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72화
62장. 땀과 눈물과 고통의 시간
㈜한보 부도! 총 부채 무려 5조 원 대의 사상 최대규모 부도 선언…….
한보 회장 정태수, ‘돈 문제는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이 압니까’ 청문회 발언, 국민들 공분 자아내…….
정권 실세와 직결된 추악한 불법 대출 만천하에 드러나. ‘한보 리스트’ 일파만파…….
1997년 1월, 연초부터 한국은 역대 최대규모의 기업 부도와 그 과정에서 탄로 난 정경유착으로 시끄러웠다.
그동안 고성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고질적인 문제점들, 사과 상자로 대표되는 정경유착과 부채로 사업을 키우는 기업들의 습성 그리고 그 오너들의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백일 하에 드러났다.
몇 달 전 냉전을 종식시키고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공화당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8년의 임기를 끝내고 민주당 앨 고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지만, 한국인들의 관심사는 온통 한보에 가 있었다.
곧 한보그룹은 법정 관리에 들어갔고 한보 회장 정태수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국회 청문회 석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 ‘한보 사태’가 향후 이십 년 넘게 한국이라는 국가와 수많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할 거대한 위기, 외환위기의 시발점이었음을 직감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보에 이어 진로가, 삼미가, 한신공영그룹이 붕괴했을 때도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서민들과 개미들보다 정보에 빨랐던 여의도의 핵심, 기업인들과 정치권은 이미 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도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한국 경제 펀더멘탈은 튼튼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괜히 위기감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듣기 싫었고 기업이나 정치인이나 자신의 손익계산에만 분주했다.
특히 정치의 경우에는 상황이 기업보다도 더욱 복잡했는데, 바로 한국 15대 대통령 선거가 그해 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뒤숭숭한 시국에 뒤숭숭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국민회의 총재 유민중은 생각했다.
얼마 전, 그러니까 대략 1년여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던 정당이었으나,
요즘 들어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 이름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는지라 이제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자신도 어느 의원이 어디 소속해 있던 건지 아리송할 정도였다.
단지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아니, 가슴 아픈 점은 이렇게 청요릿집 간판 바꾸듯 정당 이름이 바뀌어서야 ‘정치판은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기회주의자들과 철새들의 소굴’이라고 하는 국민의 비난을 부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가장 창피스러운 것은, 그런 시궁창 같은 현실 정치에 민주화 운동의 거두라는 자신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유민중 스스로도 그걸 부인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당장 지금 자기 눈앞에 앉아있는 사람도 그 난장판에 만만치 않게 기여한 사람이기는 했다.
“흠흠, 유 총재님, 요즘 신문 보십니까? 요새 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러는지…….”
“올 초 한보그룹 사태부터 이어지는 기업들의 집단 부도 사태 말씀이라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말하기 쉽겠군요. 제가 오늘 여기 찾아온 것은 국민회의의 유민중 총재님과 이 대한민국이 나아갈 미래에 대해서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시작부터 거창하게 운을 떼는 눈앞의 손님을 보며 유민중은 입을 다물었다.
손님, 민주자유연합 총재이자 한 때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실세 총리로 불렸던 김준필 총재는 말을 돌려서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정치 성향도 많이 다른 자신에게 찾아와 대뜸 나라의 미래 운운하는 걸 보면 오늘 밥이나 같이 먹자고 찾아온 것은 아닐 터였다.
그리고 그동안 산전수전을 헤쳐온 경력으로 유민중은 김준필의 속내가 뭔지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시겠지만 지금 박이삼 대통령의 청와대와 여당은 벼랑 끝에 몰려있습니다. 당장 이 일련의 사태의 시발점인 한보 사태에서부터 기업들이 대통령 자제를 포함한 유력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여 불법 대출을 받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으니, 박 대통령도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려일보는 이미 완벽하게 등을 돌린 거 같더군요. 지난 팀 스피릿 훈련 취소 사태 때부터 박 대통령을 등지려고 했으니 별로 신기할 일은 아닙니다만은…….”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한보 사태가 단일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기업들의 연쇄적인 도산, 그러니까 이 대한민국 경제계의 총체적인 부실의 도화선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삼미에, 진로에, 얼마 전에는 기아그룹까지…… 한 마디로, 공기가 대단히 안 좋아요.”
김준필의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전 재계 순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던 기아 자동차의 기아 그룹의 부도 유예 협약이 체결돼 모든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이제까지 대농, 삼미 같은 상대적 중견 기업들이 도산했다면, 처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기업이 사실상 부도를 선언한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찬물을 머리끝부터 뒤집어쓴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니, 기아뿐만 아니라 재벌 기업들이 회계장부 속에 감춰놓은 폭탄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
유민중 본인도 재벌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한국의 경제 구조와 이들과 깊게 결탁한 정치권을 오래전부터 비판해왔기에 정계뿐 만이 아니라 재계로부터도 미운털이 많이 박히지 않았나.
결국, 올 게 온 것이다.
“법정 관리도 받고 청문회도 들어간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박이삼 정권은 이미 끝장입니다. 임기를 넘어서 정권에 대한 기본적인 국민의 신뢰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그러니 총재님. 총재님과 제가 구국(救國)의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구국의 결단,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그 말이 유민중을 불편하게 했기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언성을 높였다.
아니나 다를까 김준필의 입에서 나온 제안은 자신이 이미 예상하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저희와 함께 가시죠. 이번 15대 대선에서 유 총재님의 국민회의와 저희 민주자유연합이 단일화해서 호남과 충청 표가 힘을 합하면 그 이현창이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단일화를 거쳐 대통령이 되시면, 저희 지분을 인정해서 저를 국무총리로 삼으시고 개헌을 해서 내각제로 이행하시죠. 이미 저희 당내에서는 협의가 끝난 사안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생각 좀 하고 대답 드려도 되겠습니까?”
유민중은 갈등에 빠졌다.
확실히 지금은 여권에서조차 박이삼 현 대통령은 거의 버리는 패 취급이었고 야권은 정권교체를 위해 이미 유민중으로 거의 대동단결한 상황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14대 대선 낙선 후 이어진 정계 은퇴 선언과 번복으로 ‘대통령병 환자’라는 공세에 한풀 꺾였어야 했던 그의 지지율이 그대로 보존된 것이다.
거기다 팀 스피릿 훈련 무산 당시 유민중이 야당 총재로서 훈련 재개를 완강히 반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보수성향 중도 유권자까지도 그에게 표가 모이는 상황이었다.
금상첨화로 며칠 전 끝난 여당 경선에서 이현창에게 패배한 경쟁자, 이임제 의원이 신당을 창당해 단독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현재, 보수표가 더욱 갈리게 될 상황에서 김준필의 충청도 표까지 받으면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둘 게 뻔했다.
아마 김준필도 단독 출마로는 가능성이 없는 자신이 가장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유민중 측이라는 상황계산을 전부 마치고 찾아온 것이리라.
“유 총재님. 생각해보십시오. 물론 지금도 야권의 패자이시기는 하지만 이현창 그 친구 세가 무섭습니다. 거기에 언론의 지원까지…… 대통령이 누가 되건 이 위기를 해결하려면 여의도 눈치를 봐야 하는데 그러자면 우파든 좌파든 고루 지지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준필이 자신을 설득하려 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유민중은 현재 자신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인 이현창 여당 대표를 떠올렸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감사원장에 박이삼 정권에서는 국무총리까지 지내다 현재 여당 대표직을 맡고 있는 엘리트.
선민사상에 찌들어있는 엘리트주의자라는 비판도 일각에서 듣고 있지만, 감사원장 시절 부패한 기득권과는 선을 긋는 개혁파 보수 이미지를 개척해서 현재 진보-중도 진영에서도 일정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현 여당의 최고 히든카드가 바로 그였다.
확실히 그라면 현재 야권의 대표주자로 자리를 굳히고 ‘언젠가 한 번은 대통령 할 사람’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는 유민중에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김준필과 연합하는 게 답일까?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지였던 박이삼이 3당 합당을 통해 야합이라는 비판을 견디고 신군부 세력을 숙청했듯, 유민중 그 자신도 타협해야 할까?
그때, 유민중의 뇌리에 1년여 전 박이삼과의 팀 스피릿 재개를 놓고 자리했던 회동이 스쳐 지나갔다.
“유 총재, 이제는 더 이상 그 어느 정치인도 길바닥에서 머리띠 두르고 싸우는 것으로는 어떤 것도 쟁취할 수 없어요. 나는 선출직 정치인이고, 현실의 정치인은 자기 지지도와 지지기반 관리, 즉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부인하는 건 자기 몸에 진흙을 묻혀본 적도 없으면서 정치가 더럽다고 고고한 헛소리나 하는 상아탑의 공상가들뿐입니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겠습니다.”
“……진심이십니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고민 끝에 유민중이 내놓은 대답에 김준필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되물었다.
하지만 유민중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 여기까지 찾아와주셨는데 죄송하지만 김 총재님의 그 제의에는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 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유 총재님. 혹시 거절 이유가 한때 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 각하 밑에서 그, 소위 말하는 군부 쿠데타로 잡은 정권에서 부역했기 때문입니까?”
“…….”
“흐흐흐…… 그러니까, 유 총재님은 민주화를 위해 독재에 대항해 싸운 투사인데 저는 그 밑에서 국무총리 하면서 권력 잡은 군부의 개다, 이런 뜻인가요? 아직도 그때 개인적인 원한이 남아있으신 거 때문이라면 그때 일은 그런 시대였던 만큼 미안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박이삼 대통령님이 1년쯤 전에 해주신 말씀이 떠올라서 말입니다. 저도 그 말씀에 따라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인으로서의 손익계산을 한 것뿐입니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김준필 총재에게 유민중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연합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군요. 우리는 이상적인 상아탑의 존재가 아니라 현실 정치인이다. 현실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 지지기반을 신경 써야 하고 표 관리를 해야 하며,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손잡기 싫은 사람하고도 손잡아야 한다.”
“……?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제 과거의 구원(舊怨)을 잊어버리고 저희와 연합하시는 게 대선 가도에…….”
“아니요, 제가 분석하기에 현실 정치를 하는 저, 대통령 후보 유민중의 지지기반은 김준필 총재님과 손을 잡는 것을 극력 반대할 것입니다. 신념과 지지자들을 저버린 야합 행위라는 비판은 당연히 들을 것이고, 어쩌면 박이삼 대통령님의 3당 합당 때보다 더 욕을 얻어먹고 지지층 이탈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
유민중의 목소리는 침착했지만 김준필의 얼굴은 모욕을 당한 듯 시뻘겋게 붉어졌다.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누구라도 그가 이런 면전에서 당한 거절에 극히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지금 당장 제가 이현창 대표보다 지지율이 떨어져서 빠른 시일에 다른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모르지만, 지금 저는 야권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표 이탈 현상을 야기할 수 있는 김준필 총재와의 연합은 얻을 것 보다 잃을 것이 많을 확률이 높다. 이게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제 결론입니다. 죄송합니다.”
‘유 총재, 이제는 더이상 그 어느 정치인도 길바닥에서 머리띠 두르고 싸우는 것으로는 어떤 것도 쟁취할 수 없어요. 현실의 정치인은 자기 지지도와 지지기반 관리, 즉 표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부인하는 건 자기 몸에 진흙을 묻혀본 적도 없으면서 정치가 더럽다고 고고한 헛소리나 하는 상아탑의 공상가들뿐 입니다.’
자신에게 잊고 있던 이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그, 박이삼의 목소리가 다시 머리에서 생생하게 들리는 거 같다고 유민중은 생각했다.
지금 이 경제 위기상황에서 청와대에 있을 그는 밖에 있는 자기보다 더한 갈등과 고뇌에 직면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유민중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예상 밖의 거절을 당한 김준필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유 총재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보지요.”
“원하시는 답을 못 드려 죄송하게 됐습니다.”
유민중의 위로가 전혀 안 와닿은 표정으로, 김준필은 찬바람 나게 등을 돌려 문간으로 걸어가 모습을 감췄다.
그 뒷모습을 보며 유민중은 내심 작은 한숨을 쉬었다.
왠지 저 한때의 실세 총리가 이런 푸대접을 받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정치인들의 이러한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와중에도, 진정한 위기는 국내가 아니라 전혀 다른 곳, 국외의 동남아시아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 * *
1997년 5월, 늘어나는 외환 적자를 문제시한 태국이 발표한 자본통제는 국외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이내 ‘빌려준 돈을 못 돌려받을지도 모른다.’라는 심리가 전염병처럼 투자자들 사이에 번졌고, 이는 태국뿐만 아니라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에 투자된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바트화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동남아시아에 외국에서 빌려온 단기 자금을 저이율로 다시 빌려주던 한국 종합금융사들은 순식간에 달러 부족 현상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7월을 기점으로 원화 가치도 서서히, 하지만 전례가 없던 속도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거세고 모진 바람 아니, 외환위기라는 이름의 태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풍부한 오일머니와 달러 보유고에 힘입어 남에서 불어오는 그 거대한 태풍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해 10월, 서울에서는 외환시장이 미친듯한 원화 폭락으로 개장 40분 만에 거래가 중단된 지 몇 주 후, 남측 두 정치인의 만남에 이어 북에서 또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초면이지만 피곤하니까 서로 잡아떼는 건 그만두도록 합시다. 박세황 선생.”
“……네?”
정환은 방금 서기실에 소환을 받아 자신과 독대한 박세황이 첫 인사말을 주워섬기기도 전에 그렇게 쐐기를 박았다.
“박세황 아니, 흑금성이라 불러드릴까? 남측에 가서 박이삼 남조선 대통령에게 내 말을 하나 전해줬으면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