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82화 (18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82화

막간. 공화국의 첫 크리스마스(2)

악에 받친 류해일이 대들자 염소수염도 가만히 있지 않고 얼굴을 붉히며 삿대질을 해댔다.

다른 혐의라면, 혹은 다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하늘 같은 중앙위 간부이자 직속 상관 중 상관인 현영숙 검열위원회장이 바로 옆에서 자리하고 있는 상황.

방금 공개적으로 제기된 부패혐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반부패 수사국의 칼날이 자기 목 위에 떨어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순식간에 조용하면서도 긴장으로 팽팽했던 검열위 회의실은 다 큰 어른들끼리의 나잇값 못하는 대거리 장으로 변했다.

“뒤…… 뒤를 봐준다니? 지금 무슨 기런 어처구니없는 망발을 지껄이는 게요? 난 분명히 하늘을 우러러 당의 지침과 지도를 따라 단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오로지 성실히 검열 사업에 임했음을 인민이 알고 당이 알고 여기 계신 현 부장 동지도…….”

“……그리고 평성 백화점 스위스 손시계(손목시계) 로렉스 매장 일꾼도 잘 알갔지! 평양 시내에 외화 하나가 극장에 걸릴 때마다 심의위 박 동무 살림집 벽장 속 스위스 손시계가 하나씩 늘어난다는 거이 공화국에서 배급 사업하는 기업인들 중 모르는 사람이 있소? 얼마 전에는 로렉스가 물려서 까르티에로 로선을 바꾸셨다고? 그 수완이 참으로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소!”

“이……!! 어디서 기런 썩어질 유언비어 유포를 하는 기야! 당장 그 주둥아리를 닫지 않으면 호된 대가를 맛볼 줄…….”

“그만들 해요. 동무들. 김영일 국장이 뇌물을 주는 쪽이든 받는 쪽이든 가려서 처벌하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저도 그렇고.”

“……!”

금방이라도 멱살을 잡을 듯한 두 사람에게 이 자리의 절대자, 현영숙의 싸늘하게 한 마디 끼어들자 류해일과 염소수염, 그리고 다른 위원들까지 모두 얼어붙어서 입을 다물었다.

서로 흥분해서 이 자리에 누가 와 있는지도 모르고 자기 범죄를 자백해 버렸다.

류해일은 조금 전 가만히 있었으면 자기가 죽을 판이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염소수염을 한 심의위원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입술까지 떨고 있었다.

고위층에서의 부패야 총서기가 하도 엄정하게 단속해서 거의 사라졌지만.

당 세포조직에서 벌어지는 부패까지 전부 단속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민간에서든 당에서든 상당한 뇌물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게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북조선의 현실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고위당직자 면전에 명백하게 고발된 부패를 대충 넘어간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생각지도 않게 당을 좀먹는 독소를 발견하게 된 건 의외의 성과군요. 위원들 재량에 맡기는 심사를 끝내기 위해 명확하고 세부적인 검열심의 지침을 속히 마련해야 하겠어요. 하지만 두 동무, 오늘 운수가 좋았어요.”

“……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직접 나온 이유는 류해일 동무가 배급하고자 하는 영화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예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설명을 잘한다면, 검열을 통과시켜 줄 뿐만 아니라 반부패수사국까지 가지 않고 당 기율위 정도 선에서 처벌을 좀 경감시켜 달라고 탄원해줄 의향이 있어요.”

“차, 참말이십네까?”

“물론이죠. 제 관할 위원회인 중앙검열위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저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고, 총서기께서도 공범이 있다고 해도 당직자를 그중 더 엄히 처벌하라 교시하시는 만큼 그 정도는 내게 재량이 있어요.”

순식간에 염소수염과 류해일의 표정이 천양지차로 바뀌었다.

당군정 민간 가리지 않고 모든 기관에 거의 초법적인 처벌 권한이 있는 수사국과는 다르게 당 기율위원회는 당직자 내에 한정해서, 그것도 최대 당적 박탈 정도만 권한이 있다.

물론 당 위원회에 적을 두고 있는 염소수염이야 당적 박탈은 거의 천벌에 수준이지만, 류해일의 경우 벌을 안 받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사국에서 직접 조사받는 것보다야 훨씬 순한 맛인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본인의 과거, 그리고 현재 배급 사업에 사상적 불온함이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소명한다는 전제 하에.”

“아! 네! 물론 설명해드릴 수 있습네다! 지금 제가 배급하려는 영화는 미제 영화지만…… 그 모든 면에서 당의 사상과 총서기의 지도 이념 3대 노선에 충실하게 부합하는 영화가 아닐 수 없습네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든 류해일은 자기 인생에서 드물 정도로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현영숙을 납득시킬 말을 짜내기 시작했다.

생각해라! 생각해! 제발 나 좀 도와다오! 골통아!

“그거이…… 작중 열세에 처한 주인공이 침략자에 맞서 짜내는 꾀와 지략은 열세에 처한 우리 공화국이 제놈들의 수적 우세를 믿는 외세에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줍네다!”

“……그거야 모든 미제 헐리우드 영화가 그렇지 않나요?”

“그, 그뿐 만이 아니라…… 여타 미제 영화들이 성인 장정을 주인공으로 삼는 데 비하여 이 영화는 갓난쟁이를 갓 벗어난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설령 어린아이라도 지략과 용기를 갖추면 외적에 맞서서 총서기의 영도를 실천하고 집과 공화국 수호의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줄 수 있습네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동무도 알다시피 총서기께서 취임 직후 17살 미만의 아이들은 군사 훈련이 아니라 학업에 열중해야 한다고 교시하신 지 10년이 다 되어가요. 아이들에게 사탕 과자가 아니라 총폭탄을 쥐여주어야 한다는 게 당의 방침이던 시절은 이미 옛적에 지나갔어요.”

“기, 기럼……! 아! 그렇디! 작중에서 주인공 꼬마는 이웃집 할머니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라나는 공화국의 아이들에게 조선민족 전통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좋은 표본을 보여줄 수…….”

“…….”

거의 아무 말이나 마구 주워섬기는 류해일을 보면서 현영숙은 내심 한숨을 쉬며 시선을 서류로 떨어트렸다.

류해일이 들여오려는 영화의 플롯 등이 적힌 그 서류의 ‘제목’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 홀로 집에(Home Alone) 3

“……경찰 아니, 보안원 부분만 좀 빼죠.”

“네?”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던 류해일은 현영숙의 나직한 지적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다시 물었다.

“보안원 부분만 검열하면 통과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중간에 미국 보안원(경찰)이 주인공 꼬마의 발고를 받고도 별일 아니라고 무시하는 장면이 나오죠?”

“……기, 기렇습니다만…….”

“그 부분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공권력과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수 있으니 검열하도록 하지요. 과거 같으면 미제 경찰은 저렇게 무능하고 자국 인민에게 무관심하다는 선전이 될 테니 넣었겠지만, 지금은 외교 상황이 다르니까요.”

“그, 그 말씀은…….”

류해일은 긴장한 표정 속에서도 일말의 기대감을 품으며 다시 물었다.

현영숙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며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통과시키는 걸로 하죠. 다른 절차도 내 직권으로 간소화해 줄 테니, 말한 부분만 검열하면 연말이 오기 전 공화국 극장가에 걸릴 수 있을 거예요.”

“가, 감사합네다! 감사합네다! 현영숙 동지!”

“감사하기는요. 조만간 기율위의 감찰과 신문, 참고 조사가 있을 테니 마음 단단히 먹어두세요. 안 그래도 검열위의 활동에 대해서 불만이 크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잘됐네요. 그럼 본인은 이만.”

마지막 한 마디에 우거지상이 된 다른 검열위원들과 반대로 벌써부터 아들에게 에어조던을 사 들고 돌아갈 기쁨에 찬 류해일을 내버려 두고 현영숙은 회의실을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관용차를 타고 당사로 돌아가면서, 중심가 백화점 거리를 지나게 되자 현영숙은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상당히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져 있었다.

‘참 많이 바뀌었어.’

다른 곳도 아니고 평양에서 꼬마전구가 화려하게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라니, 과연 누가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마이클 잭슨의 방북 이후, 그동안 감춰왔던 (그렇지만 몰래몰래 즐겨오던) 미국 문화에 대한 인민들의 소비는 마치 암묵적인 해금령이라도 떨어진 양 크게 늘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비지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문화의 ‘히트 상품’ 중 하나인 크리스마스를 대담하게 전면에 내놓은 것은, 당연히 소비자들이 들뜬 마음에 지갑을 열게 해야 하는 평양 시내 고급 백화점 들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들뜬 분위가,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과 대비를 이룬 알록달록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소비와 충동 구매를 촉진하는 건 미국이나 북조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나저나 그 녀자(여자)는 대체 누굴까?”

사람 키의 세배쯤 되는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현영숙은 오늘 자신이 직접 하급 부서인 심의 회의까지 행차해서 검열을 맡은 연유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사실 류해일은 몰랐지만, 오늘 그가 뭐라고 하건 ‘나홀로 집에3’의 평양 개봉은 거의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얼마 전 현영숙은이 당사에서 총서기가 미국 뉴스 꼭지에서 나오는 나홀로 집에 예고편을 뭐라 형용할 길이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총서기 동지? 혹시 저 영화는……?”

“……배우가 바뀌었더군.”

“네?”

“저 영화 말이야. 1편, 2편하고 배우가 교체됐어. 불쌍한 케빈. 어렸을 때 항상 크리스마스의 친구였는데 말이야.”

‘……?’

총서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현영숙은 잠시 이해가 안 갔지만, 총서기가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나 보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평양 고위층 자제들이, 특히 그중에서도 백두혈통 아이들이 몰래몰래(하지만 공공연히) 외제 물산과 미국 영화들을 열심히 즐기는 건 자신도 잘 알고 있었으니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오늘 당사를 떠나 여기까지 행차한 건 좀 다른 이유였다.

“혹시 총서기께서 관심이 있으시면 제가 필름을 구해 올리겠습니다. 아마 처소 전용 극장에서 관람하시면…….”

“아니, 아니야. 어차피 곧 공화국에도 누군가 들여올 테니 그때 보도록 하지. 인민들에게 금지시킨 외제들을 나 혼자 즐기는 건 과거 김정일이나 하는 짓이야. 나는 인민들과 똑같은 시기에 보겠네. 하지만 나는 그렇다 쳐도 그 아가씨가 이 시리즈를 참 좋아하는데 기다리기 힘들어하겠군.”

“…….”

그게 바로 오늘 현영숙이 잡일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심의 회의에 직접 행차해서 절차를 앞당긴 이유였다.

타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총서기의 진의는 존경스럽지만, 그 심중을 미리 파악하고 심기를 맞추는 게 오래 살아남는 충신이 되는 길이니까.

마침 총서기의 말대로 개봉을 기다리는 해당 영화의 심의가 지연되고 있었고, 그녀의 지위라면 전화 한 통만 넣으면 될 일에 직접 다리를 움직인 건 어디까지나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그 ‘아가씨’라는 표현이 총서기 입에서 나왔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유혜림 소좌 동무인가?”

몇 번을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그것밖에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다니.

그 총서기도 알고 보면 평범한 보통의 남성 같은 면도 있다는 것에,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유혜림에게 현영숙은 내심 묘한 씁쓸함과 안도 그리고 시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렇게 뒤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심의에 힘입어, ‘나홀로 집에3’는 단 2주 만에 모든 절차를 끝내고 공화국 첫 크리스마스 시즌에 평양 극장가에 걸리게 되었다.

* * *

“……재미없군요. 역시 배우가 바뀌니 영…….”

“그런가? 하기야 모든 시리즈 물의 딜레마가 그거지. 용두사미로 끝난다는 거. 좋은 후속편은 항상 어려운 법이야.”

전용극장에서 영화 상영이 끝나고 캐스팅 롤이 올라가자 유혜림이 내린 혹평에 정환은 피식 웃었다.

자신의 아니, 모든 한국 아이들의 어린 시절 추억을 장식한 이 시리즈도 결국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들의 후속작 징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전 예전부터 이 시리즈가 싫었습니다. 남자애가 너무 되바라졌어요. 당하는 범죄자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나요?”

“우리가 어른이 되어서일지도 모르지. 원래 어린 시절에 본 것과 어른이 되어서 본 건 같은 영화라도 다르게 보이니까. 아마 아이들 눈에는 다르게 보일걸?”

정환은 그렇게 하하 웃으면서 지금쯤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남조선의, 그리고 공화국의 다른 모든 사람을 생각했다.

그들은 이런 날이 올 것을 알았을까?

평양에서, 크리스마스에 나홀로 집에가 상영되는 날을?

거기까지 생각하자 정환은 한마디 하고 싶어졌다.

옆자리에 있는 유혜림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유 소좌.”

“네, 동지?”

“메리 크리스마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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