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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186화 (18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86화

“테러라, 그렇다면 위구르나 티벳 같은 대국의 겁대가리 없는 소수민족들이 또 분란을 일으킨 것이오? 내가 알기로는 그들은 무경 측에서 잘 제어하고 있는 거로…….”

당연한 추측을 말하는 백승철에게, 인민해방군 사령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쪽이 아니오, 티벳을 포함한 자치구 내 민족들은 이미 대부분 와해 되어 우리 당의 영도에 맞설 수 있는 단결된 지도자나 외부 지원 없이는 베이징을 포함한 1선급 도시에 공격을 가할 만한 능력이 없다는 게 우리 정보국의 공통된 평가요. 문제는 다른 쪽이지.”

“다른 쪽이라면…….”

“중동 쪽이오. 우리가 국가 노선상 이스라엘과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후부터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도 불만을 품기 시작했지. 아, 물론 사우디 왕족들이야 일단 겉으로는 신실한 척해도 세속에 속해있는 자들이고, 이란 역시 신정 국가이기는 해도 감히 우리를 대놓고 적대할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아프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탈레반들은 워낙에 광신도들이 많아서…… 도무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게 문제요. 백 상장 동무도 알겠지만, 종교에 미친 광신도들은 돈도, 애국심도, 이념도 하여튼 모든 말이 안 통하거든. 미친놈들 같으니라고.”

“이러니 마오쩌둥 동지도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신 거 아니겠소! 쯧쯧, 그놈의 알라신에게 기도드릴 시간에 사막에서 양이나 치고 사는 자기네 인민들 먹여 살릴 궁리나 할 것이지…… 이러니 위구르 놈들도 그렇고 무슬림 놈들은 바퀴벌레처럼 한 마리라도 더 박멸시켜야 한다니까.”

“우리와 세계패권을 겨룰만한 미합중국도 이미 중동에 관심을 끊었고, 당에서 결심을 하고 기회만 있으면 우리 인민해방군이 당장에라도 쳐들어가…… 아니, 흠흠…… 진출해서 그 종교로 찌든 터번 쓴 머리에서 썩어빠진 이슬람교를 싹 몰아내고 마오쩌둥 사상과 공산당 강령을 주입시켜 주는 건데 말이지. 저 후진국 군대가 우리 인민해방군 전사들과 상대가 될 리 있겠소?”

‘석유 때문에 근래 사우디나 이스라엘하고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그래도 또 다들 각자 꿍꿍이속이 다 있었나 보군. 하기야 국가 간 관계라는 게 그렇지.’

그렇게 각자 한마디씩 하는 인민해방군 장령들을 보며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하는 백승철의 1차적 감상은 대강 이 정도였다.

그의 입장에서 중국인들이 티베트인들을 때려잡든 중동 무슬림을 때려잡든 사실 남 이야기였고, 걸프전 파병으로 이라크에 간 적은 있지만, 파병 기간 자체가 워낙 짧았던 데다가 적국 지휘관인 사담 후세인 역시 세속 독재자였지 아프간 탈레반과는 오히려 반대편에 가까웠다.

그러니 백승철은 대놓고 중동에 대한 야욕을 드러내는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아프간 탈레반하니 한 때 프룬제에 유학했던 그로서는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글쎄, 그렇게 쉽게 볼 것만은 아닌 거 같소만…….”

“……뭐요? 백 동지? 그게 무슨 이야기요?”

“아프간 탈레반들은 저 강대한 소련도 한때 침공했다가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패배의 쓴잔을 마신 채 물러나게 한 자들이오. 대국의 군사력이 날이 갈수록 강성해지는 줄은 알지만 나라면 조금은 신중할 거라고 조언 드리고 싶소.”

상당히 완곡하게 돌려서 말한 것이었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을 모를 리 없는 중국군 장령들은 살짝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물었다.

“백 상장 동지는 지금 우리 인민해방군이 패배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요? 저 모래나 퍼먹으며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막 유목민들 따위한테?”

“그럴 리가 있겠소? 나는 단지 명확한 목표 없이 전쟁이라는 거사를 벌이는 건 예상외로 일이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려는 거요. 또 전쟁사를 보면 단순히 어느 한쪽의 승전이나 패전만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경우도 꽤 많아서 말이오. 당장 우리 조선반도도 현재까지 휴전 상황 아니오? 당시 대국에서 지원군으로 오셨으니 누구보다 잘 아실 텐데.”

“……으음…….”

뭔가 약 올리는 듯하면서도 아닌 거 같은 백승철의 말에 중국군 장령들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번 합동 훈련에서 장쩌민이 자신들에게 신신당부한 것은 ‘요즘 수상하게 구는 조선의 입장을 확실히 해두고 완전히 돌아선 게 아니라면 가급적 기분을 맞춰주며 중국과 같은 깃발 아래 묶어둬라’가 아닌가.

덩샤오핑 실각 이래 국가수반 자리에 오른 장쩌민과 상하이방, 나아가 인민해방군과 공산당의 목표는 ‘미국에 맞서서 과거 중국의 위치를 회복할 중화제국 건설’이다.

과거 로마 제국이 게르만 족에게, 역대 중국 왕조가 이민족에게 그리고 현대 미국이 남미에게 그렇게 하듯이 모든 제국의 제1 목표는 국경, 즉 제국 주변부의 안정인 법.

미국보다 훨씬 다양한 나라들과 국경선을 맞댄 중국으로서는 화친이든 강경이든 어떤 수단을 통해서라도 일단 베이징 지근거리에 위치한 북조선을 자기편에 잡아두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소국 군대의 지휘관에 불과한 백승철이 심기를 건드려도 다른 여타 후진국 대하듯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전기고 쌀이고 다 부족해서 약간의 지원물자만으로도 숨통을 틀어쥘 수 있었던 옛날도 아니고, 1인당 국민소득이 중국보다도 높아진 현재로서(사실 이건 인구 차이를 감안해야겠지만) 북조선의 외교적 ‘몸값’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형국이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화도 못 내고 분을 삭이던 인민해방군 지휘관들 중 그나마 빠르게 냉정을 찾은 한 명이 이내 백승철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백 상장 동지는 명확한 목표가 없는 전쟁은 산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하셨지만, 우리 중국으로서는 사회 안정을 위해 이슬람 극단분자들을 뿌리 뽑아야 할 명백한 이유가 있소이다. 이 경우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니 우리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백 상장 동지와 총서기께서도 그 대의에 동참하시게 될 거요.”

그제야 백승철은 이들이 이렇게 자신에게 자국의 안보 상황을 줄줄이 설명하는 것이 단지 합동 훈련 중에 심심해서가 아니고, 공동 이익을 강조해서 자신과 조선인민군을 중국의 군사 활동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당장은 호기심이 더 앞섰다.

“……그 이유라는 게 뭐요? 경청하겠소.”

“이거요.”

이미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준비를 해온 듯 마닐라 봉투에서 꺼내진 몇 장의 서류를 본 백승철의 눈이 커졌다.

서류에는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황무지 위에 붉은 꽃으로 만개해 끝도 안 보일 만큼 거대한 규모의 경작지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컴퓨터 바탕화면으로 고려해 볼만큼 상쾌한 풍경이었지만 백승철은 그 붉은 꽃봉오리의 정체가 뭔지 쉽게 알아봤다.

“양귀비로군!”

“그렇소. 요즘 우리 당 지도부와 무경, 공안의 최대 고민거리지. 이 탈레반 쓰레기들의 최대 자금줄이기도 하고! 공안에서 미친 듯이 잡아들이고는 있지만, 원산지를 초토화시키지 못하는 이상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기 아니겠소?”

“허어…….”

그제야 백승철은 오늘 처음으로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의 탈레반에 대한 증오와 분노, 적의를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되었다.

탈레반의 본거지인 아프가니스탄은 예전부터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의 세계 최대 산지였다.

아프간의 기후가 건조해서 다른 작물들이 거의 못 자라는 것도 있고, 다른 산업들이 너무나 낙후해서 돈 벌어 먹고 살 길은 없는데 양귀비는 재배도 쉽고 건조기후에서 잘 자라니 무려 17세기부터 아프간 농민들은 양귀비꽃을 재배해 먹고 살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양귀비의 최대 (밀)수입국이 아편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바로 옆 나라, 중국이었던 것이다.

이제까지는 원료만 공급하는 것에 만족하던 탈레반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그러니까 대략 10여 년 전부터 어디선가 정제 노하우와 장비를 얻었는지 자기들이 직접 아편을 추출하고 헤로인으로 정제해서 중국 전역에 뿌려대자 중국 공산당에는 비상경보가 떨어졌다.

(사실 백승철은 그 정제 노하우와 장비가 어디서 나왔는지 대강 들어 짐작 가는 곳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군을 끌고 가 국경선을 넘어 이놈들 양귀비밭에 모조리 불을 싸질러 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꼴에 주권국가라고 그것도 안 되고……! 이놈들 엉덩이라도 때릴라치면 서방의 위선자들과 훼방꾼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중국은 학살자라니 인권탄압국이라느니 기가 차는 헛소리를 해대니 원!”

“미국 양키들은 마약 카르텔 잡겠다고 멕시코와 남미를 제 집 드나들 듯 하면서 우리 중국이 하면 주권침해에 내정간섭이라니, 백 상장 동무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자기들 나라에도 아편이 쏟아져 들어오면 어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지 않겠소! 이런 빌어먹을!”

“참으로 안타깝구려. 대국에게 그런 고민이 있는 줄은 몰랐소.”

다시금 냉정을 잃고 얼굴이 시뻘게져 씨근덕거리는 인민해방군 장령들을 달래면서도 백승철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단 그 양귀비 소탕 작전 자체도 정말 자기들 말 마냥 ‘엉덩이만 때리는’ 수준은 분명히 아니었을 테고, 탈레반과 마약 소탕만이 중국군 장령들이 이런 합동 훈련에서 우방국 장성인 자신에게까지 하소연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프간은 타지키스탄을 사이에 두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지척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백승철의 머리에 떠올랐다.

‘혹시 이걸 빌미로 위구르 이슬람 반동들을 더욱 강하게 색출 진압하거나…… 중동에 진출해서 석유를 가져올 명분을 만들려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구색을 맞추기 위해 우리 조선과 이 합동 훈련이니 뭐니를 기획해서 자리를 마련한 것이고.’

충분히 말이 되는 생각이었고 이제까지 중국이 보여온 행보를 보면 그게 아닌 쪽이 더 이상했다.

석유가 30년 후면 고갈된다는 것은 이미 정설이었고 어마어마하게 자원을 소비하는, (그리고 앞으로 더욱 소비할 예정인) 13억 인구의 중국으로서는 오래전부터 자국 외에도 석유 산지를 확보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껴왔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들 혼자 중동에 들어가면 아직 국제사회에서 많이 달리는 중국의 국제적 입지상 누가 봐도 납득 할 만한 확고한 명분이 있지 않고서야 욕을 엄청나게 들어먹을 게 분명하니, 우방국 몇을 설득해 끼워 넣으려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백승철의 그러한 의심이 옳았다는 것은 바로 증명되었다.

“하여간…… 이러한 사정이니 백 상장께서는 조선인민군의 차기를 책임질 분으로서 김 총서기께 이러한 당중앙의 우려를 잘 전달해 주기를 바라오. 장 주석께서도 이러한 일은 조선과 중국이 공동대응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소.”

“대국의 우려는 잘 알았으니 평양에 돌아가는 즉시 총서기께 사실 그대로 말씀드리겠소. 그분도 언제나 대국의 이러한 염려에 함께 고민하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하오.”

두루뭉술하면서도 ‘사실 그대로’를 강조하는 백승철의 말에 인민해방군 장령들은 서로 눈짓을 하더니 이내 조금 전보다 한층 친근한 태도로 백승철에게 다가갔다.

뭔가 공기가 바뀐듯한 분위기에 백승철이 고개를 갸우뚱할 순간, 장령들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다시 뭔가를 꺼냈다.

“사실 그대로라…… 험험, 우리가 듣기를 바라는 대답하고는 좀 거리가 있구려. 하지만 뭐 그런 거야 언제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아니겠소?”

“……이게 뭐요?”

“아, 굳이 이 자리에서 열어볼 필요가 있겠소? 그냥 백 상장 동지…… 아니, 백 동무 개인에게 드리는 ‘우호 증진금’ 정도로 알아주시오. 원래 우리 인민해방군에서는 다들 받는 거요.”

“…….”

“원래 국가 간의 친교도 다 개인 간의 친교에서 먼저 시작하는 법 아니겠소? 백 동무와 우리가 ㅤㄲㅘㄴ시를 맺으면 조중 간의 ㅤㄲㅘㄴ시…… 그러니까 우호도 더욱 깊어지는 것이고…… 하여튼 섭섭지 않게 넣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물론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방법으로 챙겨드리지. 그쪽 총서기가 이런 걸 싫어하는 줄은 알지만, 원래 누구나 다 면전에서는 그러는 법 아니겠소?”

“…….”

“백 동무가 이 돈을 받고 할 일은 그저 그쪽 총서기께 우리 입장을 ‘사실 그대로’ 설명 해주시면 되는 거요.”

‘지금 이놈들이 나를 포섭하는 건가?’

백승철은 속으로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 돈이 그냥 개인적으로 주는 돈이 아니라, 이 뒤에 국가안전부와 인민해방군 정보국이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한 번 받으면, 그 후로는 이미 받은 것을 빌미로 계속해서 돈을 줘가며 끌어들일 것이다.

당장 자신이 프룬제 시절 KGB한테 당했던 일이 바로 이런 포섭 공작 아니었나.

하지만 이런 이성적인 계산 이전에 백승철은 그냥 더럭 화가 났다.

안 그래도 중동 이야기를 듣자 거기서 마주쳤던 미군들, 그리고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을 포함한 미군 장성들이 떠오르자, 그때 그들의 모습과 지금 인민해방군 장령들의 못난 모습이 너무나 극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때 자신이 느꼈던 질투심과 열등감도.

그래서 백승철은 결연한 각오와 분노를 담아 단호하게 한 마디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아셨소? 고맙게 받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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