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60화
“……절 위해서 자발적으로 준비했다고요? 저 하나를 위해서 저 많은 사람들이요?”
별 거 아니라는 듯한 김용건의 말과는 달리, 마이클 잭슨은 정말로 충격받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그 대규모 집단체조, 매스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물론 마이클 잭슨도 매스게임이 뭔지 자체는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가 경악한 이유는, 그 매스게임의 규모와 타 사회주의 국가의 그것과 비교해도 그야말로 비교를 불허하는 정확도였는데.
본인도 뛰어난 댄서이자 무대 연출가, 프로듀서였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 숫자의 대인원이 저 정도로 오차 없이 움직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날 밤을 새가며 합을 맞춰야 하는지를.
최소 천 단위 인간의 피와 땀과 시간을 비료 퍼붓듯 갈아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할 수도 없고 상상도 못하는 그런 퍼포먼스였던 것이다.
“현 부장 동지, 이건 그쪽 선전선동부에서 준비한 건가?”
“아니요…… 물론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뭘 할 거라는 건 들은 바 있지만, 그래도 그게 저거 일 거라고는 저도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아시다시피 총서기께서는 저런 걸 싫어하시잖아요? 저건 저 동무들의 순전히 자발적인 행동이에요.”
놀란 것은 손님 마이클 잭슨 뿐만 아니라 김용건과 현영숙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들이야 저게 뭔지도 알고 있었고, 저 정도 규모야 (개개인의 노동력과 시간을 국가와 당의 소유물로 보는) 북조선에서 행사 때마다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진짜로 놀란 점은 누가 시켜서 준비한 게 아니라 평양 시내 대학생들로 보이는 남녀들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저 매스게임을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로력 동원된 학생들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도 뒤에서는 죽을상을 쓰면서 어떻게든 연습에 빠지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쓸 정도로 지긋지긋해 하는 게 바로 저 메스 게임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시간을 들여가며 준비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 관객이 단 한 명, 몇 년 전까지 공화국에서 ‘부화방탕한 미제 음악’의 선두 주자인 마이클 잭슨이었다는 점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아무리 사회문화 면에서도 개방이 진행되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공화국 곳곳에 스며들었다지만, 아직 남조선처럼 공항에 모여 플래카드를 흔든다던지 하는 건 당의 눈이 무서워서 고심 끝에 책잡히지 않으면서도 자기들의 ‘팬심’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수단이 바로 저것이었을 것이다.
그제야 현영숙과 김용건은 로동당에서 수십 년의 노력과 공을 들여왔던 세뇌교육이 소비지향적인 자본주의 대중문화에 비하여 얼마나 쉽게 도태됨을, 그 세뇌에 앞장서오던 당 간부 자제들이 오히려 누구보다 서구의 문화를 갈망하고 있었음을 절감했다.
그리고 동시에 개혁개방한 지 얼마 안 되어 공화국 젊은이들 사이에 암암리에 팝뮤직 같은 미국 문화가 얼마나 빠르게 퍼져나갔는지도 말이다.
그때, 이번에는 현영숙이 손가락질을 하며 뭔가를 가리켰다.
“저것 보세요, 김 외무상 동지. 저희가 알던 때 하고 내용이 좀 다른 거 같은데…….”
“허어, 저건……!”
보통 이제까지의 메스게임 주제는 당에서 좋아하는 것들, 그러니까 조선민족의 우수성이나 민족 만고의 위인 김일성, 김정일 장군님의 위업, 조국 해방전쟁의 승리 등이었다.
주제 자체도 창의성하고는 거리가 먼데다 내용을 자주 바꾸면 수만 명에게 바뀐 내용을 숙지시키는 데 한참 걸린다는 이유 때문에 몇 번 본 사람은 안 봐도 다음에 뭐가 나올지 알 정도로 천편일률적이었다.
현영숙과 김용건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지금 보니 대학생들이 펼치는 메스게임 내용은 이제까지 그들이 보던 것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짙은 색 패널들을 든 학생들 사이로 붉은 패널들을 든 학생들이 움직이면서 검은 바탕에 붉은 글자들을 영어와 조선어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Jackson Five
-Off The Wall
-Thriller
-Bad
“……오, 신이시여(Oh God)…….”
이제는 충격을 넘어 감격으로 접어든 마이클 잭슨이 넋 나간 듯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패널들을 든 학생들은 그의 가장 최근 앨범인 8집 ‘Dangerous’를 만들어 낸 후, 패널들을 뒤집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은 바탕에 붉은 글씨가 아니라,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Welcome To the Pyongyang, Michael! (마이클! 평양에 온 걸 환영해요!)
* * *
“……정말이지 문화의 힘, 소프트파워란 대단하군. 아니, 이런 걸 소위 말하는 팬심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 환영식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서기실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받던 정환은 카메라에 담긴 자발적 매스게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하던 가락이 있어서 몇 년 빼먹었어도 손발 맞추는 데 얼마 안 걸렸다지만, 자발적으로 모여 고작 두 달 만에 준비한 것 치고는 가히 믿기 힘들 정도 아닌가.
“……공화국에 이 정도로 미국 문화가 침투해 있을 줄은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총서기 동지.”
“아무리 틀어막아도 볼 놈은 보고 들을 놈은 들었다는 이야기겠지. 특히나 여기는 평양이니 말이야.”
‘한국에서 아이돌 콘서트 때 팬 라이트로 파도타기 하는 거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건 양반이었군.’
하여간에 정환에게 있어서는 잘된 일이었다.
자발적이면서도 열정적인 매스게임을 본 마이클 잭슨의 표정은 카메라로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감격한 게 보일 정도였다.
하기야 미국에서 온갖 루머와 인신공격에 시달리다가 지구 반대편의 이름도 낯선 나라에서 이런 환대를 받는다면 누구라도 저런 반응이 나오겠지만.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범세계적 인기는 이 한반도에서도 예외가 없음이 증명되고 있었다.
남과 북 양쪽 모두에서 말이다.
“남조선 측 분위기는 어떤가? 그들도 외신 통해서 잭슨이 순안공항에 내린 걸 봤을 거 아니야. 동해안 상황은?”
“일반 인민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면서도 질시하는 분위기고…… 청와대를 비롯한 남조선 수뇌부는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이제 곧 훈련 예정 일자인데 동해안도 잠잠한 걸 보니 아무래도 훈련을 포기한 듯합니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군. 아, 그러고 보니 표가 얼마나 팔렸다고 했지?”
“8만 장 전부 완매입니다. 절반 정도는 소식을 듣고 외국에서 온 손님들이나 공화국 내에 체류하던 미국인들이 많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허어…….”
유혜림은 뒷말을 흐렸지만 정환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방금 전 본 메스게임 환영식도 그렇고, 이미 인민들은 점점 더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지 정환이 걱정되는 건.
음악이나 영화를 즐기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발전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미국의 컨텐츠를 즐긴다는 이야기는 말 통하는 한국 컨텐츠에도 관심이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아직 공화국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인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최소 10년을 앞서 진작된 소프트파워, 한국어로 된 영화나 음반 등이 밀수 같은 경로를 통해 공화국 내부로 들어오게 된다면, 체제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겠군. 오늘 당 간부들도 전부 참석하라고 하길 잘했어. 그들도 무조건 틀어막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눈으로 보고 깨닫는 편이 좋겠지.”
국민소득이 오르기 시작하면 문화생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리고 시장과 소비자가 형성되면, 제작자가 생겨나고 산업이 성장한다.
그러니 북남의 경제력이, 국민소득이 역전된다면, 소프트파워 면에서의 침공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원래 역사에도 한류의 신장은 한국 국민 소득의 성장과 함께 가지 않았던가.
“하여간 지금으로서는 잘된 일이야. 잭슨이 이 공화국에 대해서 깊은 인상을 받은 건 분명해 보이니까. 그럼 가지, 유 소좌.”
유혜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들은 서기실을 나서서 청사 밖에서 대기하던 관용차에 올라탔다.
이미 릉라도 경기장의 최고 VIP석과 마이클 잭슨과의 독대가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참석은 명목상 국빈 마이클 잭슨 접대 겸 미국과 남조선에 여봐란 듯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퍼포먼스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환 본인은 간만에 총서기 할 맛 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 * *
“Hello, Pyongyang! 안녕하세요, 평양 시민 여러분!”
짝짝짝!
일반적인 투어나 콘서트에서였다면 팝의 황제가 건넨 첫인사에 열광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을 것이다.
아니, 물론 그런 반응도 있기는 있었다.
주로 마이클 잭슨의 신곡 발표 때문에 생전 처음으로 북조선의 수도를 방문한 백인 관광객들 중심으로.
하지만 평양 릉라도 경기장에 꽉꽉 들어찬 관중들의 반절, 북조선의 젊은이들은 서로서로 눈치를 보며 클래식 연주회에 온 것 마냥 어색한 박수만을 보냈다.
얼마 전 환영식 매스게임에서 보여주었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들은 총서기와 정치국 간부들이 근엄하게 앉아있는 박스석 쪽을 눈짓하며 처음 카바레에 온 스님 마냥 쭈뼛거리기만 했다.
혹시 여기서 ‘너무나 보고 싶었습네다! 마이클 동무! 몰래 테이프 구하느라 너무 힘들었시요!’ 같은 소리를 질렀다가는 그 즉시 특별 경호국 요원들에게 멱살을 잡혀 어디론가 끌려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이들의 분위기를 제일 먼저 파악한 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들고 박수를 치며 그들에게 간접적으로 ‘멍석’을 깔아주었다.
“공화국에 방문해준 것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마이클 잭슨 씨. 저 역시 오래 전부터 당신의 팬이었습니다.”
“……?!”
경기장의 면적 반절에 소리 없는 경악이 썰물처럼 번져나갔다.
하늘같은 수령, 총서기 동지가 미제 가수의 팬이었다고?
언제부터?
설마 개방 이전부터 그랬다는 이야기인가?
그러고 보니 지금 총서기께서는 후계자 시절부터 외국물을 많이 드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런 그들의 경악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대에 설치된 거대 스크린에 비친 정환은 구김살 없는 미소를 지으며 한 술 더 뜨기까지 했다.
“감사합니다, 김정환 총서기 님. 저 역시 이 지구 반대편의 언어도 문화도 다른 이 노쓰 코리아에서 너무나 멋진 환대를 받아 놀랐어요. 미국에서도 이런 열정은 느껴본 적이 드물었거든요.”
“그렇다면, 마이클 씨. 여기 릉라도 경기장에 모인 우리 젊은 인민들을 대표해서 내가 한 곡 신청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여기 모인 모든 노쓰 코리아의 팬 분들과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하나 되는 경험을 선사해드리고 싶어요.”
“저 역시 바라는 바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당신의 이번 새 앨범 제목이 ‘History’, 우리 조선말로 ‘역사’라는 뜻인데, 그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습니까?”
경기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이제까지 높고 먼 존재로만 알았던 총서기가 마이클 잭슨의 새 앨범 이름까지 알고 있다는 의외의 공통분모에 경기장에 모인 모든 인민들은 당혹했다.
게다가, 역사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많은 내우외환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희생을 치러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력경을 겪어내고 이제 봉황새처럼 날아오를 문턱에 서 있죠. 지금 이 릉라도 경기장에 모인 모든 청년 동무들이야말로 그 광영의 시대를 열어갈 주역들입니다.”
다시 침묵.
“그런데…… 어디라고 꼭 집어 말은 안 하겠지만 우리의 이러한 번영을 시기하는 자들, 이 공화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는 것을 막으려는 불온분자들이 있습니다. 군사훈련이라는 미명 하에 오로지 평화를 원하는 이 공화국의 인민들을 위협하고 나아가 아시아 전체를 불안정하게 하는 자들. 저기 마이클 잭슨 씨를 거짓으로 상처 입히고 그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는 자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
“그러한 평화를 해치려는 외국세력의 음모에 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서기 김정환은 결연히 맞설 것을 이 자리를 빌려 천명하는 바이며, 자라나는 젊은이들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 아이들이 자라나서 다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나라를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제 신청곡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마이클 잭슨 씨?”
“감동적이군요.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총서기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관객 여러분들, 그리고 진정한 기자 여러분들, 부디 이러한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경기장이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
이제는 관광객, 북조선인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폭탄이나 미사일, 군사훈련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위하여, 모든 아이들이 전쟁과 폭력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이 자리에서 제 신곡을 발표하겠습니다. ‘History’입니다!”
그리고 노래가 시작되었다.
화려한 조명과 스포트라이트, 폭죽으로 달구어진 무대 위에서 마이클 잭슨은 현란한 문 워크와 함께 신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Every child should sing together in harmony
모든 아이들은 다 함께 조화를 이루어 노래해야 해요
-All nations sing
모든 나라들이 함께 불러요
-Let's harmonize all around the world
온 세계의 화합을 이룹시다
“마이클 잭슨! 마이클!”
“사랑해요! 마이클!”
릉라도 경기장에 건립 이래 처음으로 영어로 된 노래가, 그것도 수만 관중들의 환호성 아래에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과 연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외신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겨 생중계되었고.
하루가 지나자 기자들의 펜 끝과 렌즈를 통하여 현 한반도의 정세와 긴장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전 세계 대부분의 신문 1면에 게재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의 모든 기사에서 현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조성하는 악의 축은 이제 폐쇄적인 공산국가에서 탈피하여 팝뮤직과 자유에 문호를 열려고 애쓰는 북조선을 괴롭히는 미국과 한국 정부였다.
그렇게 마이클 잭슨의 평양 공연으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 한국 청와대에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주한미군을 그대로 유지시킬 테니, 팀 스피릿 훈련을 접자는 내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