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56화 (15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56화

“흠, 현 부장 말고 다른 동무들은 생각이 어떤가?”

“……저야 군관이니 학제 쪽은 잘 모릅네다만, 제가 수학한 프룬제에서는 기본적으로 소수 정예지향이었습네다. 김 외무상 동지는 차등교육이 사회주의 이념에 어긋난다고 하셨습네다만, 글쎄…… 제가 본 걸로 따지면 꼭 그렇지도 않아서…….”

인민군 상장 백승철은 헛기침을 하면서도 완곡하게 장성택을 편드는 듯했다.

하기야 본인 출신부터가 북조선에서 김일성이 손수 뽑아 프룬제로 유학 간 국비 장학생 출신이니 소수정예 론을 펴지 않는 게 외려 더 의외였을 수도 있었으니.

“전 장성택 동지 의견에 반대합네다.”

“……그건 좀 의외로군, 최 사장 동무. 동무야말로 학창 시절 공화국 최고 수재 중 하나 아니었나?”

피오니 홀딩스 사장, 최승일은 의외로 전인교육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수학 천재로 두각을 드러내며 최고 존엄의 돈줄을 관리하는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의 의견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기에, 잠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렇긴 합네다만, 제가 어렸을 적에 무슨 유별난 교육을 받아 특출 난 수재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네다. 어차피 아래에서 치고 올라올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 있다면 굳이 특별한 훈육 없이도 두각을 드러내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최승일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마른 얼굴에 자조적인 냉소를 띄우며 중얼거렸다.

“……학교라는 곳은 지식 뿐 만 아니라 사회에서 다른 동무들과 어울려 과업을 수행하는 법도 가르치는 곳입네다. 그런 사회성이 결여된 젊은 소수정예는 말이 엘리트지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새끼들입네다. 김 외무상 동지의 전인교육이라는 것도 그런 걸 우려해서 시행하지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왠지 개인적인 경험처럼 들리는군?”

“교화소에 간 이후 자아비판의 시간이 길었습니다. 한때 저랑 같이 엘리트랍시고 꺼드럭대던 동무들도 몇 명 있었습니다만, 지금 살아남은 건 저 혼자…… 이니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꼴이었디요. 그런 이치를 진작에 알았으면 그 죽을 고생을 할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네다.”

“아! 기래, 동무가 겪은…… ‘약간의 고생’은 물론 나도 유감이네만, 그래도 그거이 내 의견보다 김 외무상 의견이 더 낫다는 근거는 될 수 없지 않겠나, 최 사장.”

김용건을 편드는 듯한 최승일의 말에 장성택이 눈살을 찌푸리며 반박하자 최승일의 입가에 걸려있던 냉소가 살짝 더 짙어졌다.

“공화국 핵심부에서 몇 년 있어 보니 세상살이에 정말로 중요한 건 셈 하나 더 빨리 푸는 것보다는 윗사람 눈치 잘 살피고 적절할 때 줄을 바꿔 타는 처세술 같더군요. 장성택 부부장 동지의 처신을 보면서 제가 그거 하나는 제대로 배운 거 같습네다.”

“뭐…… 뭐이야? 자네 지금 그거이 무슨 뜻이야? 지금 당장 해명하지 않으면…….”

“그만하게. 장 부부장 동무. 회의석상에서 싸움질은 보기 흉하지 않나.”

정환의 조용한 경고에 막 최승일에게 발작하려던 장성택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테이블의 분위기가 잠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 총서기의 개인비서라 정치국 회의석상에서 공식적 발언권이 없는 유혜림을 제외하면, 남은 건 이 자리에서 정환 다음으로 공식서열이 높으며 최연장자인 김영남 위원장 뿐 이었다.

“그럼 남은 건 김 위원장 동무뿐이로군. 어떻게 생각하는가? 소수정예인가? 아니면 전인교육인가?”

‘총서기의 진짜 의중은 무엇인지…… 아니, 애초에 이런 자리를 왜 만든 거이지?’

마지막 남은 사람, 김영남은 정환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가 이제까지 봐온 바로는, 정환은 남에게, 그것도 자기 부하들의 의견대로 뭔가를 결정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조언은 듣되 최종결정은 오로지 자기 혼자 내리는 게 총서기인데, 지금은 귀찮으리만큼 정치국 위원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들어보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라면 그저 수령인 그의 의견을 듣고 일선에서 실행하는 손발에 불과했을 자들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 이야기는 이제까지 나온 의견들 중에서 최고 존엄의 마음에 쏙 드는 말을 한 위원이 없었다는 뜻이다.

‘일단 장성택이를 편들어주려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고…….’

김영남은 이제까지 살벌한 북조선 정계에서 쌓은 연륜과 내공이 무색치 않게 정환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까지의 아주 짧은 순간 동안 방금 전 자신이 본 광경을 곰곰이 곱씹으며 주군(主君)의 심리를 추리했다.

최승일이야 김정일이 밑에 있다가 누명을 쓰고 모진 수모를 겪었으니 그 김정일이 밑에서 권세를 누리다가 총서기에게 붙은 장성택이 곱게 보일 리 만무했다.

방금 전 장성택에게 은근히 심통을 부린 것도 그런 연유일 텐데, 방금 전 정환의 한마디를 들어보면 명백하게 최승일을 편 들어주는 태도였다.

아무리 최승일이 자본주의 공화국의 최선봉인 피오니 홀딩스 사장이자 총서기가 직접 발탁한 측근이라고 해도 당내 공식 서열상 하극상 비슷한 짓인데도.

그렇다면 여기서 공화국 최고 존엄, 총서기께서 듣고 싶은 말은…….

“……앞으로 우리 공화국의 교육은 궁극적으로 소수정예를 길러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네다.”

“거보게! 김 위원장 동지도 내 말에 찬동하시지 않나. 역시 연륜이 있는 최고 원로다우신…….”

“……기러나 인민들의 개별적 장점을 존중해야 한다는 김용건 외무상의 말도 옳은 구석이 있는 만큼, 지향은 소수정예로 하되 몇 년 학업이 부진한 동무들에게도 재차, 3차 기회를 주는 보완책도 반영하심이 좋을 듯합네다.”

김영남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제까지 봐온 정환의 성격이나 정책방향을 본다면, 소수정예 교육정책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왜 처음부터 장성택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느냐 하면, 공개석상에서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피하고 싶어서일 가능성이 높았다.

김영남은 연륜 있는 원로답게, 정환이 당과 정이 서로 견제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을 이미 눈치 챘다.

그리고 장성택은 이미 한 번 철직당한 경험이 있으니, 아무래도 앞으로는 장성택보다는 김용건에게 힘을 실어줘야 했다.

그래서 총서기는 내심 장성택과 의견이 일치하면서도, 눈치 빠른 누군가가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김영남의 추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몰라도, 정환은 흥미를 보이며 재차 물었다.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예를 들어, 대학교육의 기회를 누구에게 얼마나 부여할 것인가 하는 것 말일세.”

“대학이야말로 진정한 최고 두뇌를 선발하는 고급교육의 장인만큼 남조선처럼 사립대학이 난립하는 것은 막아야 할 것입네다. 수학(受學)능력이 있는 자는 차별 없이 누구나 받아들이되 아무나 못 들락거리지 못하게끔 문턱을 높이시지요.”

“그렇다면 대학 이하는 어떻게 구성하는 게 좋겠나?”

“어차피 두뇌노동자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인 고급중학교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니 중고등교육은 실용 기술 위주와 대학 진학 위주로 양분하시는 것이 좋갔습니다. 대신 일본이나 남조선처럼 6-3-3제도를 일부 받아들여 중학교 졸업할 때쯤 한 번 더 시험을 거치게 만들면 어떻겠습네까?”

현재 북한의 중등 교육은 총 6년으로, 한국처럼 중, 고등학교 3년씩으로 나눠져 있는 게 아니라 초등, 중등학교만 다니고 대학이나 전문학교진학을 결정하는 식이었다.

김영남의 말은 그걸 쪼개서 전문화시키자는 이야기였다.

여기까지 말한 김영남은 잠시 자신의 의도를 어떻게 축약해서 표현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특유의 사람 좋은 표정으로 허허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원래 자동차도 설계를 담당하는 최고 두뇌는 한두 명만 있으면 되지만, 일선에서 조립이나 수리를 해야 할 로동자들은 숫자적으로 많지 않습네까. 앞으로 공화국이 지향하는 산업 구조를 감안해도 엘리트를 보조할 기술자를 빨리, 많이 가르쳐야 할 것입네다.”

“흠…….”

정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자 테이블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장성택도 김용건도 그저 입을 다물고 정환의 선택을 기다렸다.

하지만 김영남만큼은 자신이 주군의 가려운 부분을 긁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김영남 동무의 안이 괜찮은 거 같군. 다들 어떻게들 생각하나?”

“…….”

이번에도 조용했다.

회의 시작 이래 정환이 처음으로 동의를 표시한 만큼, 누구도 김영남의 의견을 반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자, 정환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뼉을 딱 쳤다.

“그럼 결정된 것으로 하지. 곧 세부사항을 구성해서 보고하도록 하게.”

* * *

그로부터 다시 얼마간의 논의를 거쳐 완성된 북조선의 교육 모델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장성택의 ‘1명의 천재와 99명의 둔재 육성’도, 김용건의 ‘100명의 범재 육성’도 아니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김영남의 말마따나 ‘5명의 자동차 설계자와 95명의 조립공 육성’이라고 볼 수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초등학교(인민학교에서 개명)를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중학교에 입학한다.

-3년의 중등교육 과정 후, 중학교 졸업 시험을 치러 상위 30%만이 분야별로 3년제 진학전문 고등학교로 진학, 나머지 70%는 엔지니어, 간호사, 하급 공무원, 사무직을 육성하는 4년제 실업 기술 고등학교로 진학한다.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다.

-진학 전문고에서는 학년 말마다 진급 시험을 보며 성적에 따라 유급, 월반, 조기졸업이 결정된다. 유급이 누적될 경우 퇴학당할 수 있으며 1학년부터 미적분을 배운다.

-3년의 고등학교 과정 수료 후 공화국 내 30여 개교 존재하는 4년제 종합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학 능력 검정시험을 치른 후 성적에 따라 대학에 진학한다. 단, 4년제 실업고 졸업자라도 별도의 시험을 치르고 2년제 전문대학으로 진학이 가능하다.

-진학 전문고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재학사실과 졸업시험 성적이 필수지만, 4년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반드시 진학 전문고를 나와야 할 필요는 없다. 실업고를 졸업했어도 공부를 더해서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가능하다.

-4년제 대학은 입학도 어렵지만 졸업도 어렵다.

“……그래도 사교육을 잡는다는 초기 목표는 실패하신 게 아닐까요, 총서기 동지?”

“이런, 뭔가 착각한 거 같은데, 유 소좌.”

교육제도 개편 후 벌써부터 평양 시내에 진학 전문고 입학을 위한 사설 학원이 우후죽순 생기고 있다는 보고서를 받은 유혜림이 조심스럽게 묻자, 정환은 고개를 저었다.

“난 한 번도 사교육을 다 때려잡겠다고 한 적이 없어. 단지 교육제도를 개편하겠다고 했을 뿐. 애초에 모든 사교육이나 과외를 단속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하기야 저기 아래 남조선 동무들이 하는 걸 보고 있으면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만큼 무서운 게 없기는 하지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지 우리 공화국에서는 그런 마음이 엇나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는 겁네다.”

“엇나가서 낭비되는 게 개인의 황금 같은 청춘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역량이기도 하니 확실히 그건 주의해야지. 각자 자기 자리를 일찍 파악하고 그 자리에 만족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겠지만…… 원래 우리 조선민족이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으니까 말이지.”

한국의 과열된 대입 경쟁과 그를 위한 입시 위주 교육이 불러온 폐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직접 겪어보기까지 했던 정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부디 이 역사의 북조선에서는 대입 장수생이나 재수생을 위한 기숙학원 같은 건 안 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경쟁이란 공평한 조건에서 적당히 유도되면 개인과 국가의 크나큰 향상을 불러오지만 지나치면 비효율을 넘어 파멸적인 결과를 부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교육제도 개편이 한창 공표될 때쯤, 바로 그 엇나간 경쟁심이 부른 결과가 정환의 눈앞에 나타났다.

“초, 총서기 동지……!”

“무슨 일인가?”

“TV 틀어서 남조선 채널로 돌려보시지요. 아무래도 남조선 박이삼이가 지난번 일로 골이 단단히 난 듯 합네다.”

“……!”

곧장 서기실 TV를 틀어 채널을 맞췄더니 그곳에서는 한창 한국 국방부의 발표를 중계하는 뉴스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보의 하단 자막을 보는 순간, 정환은 인상을 팍 쓸 수밖에 없었다.

-국방부, 오는 여름에 미군과 함께 팀 스피릿(Team Spirit) 훈련 재개 결정. 훈련목적과 가상 적에 대해서는 상세한 발표를 거부.

* * *

“각하, 유민중 총재님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모시게.”

그 시각, 청와대 접견실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박이삼은 불편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방문객 자체도 불편한 사람이었지만, 지금 이 시기에 그가 방문해서 할 말이 무엇인지 박이삼으로서는 뻔히 짐작되기에 벌써부터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유민중 총재님. 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간만에 저랑 같이 칼국수나 한 그릇 하실까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하지만 그 전에 야당 지도자로서 고언(苦言)을 먼저 드려야겠습니다. 이번 팀 스피릿 훈련…… 꼭 하셔야만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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