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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169화 (169/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69화

“…….”

한 목소리로 대답했던 두 장령은 이번에도 한 몸처럼 입을 다물었다.

예전, 그러니까 전대 두 수령 때 같으면 ‘2,400만 인민이 총폭탄 정신으로 저항하면 못 이길 적이 없습네다!’라고 했을 것이다.

백승철과 홍계성을 포함한 인민군 장령들이 전부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되어서가 아니라, (물론 진짜로 그런 놈도 많았지만) 그렇게 해야 목이 안 날아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도 새 수령에게 그런 답을 해봐야 ‘그럼 그 총폭탄의 최선두에 장령 동무들이 먼저 서게. 알겠나? 죽을 때는 후임자한테 인수인계 똑바로 하고 가고.’ 같은 심드렁한 답만 돌아올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먼저 솔직하게 대답한 것은 백승철 상장이었다.

“대단히 치욕스러운 대답입네다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네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게. 그러니까 동무들이 중국의 장령 입장이라면, 조중 40년 혈맹 관계를 파기하고 무력으로 공화국을 집어먹으려 책동하면 어떻게 침공 계획을 짜겠나?”

일단은 분명히 우방국인 나라에 대해서 국가 지도자가 군 최고위 사령관들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지나치게 상례를 벗어난 말이었지만, 정환은 전혀 뜬금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김정일 시절부터 조중 관계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소련 붕괴를 기점으로 서로 웃는 낯으로 대하며 뒤에서는 비방하는 사이로 악화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80년대에 들어서 북조선 경제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중국 측에서 식량과 원유 제공을 미끼로 북조선의 준 속국화를 꾀했다는 것은 이곳에 다시 태어난 후 여러 경로로 보고 들으며 새롭게 확인한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정환 본인이 김정일을 몰아냄으로써 원래 역사에서처럼 김정일이 중국 대사관에 쳐들어가 언성을 높이고 그 보복으로 정상회담에서 덕담을 가장한 훈계를 당하거나 하는 일은 안 벌어지겠지만, 그는 최소한 장령들 정도는 자기가 따로 언질하지 않아도 가상적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중국이 공화국과의 혈맹을 배신하고 무력으로 침공 내지는 병합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라는 가정을 머릿속으로나마 한 번도 안 해봤다면?

‘그럼 즉시 군복을 벗기고 연금이나 타 먹으라고 보내버려야겠지. 그런 월급 도둑을 더 인민무력부와 정치국에 남겨둘 이유가 없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홍계성과 백승철은 프룬제 출신 엘리트답게 그런 정환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일단 차후 어떤 식으로든 대국…… 아니, 뙤놈들과 공화국의 갈등이 전개될지는 모르갔지만, 저희 인민군이 당면할 가능성이 가장 큰 제일 적은 중국군의 선양군구(沈???), 2차적으로는 북경군구(北京??) 이 두 개의 군구 집단군 기갑부대일 것입네다. 과거 조국 해방전쟁 때는 급속행군에 능한 보병을 기동시켜 포위섬멸 하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그동안 상당한 시간이 지나 전력 강화가 행해졌을 테니 이제는 땅크와 짚차에 태운 기계화 군을 앞세우갔지요.”

“홍 차수 동지 말씀대로입니다. 대국끼리, 그러니까 중국놈들이 우리보다 훨씬 경계하는 로씨야와 전쟁을 한다 치면 제2포병(로켓군)부대의 로케트 공세로 공군 기지를 공습, 공중전에서 저거들 추격기로 로씨야와 겨루어 볼 만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피해를 강요한 후 지상전에 나서겠지만…… 상대가 공화국일 경우 공군과 기갑 집단만으로도 충분히 압도 가능하다고 판단할 테니 귀중한 초기대응시간과 아까운 로케트를 낭비하지는 않을 것입네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지.’

씁쓸한 현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두 장령의 지적이 맞았다.

물론 아직은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조선인민군이나 기술적 우위로 승패가 판가름 나는 선진국형 군대가 아니라 머릿수와 보급, 전술의 충실성으로 승부를 겨루는 개발도상국형 군대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북조선과는 달리 중국은 그 초월적 인구수로 적군을 ‘인민의 바다’에 빠트려 익사시키거나 수비 측 입장이라도 침공군이 지칠 때까지 대응 시간을 확보한 후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싸우게끔 해주는 국토면적이 있다는 것이다.

북조선으로서는 양쪽 다 해당 사항이 없었다.

“하지만 저희 공화국의 국경지대는 험준한 산악이 많아 기갑 집단 기동이 가능한 경로가 제한적인 점, 조국 해방전쟁 당시에 우방국인 공화국 영토 내에서 싸웠음에도 보급이 미진해 미군에 당한 사상자만큼이나 보급 부족으로 죽은 수가 많았던 점, 게다가 그 후 문화대혁명으로 고급군관들이 숙청되고 그 결과로 과거 웰남(베트남)과 떼놈들의 중월분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점 등을 볼 때 한계가 없지는 않습네다.”

“양쪽이 전력을 다한다는 전제하에 개전 열흘 이내로 안주?함흥 선까지 밀릴 가능성이 크지만, 로농적위군과 교도대를 포함한 예비병력을 다시 소집하고 총서기 동지께서 휴전선의 병력을 뺄 수 있게 허가를 해주신다면 순천 선에서 전선을 형성하고 화학전을 통해 교착 상태까지 밀고 간 후, 미제…… 흠흠,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여론전을 펼친다면 당과 인민의 생존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저를 대표로 한 총참모부의 의견입네다.”

“……생존을 도모한다라……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란 말이지.”

그 생존 도모라는 것조차도, 여파가 최소 수십 년은 갈 인명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난 후일 거라는 전제가 생략되었음을 정환도 모르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중국과 적대하게 될 경우, 최선의 전략이 외교적으로 많이 양보해서 정부와 인민을 존속, 즉 ‘그냥 처음부터 최대한 싸움을 피하는 게 최고의 전술’인 이유였다.

게다가 미래를 아는 정환 입장에서는 더욱 심각한 사실이 있었다.

아니,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최근 장쩌민 체제 아래의 중국 정책과 GDP 성장률을 보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 ‘사실’이 백승철의 입을 빌려 나왔다.

“……하지만 이것도 그나마 근래, 기러니까 몇 년 전까지의 이야기고, 이제는 사정이 달라질 겝니다.”

“어떻게 말인가? 백 상장 동무?”

“페르시아 만 전쟁(걸프전) 이후, 중국 놈들의 골이 크게 트였습네다. 더 이상 현대화를 머뭇거리다가는 언제고 미국이 저거들을 치리라 마음먹었을 때, 사담 후세인 꼴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저도 만만치 않게 골이 트였지만 말입네다.’

백승철은 속으로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침을 꿀꺽 삼키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열거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땅크 같은 재래식 전력부터 미싸일에 인공위성에 이은 전략 무기까지 군 현대화에 날이 갈수록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오고 있습네다. 즉 정말로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저와 홍 차수 동지가 말씀드린 떼놈들의 약점이 멀지 않은 시일 안에 보완되리라 보셔야 합네다.”

“그렇다면 그것까지 감안할 때 중국이 우리 공화국을 완전히 장악하기까지 며칠이 걸리리라 보는가?”

“짧으면 보름, 길어도 한 달이면 무산부터 개성까지 완전히 넘어갈 것이라 봅네다. 떼놈들 군대가 미군만큼 압도적이지는 않갔지만 우리 인민군 역시 후세인의 군대보다 그다지 나을 점이 없는 거이 현실이라…….”

“…….”

백승철이 뒷말을 흐리자 다시 서기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웬만해서는 쉽게 낙담하지 않는 정환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속으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도, 심지어 미래에서 돌아온 지도자가 있어도 근본적인 국가적 체급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손 놓고 ‘어차피 주변국 중 이길 수 있는 나라가 없으니 이참에 노선 정해서 영세중립국으로 가자고!’ 할 정도로 정환은 태평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중국과의 관계를 잘 관리하더라도 군사력이 있어야 어느 정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아무리 언더독 국가라더라도 ‘그래도 물리면 아픈 언더독’과 ‘물어봤자 이빨도 안 들어가는 언더독’은 대우에 있어서 차원이 다른 법이니까.

게다가, 그동안 무작정 손을 놓고만 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상황이 이러니만큼, 내가 오늘 두 동무를 서기실에 부른 건 올해 96년을 기점으로 우리 조선인민군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이네. 그동안 진행된 군 정비 작업은 어디까지 왔나?”

“넵, 지시하신 대로 군납미와 유류, 탄약 보급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고 신형 피복과 제화의 개발에 들어갔습네다. 지난 몇 년간 물갈이로 입대 부적격자는 교도대(예비군)로 방출시켰습니다. 또한, 로씨야 엔지니어들의 도움으로 천마호와 선군호의 개수작업 및 신형 전차 개발도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습네다.”

정환이 수령에 취임한 지 5년, 그동안은 백승철의 보고대로 인민군에게 있어서는 일단 비대하게 불어난 덩치를 줄이고 정예화를 위한 밑바탕을 다지는 시기였다.

타 국가 군대에서 국방력 증강이라고 한다면 신무기 개발이 대표적이지만, 어차피 당시 북조선의 기술개발과 유지보수 능력으로는 그건 언감생심이니 있는 거라도 잘 추스르자는 것이 지난 5년간 시행된 국방개혁 기초작업의 요지이자 핵심이었다.

그 결과 개혁 및 숙군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적어도 인민군 내에서는 피복과 탄약, 군량의 보급실패율이 3% 미만으로 줄었으며(오일 머니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당장 사격훈련에 쓰이는 탄약 소모량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 안토노프와 함께 러시아에서 망명해온 구 소련군 출신 엔지니어들은 가히 축복이었는데, 항공기뿐만 아니라 장갑차, 군용 차량, 직승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의 개발인력들이 이전과는 비하기 힘들 정도로 보강되자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충분히 미래를 도모할 여유가 생긴 예산과 인력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전체적인 국방력의 지향점을 정하는 일이었다.

“일단 중요한 건 저쪽, 그러니까 중국군에게 우리가 위협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한 타격 능력을 갖추는 것. 즉 이길 정도는 못 돼도 팔다리 하나를 불구로 만들어서 미국이든 러시아든 인도든 다른 패권 경쟁국들에게 뒤처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최소 2개의 기갑 군단은 언제나 유지하고 있어야 하겠지.”

문제는 북조선군의 주력 전차는 T62를 개조한 2세대급 전차 ‘천마’호였는데, 무려 반세기 전 1940년대에 개발된 놈이라 차후 미래 전장에서 주력 전차로 쓰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사실 이건 다른 인민군 장비들도 다 마찬가지였던 지라, 결국 공화국 사정에 맞는 놈이 개발될 때까지는 있는 걸 고쳐 쓰거나 급하게 필요한 건 돈 주고 사오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소련 해체 후 3차 세계대전에 대비해 우크라이나 등지에 쌓여있던 장비들이 옐친의 무궁한 영도력(?)으로 닥친 경제 위기를 맞아 시장에 나왔다는 것이었다.

러시아 측에서도 서방에 팔아넘기느니 그나마 같은 동네 국가라고 할 수 있는 북조선에 파는 게 안보 측면에서도 나았던지라, 하인드 헬기와 T72 등 상당수의 장비가 라선을 드나드는 러시아 군함에 실려 공화국으로 반입되었다.

그렇게 해서 문제의 천마호에 열영상장비와 자동장전장치, 최신형 사격통제장치를 달아 차후 2선급 전력으로라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개수작업이 끝난 게 바로 올해, 1996년이었다.

허, 동무들 작업 속도가 빠르기도 하군. 확실히 로씨야 핵심 두뇌들이었던 만큼 손이 빠른가 보오?

이보쇼, 이거 애초에 전부 우리가 개발한 거였거든?

개수작업 및 부품 국산화를 위한 기술 전수 작업에 참여한 러시아 엔지니어들이 담당 장령에게 남긴 말이었다.

조선인민군 공군의 경우 안토노프가 이끄는 김정환 고등항공기연구소의 차기 추격기 프로젝트가 군사위 직속 15년 장기 프로젝트로 넘어갔고, 해군의 경우는 이 역시도 현실적인 타협이 좀 필요했다.

“일단 우리 가상적이 중국 인민해방군이고, 그들과 있을 전쟁에서는 지상전이 주력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육군에 투자의 비중을 더 둘 수밖에 없네. 어차피 수상함은 연안해군이 될 수밖에 없으니 결국 상륙거부 전략을 펼칠 때 유용할 잠수함이 해군의 주력이 되어야 하겠군.”

사실 지정학적인 특성상 동서 함대가 거의 완전히 별개로 운용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약점을 가진 게 조선인민군 해군인 만큼 이런 선택은 뼈 아프지만 어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인민해방군과의 충돌이 발생하면 서해를 잘 방어해서 국경지대에 전선을 형성할 조선인민군 육군이 후방 걱정 안 하고 잘 싸울 수 있도록 하는 게 최대의 목표였다.

인천상륙작전은 남조선과 미국에게 한 번 당한 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게 가상적에 맞춘(물론 공식적으로는 비밀이었지만, 일정 직급 이상의 군관들에게는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었다.) 투자와 개발 방향이 정해지자, 사회주의 국가답게 이를 일반 인민들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짧고 강렬한 구호로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나온 게 바로 ‘3대 목표’와 ‘5대 계획’으로 세분화되는 ‘조선인민군 2008 8대 과업’이었다.

조선인민군 8대 과업

-3대 목표.

1. 중거리 탄도탄 개발

2. 중고도 방공 체계 도입

3. 3,000톤급 잠수함 도입

5대 계획.

차기 주력 소총 및 기관총 개발

신형 땅크 개발 및 양산

차기 다목적 직승기 개발 및 양산

차기 보병용 저고도 방공 장비 개량 및 양산

군사위성 최소 3기 발사

여기까지 정해졌을 때쯤, 이제 슬슬 힘이 부치기 시작하는 듯한 홍계성보다 앞장서 계획을 이끌던 백승철이 슬쩍 눈치를 보며 정환에게 한 말이 있었다.

“저기…… 흠흠, 기게 말입니다, 총서기 동지. 드릴 말씀이…….”

“뭔가? 말해보게, 백 상장 동무.”

“군사가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는 거이는 이미 알고 있지만…… 미군과의 군사협력, 기러니까 공동 개발 같은 건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은지 기걸 알고 싶습네다. 떼놈들이 가만있지 않겠지만, 성공만 한다면 공화국 국방력 강화에 막대한 도움이 되지 않갔습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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