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93화
69장. 패권국의 자질
한반도가 남북 양국 지도자의 은밀한 협약으로 전화(戰火)에서 슬쩍 비켜 간 그해 2001년 말, 전쟁 개시 약 반년 만에 중국 인민해방군은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하며 승리의 개가(凱歌)를 올렸다.
아직 무자헤딘으로 남아있는 자든 탈레반으로 변질한 자든 무기를 들 수 있는 자들 중 남은 자들은 또다시 고향을 침공한 다른 제국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아프간 산악지대로 도망쳤지만 어쨌거나 수도를 점령했으니 승리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했다.
비록 무자헤딘 시절 영국, 소련과 맞서 싸운 경험으로 숫자와 장비가 월등한 강대국과 싸우는 데 대해서는 도가 튼 아프간 군과 중국군 자신의 작전 실패와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인민해방군 장병들도 아프간 정부군에 못지않게 희생되기는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고 그저 중동 전선에서 돌아온 참전군인들, 상이군인들의 은밀한 증언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니, 사실 알더라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승전국이었으니까, 그리고 상하이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인민들의 복수를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승리감과 도취감은 인민들뿐만이 아니라 중국 지도부, 공산당 간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이 사실은 카불 점령 후 인민일보를 비롯해 중국 관영 매체들이 쏟아낸 수많은 (과장된) 승전 보도들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러한 자신감은 2002년 새해 첫날 중국 전체의 모든 관영 채널이 의무적으로 방송해야 했던 장쩌민 주석의 승전선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인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우리 중국이 승리하였습니다!
“중국 만세! 공산당 만세!”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데 우리 신(新)중국은 단 1년 만에 복수를 이루어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대국이 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중국을 범한 자는 반드시 죽인다! 이제 전 세계의 반혁명, 제국주의자들도 이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해 춘절 중국은 어딜 가도 잔칫집이었다.
집집이 인민해방군 창설일인 8월 1일을 뜻하는 팔(八)과 일(一)이 적힌 군기가 휘날렸고 저 북쪽 내몽골에서부터 남쪽 광동성에 이르기까지 군가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중국?아프간 전쟁의 가장 큰 수혜자는 군, 즉 인민해방군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아직 은연중에 남아있던 천안문 학살의 주범 이미지를 깨끗하게 씻어냈을 뿐 아니라, 걸프전 이후 10여 년간 열심히 추진한 현대화가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성과를 거두며 원래부터 당, 정과 함께 중국의 3대 권력 축으로 기능하던 인민해방군 군부의 목소리가 커졌음은 당연지사였다.
하여간에 중국에게는 영 결과가 찜찜했던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 중월 전쟁 이래 처음으로 깔끔하게 거둔 승전이기에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좀 더 식견 있는 사람들은 이번 전쟁의 숨겨진 목적이었던, 중동 석유와 인도양 제해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확보함으로서, (아직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중국이 지난 세기 상처 입은 자존심에 대한 보상인 세계 패권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제 남은 것은 빈 라덴을 체포하여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리고 전후 처리를 통하여 승전국으로서의 권리를 받아낼 차례였다.
사실 중국의 진정한 목표를 고려해본다면, 어떤 의미에서는 지금부터가 진정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 * *
“승전을 참으로 감축드립니다, 장 주석님. 이로써 상하이에서 희생당한 무고한 중국 인민들도 편히 잠들 수 있겠군요. 이렇게 전화상으로만 축하드리는 것을 양해해주십시오.”
“허허, 고맙소, 김 총서기. 이번에 조선이 보내준 파병군도 많은 도움이 됐소. 앞으로도 사회주의 이념의 승리를 위하여 중조(中朝)가 함께 나아갔으면 하오.”
‘역시 여우 같은 작자로군. 파병 규모가 적었던 게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는데…….’
전화상으로 사람 좋은 웃음만을 흘리는 장쩌민 주석의 노회함에 정환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지금, 이 전화는 새해가 밝은 후 북조선과 중국 양국 정상 간 신년 인사 겸 공식 승전 축하 인사를 겸해서 오가는 전화였다.
장쩌민의 말마따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프간 전쟁에 공동 참전을 요구한 중국에 보낸 병력은 고작 200명 정도였다.
그래도 전쟁 염탐도 할 겸 체면치레 겸 정찰여단과 저격여단을 주로 해서 편성한 파병 병력이었지만, 아무리 (서해 분쟁에 대한 합의라는) 명분이 있었다고는 해도 중국 측에서 기대한 숫자에 한참 못 미쳤음은 분명했다.
하여간 그렇게 파병된 병력이 아프간 현지에서 평양에 보내온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서기실에 보고되고 있었기에, 정환은 인민해방군의 전황을 상당히 상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산악지대를 빼놓고는 거의 인민해방군의 통제하에 들어왔다고 들었습니다. 빈 라덴도 어서 빨리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소. 우리 정보부 말로는 파키스탄과의 국경선으로 도망친 게 거의 확실하다고 하는데 뭐 머지않아 잡을 수 있을 거요. 남은 건 아프가니스탄 현지의 전후 처리문제지.”
“혹시 어떤 복안이라도 있을지 경청할 수 있겠습니까?”
처음 정환이 이 질문을 할 때는 어떤 대단한 수확이나 정보를 예상하고 던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겉치레뿐이지만) 공동 참전국 지도자로서 넌지시 할 수 있는 질문, 대략적으로 앞으로의 아프간이 어떻게 흘러갈지만 들을 수 있을 정도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장쩌민이 알려줄 수 없다고 해도 정환은 전혀 기분이 상하거나 불쾌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냥 ‘알겠습니다. 승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하고 끝냈을 것이다.
질문을 받은 장쩌민 역시도 (자기 입장에서) 별로 시답지 않은 정보를, 그저 지나가는 말 하듯 정환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정환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미 우리 인민군대에 의해서 신장 자치구와 연결되는 고속도로와 병원, 관공서 건설에 들어갔소. 아프간 인민들은 오랫동안 빈곤과 악습에 고통받아 왔으니 우리 중국 치하에서 중세시대나 다름없는 현재를 벗어나 문명의 빛을 제공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도 사회주의 이념과 중공의 영도를 따르게 될 거요.”
“……중국 치하에서? 아…… 혹시 아프간과도 정부 수반으로 누굴 옹립하실 계획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이 질문은 짧게 요약하면 ‘당신들 꼭두각시로 누굴 선택했냐?’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차피 중국이 원 역사의 미국처럼 선거로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자신들의 명령을 대리할 아프간 지도자를 선택했을 거라고는 정환도 기대 안 했다.
아무리 그래도 대충 현지 민심을 고려해서 존경받는 북부 동맹(Northern Alliance, 정식 명칭 : 아프가니스탄 구국 이슬람 통일 전선)의 누군가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우지 않을까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는데, 장쩌민의 다음 대답은 정환의 그런 예상을 안 좋은 의미로 뛰어넘은 것이었다.
“이런, 아직 파병군에게서 소식 못들은 모양이구려. 파병군을 보내준 의리도 있고, 어차피 곧 언론에도 알려질 소식이니 미리 알려주겠소. 우리 당에서는 현지인으로 구성된 과도 정부를 내세울 필요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오. 아프간에 곧 들어설 정부는 우리 인민해방군 사령관이 군정(軍政)을 구성하여 현지인 중 우리에게 우호적인 인사들을 영입하는 형태로 할 거요.”
“……어…… 정말이십니까? 음…… 그건 좀 의외로군요.”
‘이런 미친! 당신 제정신이야? 혹시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라고 물어보고 싶은 게 정환의 솔직한 마음의 소리였지만, 일단은 좀 더 들어보자는 생각에 간신히 그 목소리를 눌러 삼켰다.
하지만 곧 장쩌민은 점점 더 그의 예상을 벗어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종전 직후인 지금이야 당연히 임시 군정을 구성해야겠지요. 하지만 제가 물어본 건 군정 이후 어떤 온건 이슬람 지도자를 염두에 두고 계신 지 그걸…….”
“이슬람이라니, 김 총서기. 그런 허무맹랑하고 인민들에게 나태와 현실도피만을 가르치는 종교를 대체 왜 우리가 가르치겠소? 군정 구성인원들은 비(比) 이슬람계, 우리 중국과 아프간 혼혈 태생인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할 거요. 전 세계에 우리 화교 동포들이 없는 나라는 없으니까 말이오.”
“……그 상태를 언제까지 유지하실 생각이십니까?”
“뭐 십 년이 될 수도 있고 이십 년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외교적 반발이야 조금 있겠지만, 김 총서기도 알다시피 명분은 우리에게 있고 국제사회에 딱히 아프간의 편도 없소. 어디 적을 좀 많이 만들었어야 말이지. 하여간 그 기간이 지나면, 아프간 인민들은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아니라 어느 쪽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 나은 길인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될 거요.”
‘……이 녀석들 처음부터 민간 정부를 구성할 생각이 없었군. 아프간을 티베트나 위구르 같은 상태로 만든 다음, 군정 그대로 영영 눌러앉으시겠다?’
장쩌민은 너무 많은 것을 말한다고 생각했는지 대충 돌려 말했지만, 정환은 그 행간에 숨은 중국 공산당의 심리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중국의 13억 인구는 지금도 계속 늘고 있고 2010년대면 14억이 된다고 전망된다.
그러니 가장 확실한 방법, 10년이고 20년이고 아프간에 눌러앉아 경제적, 정치적으로 완전히 반식민지로 종속시켜 버리거나 아예 더 확실하게 중국인을 보내 현지를 동화시켜버리면 된다는 게 장쩌민과 중공의 구상인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자신들의 개발 독재체제와 주변 안정에 대한 위협이라면 대단히 강경하게 대처한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들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경제 개발을 이끌 정도의 합리성과 장기적 안목을 갖추고 무분별한 확장 욕구에 경도된 집단은 결코 아니‘었’다는 걸 생각하면 쉽게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곧 장쩌민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아편 때문입니까?”
“그렇소. 조금 강경한 방안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지만, 중국 내로 흘러들어오는 헤로인을 완전히 차단하려면 단기간에는 불가능하고, 그것도 아프간 현지 관리들을 믿어서는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게 군 지휘관들의 공통된 의견이오. 이곳 인사들은 정말이지 청말 서태후가 울고 갈 정도로 부패했으니.”
‘그건 그렇지만…… 이러면 하미드 카르자이(Hamid Karzai) 정부도 물 건너갔군.’
정환이 파병군 군관들로부터 받은 현지 보고 중 하나는, 아프간 정부군 격파와 알 카에다 색출이 어느 정도 진척되자 인민해방군이 가장 먼저 한 게 바로 아프간의 양귀비밭이란 밭을 전부 불태운다는 정보였다.
사실 애초에 이 양귀비에서 나오는 아편과 그것을 정제해 만든 헤로인 박멸이 이번 전쟁의 주 목표 중 하나였음을 생각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대단히 당연한 행동이었지만, 문제는 아프간에서 양귀비 농사를 빼면 변변한 산업이라는 게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이 침략자들아! 그걸 다 불태우면 우리는 뭘 먹고 살란 말이냐!’
‘이 터번 쓴 대가리들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할 짓이 없어서 마약을 재배해? 이게 우리 중국과 중화인민을 위협한다는 걸 몰라! 그나마 사령부 명령이 아니었으면 네놈들부터 쏴 죽였을 거다!’
‘야, 이 개자식들아, 주위를 둘러봐라. 온통 사막뿐인데 여기서 대체 어떻게 다른 작물을 키우라는 거냐!’
‘아무튼, 안 돼! 앞으로 한 번만 더 양귀비를 재배하는 농가가 있다가는 탈레반, 나아가 알 카에다와 한 패로 보고 즉각적으로 처분하겠다!’
장쩌민도 내심 켕기는 게 없지는 않았는지 자신도 완전히 찬성하지는 않는다는 변명조가 미세하게 섞인 투로 말을 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미국이나 영국 사례를 본받아 우리에게 우호적인 현지인들로 이루어진 정부를 세우고 지원만 해주려고 했지만, 장령들 의견이 워낙 강력해서 말이오. 일단 현지에 나가 있는 사람들 의견을 듣는 게 지장(智將)의 덕목 아니겠소?”
“…….”
“게다가 영국, 미국 그들이야 아프간과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중국은 와칸 회랑만 넘으면 아프간과 바로 지척 아니오? 지리적인 조건이 다르니 우리 운신의 폭이 훨씬 넓어졌지.”
‘이들은 이슬람 문화와 아프간이라는 나라의 내부 사정에 너무도 무지하다. 미국 이상으로.’
스스로 벌집을 걷어차는 행위를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장쩌민을 보며 정환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상하이 테러가 워낙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각인된 탓에 시간도 명분도 중국 편이고, 확실히 중국의 150만 무경 병력이면 ‘테라포밍’이 불가능하지 않아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프간의 지리적 특성과 현지인들에게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이슬람에 적극적으로 적대하겠다는 생각이 아프간 민심을 완전히 돌아서게 만들 것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이슬람을 비롯한 타국 문화, 특히 종교에 대한 무지, 물질을 우선시하는 유물론적인 사고 기반, 중국이 새로운 패권국으로 떠오를 21세기를 승전으로 장식했다는 오만함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기의 오판을 유도한 것이다.
우리 중국은 이제 강대국이다, 영국과 소련도 이기지 못한 아프가니스탄을 이렇게 쉽게 병탄했으니, 다가올 21세기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중국의 위엄에 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알아서 재앙을 부르는 장쩌민과 중국 공산당에, 정환은 현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바로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었다.
“참으로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지리적인 조건이 다르니 전략도 바뀌는 건 당연하겠지요. 곧 아프간의 테러리스트들은 탈레반이건 알 카에다건 전부 소탕당할 날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하하, 그렇지. 다시 한번 김 총서기의 이번 협조에 감사드리오. 그날이 오면 그때는 나도 내 정치적 고향 상하이에서 인민들의 죽음에 정말로 눈물을 흘릴 수 있을 거요.”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양국 정상 간 신년 축하 통화가 종료된 후, 정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원래 티베트인들 때려잡던 가락이 어디 안 가셨군. 불쌍한 놈들, 스스로 지옥 불구덩이로 뛰어 들어가겠다는 놈을 누가 말리겠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 군정 사령부는 카불을 중심으로 한 아프가니스탄 전 점령지에서 20여 가지 사항을 골자로 한 포고령을 내렸다.
겉으로는 테러에 찬동하는 분자를 색출하고 아프간 현지의 치안을 안정시키기 위한다는 명목이었지만, 그 내용은 곧 아프간의 거의 모든 대중을 분노케 했다.
-특정 목적 아래 사람이 5명 이상 모이는 행위 금지.
이 말인즉슨 더 이상 이슬람 성원(聖院), 즉 모스크(Mosque)에 모여 기도드리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인민해방군 아프간 군정사령부의 허가 없이 종교, 미신, 비과학에 관련된 어떠한 종류의 인쇄물이나 서적 출판 및 유포 금지. 유언비어와 테러리즘 전파를 막기 위함임.
이슬람 경전인 ‘쿠란’도 당연히 안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종교 행위가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지만, 모든 종교인은 군정사령부와 당 종교위원회로부터 ‘종교인 면허’를 받고 활동할 것.
이슬람 성직자인 이맘(m?m)의 육성과 선정도 앞으로는 공산당에서 하겠다는 뜻이었다.
처음에 이 조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자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누가 봐도 군정사령부가 이슬람교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탈레반 정권의 압제에서 그들을 해방시켜 주고 자본주의를 들여올 것이라고 인민해방군에게 기대하던 소수 외국물 먹은 아프간 현지인들, 탈레반에 눌려 지내던 비주류 아프간인들도 이 조치만큼은 결코 찬동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프간에서는 지옥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