 제가 순수한 스포츠 정신의 수호를 위하여 이러한 고발을 제기한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를 동봉하겠습니다.”
그리고 투서에는 아벨란제 회장이 사석에서 일본 월드컵 유치 위원회, 그리고 주 브라질 일본 대사와 동석해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대소를 터뜨리는 사진 등이 담겨있었다.
이전부터 부패와 비리 혐의로 말들이 많았던 아벨란제에 대한 정면 공격에 당연히 FIFA는 발칵 뒤집혔다.
말할 것도 없이, 이 비리 고발의 제보자는 당연히 정환의 지시를 받은 북조선 외무성과 아벨란제의 뒷조사를 해온 대외정찰총국의 작품이었다.
“총서기 동지, 참으로 대단하십네다. 도대체 어떻게 이 아벨란제 놈이 일본 섬 쪽바리들과 수작을 부린다는 것을 아셨습네까? 천리안을 가지지 않고서야…….”
“몰랐네. 내가 무슨 신통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렇게 부실한 증거만 가지고는 주앙 아벨란제를 끌어내리고 우리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부족하지. 20년간 화투짝 쳐서 회장 자리를 지킨 건 아닐 테니. 아마 딱 잡아떼면 연기만 피우고 흐지부지 넘어갈 걸세.”
“네? 그럼 이거는 어떻게…….”
정환의 말은 사실이었다.
물론 그야 주앙 아벨란제가 몇 년 후에 비리 혐의로 결국 고발되어 몰락하고 재판에 넘겨진다는 건 알지만, 실제로 94년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까지야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정환은 그저 아벨란제의 재임 기간 동안 FIFA에서 일어났던 몇몇 사건들만을 알고 있을 뿐이고, 그래서 그 가설을 기반으로 조사를 명령했더니 이런 사진들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정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은 안 밝혀지더라도 아벨란제가 여기저기 받아먹은 것 자체는 사실인 만큼 본격적으로 파헤치면 진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 사실을 적극적으로 파헤칠 동기가 뚜렷한 내부자, 즉 아벨란제가 탄핵당해 이득을 보는 자가 FIFA 내부에 있다면 그 가능성은 더더욱 높아진다.
“총서기 동지, 아벨란제와 일본 양측 모두 펄펄 뛰면서 부인하고 있습네다. 게다가 우리 총국에서 보낸 증거도 어디까지나 정황증거들이지 물적 증거는 빈약하기 그지없어서 아무래도 이것만 가지고 사실관계를 증명하기에는 기것이 좀…… 게다가 이런 말씀 드리기 민망스럽습네다만 국제스포츠 외교에서 저희 조선의 위치가 많이 빈약해서 증거가 있다 해도 직접 제기하기는…….”
“우리 손에 직접 피를 묻힐 필요는 없네. 김 외무상 동무. 총알도 있고 사냥할 표적도 정해졌는데 직접 총을 쏠 수 없다면, 대신 총을 쏠 사람을 구하면 되는 거지.”
정환이 섭외한 ‘대신 총을 쏴줄 사람’의 정체는 머지않아 드러났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회장 주앙 아벨란제의 심복이자 FIFA에서 회장 다음의 2인자인 사무총장이었다.
축구 팬들에게 그 (나쁜 의미로) 유명한 제프 블라터(Joseph Blatter)가 바로 그였다.
“이번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듯이 주앙 아벨란제 회장처럼 부패하고 타락한데다 금권정치에 물든 사람이 국제스포츠계의 요직을 맡고 있다는 것은 모든 축구인들의 수치입니다! 제가 회장이 된다면 월드컵 주최국 선정부터 모든 국제축구 행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블라터 회장 선생. 이번에 FIFA 회장이 되신 걸 축하하신다고 저희 총서기께서 인사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네다. 여기 이건 약소한 축하 선물입네다.”
-아니, 이분들이…… 제가 이런 걸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바탕 풍파가 몰아닥친 끝에, 제프 블라터는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여러 정보들에 힘입어 자신의 상관이자 FIFA 현직 회장이었던 아벨란제를 탄핵하고 자신이 회장 대행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아벨란제가 비리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되면서, 덩달아 연루된 일본의 월드컵 유치는 물 건너가 버렸다.
“뭐 약소한 선물입네다.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네다만 요즘 우리 공화국이 시장경제 로선을 걸으면서 사정이 꽤 좋아지고 있습네다. 하여간에 이 선물의 대가로 선생께서는 약간의 호의만 저희 공화국에 보여주시면 됩네다.”
-……혹시 이번 아시아 월드컵 유치전에서 북한이 월드컵 경기를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이라면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거 같군요. 아무리 저라도 위원들을 구슬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
“아닙네다. 저희도 거기까지는 무리라는 걸 아니 다른 부탁을 드리지요. 일본을 제외하고 남조선이 단독 개최할 수 있도록 힘을 써주십시오. 그건 가능하갔지요?”
-……? 뭐 그건 훨씬 해 볼 만합니다만, 북한은 한국과 아직도 분단 상태에 외교 관계가 많이 나쁜 걸로 알고 있는데 대체 왜 그런 부탁을 하시는지 의아하군요.
그리고 그 기이한 청탁의 이유는 정확히 4년 후에 밝혀졌다.
외환 위기가 도래하면서, 한국의 단독 개최로 결정되었던 월드컵 개최 준비에도 당연히 찬바람이 몰아닥쳤다.
각종 스포츠 팀들이 해체되고 당장 월드컵 주 경기장이 되어야 할 상암 월드컵 축구 경기장도 짓느냐 마느냐 하는 말이 도마에 오르자, 4년 전 유치 경쟁에서 불명예스럽게 낙마하고 기회를 노리던 일본 측은 이때다 하고 슬슬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바람이란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돈을 대는 세계의 스포츠 경기와 해당 경기의 협회 등을 통한 로비 공세를 뜻하는 것이었다.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4년 후에 월드컵을 매끄럽게 개최하기 위한 경기장 등의 인프라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이미 FIFA에서 확정된 한국의 개최권은 존중할 테니 지금이라도 예정된 경기 중 절반을 일본에서 여는 것으로 하고 일한(日韓)이 공동개최하는 월드컵으로 바꾸는 게 어떤가?
이런 일본의 제안이 안 그래도 외환 위기로 국가적 자존심이 바닥을 치던 한국 국민들을 격노하게 했음은 당연지사였다.
주한 일본 대사관에는 오물과 화염병이 날아들고 진보 성향의 일간지와 스포츠 국수주의를 자극하는 황색언론 1면에는 ‘쓰러진 한국을 걷어차는 일본이 월드컵을 훔쳐가려 한다!’라는 기사가 발행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일본의 주장(과 로비력)이 국제사회에서 먹혀 들어가는 상황이라는 게 문제였다.
북한의 차관으로 급한 고비는 넘겼지만, 원래 역사에서처럼 분산개최가 아닌 단독 개최로 유치 부담이 두 배로 커진 데다, 동시기 OECD 가입까지 겹쳐 과시성 토목공사 성격이 짙어진 비현실적 초기 개최계획 탓에 자금난으로 공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
누가 봐도 이대로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공동개최라는 미명 하에 월드컵 경기를 눈 뜨고 ‘비열한 일본 쪽바리들’ 에 뺏길 처지였다.
그리고 이런 날이 올 줄 예견하고 미리 밑밥을 깐 후 4년을 기다린 정환이 FIFA와 한국 청와대에 동시 특사를 보낸 건 딱 그때쯤이었다.
월드컵은 올림픽과 같은 모든 국제 스포츠 행사가 그렇듯이 인류 화합과 평화의 제전을 지향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이번 월드컵은 장장 반세기에 가까운 대립을 청산하고 서로 교류를 시작한 북남이 공동 개최하는 것이 그 본래의 취지에 더 맞지 않은가?
게다가 일본은 월드컵 역사상 한 번도 본선 진출을 해본 적이 없는데 본선 진출을 해본 적 없는 나라가 월드컵을 주최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마침 당시 1998년 프랑스 파리 월드컵에서 당의 특별한 관심과 배려 아래 죽을힘을 다해 싸운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산유국 매치 끝에 본선에 진출(물론 진출만 하고 주최국 프랑스를 만나 바로 탈락했지만)한 덕에 이 말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다른 이유는 둘째치고서라도 바로 그 한국의 채권국인 북조선이 일종의 ‘월드컵 무사 개최 보증’을 서준 거나 마찬가지라 경제난을 이유로 내세운 일본 측 논리는 크게 힘을 잃었다.
남은 건 한국 국가지도자의 판단, 그리고 한국 대통령 유민중은 FIFA에 동시개최를 천명하는 남북 공동 성명서에 서명하기 위해 국민들을 이렇게 설득했다.
“국민 여러분들 중 북한에 또다시 굴욕을 당해야 하느냐고 울분을 터트리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국민 여러분. 한일이 아닌 남북이 공동으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되면 월드컵 축구 중계를 동시통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뭔가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 설득이 먹혔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하여간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남북한은 공동개최에 합의하여 올해 2002년 7월, 서울 월드컵 개막식에 정환도 참가하기로 합의가 된 게 현재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개막이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갑자기 예정을 바꿔 중요 경기 몇 개를 더 평양에서 개최하겠다고 요구하면 FIFA는 둘째 치고 안 그래도 민감한 남조선에서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게 바로 지금 장성택의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