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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147화 (147/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47화

잠시 놀란 듯한 장성택은 방문자가 현영숙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내 당황을 수습하더니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지낼 것 같았디?”

“죄송하지만 정말 모르겠군요. 이곳 존재는 1급 기밀이라 저도 알지 못했어요. 사실 알려고도 안 하는 게 신상에 좋기도 하고.”

“흥, 하기야 빤질하기로는 현 부장이 누구 못지않다는 걸 내 진작 알았지. 보다시피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라.”

노동당사에서 김영일에 의해 개처럼 끌려 나간 후, 장성택은 처음 한 달여를 실제로 아오지에서 보냈다.

비록 총서기에 의해서 아오지를 포함한 공화국 내 교화소의 수감자 대부분이 팍 줄었다고는 하지만, 그런 만큼 아직 남아있는 자들은 연쇄살인범 같은 악질들 중 악질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하등한 범죄자 잡배들과 한 감방에서 지내야 한다는 건 한 때 공화국 태양의 사위였던 장성택에게 육체적인 면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면에서도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다.

이 장성택이가 이런 놈들과 살을 부비고 지내야 한다니.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과 눈도 못 마주쳤을 놈들과 함께 석탄을 나르고 돌을 깨야 한다니.

어쩌면 총서기의 의도도 자신을 이런 곳에 가두고 모욕을 줘서 고분고분하게 만들려는 걸지도 몰랐다.

김정일 때도 한 번 숙청을 당한 적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지방 당 위원회로의 좌천이었지 이런 굴욕적인 수감은 아니었다.

하루하루 절망과 좌절 속에 살아가던 장성택이 지금 이곳으로 이감된 건 한달 정도 지나서였다.

그 후로 다섯 달 동안 이 특수시설에서 장성택은 훨씬 정중한 대우를 받았지만 자신의 앞날이 불안한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던 중 오늘 현영숙이 찾아온 것이다.

“현 부장이 나를 찾아왔다는 건 총서기 동지가 나를 풀어줄 마음이 생기셨다는 거고, 보자…… 아마 중국 동무들이 볼 멘 소리를 했겠디. 아니야?”

“부인하지는 않겠어요. 하지만 이 특수 교화소를 보시면 알 수 있으시겠지만 총서기께서는 처음부터 장 부장 동지를 완전히 내치실 마음이 없으셨어요. 단지 실수에 대한 견책을 하려 하셨던 거지.”

현영숙의 말에 장성택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얼굴을 찡그렸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당 중앙에서 위세를 부리던 자신을 이곳까지 추락시킨 그놈의 후계 문제가 다시 떠올랐던 것이다.

결국 그는 호기심 반, 억울함 반으로 다시 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총서기께서는 후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인 건가? 내 여기 있는 동안 세상이 좀 바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피붙이에게 보위를 물려주실 생각이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하실 작정인지…….”

“여기도 로동신문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총서기께서는 핵심당교라는 조직을 만들고 그 조직에서 공화국의 미래를 이어나갈 인재를 선발하실 생각이세요.”

잠시 동안 현영숙이 핵심당교라는 후계자 육성기관에 대해 설명해주자 장성택의 입은 점점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영숙의 말이 끝나자 장성택의 입은 더 벌어지기 힘들 만큼 쩍 벌어졌다.

“그거이…… 그거이 사실인가? 세습을 하는 거이 아니라 당원들 중에서 한 명을 뽑아 총서기 보위를 물려주갔다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이 맞나, 현 부장?”

“제가 아무렴 장 부장 동지께 여기까지 와서 거짓부렁을 고하겠어요?”

“허 참……!”

장성택은 기가 차다는 듯이 허탈한 한숨만을 내쉬었다.

핵심당교라는 조직에 대한 현영숙의 설명이 전혀 예상 밖이었던 것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왜 총서기가 그런 비현실적인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 어이가 없어서였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이 성공할 리가 없지 않나! 대체 그 골 잘 돌아가는 총서기가 왜 이런 허랑방탕한 생각을…….’

권력이란 형제, 아니 부모 자식 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이 공화국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 그리고 현 총서기 간에도 권력을 두고 골육상잔이 일어나지 않았나.

그런데 아무리 어렸을 때부터 수재들을 모아 당 주관으로 교육을 시킨다고 해도, 생판 남끼리 깨끗하고 공정하게 경쟁을 해서 이긴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고 진 사람은 깨끗하게 승복한다고?

그런 이상적인 경쟁체제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모함하고 음해해서 패자는 승자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승자는 패자를 숙청해서 권력을 독점하려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최소한 이 김 씨 공화국에서 40년 넘게 살아오며 권력의 속성과 생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장성택은 정환의 이러한 구상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었다.

예전부터, 부시의 방북 때도 그렇고 총서기가 책상물림답게 머리는 좋아도 가끔 묘하게 터무니없이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다고 느꼈는데, 이번에 그러한 면모를 똑똑히 확인 한 것이다.

‘이 장성택이가 그동안 총서기를 잘못 보고 있었던 것은 확실하군. 이제야 좀 총서기라는 사람을 알갔다.’

이제까지 미국과의 수교나 남조선에 대한 의도적인 무시 등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한 정책을 펼쳤기에 장성택은 총서기가 그 나이대 젊은이들에게 으레 있을 법한 몽상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보니 총서기라는 인간에 대해서 장성택은 조금은 그 윤곽이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발은 현실에 디디고 있지만, 머리와 눈으로는 이상을 바라보는, 똑똑하고 행동력이 넘치지만 결국 그 나이대의 청년들이 품을 법한 이상주의를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정환 총서기 인 것이다.

‘가만, 이거 잘만 리용하면…….’

핵심당교는 조선로동당 산하 조직이다.

그 말은 자신이 당 조직지도부장으로 복직할 수만 있다면 그 조직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 후계자 선정에도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총서기께 전해주게. 주제를 모르고 까불어댄 내 죄를 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총서기의 심중을 함부로 헤아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

“현명하신 선택이에요.”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갔다. 혼자 움직이지 않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를 만들어 세력을 넓혀야 한다. 10년 아니, 20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때를 노려 그때는 확실하게 기회를 움켜쥔다면…….’

겉으로는 총서기의 아량에 백골난망이라는 표정으로 말하면서도 장성택은 속으로 이런 야심을 불태웠다.

그 철벽같던 총서기라는 인물상에 난 하나의 결점을 발견했으니, 이제 그 결점을 파고들어 구멍으로 키우고 그 구멍에 들어앉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야말로 장성택은 진정으로 이 공화국의 1인자가 될 것이다.

“그럼, 가보겠어요. 아마 조만간 당으로 복직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잠깐, 현 부장. 뭐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 거이 있는데…….”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하는 현영숙의 등에 대고 장성택이 말했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장성택은 입에 냉소를 머금으면서도 넌지시 그녀를 떠보았다.

“나를…… 장성택 조직지도부장이 후사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총서기께 발고한 동무가 현 부장인가?”

“……글쎄요, 어떨까요.”

“여기 들어앉아서 내내 기것만 생각했는데, 도무지 짐작이 안 가서 말이디. 분명히 동무나 김용건 부장 둘 중 하나일 텐데…… 그러고 보니 아까 현 부장이 이 방에 들어설 때 군관 동무가 현 부장을 조직지도부장이라 호칭했지?”

장성택의 추궁에 현영숙은 그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침묵을 지켰다.

분명히 자신이 후계에 유혜림에 대한 말을 털어놓은 건 김용건과 현영숙 두 사람 뿐이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 둘 중에 자신을 배신한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한데 그걸 누군지 모르겠다는 게 장성택의 고민거리였다.

아까 군관의 호칭도 그렇고, 자신이 철직당한 후 현영숙이 자신을 대리했으니 그녀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얼마 전 당 조직 개편으로 김용건이 이끄는 내각에도 힘이 실린 걸 보면 확신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김용건은 현영숙과는 달리 처음부터 이 후계 문제에 대해서 불편하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나.

그렇게 의심이 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성택에게 현영숙은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면서도 혐의를 완곡하게 부인했다.

“‘조직지도부장’ 이 아니라 ‘조직지도부장 대리’에요. 그리고 당 부서 위계상 2인자인 제가 장 부장 동지를 임시로 대리한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거, 아시지 않나요?”

“……기거야 기렇지.”

장성택이 일단은 의심을 거두자 현영숙은 생긋 한 번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성택이 연금된 ‘감방’ 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이제까지 별로 눈에 띄지는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일단 감방인 주제에 소파에 TV, 카펫까지 깔려 있었다.

이 정도면 외국인 사업가들이 드나드는 평양 시내 웬만한 호텔보다 나을 것 같았다.

“그럼 몸 조리 잘하시고 곧 중앙으로 복귀하시길 빌겠어요, 동지. 그나저나 총서기 동지 말씀대로 여기 참 물도 공기도 좋네요. 앞으로 고위 당원들이 당에서 밀려나는 일이 있어도 아오지로 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날마다 운동을 시켜주고 전담 의사에 영양사까지 있다네. 여기서 주워듣기로는 원래 이곳은 나 같은 사람 뿐 만 아니라 다른 인사들을 가두려고 계획해서 극비리에 지어졌다는군. 총서기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시고 계획이 다 있으신 모양일세.”

“어떤 인사들 말인가요? 장 부장 동지 같은 전직 고위당원들? 그거라면 이해가 가는 군요. 겉은 교화소여도 이렇게 좋은 대우를 해주면 차후에 숙청을 당한다 해도 총서기께 마지막까지 저항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에요.”

“기런 용도도 있겠지만, 현 부장 정도의 머리라면 충분히 생각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주 대상일 걸세. 한 번 잘 생각해 보게. 난 벌써 그림이 기려지는 데 말이디. 내 짐작이 맞다면 총서기는 참 무서운 사람이야.”

그런 독심(毒心)을 지녔으면서도 핵심당교 같은 이상주의적인 발상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참 모를 일이지만 말이지, 하고 장성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편 장성택의 힌트 아닌 힌트에 현영숙은 잠시 이마를 손으로 짚고 곰곰이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만약 전혀 짚이는 게 없으면요?”

“흐흐, 기럼 현 부장 동무도 조직지도부장으로서 당을 이끌 재목은 아닌 게지. 그 정도 통찰도 없어서야 모셔야 할 주군인 총서기의 심중을 읽기는커녕, 나처럼 철직 당해 여기서 웅크리고 있는 신세를 피할 고민이나 해야 할 걸세.”

“……그럼 저는 이만. 곧 평양에서 뵙죠.”

마지막까지 기분 나쁜 노인네라고 생각하면서, 현영숙은 문을 닫고 방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상하이에서는 조중 양국 간 특혜무역협정이 성공적으로 체결되었다.

정작 협정체결을 이끈 공신은 자리를 비운 이상한 조인식이었지만, TV에서 생중계로 두 정상, 조선인민공화국 총서기 김정환과 중화인민공화국 총서기 장쩌민의 밝은 미소를 본 양국 인민들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평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환은 미국에서 날아온 의외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미국 부통령 딕 체니의 중재 하에 이루어진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PLO 대표 사이의 평화 회담이 최종 결렬,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 하마스가 PLO 내에서 입김 거세질 듯.

“부시는 이제 중동에서 발 빼려고 하는 모양인데…… 이스라엘 총리는 난처하게 되었군. 안 그래도 국내 과격 국수주의 집단의 반발을 무릅쓰고 협상장에 나섰는데 이 지경이 되었으니…….”

정환은 신문을 접어 옆으로 치워놓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블랙호크다운, 고딕 서펀트 작전 실패야 이미 알고 있었고, 미국이 몇 년 간 중동에서 거리를 둘 거라는 것도 예측했지만, 이건 의외였다.

혹시 협상장에 부시 대표로 나선 딕 체니가 관련이 있는 건가?

“원래도 몇 년 못 갈 평화협정이기는 했지만, 애초에 성립도 안 되고 끝나버리는 건 이야기가 좀 다른데…….”

대처가 소장으로 있는 균형안보재단의 소식통에 의하면 이미 워싱턴은 부시와 파월을 중심으로 중동에서 출구전략을 개시했다고 한다.

냉전도 끝났고, 소련도 붕괴한데다 후세인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적들도 미국에 의해 참교육을 당했으니, 더는 국방비를 중동에 소모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혈맹 수준으로 굳건했던 미국-이스라엘 관계에도 서서히 금이 갈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다음 몇 년 간 더욱 거세질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의 저항과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을 이스라엘이 외교적으로 쉴드쳐줄 국가의 뒷배 없이 혼자 다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원역사에서처럼 폭력으로 무슬림들을 때려잡겠지만, 그것도 한 두 해지 저항이 과격해지다 보면 결국 국제사회에서 편 들어줄 국가가 필요한 것이다.

백린탄을 민간인 거주지에 쏟아붓고 하다보면 이 미디어와 위성통신의 시대에 국제적 비난을 안 받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게 어디냐 하는 건데…….”

그리고 이런 정환의 걱정처럼, 이스라엘은 미국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생긴 외교적 공백을 메워줄 국가를 발견했다.

중동 진출과 석유에 관심이 많고, 종교적 성향이 전무하며, 범세계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나라.

그 국가의 이름은 중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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