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95화 (195/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95화

70장. 3S는 Sex, Sports, 그리고……

“초, 총서기 동지! 이 일은 전적으로 저희 남포시 인민위원회와 지역당(黨) 서기인 제 불찰입네다! 부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지금 즉시 저 태업 분자들에게 엄벌을 가하여…….”

“조용히 하게.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아, 네, 네! 시, 시정하갔습네다!”

얼떨결에 서기실로 불려온 남포 시장과 지역당 서기는 최고지도자의 나직한 호통에 차렷 자세를 취하며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대체 왜 남포시의 트럭 기사들이 일으킨 파업 같은 ‘작은 일’ 정도에 공화국 권력의 중심부인 중앙당 총서기실에서 호출이 내려온다는 말인가?

물론 이 ‘집단적 태업 행위’의 규모가 전례 없이 크다는 점은 자신도 인정하지만, 이미 인민보안부(경찰) 남포 지서에서 진압 준비를 전부 마쳤고 지역당 서기인 자신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여태까지 몇 번 있었던 산발적인 파업처럼 때려잡으려 하던 차에…… 갑자기 평양에서 남포 시당 위원회 서기는 올라오라는 최고 존엄의 부름이 떨어진 것이다.

“우선 소상히 들어보는 것부터 하지. 태업 행위자들의 요구와 현재까지의 상황, 그리고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정치국 위원들과 총서기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집중되자 남포 시당 위원회 서기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남조선이나 기타 등등 다른 자본주의 국가(그러니까 이미 파업과 노동쟁의에 지겹게 시달려 본 국가들)들의 시선에서 볼 때 이번 사태는 본격적인 파업이라고 보기에는 좀 힘든, 기준미달의 저항에 가까웠다.

70, 80년대 한국의 파업처럼 쇠파이프와 각목, 화염병 같은 게 날아다니지도 않았고 격한 구호나 빨간 머리띠가 등장하지도 않았다.

파업의 주동자, 남포 화물 운송회사 트럭 운전수들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정해진 시간에 하차지에 나오지 않고 페인트로 요구 조건이 쓰인 트럭을 일렬로 몰아 경적을 울리며 남포시 시가지를 행진한 것뿐이었다.

“임금 인상! 3교대 근무! 식사시간 보장!”

“지금 급료로는 밤을 꼬박 새워 날라도 도저히 먹고 살기 힘듭네다!”

“사장 놈은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지를 않으니, 피붙이들을 부양할 수 있게 당에서 우리 이야기를 들어 주시라요!”

파업(Strike), 노동자들이 고용주에게 자신들의 (주로 임금인상인)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조직적으로 노동을 멈추고 작업을 중지하는 행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노동자는 있지만, 고용주가 없으니 노조도 당연히 없었지만, 그렇다고 노동자들의 권리가 너무나 잘 지켜지고 근로 여건에 모두가 행복해하는 지상 락원은 모두가 잘 알다시피 아니었기에 태업(怠業)이라는 낱말로 불렸다.

그러다가 김정환 총서기 취임 후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사기업들이 생기고 고용주?고용인 관계가 생겨나면서 일어난, ‘다른 낱말 같은 현상’ 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산발적인 파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 북조선에 들어온 기업들은 근대를 포함해서 싼 임금과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아니, 제기하지 못하는) 노동력에 혹해 들어온 기업들이었고 당연히 이들이 북조선 노동자들에게 주는 임금은 남조선 노동자의 4분의 1수준이었다.

물론 개혁개방 초기에는 그것조차도 감지덕지 였고 ‘배급’이 아닌 ‘임금’을 처음 받아본 노동자들이 워낙 많았기에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개혁개방 후 14년에 접어드는 지금,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모든 노동자는 사무직 현장직 평양 라선 막론하고 여타 다른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쌀값은 오르는데 임금은 뭐 이리 안 오르는기야?’

‘우리 사장 놈이란 자기는 외제 벤츠 승용차를 차고 다니면서 우리 기업소 구내식당 반찬 가짓수는 줄이는 놈이지. 벼락 맞을 놈의 새끼!’

북남 대타협 이후, 남조선에서 ‘사 온’ 기업들이 공화국 곳곳에 공장을 이전하고 북조선 토종 기업들도 많이 생겼으며 그중 상당수는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조선을 비롯한 외국에서 이전받은 기술로 많은 성공신화를 써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의 처우는 개발도상국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말하자면 노동권리 보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북조선 내에서도 서서히 화두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90년도 말, 2000년도 들어서면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파업 행위가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그저 작업반 책임 일꾼에게 몰려가 항의하는 정도였던 파업이 이제는 점점 더 대담해지고 조직화 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수십 명 규모의 초기 파업들은 기업 사장과 지역당 개발국 위원의 호통 혹은 사탕발림 선에서 처리됐기에 중앙당에 보고되지 않아 정환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파업의 불씨는 항상 잠재되어 있던 셈이었다.

그중에 가장 노동강도가 강하고 근무 조건이 최악인 화물차 운전수들이 제일 먼저 폭발한 사태가 현재일 뿐.

문제는 사회의 하류층인 그들과는 달리 김정일 시대나 지금이나 직위와 체제는 달라졌어도 여전히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간부들은 생각이 많이 달랐다는 것이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네다, 총서기 동지. 지금 태업…… 아니, 파업에 가담한 반동들이 무려 수천여 명에 이르러 남포항 하역 작업과 물류 수송에 중대한 차질을 빚고 있다는 보고가 이전부터 상공업부를 통해 들어오고 있었습네다.”

“…….”

“게다가 잘 아시리라 생각하디만, 가장 큰 문제는 이 파업이 단순히 물류 운송에 차질을 빚는 정도에서 끝나는 거이 아니라 남포, 나아가 평양 공민들로 하여금 공화국 체제와 당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는 거이지요.”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장성택이 심각한 표정으로 진언하자 간부들 역시 동의한다는 듯 다들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장성택은 미리 못을 박아둔다는 어조로 선언했다.

예전 같으면 이런 태업 행위에 그와 당 고위 간부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하나였지만, 이제는 그도 김정환이라는 지도자의 스타일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동무들 다들 잘 알 테지만 무식하게 때려잡자느니 하는 말은 입에도 담지 말라우. 인민들의 불만을 다스릴 때 무작정 매를 쓰다가는 오히려 역효과만 되게 본다는 총서기 동지의 교시를 다들 듣지 않았갔어?”

‘그래, 그건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는 대응이지만…… 그 후가 문제군. 이렇게 급작스럽게 파업이 조직화 된 건 분명히 뒤에 뭔가가 있어. 역시 이제 슬슬 ‘그게’ 나타날 때가 된 건가?’

정환은 간만에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했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현재 북조선의 산업은 냉정하게 말해서 이제 간신히 관세장벽 같은 정책적 보호 없이 국내 시장에서 해외 상품들과 싸워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몇몇 산업, 예를 들어 IT 산업은 빠르게 인터넷을 보급하는 등의 조치에 힘입어 작년에 북조선 최초의 포털 사이트가 출현해서 뉴스 제공 서비스를 시작하는 혁신이 있었지만, 제조업은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인구는 빠르게 늘었고, 지금도 늘고 있으나 여전히 남조선의 오천만 인구수만 못하니 내수 시장으로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건 포기해야 하고, 결국 수출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데 여전히 해외 기업들의 공장과 OEM 생산은 북조선 산업에서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성택이 이끄는 대외경제위원회에 이루어진 그 해외 기업들의 유치 주 원인은 당연히 값싼 임금인데, 근래 들어 그 기업들도 점점 오르는 임금에 조금씩 북조선에 대한 투자를 줄이려 하는 낌새를 보이고 있었다.

말하자면 노동자의 임금은 오르는데 그 자리를 대체할 첨단 산업은 아직 궤도에 오르지 못한, 전형적인 중진국의 딜레마였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정환이 지금 진짜로 걱정하는 것은 경제보다는 다른 쪽이었다.

“……그래, 무식하게 때려잡는 게 아니라면 장 부장은 이번 파업을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지?”

“사실 회의 들어오기 전에 보고를 받고 내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네다만, 실제로 임금 체불 행위가 이루어진 건 맞으니 해당 사업가에게 처벌을 내리고 그 운전수 동무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불해야 갔지요. 다만……”

“다만?”

“불법적 시위를 일으키고 공화국 물류 운송에 지장을 초래해 체제에 위협을 가한 거이는 맞으니 시위 주동자는 따로 색출해내어 처벌해야 한다고 봅네다. 안 그래도 점점 공화국 전역에서 조금씩 시위의 규모와 횟수가 커지고 있는데 이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다가는 그런 시위를 용인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네다. ……이번 시위는 보는 눈이 한둘도 아니니 말입네다.”

“일단 대외경제위 위원 한 명을 보내 그 운전수 동무들과 사(社) 측 협상을 중재하도록 하게. 주동자 처벌은 그 후에 생각해보도록 하지.”

“그 말 대로 따르갔습네다.”

‘설마 그 총서기가 망설이는 건가? 이런 시위는 일단 앞에서는 달래고 나중에 주동자만 사회 불안정 조장 명목으로 몇 명 처넣으면 금방 사그라든다. 자칫 유연하게 대응하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해달라고 일어나.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인가?’

장성택은 일단 정환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애초에 규모가 좀 큰 파업 같은 사소한 문제를 굳이 서기실에서 정치국 전원 회의까지 열어 대응을 논의하는 것부터가 뭔가 이상했는데…….

어쩌면 파업의 주동자가 단순히 대담한 화물차 운전수 몇 놈 정도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장성택은 잠깐 했다.

그리고 그렇게 일단 임시적으로 결론이 난 정치국 회의에서 며칠 후, 그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오래전부터 정환의 직속으로 이런 종류의 내사(內査)를 맡고 있던 조선로동당 37호실에서 파업의 주동자를 찾은 것이다.

단, 남포가 아니라 평양, 그것도 평양의 대학가였다.

과중한 업무와 낮은 노임에 화를 내면서도 막상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누구한테 어떻게 항의해야 할지 모르던 화물차 운전수들의 앞에 서서 (그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계몽’하고 선도한 조직은 바로 이제 갓 성인이 된 젊은 대학생들이었던 것이다.

동무들, 우리 자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당이자 지도기관 이름이 뭡네까? ‘조선로동당’! 로동자의 당 아닙네까? 그런데 막상 그 로동당이 다스리는 이 공화국의 로동자 대우는 타국의 그것에 비해 이조(李朝) 시대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습네다! 그런데 막상 개혁개방으로 이득 본 자본가들, 기업소 책임일꾼들은 우리보다 천배 만배 잘 먹고 잘살지 않습네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창시자이신 마르크스 동지께서 말씀하시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렇게 탄압받고 천대받는 로동자들을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도대체 국가의 혜택을 받고 자라 좋은 환경에서 골에 먹물 넣어가며 공부한 우리 학생 동무들의 의무를 저버린 겁네다!

당에서는 우리 공화국이 김정환 총서기 동지의 령도 덕에 남조선을 경제적으로 제압하고 부국강병, 이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가죽 소파에 앉아서 미제 위스키를 마시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선전하지만, 막상 로동자들에게 실제로 무엇이 얼마나 주어졌습네까? 이게 정말로 총서기 동지가 원하시는 거입네까? 아니면 당과 정의 간신 모리배들이 총서기 동지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지 않습네까? 이건 반드시 항의해야 하는 일입네다!

제가 여러 경로로 외국 선례를 접했는데 이런 일은 오로지 조직적으로 뭉쳐 저항해야 자본가들에게 싸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습네다! 연대, 그렇습네다! 오로지 연대와 투쟁만이 로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할 방법입네다! 다 같이 뭉쳐 들고 일어납시다!

바야흐로 젊은 혈기에 찬 대학생들이 이끄는 노동 운동, 나아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판 운동권 세력들이 평양 대학가에서 조금씩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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