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54화
55장. 2300만의 잠재력
“……이런 거지발싸개 같은 빨갱이 새끼들을 봤나. 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를 그냥……!”
“가, 각하…… 좀 진정하심이…….”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박이삼의 호통에 국무회의 일원들은 전부 시선을 돌리고 어깨를 움츠렸다.
괜히 떨어지는 불똥에 몸을 들이밀 바보는 없으니까.
이미 여론과 대통령의 불호령에 서울시장과 국무총리의 목이 날아갔다.
게다가 방금 전 바닥에 내팽개쳐진 종이의 내용으로 인하여 대통령의 분노는 몇 배로 증폭되었다.
“뭐? 한민족으로서 애도를 표해? 원한다면 구호금을 보낼 의향이 있어? 개혁개방 한다고 해서 좀 좋게 봤는데 사악하기로는 제놈 혹부리 애비 못지않구만! 내 당장이라도 휴전선을 넘어가서…….”
“가, 각하…… 이게 다 저희 잘못입니다.”
“언론은 뭐라고 보도했나? 고려일보는?”
간신히 분노를 수습한 박이삼이 머리를 감싸 쥐며 묻자, 장관과 보좌관들은 일제히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게…… 이렇게 썼습니다. ‘연이어 벌어진 똑같은 참사, 다른 사망자 수. 초상집과 잔칫집으로 갈라진 남과 북. 위난 상황이 닥쳤을 때 비교되는 남북의 지도자.”
“아이고…… 골치야. 그것뿐인가?”
“그리고 이렇게도 썼습니다. ‘하나회를 비롯한 강력한 군(軍) 리더쉽을 섣부르게 퇴진시킨 첫 문민출신 대통령, 북北의 젊은 자본주의 수령에게 조롱당하다. 역시 박이삼의 숙군 작업은 시기상조?’”
“이런 망할 놈들!”
박이삼이 이렇게 역정을 내는 이유는 바로 북조선의 총서기 정환이 얼마 전 있었던 대형사고, 성수대교 붕괴에 대해 표명한 위로 성명 때문이었다.
* * *
대략 두 달 여 전 10월 어느 금요일 이른 아침, 한강을 가로질러 성수동과 압구정동을 잇던 성수대교 중간이 뜬금없이 내려앉으면서 수십 명이 죽고 다쳤다.
게다가 하필이면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 중이던 여중생들이 참사의 희생자가 되고,
거기에 더해 사고의 원인이 부실공사와 당국의 안일한 대응으로 밝혀지자 이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단순한 참사를 넘어 박이삼 정권의 정치적 재앙으로 진화했다.
“저 박이삼은 이 사태에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참사에 책임 있는 인사들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물을 것을 국민 여러분 앞에…….”
“대통령 님! 이 사태에 대해서 ‘전 정부가 부실하게 시공 허가를 내준 탓이지 우리 정부 탓이 아니다’라고 불평하셨다는 증언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없습니다! 유언비어 유포하지 마십시오!”
사고 자체도 참사였지만 그 여진(餘震)은 더욱 심각했다.
북한에서는 무슨 예지라도 한 것 마냥 사고 당일 평양에 첫 증권거래소를 개장하여 졸지에 그는 ‘박이삼이가 대통령되고 나니 남과 북의 국운이 뒤바뀌었다’라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아니, 윗동네 애송이 총서기가 보위에 오른 게 전 대통령 시절부터인데, 그게 왜 자기 탓이란 말인가?
하지만 안 그래도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 도입으로 박이삼을 향한 칼을 갈고 있던 보수 세력들, 그리고 그들의 나팔수 고려일보에게 사실관계 같은 게 중요할 리 없었다.
벌써 해가 넘어갔는데 아직도 고려일보는 북한의 경제력이 날이 갈수록 급상승하고, 반대로 한국은 온갖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게 박이삼에게 무슨 역신이라도 붙어서 그런 것 마냥 비난에 정신이 없었다.
사실 그에게 모든 상황이 너무 불리한 게, 하필 북한이 (은근히 큰 피해를 입기를 기대하던) 한국의 예상을 뛰어넘고 수해를 극복했다는 것이 확인된 직후에 이런 참사가 터져버린 것이다.
게다가 갓 서른 넘은 북한의 젊은 총서기는 붕괴 사고 직후 위로 성명이랍시고 이렇게 발표한 것이다.
-같은 조선민족으로서 남의 인명손실에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깊은 애도와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차후 남의 지도자들은 건설사업에 관련한 법제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무고한 인민의 울음소리가 이 조선 땅에 울려 퍼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주 꼴좋게 됐군 그래. 날짜가 겹친 거야 우연이라 쳐도, 이건 정말 우리 국민들이 보기에도 할 말이 없게 됐어. 저 총서기라는 친구는 운도 좋지만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아. 그건 인정해야겠군.”
북한의 이 위로 성명이 순수한 위로가 아닌, 은밀한 조롱 혹은 과시였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북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사고 피해자들에게 전해주라며 위로금이랍시고 미화로 50만 달러를 보내주기까지 했다.
시기가 너무 절묘해서 혹시 한국 내 북한 공작원들이 다리에 뭔가 수작을 부린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다.
하지만 조사가 시작되고 담당 시공사와 서울시 공무원들을 대질한 결과, 설계부터 관리까지 문제가 없는 부분이 없었다는 게 드러나자 그런 말은 쏙 들어갔다.
명색이 문민정부인데 전 정권 때의 필살기 ‘이 모든 게 북한 때문’도 봉인되고, 안 그래도 석유 발견 이후 북한의 국력 상승에 대해서 점점 더 커져가는 한국 국민들의 불안감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과 분함, 분노와 위기감은 고스란히 현 대통령 박이삼 혼자에게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동지들을 배신한 삼당합당의 대가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한 일일까?
하지만 아직 박이삼에게는 히든카드가 남아있었다.
“내 언젠가 이 젊은 놈에게 된 맛을 보여주고 말끼다! 안기부장! 북에서 홍수 완전히 극복한 거 맞습니까? 뭐 쓸모 있는 정보 없냐 말이오. 얼마 전에 우리 쪽 휴민트 제대로 하나 꽂았다고 나한테 그러지 않았소?”
“염려 마십시오, 각하. 얼마 전에 우리 최고 공작원이 평양 핵심부로 침투해 들어갔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도청기가 북한 1호 옆에 아주 단단히 박혀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래도 하늘이 우리 대한민국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그거 참 잘 됐습니다. 단단히 관리하도록 하세요! 저쪽은 언론이고 뭐고 죄다 때려잡을 수 있으니 우리는 벌거벗고 있는데 저쪽은 옷을 입고 있는 격이니 원…….”
박세황, 흑금성의 침투 사실을 안기부장이 자랑하듯 보고하자 박이삼은 그나마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북한은 신문만 봐도 웬만큼 한국 내부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데 한국은 북한 수뇌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서 이 고생을 해야 한다니.
거기에 언론들은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지만 정작 정권은 언론들을 손대면 안 된다는 선을 지키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
자신이 그토록 바래오고 투쟁해왔던 대의 민주주의의 어쩔 수 없는 단점이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니 보도지침이 아쉬워지기까지 한다는 아이러니에 박이삼은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이 나왔다.
* * *
한편,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된 그 날, 문제의 조선로동당 총서기 정환 역시 다른 국가 정상의 속내를 캐내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이쪽은 한국과 달리 북조선과 비슷한 일당 독재 국가라는 점이 다르기는 했지만.
“축하드립니다. 장 서기님. 이걸로 대국이 날아오르는 용처럼 승천할 일만 남았군요. 이제 저희 조선도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데 앞으로도 많은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허허허, 이미 조선은 우리 뒤를 따라올 필요가 없는데 김 총서기는 겸손이 과하군. 이미 일반적인 북조선 인민은 중국 인민보다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잘 살지 않소? 이거 이 장쩌민이 김 총서기에게 한 수 배워야 하겠구려.”
“……이거 뭐라 드릴 말씀이 없군요.”
통화상대, 장쩌민의 말에 담겨 있는 뼈에 정환은 일순 입술을 씹으며 ‘여우같은 노인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이미 작년을 기점으로 북조선의 1인당 국민소득은 몇 년은 먼저 개혁개방을 시작한 중국을 크게 뛰어넘었다.
물론 13억 인구의 중국보다 2300만 인구의 북조선이 1인당 국민소득을 올리기 훨씬 쉬운 것이야 불문가지지만, 장쩌민은 그 점을 지적하지 않고 오히려 정환을 추켜 세워준 것이다.
당연히 그게 순수한 칭찬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정환도 알고 있었다.
“조선과의 맺은 특혜무역협정과 신의주 자유무역지대가 조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는 건 나도 보고를 받아 알고 있소. 아무쪼록 다음 한 해도 사회주의 동지 국가끼리 잘해보도록 합시다.”
“작년에 상하이에서 들려주신 친교와 우정의 덕담은 저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앞으로도 조중 관계에 덕과 우의가 오가는 날만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북조선의 경제발전에 중국의 지분이 큰 것을 항상 잊지 말라’
‘그렇게 안 가르쳐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새해 벽두부터 그만 괴롭혀라’
……라는 따뜻한 의미가 숨겨진 조-중 국가 정상간 신년 전화 덕담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정환은 얼굴을 찌푸리며 옆에서 이 모든 대화를 듣고 있던 간부들에게 물었다.
“거 되게 끈질기군. 김 외무상 동무, 련합국 기구(유엔)에 나가 있는 우리 외교관들은 뭐라고 하나? 이제는 유럽에서 프랑스까지 경제제재를 철회해버렸다고?”
“그렇습네다. 분위기까지 전해드리자면 흉하지 않게 빠져나가려고 최선을 다하려는 것 같았달까…… 라는 게 저희 외교관 동무들의 전언입네다. 민간 인권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허, 우리 장쩌민 총서기 동지께서 티베트 자치구 동무들을 그렇게 열심히 때려잡고 있다는 걸 지금 전 세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뭐 어쨌든 예상대로지. 그럼 이제 공식적으로 중국에 가해진 경제제재는 완전히 철회된 거로군.”
선언하듯 말하는 정환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걸로 지난 5년 간 이 자본주의 세계의 신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누렸던 해외 자본으로부터의 투자와 고용의 매력이 크게 감소한다는 이야기니까.
다행이 몇 달 전 대홍수 때에도 증명되었듯이 그 5년 간 쌓아온 게 꽤 커서 외국인 투자자들 바짓가랑이를 잡아야 한다거나 하는 사태는 없겠지만…….
“이거 참 인구와 영토가 좁다는 게 이렇게 서럽군. 중국 동무들은 천안문에서 자국 인민들 수천 명을 그렇게 대놓고 때려잡았는데도 경제적 비중이 크니 그 인권 좋아하는 유럽인들에 미국인들조차도 못 본 척 하는데, 우리 공화국은 재난 물자 빼돌린 수십 명 사형시켰다고 CNN에 기사가 나오니 말이야.”
“……구 제국주의 구라파(유럽) 백인 자본가들이 위선적으로 찧고 까불어대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잖습네까. 우리 공화국은 그저 우리 노선을 고집하며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습네다.”
정환의 비웃음에 국제정치와 국가 간 역학관계의 부조리함을 익히 잘 알고 있는 김용건도 분노 반, 씁쓸함 반이 섞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실 그건 국제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정환이 오랫동안 고심해왔던 이 북조선의 근본적인 문제점이었다.
시장경제 후발주자인 것만 해도 큰 디메리트인데, 그 차이를 어느 정도라도 극복하게 해주는 인구와 영토도 상대적으로 볼 때 영 부실하다는 것.
2,300만 인구에 12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가 국제적 기준으로 그렇게 작은 건 아니지만, 옆에 중국이라는 세계제일의 인구와 영토대국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작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이 제국주의 시절마냥 타 국가를 침공, 식민지로 삼거나 해서 인구와 영토를 불릴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리 정환처럼 미래를 아는 자가 국가지도자라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하아, 이러니 저기 한국에서도 통일하자는 이야기가 70년 동안 끊임없이 나왔던 거지. 아무리 자본과 천연자원이 받쳐줘도 인구가 일정 수 이하면 끊임없이 덩치 큰 대국의 위협에 떨 수밖에 없으니 말이야. 그 심정이 이렇게 공감이 갈 수 가 없군.’
“어쩌겠나, 지금 있는 거라도 가지고 잘 해야지. 그나마 최근 들어 이 공화국의 출산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건 위안거리가 아닐 수 없군.”
“다들 먹고 살만해지니 애를 많이 놓는 거예요. 듣자하니 요즘 평양 시내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가 미어 터져서 자기 아들딸을 유치원 보내는 게 입당 시험에 준할 만큼 어렵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이니, 이것 역시 총서기 동지의 업적이 아닐 수가 없군요.”
아부 섞인 말이기는 했지만, 현영숙의 지적은 정확했다.
지난 5년 간 열심히 식의주 문제를 해결하고 기초 보건의료와 소득 수준이 올라가자, 다른 모든 개발도상국에서 그래왔듯이 북조선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장 중앙 통계부에서 내놓은 결과로는 작년 평균 출산율이 가구 당 2.8 명에 수렴했으며, 줄어들 기미가 없이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에 모든 분석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
“인구는 곧 국력이니. 자라나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얼마나 이 공화국 발전에 리용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이 공화국과 로동당의 운명을 가를 걸세. 그런 의미에서 이제 공화국의 교육 제도 역시 대대적 개편이 필요하겠군.”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다시 한번 현영숙에게 물었다.
“요즘 평양 시내에서 영어 학원이 그렇게 많이 생긴다지? 공교육의 질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