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79화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 유민중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됐습니다. 오늘 이 취임식의 역사적인 의미는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 정부는 국민의 힘에 의해 이뤄진 참된 '국민의 정부'입니다. 또한, 이 정부는 민주주의와 경제를 동시에 발전시키면서 남과 북의 사이의 오랜 기간에 걸친 유무형의 대립과 경계를 끝내고 관계를 한층 더 진작하려는 정부이기도 합니다.
후룹.
아직 쌀쌀한 2월 아침 10시, 정환은 서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한국 15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유민중의 취임식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던 1997년 말도 어느새 2달여 전이었다.
대통령 아니, 이제 전(前) 대통령이 된 박이삼이 발표한 북한으로부터의 차관 수락, 고용 유지 전제로 부실기업 인수에 대한 한국 국민의 반발은 의외로 예상보다 덜했다.
안기부와 여당 일부, 구 신군부 세력 잔당이 공모한 쿠데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미 언론을 포함한 여러 경로로 말이 새어나가 충격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이유가 첫손가락에 꼽힌 건 맞았다.
하지만 몇 달은 신문지면을 통한 각계 전문가들의 격론이 이어졌다.
여러모로 IMF가 내건 조건보다 정환이 제시한 조건이 훨씬 더 관대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모아진 이유도 있었고.
물론 어디까지나 ‘예상보다’ 덜했다는 거지, 북으로부터 차관을 받아 기업들을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경악, 분노 반발이 없었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참으로 무거운 가슴을 안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오늘 이날로부터 약 몇 주 전, 북한 조선로동당 총서기 김정환으로부터 우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경제 위기에 대한 차관 제의를 검토한 끝에…….
‘박이삼! 이 찢어 죽여도 모자랄 역적놈의 새끼! 네놈의 이름은 자손만대에 북괴에 나라 팔아먹은 놈으로 길이길이 남을 거다!’
‘박 대통령님! 대학가 여론 조사에서 ‘헌정 사상 가장 지탄받아야 할 사람 1위’에 선출되셨는데, 심경이 어떠십니까?’
‘전 대통령님들을 당장 감옥에서 꺼내라! 네깟 게 무슨 대통령이냐! 유민중이하고 짜서 북한 개정환이한테 얼마 받아 처먹은 거냐!’
‘아 거 그러지들 좀 맙시다! 그럼 쿠데타 일으킨 놈들이 잘했다는 거요, 지금?’
그나마 박이삼에 대한 여론이 그렇게 험악하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보여준 박이삼의 강경한 태도와 결연함 덕분이었다.
수많은 사고와 실패, 오류, 패착으로 얼룩진 문민정부 마지막 순간에 보여준 그 모습이 유권자들로 하여금 이제는 한때의 기억이 되어버린, ‘정치인 박이삼’이 아닌 ‘민주투사 박이삼’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너무 지나친 해석일까?
“박세황 씨, 현재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하게 유민중 당선인만큼이나 주목받는 인물이 되셨는데요, 혹시 정치인의 삶을 염두에 두신 적이 있습니까?”
“전혀요,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박이삼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한풀 꺾인 데에는, 순식간에 세기의 인물이 되어버린 ‘흑금성’ 박세황의 적극적인 변호가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
남북을 넘나들며 첩보 임무를 수행하고, 베일에 싸인 북한 총서기의 특사로 활약하며 마지막에는 모국의 쿠데타까지 막아낸 박세황은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다.
유민중 정부에서 을지무공훈장이 아니라 태극무공훈장으로 높여서 다시 수훈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사설이 고려일보에 실릴 정도로 진보 보수 양측의 스타가 된 그에게 여의도의 러브콜이 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국가에 대한 제 의무를 다하고 나면 저는 한 명의 자연인이자 소시민, 정민이 아빠로 돌아갈 겁니다. 정치인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건지 옆에서 잠깐이나마 보여준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음지에 있던 사람은 끝까지 음지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 공화국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다는 게 마음에 켕겨서일까요? 그렇게 안 생겼던데 꽤 군관다운 의리와 정도를 아는 동무군요.”
“우리 입장에서는 잘된 일이지.”
유혜림의 지적처럼 박세황이 북측 대외정찰총국의 도움을 받아 안기부 안전가옥에서 탈출한 사실은 끝까지 비밀에 부쳐졌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안기부 안전가옥에 느닷없이 최루탄이 폭발한 건, 안기부의 강압적 행태에 불만을 품은 한국 좌익계 단체가 테러를 자행한 것으로 처리되어 어둠 속에 묻혔다.
한국 측이나 북조선 측이나 알려서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북조선 정찰총국 요원들의 존재가 감춰지는 바람에 박세황은 열댓 명이 넘는 안기부 요원들이 지키는 안전가옥을 혼자 힘으로 탈출한, 그야말로 인간 흉기로 알려지게 된 건 참 웃기면 웃긴 일이었다.
현재 박세황의 활약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가 한씨 성을 가진 유명 남자 배우를 주역으로 해서 내년을 개봉 예정으로 잡고 크랭크 인에 들어갔다고 한다.
무슨 물고기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라나?
-또한, 얼마 전 있었던 헌정 사상 11번째 쿠데타를 조사, 발본색원하는 데 앞장서 주셨던 이현창 총재께도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국회와 청와대가 서로 국민을 위해 협조할 때는 협조하고 감시할 때는 감시하는 그러한 생산적이면서도 균형적인 관계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래도 다음 남조선 대통령은 저 이현창이라는 의원이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설마 저렇게 신속하게 자기 당원을 숙청하는 데 앞장설 줄은 몰랐습니다. ”
“좋게 보면 원칙이 있는 거지만 나쁘게 보면…… 꼬리 자르기지. 어차피 여의도에서의 영향력은 건재하고 아직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으니 다음 기회를 노려도 충분하거든.”
박세황에 의해서 쿠데타 사실이 알려진 직후 당시 대선 후보들의 반응은 각자 엇갈렸다.
유민중이야 이미 몇 번이나 군사 독재의 마수를 겪어본 사람답게 즉시 청와대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언론 인터뷰와 대국민 발표를 통하여 쿠데타 위험을 사전에 막는 것에 주력했다.
그 신속함과 정확함은 거의 뭔가 ‘독재국가 민주주의 정착 전문가’스러운 프로페셔널리즘마저 느껴질 정도라서 정환도 내심 감탄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현창 역시도, 방금 유민중의 감사 연설과 정환의 평가처럼 쿠데타 가담자들을 전부 색출하고 청문회에 올리는 데 일조했다.
단지 정환이 평가한 것은, 그 초유의 사건이 바로 자당 의원들에 의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현창이 보여준 냉혹할 정도의 신속함과 완고함이었다.
“거기, 박세황이라고 했습니까? 저도 얼마 전 그런 불온한 일에 동참하라는 은근한 권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하마터면 쿠데타 기도에 동참할 뻔했군요. 저를 회유하려 했던 의원을 알고 있으니 지금 즉시 나와 함께 청와대로 갑시다.”
방송국 대기실에서 후보들에게 이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려준 박세황에게 가장 먼저 동조한 것은 의외로 유민중이 아니라 이현창이었다.
쿠데타 세력이 가장 먼저 ‘모시러’ 찾아갔던 사람이었으나 즉시 그 사실을 자진 신고하고 쿠데타에 가담한 자당 의원들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는 모습은 과연 보수의 히든카드라 불릴 만한 모습이었다.
덕분에 하마터면 쿠데타로 취임한 대통령이 될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유민중의 취임식 맨 앞줄에 앉아 ‘기무사를 혁신하고,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이라는 비정치적인 기구로 개혁할 것’이라는 유민중의 취임 연설을 남 이야기처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선거에서 졌어도 여전히 보수층 유권자들의 지지와 당내 기반이 굳건한 자신을 정치보복행위 중단을 선언한 유민중이 손 봐줄 수는 없을 거라는 계산이 섰기도 했겠지만…….
반면, 김준필의 경우는 정반대로 운이 아주 지독하게 나빴다.
“거기 PD, 이야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을지무공훈장 수훈자라지 않습니까?”
“하지만 김 총재님…….”
“아 괜찮습니다. 제가 국무총리이던 시절에는 이 나라가 애국심 있는 전직 군인들에게 이렇게 냉혹하지 않았느데 말입니다. 이게 다 나라 살림이 각박해져서인지 원, 쯧쯧…….”
이런 걸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는지 모르겠지만, 기가 막히게도 을지무공훈장을 들고 출연자 대기실 근처에서 PD와 옥신각신하던 박세황을 들여보내 주도록 허락한 건, 다름 아닌 쿠데타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던 김준필 민주자유연합 총재였다.
아마 박세황의 얼굴을 몰랐기에 이미지 관리 겸 별생각 없이 그런 말을 했을 테지만, 정작 김준필 본인이 쿠데타 세력과 손을 잡고 대통령으로 추대받으려 했다는 폭로가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본인이 극구 부인한 데다 대선 기간에 후보를 체포하는 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이 일어 당장 감옥에 가는 건 면했지만, 이미 수많은 청문회와 재판, 참고인 조사가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라 어찌 되던 간에 정치 생명은 완전히 끝나버렸다는 게 모든 사람의 중론이었다.
원 역사와는 참으로 다른 형태로 박이삼, 유민중, 김준필 세 거두의 시대가 막을 내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저의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미국 전 대통령, 폰 바이츠제커 독일 전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전 대통령,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 팝 가수 마이클 잭슨 씨, 세계적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 씨 그리고 무엇보다 박이삼 전임대통령 등 내외 귀빈을 비롯한 참석자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흐음, 취임 초 비공식적인 평화 제스처 메신저로 저 정도면 완벽한 진용이지. 어찌 됐든 이 판국에 우리가 직접 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야.”
“체제 경쟁에서 패배한 직후인 남조선 인민들이 정환 동지의 영도력에 속 좁은 질투와 분노를 발산할 테니까 말입니다. 그걸 막는 남조선 당국자들도 고역일 테니 동지께서 조선의 최고 영도인 다운 관용을 보여주신 거지요.”
유혜림의 사심 섞인 칭찬대로, 마거릿 대처와 마이클 잭슨 등에게 유민중의 취임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달라고 한 건 정환이었다.
지난해 말 평양을 방문해 차관 협약에 도장을 찍고 돌아가는 한국은행 총재가 포함된 특사단 편을 통해 양측에 합의한 것 중 하나였다.
그중에는 북남 수뇌부 간 핫라인 설치처럼 공식적인 것도 있었지만, 이렇게 비공식적인 합의도 있었는데, 이러한 세계적 친북(?) 유명인사들의 유민중 취임식 참석도 그런 합의 중 하나였다.
상례대로라면 북조선 측에서 무게감 있는 인사를 보내는 게 정상적이고, 정환도 취임식에 김영남을 대표로 보낼까 잠시 고민도 해봤지만, 한국 측에서 정중하게, 그리고 극구 반대를 해왔다.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당선자고, 극도로 격앙되어있는 한국의 국민감정을 조금만 고려해 주십사 해달라는 것이었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북조선 입장에서는 돈 빌려주고 뺨 맞은 격이라 정치국 위원 몇은 격노했고, 지금 그의 옆에 서 있는 유혜림이 묘하게 이 취임식에 냉담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여간에 정환의 주선으로 초청된 사람들 모두 흔쾌히 받아들였고, 유민중 측에서도 하나 같이 전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사들이 참석해준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 이 대한민국 15대 대통령 취임식에 선글라스를 끼고 중절모를 쓴 마이클 잭슨과 깔끔한 여성용 정장을 차려입은 마거릿 대처가 나란히 귀빈석에 앉아있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던 것이다.
정환도 이러한 조치의 실리적 필요성 자체는 이해했고, 간신히 색깔론 공세를 벗어난 유민중 취임식에 북조선 인사가 와서 떡하니 앉아있으면 북남 양쪽 모두 매우 불편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이해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사실이라 약간의 심술을 부렸다.
그 심술이 뭐냐 하면, 바로 오늘 있을 행사였다.
-우리가 이나마 파국을 면하고 있는 것은 애국심으로 뭉친 국민 여러분의 협력과 전통적인 우방 국가, 미국, 그리고 10여 년 동안 침묵을 깨고 같은 동포, 같은 민족의 위기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준 북의 도움 덕분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허, 그래도 취임식 연설에서 언급은 해 주는군. 그럼 이제 가자고. 유 소좌. 우리도 오늘 일정이 있으니까 말이…… 응?”
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기실 밖으로 향하려다가 느닷없이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촉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의 오른손에 유혜림의 손이 슬며시 다가와 꼭 붙잡았던 것이다.
“……유 소좌?”
“그러고 보니 동지하고도 올해가 10년 째로군요.”
“……무슨 10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동지께서 총서기 보위에 취임하신 지가 10년 전 88년 10월. 올해로 꼭 10년입니다.”
“아.”
그제야 정환은 유혜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 자신도 잊고 있었던 일이지만, 올해가 바로 류경 호텔을 무너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환이 북조선 1인자의 자리에 오른 88년 서울 올림픽으로부터 10년째 되는 해였다.
정환은 성격상 역대 지도자들처럼 거창한 10주기 기념식이니 뭐니 하는 행사를 예산 낭비라며 싫어해서 본인조차도 잊어먹고 있었는데, 그걸 유혜림 혼자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지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항상 이런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고맙다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