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85화
66장. 전주곡
‘명백한 독립적 주권국가인 우리 조선이 어디에서 무슨 무기를 사든 당신들이 관여할 바가 어디에 있소?’
……라고 쏘아 붙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백승철이었지만, 이제는 그도 많이 발전했다.
옛날처럼 무식하게 혈기에 몸을 내맡기던 애송이 군관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이제는 고위 장령인 상장으로서 군사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목소리가 약간 가라앉는 것은 역시 피할 수 없어서 아직 원어민 수준은 아닌 중국어 보통화 억양을 핑계 삼을 수 있던 게 다행이었다.
“그 점에 관해서라면 우리 총서기 동지도 대국 측에 넓은 이해를 구했소. OECD 가입 당시 여러 모로 미국의 도움을 받아 무기 구매로 호의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양해해 주길 바라오.”
“하지만 아파치라면 미군 내에서도 상당히 최첨단 병기로 알고 있는데, 이걸 미국 의회에서 판매 허가를 내주었다는 것은 미국이 외교적으로 북한을 우방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뜻 아니오?”
“미국과 우방이면서도 대국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은 많소.”
“하지만 무기를 판매해줄 만큼 우방은 많지 않지. 백 상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중국 공산당 일각에서는 조선이 50년 조중관계를 등한시하고 사회주의의 깃발을 저버리는 오판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렵다는 말이 나오고 있소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일각이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갔소?”
이제는 속내를 감출 생각도 안 하고 아예 대놓고 물어보는 인민해방군 측 지휘관들에게 백승철이 기분이 상한 듯 살짝 얼굴을 찌푸리자 그들도 자신들이 너무 노골적이었나 싶었던 듯 잠깐 입을 다물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내 백승철은 진심을 몰라주어 답답하다는 듯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을 설득했다.
“후우…… 동무들, 생각해 보시오. 사우디아라비아도 미국 무기를 사지. 이스라엘도 미국 무기로 무장했지만 요즘은 중국과 아주 가까이 지내지 않소? 내가 알기로는 심지어 얼마 전 우리 조선보다도 먼저 합동 군사훈련을 치른 걸로 아는데, 그럼 우리 조선도 이를 대국 측에서 조중 우의를 등한시한다고 봐도 되는 거요?”
“……이스라엘은 작지만 강한 군사강국으로서 그들이 작전술 방면에서 이룩한 성취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 인민해방군에게 아주 중요한…….”
“내 말이 그 말이오, 동무들. 국제관계란 다각적이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무, 오늘의 동무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는 거인데 관계가 오래될수록 서로에게 이해심을 보여야 하지 않겠소? 물은 깊을수록 소리 없이 흐른다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조중 간의 의를 상하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
언뜻 매끄럽지만 여러 가지 미묘한 의미를 담고 있는 백승철의 말에 인민해방군 지휘관들은 입을 다물었지만, 여전히 어딘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이윽고 합동 훈련이 시작되었다.
대테러훈련이라는 훈련목표에 걸맞게 훈련은 시가지에서의 테러 상황을 포함해 여러 상황을 가정하여 진행되었다.
인민해방군 헬기에 탑승한 조선인민군 항공육전대 타격대와 중국 인민무장경찰부대(人民武裝警察部隊), 무경의 병력들이 일제히 강하하여 목표지점까지 공수를 개시했다.
자국의 위신이 걸린 합동 훈련이고 14억 인민 중에서 골라 뽑은 인민해방군의 질적 우수성을 증명하듯 사격부터 공수, 도하, 실내 교전에 이르기까지 무경 측 병력들은 우수한 작전 수행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조선인민군 측 병력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합동 훈련 내용이 합의되고 나서부터 이날을 위해 죽어라 훈련해온(굴려진) 데다가 그동안 최고지도자의 관심 아래 지속적으로 증강되어온 군 예산은 그 열의를 실제 성과로 연결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래봐야 소국의 군대라고 조선인민군을 내심 무시하던 중국 인민해방군 사령원(사령관)들은 조선인민군 특수전 부대들이 무경 병력들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추월하는 성과를 내자 깜짝 놀란 듯했다.
마침내 2㎞ 밖 목표물을 저격하는 저격 훈련에 이르러서는 조선인민군 해상저격여단에서 차출해온 병력들이 무경 소속 저격수들을 웃도는 실력을 보이자 얼굴이 굳어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정작 이 광경을 지켜보는 백승철은 자랑스럽다기보다는 어딘지 심드렁해 보였다.
예전 같으면 이런 조용한 자존심 싸움에서 이긴 것에 아닌 척하면서도 뛸 듯이 기뻐했겠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백승철의 심경은 상당히 복잡했다.
‘어차피 중국이나 우리나 군대라는 건 돈을 들인 만큼 강해지는 법이다. 미국처럼 진정한 군사 대국은 특수작전군도 군이지만 추격기와 직승기 같은 분야에서 우리보다 한참 앞서있는데, 기술력에서 별 차이도 안 나는 우리 조선과 중국이 이런 전술 단위 합동 훈련을 해봐야 서로에게 배울 게 얼마나 있갔어?’
물론 중국 인민해방군이 언제까지나 현재 상태에 머물러 있으리라고는 백승철도 생각하지 않았다.
점차 발전해나가는 중국의 경제력에 힘입어 중국의 국방예산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는 게 현재니까.
원 역사에서 중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도약하는 2008년도부터의 중국 국방예산 증가 추이를 보았더라면 백승철도 이 합동 훈련이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았겠지만, 현재인 2001년 중국 인민해방군 무경 특수작전군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2류 특수부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 자신이 페르샤 만 전쟁(걸프전)에서 뼈저리게 느꼈듯이, 아무리 소수의 특수작전군이 날고 기어도 전략 단위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4세대 전투기 한 대의 존재만 못 한다는 것을 백승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양국 해공군의 전략자산이 총출동하는 대규모 훈련을 했더라면 그도 좀 열의를 가지고 훈련에 참관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니 아무리 훈련 성적이 충실해 봐야 별 흥이 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게다가, 저 인민해방군 특수작전군과 무경들이 무슨 목적으로 창설되고 동원되고 있으며 또 유사시 어떤 계획을 상정하고 있는지까지 훤히 알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다.
“대국 특수작전군은 과연 거침이 없구려.”
“하하하! 평소에 실전 같은 훈련을 많이 하니 당연하지 않겠소? 조선 측도 훈련에는 꽤 열의가 있다고 들었지만, 아무래도 실전에는 못 미치니 어쩔 수 없지요.”
“……그 ‘실전’ 이야기는 나도 들어서 잘 알고 있소. 아무래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 진짜 군대를 상대하는 것보다야 실전이라고 부르기는 힘들갔지만…… 뭐 당과 인민의 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소?”
백승철의 정곡을 찌른 말에 인민해방군 사령원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가 티베트와 위구르 등지의 현지 주민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중국 공산당의 영향력 아래에 넣는 데 무경들이 주로 동원되고 있음을 지적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궁을 봉쇄하고, 위구르 인들을 수용소에 처넣어 중국 공산당 강령을 외우지 못하면 음식과 물도 주지 않는 등 소수민족 학살과 가혹행위의 직접적인 실행자가 지금 조선인민군과 함께 훈련하는 무경과 특수작전군들 아닌가.
“……백 상장 동지의 그 말은 무슨 뜻이오?”
“아, 나도 충분히 이해하니 오해하지 말기를 바라오. 상명하복을 통한 사회질서 유지의 최후 보루 역할이야말로 군대의 가장 큰 의무 아니갔소. 대국의 행사를 서방이나 미국처럼 자신들의 잣대로 재단하려는 것이 아니니 마음 쓰지 마시오.”
예민하게 반응하는 인민해방군 사령원들을 백승철은 그렇게 달랬지만, 인질이 바로 옆에 잡혀있는 상황임에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실탄을 사용하는 무경의 가상훈련을 보며 심란한 것은 여전했다.
이런 백승철의 심란함은 피해망상이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남조선과의 휴전선을 지키는(아니, 지켰던) 병력이 조선인민군, 즉 군대인 것과는 달리, 우방국인 조중 국경은 양국 모두가 군대가 아닌 국경 경비대를 동원했다.
북조선은 조선인민경비대를, 중국의 경우 바로 저 무경 소속 병력을 동원해서 경계하는데 혹시라도 유사시가 생길 경우, 즉 북조선이 중국에 돌아설 경우 그 무경 소속 병력들이 가장 먼저 1차 대응으로 투입된다는 것쯤 백승철도 잘 알고 있었다.
즉 따지고 보면 가상적인데, 그 가상적의 훈련 광경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는가.
저 범 같고 승냥이 같은 무경들은 그 총구의 대상을 티베트나 자국 소수민족이 아니라 조선으로 정했을 때도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 없이 사나울 텐데.
‘총서기 동지의 경계심이 과연 옳다. 앞으로 우리 공화국의 진정한 가상적은 미국이나 서방, 남조선이 아니라 바로 이들, 중국이 될 확률이 높다.’
“신청사 개축 이야기는 들었소. 축하드리오. 우리 당에서는 앞으로 조선도 장쩌민 동지께서 이끄는 중국처럼 개혁개방과 부국강병의 길을 걷게 된다는 선포로 받아들이고 있소.”
“고맙소. 다 총서기 동지의 혜안 덕분이오. 역시 조선이나 중국이나 지도자를 잘 만나야 되는 거 같소.”
“……이전 청사의 바로 강 건너편이라지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랬다고. 당뿐만 아니라 조선의 군대인 조선인민군에서도 늘 뵙던 홍계성 차수 동지가 아니라 백 상장 동지와 면을 트게 되니 신선한 맛이 있구려.”
“……홍 차수 동지는 지금 몸이 많이 편찮으시오. 고령이시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
“그러니 앞으로 조선의 군대는 백 상장 동지께서 이끄시는 것 아니겠소? 그런 백 상장 동지와 여기 우리 인민해방군 사령원들은 앞으로 양국의 당군에서 손을 잡고 큰일을 해나갈 사이니, 우리가 믿고 털어놓을 일이 있소이다.”
“……?”
백승철은 갑자기 그의 눈치를 보듯 신청사 이야기를 꺼내다가 무게를 잡는 인민해방군 사령원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실 그들의 말대로 조선인민군의 1인자라고 해야 할 홍계성은 몇 년 전부터 병으로 골골거리고 있는 상황이라 실무에서 반쯤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 서열인 장령, 백승철 상장 자신이 총서기의 재가를 받아 인민군의 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 인민해방군들 사령원의 닭살 돋는 태도는 마치 ‘너 믿고 중요한 일을 알려주려 하니까 앞으로 잘 부탁해’하는 투였다.
대체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 하길래 이렇게 뜸을 들인다는 말인가?
“……꽤나 중요한 일인 모양인데 이 백승철이는 입이 무거우니 한 번 털어놔 보시오. 우방국 군관들끼리 안보에 관한 우려는 공유하는 게 맞지 않갔소?”
“그럼 우리들은 백 상장과…… 백 상장 동지가 대리하시는 분을 믿고 털어놓으리다. 사실 오늘 이 조중 합동훈련을 처음에 고집했던 상륙 훈련이 아니라 대테러 훈련으로 변경하자는 백 상장의 요구를 받아들인 데에는 우리 인민해방군도 나름의 필유곡절이 있소.”
“……?”
백승철은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털어놓는다는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듣기 시작했다.
오늘 합동 훈련 내용을 (대만 수복을 상정한) 상륙 훈련으로 하자는데 목을 매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놓느라 죽을 고생을 했는데, 그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말인가?
“사실…… 최근 국가안전부를 비롯한 우리 정보 당국에서는 중국 내 대도시에 대한 테러 위협이 점점 더 격상되고 있다는 경고를 끊임없이 제기해 왔소. 오늘 훈련도 그에 대한 대비의 일환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