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65화 (165/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65화

59장. OPEC

“펀드라…… 어디 말씀입니까?”

웬만한 곳은 내가 다 알고 있을 텐데? 라는 표정으로 정환이 묻자 베조스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로얄 압둘 아지즈 펀드입니다.”

“이름을 들어보면 중동 쪽이로군요. 보자…… 분명히 내가 알기로 요즘 사우디가 저유가에 미국과의 동맹도 불안정해져서 석유 외에 투자 다각화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최 사장?”

정환의 말이 떨어지자 예상 밖의 사태에 당황해서 얼굴이 굳어져 있던 최승일이 이내 재빨리 대답했다.

“총서기 동지 짐작이 정확하십네다. 운용을 담당한 회사는 미국에 있지만 펀드를 주로 사우디와 쿠웨이트를 비롯한 중동 왕족들에게서 모집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주로 얼마 전 출범해서 주로 대체 에너지와 IT 계열에 투자한다고…….”

아, 그러고 보니 지금 3저 호황 시절이지.

그제야 정환은 미중과의 관계만 신경 쓰느라 걸프전 이래로 중동 쪽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다지 유의하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현재의 중동은 말하자면 정치적, 경제적 전환기를 조금씩 맞이하고 있는 중이었다.

북조선의 산유국가화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인하여 미국이 더 이상 중동에 집착할 이유가 크게 줄어들었고, 블랙호크다운 이후로 대외군사개입을 줄이기 시작한 부시 정부의 기조와 맞물려 사우디에서도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원 역사에서처럼 80년대부터 지속된 저(低)유가 기조는 북조선이라는 새 산유국의 합류로 전 세계적 생산량이 늘어나 그 가격 하락이 더욱 극심해졌고.

그러니 오일머니 파워로 중동의 맹주로 군림하던 사우디아라비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란처럼 이슬람에 경도된 국가와는 달리 세속화가 진행된 왕정이 국정을 운영하지만.

애초에 전제 왕정이라 민주주의를 기반 이념으로 삼는 미국과의 관계는 지극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던 탓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정 사우드 왕조는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 압둘 아지즈 펀드의 등장도, 그리고 오일 머니로 벌어들인 돈으로 신사업에 투자하는 사우드 왕가의 행보도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몸부림의 일환일 것이다.

‘셰일가스로 찾아와야 했던 사우디의 변혁이 조금 일찍 찾아왔다고 봐야겠군.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지금 사우디의 실권자이자 로얄 압둘 아지즈 펀드의 최대 주주는…….’

“베조스 씨. 아직 그쪽 펀드에서 투자가 집행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린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면 아직 투자계약을 철회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군요. 재미있게도 압둘 아지즈 펀드와 저희 피오니 홀딩스 양쪽 모두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한 국영회사인데, 그쪽에서 얼마를 투자했던 우리 공화국에서 두 배를 투자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참으로 고마운 제안입니다만, 좀처럼 쉽지 않은 말씀이군요. 사실 제 입장에서는 양쪽 모두의 투자를 받는 게 가장 이득입니다만…….”

“아, 단, 조건이 있습니다. 압둘 아지즈 펀드 측에서 투자를 약속한 금액의 두 배를 약속드리는 대신 의결권의 과반은 저희 측에서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정환의 선언에 난감한 표정이던 제프 베조스는 물론이고 옆에서 지켜보던 최승일까지도 얼굴이 확 변했다.

차이점이라면 갑작스레 쏟아지는 투자 제안에 제프 베조스는 기쁨 반 놀라움 반의 미묘한 표정이었지만, 최승일의 경우는 ‘갑자기 왜 저렇게 무리하시나’하는 표정, 경악에 가까웠지만.

이내 베조스는 경악을 수습하고 침착하면서도 계산적인 기업인의 표정으로 돌아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저보고 투자받을 곳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일단 총서기님께서 사우디 국부 펀드 측 투자에 왜 그렇게 거부감을 느끼시는 줄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 이건…….”

베조스는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걸 멈췄지만, 정환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는지 정확히 알아챘다.

“돈을 앞세운 횡포, 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시겠죠. 하지만 생각해보시죠. 베조스 씨. 지금은 제 행동이 횡포처럼 느껴질지는 몰라도, 아마존이라는 회사의 장기적 비전을 생각해볼 때 사우드 왕가와 저희 중 어느 쪽의 투자를 받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대체…….”

“베조스 씨,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와 그 나라의 전제 왕정이 과연 인터넷 상거래 아니, IT 기술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과연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요? 아니, 사우디에서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습니까? 전 세계가 이슬람 율법의 가치 아래 통일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라의 왕조에게 아마존 닷컴의 주식을 나눠주고 싶으십니까?”

아마존의 주식을 매입하는데 예상 밖의 난관을 만난 정환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가는 이유는, 우선 첫 번째로 정환은 자신이 찜해둔 걸 다른 사람한테 빼앗기는 게 질색이었다.

미래 아마존의 주식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잘 아는 입장에서도 경영에 참견할 권리를 나눠 가지는 것 역시 사양이었고.

두 번째로 아마존과 제프 베조스 그 자신의 입장에서도 정환과 피오니 홀딩스 측 투자를 받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제프 베조스는 이해가 안 간다는 빛을 역력히 보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인터넷 접속에 검열을 가하는 건 총서기님의 노쓰 코리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최소한 저희 공화국은 아이들에게 눈에 보이는 걸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공산주의는 유물론(唯物論)에 기반을 둔 것이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지금도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조선로동당의 공식 입장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정환이 사우드 왕가의 와하비즘,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을 언급한 건 단지 제프 베조스를 구슬리기 위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것만은 아니었다.

먼 미래의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사우드 왕가는 국민들 입단속을 시키기 위해 페이스북을 아예 사버리려 시도한 적도 있으니까.

물론 언론통제야 정환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고 실제로도 정환은 사우드 왕가가 자기 국민들을 배부른 개돼지로 키우건 말건 전혀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아는 미래대로라면 아마존 닷컴은 피오니 홀딩스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최대 자산 중 하나가 될 것이고, 혹시라도 미래가 바뀌어서 그 자산의 차후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최대한 사전차단해야 하니까.

……뭐 그걸 빼고서라도 그런 고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과 차후 세계 최대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될 아마존 닷컴의 경영을 논하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정환은 회유에 박차를 가하자 베조스는 눈썹을 찡그리며 갈등하는 듯했다.

“투자자가 이슬람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그게 우리 아마존 닷컴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건 좀 과도한 해석이 아닐까 하는데요…… 제 짐작입니다만 그쪽 왕자님은 아마도 그저 펀드 매니저의 추천을 받아 저희에게 투자를 결정하셨을…….”

“그렇다면 더더욱 안 되겠군요. 지금이야 아마존이 작은 회사고 당장 투자에 목마르시니 어떤 돈이든 받고 싶으시겠죠. 하지만 가치관과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투자자라는 건 회사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입니다. 오늘 행사에서 개막 연설을 하신 빌 게이츠 씨와 손 마사요시 씨가 이 공화국에서 무엇을 보셨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지금 이 퓨처넷 박람회에 와서 보셨으니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비록 시작은 늦었지만, 이 북조선에서는 앞으로,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 가상공간에서의 인간의 모든 활동이 현실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다고 진지하게 믿는 인재들과 기업들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중 한 사람이고요.”

“……아까 분명히 로얄 압둘 아지즈 펀드 투자액의 두 배라고 하셨죠, 총서기님의 그 제안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으십니까?”

넘어왔군.

정환은 일이 성사되었음을 깨닫고 베조스의 마지막 남은 망설임 하나를 털어주기 위해 쐐기를 박았다.

“물론입니다. 원하신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피오니 홀딩스 이사회 의장의 권한으로 여기 최 사장에게 말해서 수표를 끊어드릴 수 있습니다.”

“압둘 아지즈 펀드 쪽에서 결정한 투자액은 천오백만 달러입니다. 그 두 배니. 삼천만 달러로군요. 정말로…….”

“최 사장 동무. 지급해드리게.”

“여기 있습니다. 계약서도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쓰실 수 있습네다.”

“……!”

자기가 말해놓고도 눈앞에서 삼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거액이 바로 건네지자 베조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잠시 침을 꿀꺽 삼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정환을 바라보다, 이내 수표를 받아 챙기며 중얼거렸다.

“리만 브라더스의 그 고리타분한 돈놀이꾼들하고는 확실히 다른 분이시군요. 날마다 새로운 닷컴 기업이 생기는 이 시대에 저희에게 보여주신 이런 신뢰, 잊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베조스 씨를 믿습니다. 의결권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경영은 오로지 당신의 비전과 능력을 믿을 테니 돈 걱정은 마시고 아마존의 영토를 넓히는 데만 집중하도록 하시죠.”

“맙소사, 얼마 전까지 공산국가였던 나라의 지도자라고 보기에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금융자본주의에 익숙하십니다. 그리고 제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아마 분명히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측에서 외교적 항의가 들어올 겁니다. 그 문제는…….”

하기야 미래 전 세계 시가 총액 1위 기업의 지분을 손에 넣으려면 이 정도는 고생해줘야겠지.

제프 베조스가 난감하다는 듯 말을 꺼내자 정환은 이미 예상한 바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그가 듣길 바라던 대답을 해줬다.

“그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베조스 씨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그쪽에서 책임을 묻는다면, 저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시면 됩니다.”

“……진심이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때, 옆에 있던 최승일이 살짝 불편한 헛기침 소리를 냈지만, 정환은 못 들은 척 하며 제프 베조스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방금 투자금을 현금으로 지급해 드렸고 하니, 가벼운 보너스랄까…… 경영 외적으로 하나만 요청해도 되겠습니까?”

“……? 말씀만 하시죠.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매년 마다 이 퓨처넷 평양 박람회에 아마존닷컴이 참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박람회의 주최자로서 10년 안에 컴퓨텍스 타이베이를 뛰어넘는 전시회로 성장시키는 게 목표라서 말입니다. 아니, 상장을 하시면 아예 주주총회를 이 평양에서 해도 괜찮겠군요. 하하.”

* * *

“……괜찮으시겠습네까? 총서기 동지?”

“최 사장 동무는 뭔가 불만이 있는 모양이군. 털어놔 봐.”

제프 베조스를 빌 게이츠와 손 마사요시에게 소개해주고 난 뒤로, 둘만 남게 되자 정환은 예상한 질문이라는 듯 최승일에게 물었다.

하기야 아직 아마존이 많고 많은 미국 닷컴 기업 중 하나로밖에 안 보일 그의 입장에서는 왜 정환이 외교적 리스크를 초래하면서까지 아마존에 투자하려는지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환의 예상은 정확했다.

“이제까지 총서기 동지의 신묘한 외화벌이 솜씨는 이 최승일이 따위가 감히 범접할 경지가 아니라는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습네다. 하지만 이건 경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시는 게 아니신지…… 물론 결정은 총서기 동지께서 내리시는 거이지만…….”

“앞으로 경제와 정치는 더더욱 가까워질 거야, 최 사장 동무. 아마 20년쯤 후면 아예 그 둘을 떼려야 뗄 수 없게 될 것이고. 우리 공화국이 세계무역 체계의 일원이 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속도는 더더욱 빨라질걸.”

“사우디와 저희가 외교 관계가 없기는 해도, 고작 많고 많은 인터넷 장마당 기업 하나를 매입하시려고 최고 존엄께서 직접 면을 보이시며 사우디 왕족과 척을 지시는 건…… 이건 다른 정치국 동무들을 내세우셔도 되지 않았을까요?”

“내 말을 믿게, 최 사장 동무. 언젠가 이 거래가 피오니 홀딩스 설립 이래 최고의 투자였다고 자부할 날이 올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중동 왕족 몇 명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느낄걸?“

앞으로 10년은 석유가 세상을 지배하겠지만, 그다음 10년은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리라는 것을 정환은 잘 알고 있었다.

아직은 어디를 막론하고 석유가 30년밖에 남지 않았고 그게 다 떨어지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으니 산유국들의 중요성이 고평가받지만.

수압파쇄법이 개발되면 그것도 한순간에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나 정환이 한 가지 과소평가했던 것은, 건국 이래 외교 관계도 수립하지 않았던 사우디에게 최근 몇 년 사이 북조선이 가지는 중요성이 크게 변동했다는 점이었다.

그날로부터 5일 후, 대성황리에 개최된 퓨처 넷 평양이 5일 만에 끝난 날 사우디 왕가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로얄 압둘 아지즈 펀드의 최대 투자자인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직접 정환에게 전화를 해왔다.

* * *

“제 펀드가 먼저 선점해놓은 회사를 가로채셨더군요, 총서기님. 매니저가 설마 3천만 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할 줄은 몰랐다고 혀를 내두르던데, 요새 노쓰 코리아가 변하고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아,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은 유감입니다. 왕세제님. 저희 북조선은 산유국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사우디만큼 부유하지 못하니, 넓은 마음으로 해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기실 전화를 타고 전해지는 이국적인 억양의 영어에 정환은 입에 발린 말을 주워섬겼다.

그가 알기로 압둘라 왕세제는 현 사우디 국왕의 이복동생으로 현 국왕이 작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사실상 사우디의 진정한 실권자로 등극했다.

같은 친미전략을 펼치는 산유국이라는 공통점 외에는 그다지 외교 관계도 없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기분 상하게 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한 정환의 말에 압둘 왕세제 겸 총리는 넘어가는 듯했다.

“흠, 애초에 투자 결정은 펀드 매니저가 할 일이고 아마존 같은 닷컴 기업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또 생길 테니 이번 일은 제가 관대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관용은 알라의 덕목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전화 드린 것도 인연인데, 이 기회에 제가 김 총서기님께 파트너십을 하나 제안해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씀해 보시죠.”

“노쓰 코리아가 산유국이 된 지 이제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렇다면 알라가 각자의 땅에 내려주신 신의 축복을 지키기 위하여 뭉친 친구들과 알고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이 전화는 말하자면 정상 간의 비공식 접촉이지만, 그 쪽이나 우리 사우디나 한 사람이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곳이니 이렇게 가입 제의를 드려도 괜찮으시겠지요?”

그제야 정환은 압둘라가 이 전화를 건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존 투자 따위가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었다.

“그러니까 왕세제님은 저희 북조선이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석유 수출국 기구)에 가입하셨으면 한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기름을 탐내는 서방을 포함한 모든 외세로부터 나라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뭉치는 곳이지요. 북조선이 가입한다면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회원국이 되겠군요.”

확실히 생각해볼 만한 조건이라고 정환은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카르텔(Cartel)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OPEC은 아직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뚜렷하지 않은 북조선의 외교적 지위를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고, 특별히 적대하는 국가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OPEC이 주도한 오일쇼크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한국에게는 가입만으로도 두려운 일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나 압둘 왕세제의 이런 제안에는 조건이 따랐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말입니까?”

“아시다시피 요즘은 세계적인 저유가입니다. 따지고 보면 저희 사우디가 이교도들이 운영하는 기업과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이유도 새로운 산유국인 귀국이 세계적인 생산량 증산에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말하자면, 지금 세계는 석유가 너무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건 OPEC 창립국인 우리 사우디 입장에서도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고요.”

“…….”

그제야 정환은 압둘라 왕세제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챘다.

이건 한 마디로 담합 제의였다.

“북조선이 OPEC 회원국이 되시기 위해서는, 수출국 기구 차원에서의 영향력 증대에 협력해주셔야 합니다. 석유 귀한 줄 가르쳐 줘야 개개별 회원국의 목소리도 커지는 법이죠. 그러니 총서기님. 귀국의 석유 생산량을 지금의 절반가량으로 조정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리하신다면 저희는 북조선이 진지하게 저희와 석유 가격 논의를 함께할 회원국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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