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94화 (194/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94화

“신은 위대하다!(알라후 아크바르) 침략자를 몰아내자! 무슬림의 적들을 죽이자!”

“신은 위대하다! 이슬람을 지키자! 형제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인민해방군 군정사령부의 ‘안정화’ 조치가 시행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아프간 전역에는 저항의 불길이 마른 벌판에 불길 번지듯 일어났다.

무자헤딘이건 아니었건, 탈레반이든 일반 민중이든, 아프간 주둔 인민해방군이라는 공통의 적을 향해서 헛간에 감춰둔 그리운 옛 전우,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꺼내 들고 모여들었다.

‘이슬람 해방 전선’, ‘아프간 자유군단’, ‘신의 순례자’ 등등 제각기 다른 이름을 단 무장집단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의 손에 들려 인민해방군을 조준하는 칼라시니코프 소총의 상당수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절 중국에서 데드카피 된 버전이었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죽여라! 이교도들은 지옥으로!”

“네놈들 나라로 꺼져라! 알라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총성이 멈추고 드디어 안정이 찾아들었나 싶었던 카불 거리에는 다시 화염병과 돌이 날아다녔다.

도시에서는 군정사령부의 조치 철회를 요구하는 과격시위가 군정사령부 본부 앞에서 일어났다.

그중 과격한 민족주의자, 총 쏠 힘과 각오가 된 자, 아니면 그냥 사회에 대한 불만은 많은데 직업은 없는 자들은 산으로 가서 무장단체의 게릴라가 되었다,

게다가 그럴 깜냥이 안되는 자들, 노인, 여자, 아이들도 인민해방군에 대한 반감이 치솟은 건 마찬가지인지라, 헬만드와 칸다하르처럼 저항이 격렬한 지역은 물론이고 카불에서도 중국인 점령자들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 이루어졌다.

인민해방군 기지의 외벽에는 카불 시민들이 야음을 틈타 몰래 적어놓고 간 모욕적인 낙서들과 오물들로 뒤덮였고 주차된 인민해방군 소속 차량은 카불 거리의 아이들 손에 의해 바퀴가 펑크 나기 일쑤였다.

그리고 주 아프간 인민해방군 군정사령부는 이들 모두에게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시위 해산해라! 해산!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볼 줄 알아! 최루탄 발사!”

“아니, 전기도 없는 곳에 사는 양치기 촌놈들이 ‘쿠란만 읽을 줄 알면 지식인이니 그 이상은 배울 필요가 없다’라고? 어이가 없군. 역시 이놈들의 악폐습을 긁어 없애려면 보통 방법으로는 안 돼.”

당연하지만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은 티베트와 위구르, 그리고 기타 다른 소수민족들의 종교에 대응했듯이,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존중하는 척이라도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 입장에서는 엘리트들이건 하류층이건 자국의 근대화나 (장쩌민 이후 중국의 국시가 되다시피한) 경제 발전에 대한 의지도 전혀 없는 아프간인들이 한심할 뿐이었다.

마치 ‘아시아 국가들을 백인들의 침략들에서 해방시켜주고 각종 근대화를 도와주었으니 그들은 우리들에게 마땅히 감사하고 복종해야 한다.’라는 구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을 떠올리게 하는 태도였다.

장성 중 그나마 온건한 자들에게도 아프간 민중들은 이해와 존중의 대상이 아닌, 그저 교화와 계도의 존재였고, 좀 강경한 자들은 아예 아프간 인민들의 사상을 뿌리부터 갈아엎는 사상 개조를 시행하자고 하는 판이었다.

대민(對民) 작전과 현지인들의 포섭이 점령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교본으로나마 접한 장령들과 고급 장교들 생각부터가 이 지경이었으니, 일선에서 게릴라들의 폭탄과 기습 공격에 시달리는 사병들의 경우는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 미개한 무슬림 놈들! 우리 중국이 인민의 아편인 종교에 젖어서 사는 네놈들을 손수 개화시켜주겠다는데 왜 난리들이야? 은혜를 모르는 놈들에게는 총알을 아끼지 말아야지! 사격 개시!”

“이맘들의 수염을 깎아라! 모스크를 무너뜨려! 쿠란 대신 마오쩌둥의 항일 대장정 일대기를 보급해라!”

“전 인민군 장병들은 아프간 인민들의 ‘사상적 재건’을 막는 불안 요소와 반동분자를 보게 되면 상관에게 보고할 필요 없이 교전과 사살이 가능하다! 언젠가 이들은 자신들의 미개한 관습에서 탈피하게 해주어 고맙다고 중공에게 눈물을 흘리며 고마워할 날이 있을 것이다.”

“총 비스무리한 물건이라도 들고 있으면 전부 선제사격해! 뭐? 어린애든 어른이건 무슨 상관이야? 아, 그리고 차도르인가 그 여기 여편네들이 두르고 다니는 천 쪼가리도 전부 벗겨서 수색해! 그 안에 폭탄을 숨겨 들여올지 누가 알아? 하는 김에 눈요기도 좀 하자고. 흐흐.”

도시에서는 그나마 해외 언론인들과 카메라를 의식해 무경들의 몽둥이찜질과 최루탄 등 온건한(?) 대응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시골과 산악에서는 인민해방군에 의한 조직적인 학살과 파괴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파괴된 촌락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전파한 공포와 증오는 다시 탈레반 같은 과격 무장단체의 신병 모집을 더욱 쉽게 해주는 악순환이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대 게릴라 전은 격렬해졌고, 돌멩이가 급조 폭발물(IED)로, 화염병이 자폭 트럭으로 바뀌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인민해방군이 대 게릴라전, 정규군이 아닌 상대와 치러지는 전투가 주인 이 전쟁에서 원 역사의 미군보다 나은 점이 있었다면, 그 방대한 숫자와 언론 통제능력으로 사상자 발생으로 인한 정치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기에 가가호호, 산봉우리란 봉우리마다 모두 소탕 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자란 점이라면, 그 소탕 작전을 펼치는 지상군을 지원할 공군 전력과 빠르고 수송능력이 뛰어난 헬기, 경험 많고 노련한 특수 부대로 이루어지는 특수전 전력의 부재였지만, 인민해방군 장령들은 몇 번이고 기습에 의해 큰 피해를 기록한 끝에 이것도 보완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생화학전이었다.

“일단 의심 가는 곳에는 인민군 장병들을 들여보내지 말고 화학탄부터 쏴라! 죄 시골에 평야 지대라 가스가 오래 안 머무는 점은 이럴 때 좋군.”

곧 아프간 산악은 매캐한 염소가스로 뒤덮였고 하도 써댄 끝에 보유량은 금방 동이 났지만, 인민해방군 후근부(后勤部, 보급지원을 담당하는 사령부)에서 아예 카불 인근에 화학무기 공장을 지어버림으로써 바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민중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이러한 평정 작전은 일시적인 승리만 거두었을 뿐, 도무지 근본적인 진척을 보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인민해방군 측의 사상자들은 늘어만 갔다.

* * *

“쯧쯧, 미친 놈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막 나갈 줄은 몰랐군. 이래서는 100년이 지나도 미국의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건 고사하고 자국 근처 지역 안정도 담보하기 힘들 텐데…….”

정환은 주 아프간 파병 조선인민군 지휘관으로부터 날아온 기밀 보고서를 읽으며 그렇게 혀를 찼다.

화학탄 사용을 비롯한 중국군의 모든 전쟁범죄들은 철저한 언론통제, 낙후된 아프간 통신 인프라 탓에 (아직까지는) 비밀로 지켜지고 있었다.

개발도상국과 후진국 간의 전쟁인지라 서방 언론들도 초기에만 관심을 보였을 뿐 그 후에는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지만 중국과 함께 아프간에 공동 파병한 정환과 조선인민군은 당연히 이 모든 사정들을 소상히 전해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전해 듣는 아프간 현지 사정과 중국군의 뒷감당 걱정 따위는 내다 버린 전술은 그야말로 기가 찰 정도였다.

“지금 당장이야 비밀이 지켜지겠지만 1년도 못 갈 게 뻔한데 말이야. 게다가 이게 새어나가면 자기들이 그동안 공들여온 사우디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이 끼칠 게 당연한데…… 아무리 사우드 왕가가 앞에서는 독실한 무슬림인 척하고 뒤에서는 미제 위스키 마시며 호박씨를 깐다고 해도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

“……총서기 동지께서는 이런 중국의 대응이 시정되어야 한다고 보십네까?”

정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죽 늘어앉아 함께 보고를 듣고 있던 정치국 위원 중 한 사람, 김용건 외무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방금 정환의 말에 김용건뿐 만이 아니라 다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럼 김 외무상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선이건 아프간이건 일방적 강경 대응보다는 어르고 달래고 풀어주고 조이는 게 결과적으로 체제 유지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리라 생각하는데…….”

“총서기 동지의 높으신 고견에 반대하는 거이는 결단코 아니지만…… 제가 이제까지 본 바로 판단하자면 무슬림이라는 종자들을 시정 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중국 동무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네다. 물론 지금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저런 짓거리들은 분명히 지나치지만, 민족과 겨레의 미래를 생각할 때 종교는 인민 대중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체제를 약화시키는 아편이라는 거이 아무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갔습니까?”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원래 이런 성향이었지.’

혹시 정환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세라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하는 김용건을 보면서 정환은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부터 ‘일본 쪽바리들이나 남조선보다 부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조선 민족’을 위하여 자신에게 가담한 민족주의 성향의 외교 엘리트가 김용건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조선 민족’의 구성 요소에 이슬람은 결코 들어있지 않았을 테고, 그동안 외교가에서 일하며 자주 보아온 무슬림들이라고 해봐야 북조선과 친했던 이란, 오일 머니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우디 아라비아인들이 대부분이었을 텐데.

이 두 국가 모두 김용건이 본받고 싶어 하고, 부러워하는 나라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다.

이란이야 정교일치의 신정국가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오일 머니로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며 왕족들만 특권을 누리는 전제왕정이니, 정환 이전에 그가 혐오했던 김정일, 김일성 정권과 별로 다를 것도 없어 보였을 게 뻔했다.

사실 이러한 ‘중동 이슬람 것들은 생각 뿌리부터 썩어빠졌으니 반동들과 마찬가지로 취급하여 때려잡아야’라는 시각은 김용건이 대표해서 말했을 뿐이지, 입을 다물고 있는 정치국 위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동이나 이슬람을 혐오하는 선에서만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고, ‘타 민족들은 우리 우수한 조선 민족과 혈통적으로 다른 열등한 존재’라는 우생학적인 생각을 가지는 간부들도 적지 않을 게 분명했다.

원래부터 ‘김일성 민족’이라는 프로파간다 하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국가적으로 권장하기도 했고, 최근 이어진 고도의 경제 발전과 98년 북남 대타협은 이런 민족주의에 현실적인 근거를 제공해주기도 했고.

간부들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도 ‘위대한 김정환 총서기 동지의 령도 아래 드디어 우리 조선 민족이 세계 패권을 장악할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게 작금의 현실이었다.

‘부끄럽게 시리, 이거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니었군.’

정환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체제 유지와 그가 꿈꾸는 통치 실현을 위해서라도 일정 수준의 애국주의를 권장해야 할 필요는 분명히 있지만, 객관적으로 아직 중진국 반열도 탈출 못 했는데 벌써부터 이런 무 근거한 자아도취에 빠지면 곤란했다.

일반 인민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 결정권자들인 고급 간부들은 현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자리의 간부들 전부에게 하나만 묻고 싶군, 동무들 미국이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게 무슨 이유라고 생각하나? 그들을 패권국으로 만든 주요한 자질이 무엇이냐 이 말일세.”

“기거야 넓은 땅에서 나오는 방대한 물자와 무진장한 자원 아니겠습네까.”

“과학을 장려하는 풍토와 엘리트 고급 두뇌들을 육성하는 교육 기반 아닐까요?”

“세계의 돈줄인 달러 발행권을 장악하고 그 경제력에서 나오는 강대한 군사력, 어느 나라든 날려 보낼 수 있는 핵 미싸일이갔지요.”

“다들 80점짜리 답안을 내줬군. 나머지 20점을 내가 메꿔주자면,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대표되는 강력(剛力) 뿐만 아니라 정신적 자산과 이념이라고 할 수 있네. 즉 서구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이들의 사상적 기반, 천부인권과 평등 개념이지.”

아직 조지프 나이가 주장한 소프트 파워, 하드 파워의 개념이 알려질 때는 아니고, 정환 본인도 미국이 보유한 세계 패권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그래도 그런 정신적 이념이 미국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인종과 종교의 평등,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현실의 미국에서 완벽하게 지켜지는가에 대해서는 별개 문제지만, 최소한 공적인 자리에서 ‘미국 백인이 세계 최고의 인종이고 나머지는 다 노예의 후손들’이라는 말이 못 나오는 사회풍토는 확실한 경쟁력이었다.

쉽게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 간부들에게 정환은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총서기 동지께서는 설마 서구 민주주의를 우리 공화국에 받아들이자는 말씀은…….”

“그건 아니지만, 더 기반 이념인 만민평등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게, 왜 전 세계의 인재들이, 심지어 요즘은 우리 공화국 김대 졸업자들에게도 일어나는 현상인데, 왜 하필 미국으로 가려고 하겠는가? 미국에서의 성공이 곧 세계에서 거두는 성공이며, 민족과 피부색이 아닌 실력으로 승부해서 겨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가 아닌가?”

“기거야 그렇지만 실제로 미국도 완벽히 차별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네까.”

“평등을 지향하지만 불완전한 것과 애초에 지향하지도 않는 건 큰 차이가 있네. 만약 미국인들이 현재의 중국처럼, ‘중화민족이 세계 최고’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제2의 나찌 취급만 받고 전 세계에 적만 수두룩이 만들었을 걸세.”

“…….”

“전 세계의 인민들이 공정하게, 최소한 다른 국가보다는 훨씬 공정하게 경쟁하여 승자에게 무한에 가까운 포상을 준다는 게 미합중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체제의 장점일세. 그렇게 모인 인재들을 흡수하여 3억 인구의 미국이 13억 인구의 중국보다 훨씬 고급 두뇌들이 많아진 것이네, 그게 세계 패권을 차지한 원동력이 됐고. 최소한 지금 중국이 아프간에서 하는 것처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에게 후진적 민족주의를 강요했다면 미국은 그저 태평양 연안의 지역 강국 정도에 머물렀을지도 모르네.”

정환은 잠시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최소한 지금 같은 초강대국은 절대 못 됐겠지. 그리고 중국이 지금 그 길을 밟아가고 있네.”

이제 정환의 말은 하나의 예언이었다.

몇몇 간부들은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상당수는 정환이 지금 하는 말이 단순히 자신들을 훈계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교시이며 수령의 철학임을 눈치채고 귀를 쫑긋했다.

공화국 삼천만 인민이 그토록 경애하는 젊은 최고지도자가 실제로 머릿속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최소한 주체사상이 아닌 건 이제 모든 간부가 잘 알고 있었다.) 들을 기회는 많지 않으니까.

그리고 간부 중 극소수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환의 말을 곱씹어보고 있었다.

“지도 이념에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국가나 체제는 절대로 오래 가지 못하네. 전제군주정이나 정교일치 체제보다야 조금 나을지 몰라도, 유연성이 부족하거든. 중국 공산당 동무들은 자기네 13억 인민들을 통제하는 데 민족주의를 열심히 써먹고 있지만, 결국 그게 그들의 실패와…… 공산당의 체제 붕괴를 불러올 걸세.”

체제 붕괴!

청천벽력 같은 정환의 경고에 당 정치국 위원들의 표정이 굳으며 머릿속에 비상등이 켜졌다.

체제 붕괴라면 김일성 때나 지금이나 당원들 전원이 경계해야 하는 1급 금기 아닌가.

그 당시에도 체제 붕괴는 정치국 위원들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적 지위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하물며 그때보다 (특히 물질적으로) 잃을 게 너무나 많아진 지금은 생각하기도 싫은 사태였다.

정환이 무의미하게 군기를 잡거나 해서 간부들을 피곤하게 하는 성격이 아님을 잘 아는 그들은, 그제야 총서기 동지가 한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보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 김일성 민족’이 사실은 허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정환은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의자에 살짝 몸을 기댔다.

“그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게 문제지만…… 그러니 공화국은 중국이 앞으로 걸어갈 패착의 길을 뒤따라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일세.”

“……기럼, 총서기 동지께서는 중국 동무들에게도 지금 하신 경고를 해주실 생각이십네까? 아프간 반동들을 때려잡는 게 아니라 살살 달래면서 포용하라고?”

“내가? 아니! 미쳤나? 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해?”

장성택의 질문에 정환은 이제까지 뭐 들었냐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치며 손사래를 쳤다.

“애초에 내가 말한다고 들을 작자들도 아니고, 인제 와서 ‘동무들, 사실 한족은 세계 최고의 민족이 아니고 세계 패권도 못 잡을 것입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왔는데, 그걸 취소하겠나? 소국의 지도자가 중화민족의 번영을 질투한다고 비웃기나 하겠지.”

“기럼…….”

“나는 그냥 중국 동무들이 아프간에서 피똥 싸는 거나 열심히 구경할 생각일세. 이 난리를 쳐놓고 아직 전쟁의 명분인 오사마 빈라덴도 못 잡았는데, 장쩌민 주석 동지가 자국 인민들에게 뭐라고 변명할지 그건 아주 볼만하겠군.”

정환의 그 말을 끝으로 그날 정치국 회의는 해산되었다.

많은 간부는 서로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때로는 ‘그래도 우리 조선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는 낫지 않느냐’하며 은밀한 불만을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기래, 내가 유학을 가봐도 대학에서 민족중흥 운운하면 비웃음을 당했는데 그 말이 맞디’라고 하기도 했다.

최소한 그날의 회의에서 정환이 한 말, 아니 예언이 먼 곳에서 중국이 벌이는 전쟁의 결과 예측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외정세에만 귀를 기울이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정환이 강조한 ‘체제의 유연성’이, 아니 나아가 김정환 총서기의 령도 체제가 직접적으로 시험받을 시기가 도래했다.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에서, 정환의 총서기 취임 이래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이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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