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44화
“뭐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군요. 그 대범하시기로 유명한 정 회장님…… 께서 설마 그런 사소한 걱정을 제게 털어놓으시려고 이렇게 자리를 잡은 거 같지는 않은데…….”
“……이거 숨길 수 가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정환의 지적은 맞는 말이었다.
남북 합의 후 근대 그룹이 북조선에 진출한 첫 기업이 된 지 어언 4년. 그동안 근대는 북조선에서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기실과 로동당의 전폭적인 비호를 등에 업고 수많은 수주를 독점했으며 근대 전자의 TV와 냉장고, CD 플레이어는 벌써부터 북에서 좀 산다는 가정집에서는 반드시 들여놔야 할 필수품이 되었다.
게다가 올해부터 본격적인 석유 채굴에 들어가서 부터는 정유공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과 손잡고 ‘근대오일뱅크’라는 석유 시추/정유회사까지 출범시켰다.
물론 고용인원의 70%를 북조선 인민들로 채워야 한다거나 영업이익의 절반 정도를 다시 북조선에 재투자해야 한다는 등 당연한 제약은 있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현재 남북 경제 교류 국면으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본 기업은 근대 그룹이었다.
그 덕에 덩달아 보유 주식의 가격까지 올라 자기 개인 자산가치도 급격하게 오른 정문영이 이토록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야 할 근심거리란 무엇일까?
“흉금을 털어놔 보시죠. 정 회장님. 정말로 근심하고 계시는 게 뭡니까?”
“……아까 말했던 제 아들놈들 중 몇몇이 이러한 제 사업전략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근대가 그래도 이 나라에…… 그러니까 남에 빚진 게 많은데 국민들로부터 아예 북에 말뚝 박으려는 거 아니냐, 정문영이가 치매 걸렸다 이런 말들이 많다고요.”
“흐음. 그거 참으로 불효막심한 일이로군요.”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다.
지난 40년에 걸친 북한에 대한 거부감과 적대감이라는 게 결코 하루아침에 사라질 성질의 것이 아니니까.
처음 근대가, 정확히는 정문영이 북조선에 가서 경제 교류를 하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저 늙은 왕회장이 나이 들어 고향이 그리운갑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근대가 평양에 들어설 제2본사 착공에 들어갔다는 말이 퍼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결정적으로 아직 그 존재가 의심스러웠던 북한 석유가 정말로 상업성이 있고, 판매까지 시작했다는 말이 퍼지면서 한국인들의 시선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고.
잠깐 고향 냄새 좀 맡고 내려올 줄 알았던 정문영의 평양 체류 기간이 1년 2년 3년…… 하면서 끝없이 길어지자 한국 국민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말이었다.
말하자면 한국 국민들 사이에 위기감이 도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문영이가 나이 들고 정신이 쇠해져서 북괴 심리전 공작원에게 홀렸단다! 근대 그룹을 북에 통째로 갖다 바치려고 한다!”
“석유 독점적으로 캐게 해준다, 남에서보다 훨씬 더 큰 떼돈 벌게 해준다는 말에 홀려서 수십만 근대 가족을 버리고 북괴 빨갱이들한테로 튀었다!”
“정문영이가 평양에 입국해서 김일성 공로훈장을 수여받고 로동당원 선서를 했다는 증언이 있다!”
“정부는 뭐하는 거냐? 우리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글로벌 기업, 근대를 북이 통째로 삼키려고 하는데, 성삼이나 태화 같은 2등 기업들만 남으면 사천만 국민 모두 굶어 죽는다!”
‘뭐 당연히 이런 국내 여론만이 이유는 아니겠지. 한국 재벌들이 언제 그렇게 여론 신경 썼다고 그래.’
정환이 알고 있는 정문영의 아들들의 몇 년 후 행보를 생각하면 그들의 속내는 안 봐도 훤하다.
아니, 사실 후계 문제라는 건 사업가나 정치가나 가장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정문영의 아들딸들의 반발원인은 굳이 미래 지식까지 동원할 것도 없다.
“북에서 근대가 어떤 특혜와 대우를 받고 있는지 말해도 아드님들이 못 믿으시나 보군요. 값싼 노동력과 감세 혜택이 싫다는 사업가도 있습니까?”
“그 애들은 저하고는 다르게 남쪽에서 태어난 애들이니까요. 이북에는 거의 아무런 마음 두는 게 없습니다. 게다가…….”
“……게다가 회장님 사후에 근대라는 왕국을 자기들끼리 나누어가져야 하는데 다 늙어서 은퇴할 아버지가 자꾸 왕국의 부(富)를 이 공화국으로 유출하니 불편하겠죠. 승계 작업 자체나 이후 사업이나 자기들 안마당인 남조선에서 하는 게 편한데, 굳이 물맛도 낯선 이 공화국에 와서 모험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립니까?”
설령 그 과정에 비합법이나 국민정서에 납득하기 힘든 게 있더라도(분명히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정치권이나 사법부에 뿌려놓은 게 많을 테니 여러 모로 편할 테고 말이야.
정환의 직구에 치부를 들킨 정문영은 잠시 주름살 가득한 얼굴을 붉게 물들였지만, 이내 자식문제만큼은 자기도 어떻게 안 되더라 하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털어놓았다.
“여론도 슬슬 달아오르겠다, 정치권의 지원을 받아서 회사를 분사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대통령 박이삼이가 재벌들 고깝게 보기는 했지만 총서기님과 북을 좋아할 양반은 또 분명히 아니고…… 아예 이번 기회에 자기들 밥그릇인 정치 진출하려 했던 정문영이 팔다리 자른다고 국회의원들은 좋아할지도 모르겠군요. 국부수호라는 명분도 충분하고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흐음.”
정문영은 정환이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실망스러워 하고, 심지어 할아버지뻘인 자신에게 분노해서 고함을 지를지도 모른다고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여러 혜택을 대가로 근대에게서 기술을 이전받고 공업 기반을 다진다고 해도 아직 북조선의 산업 역량은 한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근대가 철수하고 공장과 인력을 모두 빼버리면, 이제 막 산업 개발을 시작했던 북조선은 닭 쫓던 개꼴이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근대가 여러 불확실성이 큰 북에 와서 사업을 했던 것에는 근대 그룹에 있어서 절대적이었던 창업주이자 ‘왕회장’ 정문영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는데, 언젠가 정문영 자신은 나이가 들어 죽을 것 아닌가.
80에 가까운 이 나이까지 새벽별을 보며 일터로 출근하는 보람으로 살아왔던 정문영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시간은 분명히 멀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나면, 그동안 회사에, 아버지에게 헌신한 대가로 근대라는 왕가를 분봉(分封) 받을 생각에 눈이 벌게져 있던 자식들이 과연 북에서 사업을 이어나가려 할까?
자신의 칠순 나이만큼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는 해도 자기 자식들에게 그럴만한 모험심도 이북에 대한 애정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모를 정문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정환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럼 아드님들 모두 여기 평양으로 한 번 오시라고 하시죠. 저랑 이야기 좀 하게 말입니다.”
정환의 뜬금없는 말에 정문영은 화들짝 놀라 잠시 눈치 보느라 숙였던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어찌나 놀랬던지 잠시 붉어졌던 안색도 어느새 제 색깔로 돌아와 있었다.
“총서기님…… 진심이십니까?”
“진심이고말고요. 이제 이 북조선이 달라졌고, 남에서 사업하는 것만큼이나 근대가 기업 활동의 자유와 이익 추구를 이 ‘북’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남보다도 더 기업가의 자유를 보장해준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물론 자기들 지분과 재산, 기업지배구조도 말이지.
정환의 장담에도 정문영은 영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아무리 정환이 직접 발 벗고 나서서 설득한다고 해도 자식들이 회사를 쪼개서 남으로 철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이런 정문영의 마음 속 불신을 비웃듯, 정환은 오히려 속으로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IMF때 다 사올 거긴 하지만, 미리 지금 기름칠 좀 해둬야겠군.’
그때 달러 융통을 대가로 한국 기업들을 편하게 사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주주들인 근대 일가의 경영권 보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북에서도 남에서와 똑같이 사업할 수 있으며 나름의 비전을 가진 그들에게 미래 성장 전망도 확보되어 있음을 미리미리 확인시켜서 안심을 줄 필요가 있다.
현 대통령 박이삼이나 다음 대통령 유력 후보인 유민중이 제정신이라면 아무리 외환이 급하다 해도 알토란같은 한국 기업들을 북으로 그냥 넘기지는 않을 테니까.
“만나는 날짜는…… 앞으로 두 달 뒤, 그러니까 내년 초 쯤이 좋겠군요. 마침 그때 회장님 자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구정은 남조선 밖에서 쇠셔도 괜찮으시겠죠?”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 그게 뭔지 제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별 거 아닙니다. 그냥 미래랄까요. 북의 미래, 자기들의 미래 그리고 근대 그룹의 미래, 하하.”
* * *
정환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던 그 시각, 이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서울에서도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양헌아, 네가 보기에 아버님 반응은 어떠시냐? 우리 입장에 대해서 말이다.”
“거 참, 그걸 왜 저한테 물으시는 겁니까? 형님은 명색이 아버지 차남 아니, 첫째 형님 돌아가신 후에 실질적으로 우리 근대 장남, 태자 노릇 해오셨으면서. 이럴 때 대표로 나셔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늙으신 아버지 심기 불편하게 해드리는 이런 일만 저한테 떠넘기시고는…….”
“태자? 말본새 하고는…… 아버님이 양헌이 너를 제일 예뻐하시는 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일가 피붙이들 중에 모르는 사람 있느냐? 지금이야 네가 전자랑 선박만 가지고 있지만, 아마 좀 지나면 이 근대의 대들보, 말하자면 옥새(玉璽)인 근대 건설도 너한테 넘겨주실 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 형님! 국민학교 계집애도 아니고 지금 질투하십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형님이야말로 아버지 대타로 감옥살이까지 한 번 다녀오셨는데 아버지가 저만 편애한다고 야료 부리시는 거예요?”
“뭐? 야료? 이놈이…… 아주 그냥 이 형한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아주 몇 마디만 더 하면 이 형 따귀 한 대 올려붙이겠네? 어디 한 번 쳐봐라, 이놈아!”
“형님! 다섯째 형님도 좀 참으십쇼! 사옥에서 직원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십니까!”
“도련님 말씀이 옳아요, 여보, 당신도 그만 해요!”
“옳긴 뭐가 옳아? 양준이 너는 이제 회사 손 떼고 정치한다고 사회자 행세 하려는 거냐? 하기야 너야 알짜배기 중공업 지분 들고 있으니 사과박스 걱정이야 없겠지, 안 그러냐?”
“아, 형님 좀!”
서울 교동에 위치한 근대 건설 사옥의 한 회의실에서는 형제간에 서로 날선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비록 장소와 사회적 위치를 의식해서인지 서로 대놓고 비방이나 욕설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들 사이의 대화를 들어보면 누구라도 이들이 친근한 형제지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을 정도였다.
서로 씩씩거리다가 마침내 어느 정도 다툼이 소강상태에 이르자, 처음에 말을 꺼낸,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최상석의 50대 중년 남성이 한숨 쉬듯 중얼거렸다.
“아무튼…… 지금 국민 여론 안 좋다는 거, 아버지가 충분히 인지하고 계시겠지? 청와대 쪽도 지금 YS가 칼 갈고 있다는데…… 설마 그것도 감이 안 오실 정도로 빨갱이들한테 넘어가신 건 아니어야 하는데…….”
“아이고, 형님. 아버지가 아무리 나이 드셨다고 해도 어떤 분이신데…… 아직 돈 냄새 맡는 사업 감 하나는 멀쩡하십니다. 당장 양준이한테만 물어봐도 되지 않습니까? 양준아, 너네 회사도 저기 명천인가 거기서 기름 좀 수찮게 캐지 않았냐, 이 형 말이 틀려?”
“저 회사에서 손 뗀지 몇 년인데 거기 왜 끼워 넣으십니까? 형님이야말로 그 젊은 총서기라는 양반이 저기 이라크 전쟁 나고 그 복구 물량 다 몰아주지 않았습니까, 나이는 형님 조카뻘인 친구가 수완도 좋아요. 양키 코쟁이들한테서 그건 또 어떻게 뺏어왔는지…….”
“정신 차려, 이 녀석들아, 아무리 그래도 걔네는 이 대한민국처럼 선거로 대통령 뽑는 나라가 아니라 공산당 김씨 일가가 대대손손 물려가며 해 먹는 나라다. 지금이야 단물 빨게 해줄지 몰라도 언제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 회사 다 들어먹을지 모르는데…… 정치인들 말 못 믿는 거 다들 알면서들 그래? 아버님이 나이가 드시니 고향 가보게 해준다는 말에 혹하셔서 그렇지…….”
“그걸 누가 압니까? 당장 형님도 십년 정도 지나서 그 많은 북한 인민들이 이제 곧 자동차 타고 다닐 정도로 지갑이 넉넉해지면 생각이 좀 바뀌실 걸요? 형님 자동차 부문 욕심내시는 거 그룹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그런 날이 어느 천 년에 온다고? 물론 지금이야 이북이 빠르게 성장세를 타고 있기는 하지만, 아산연구원에서나 어디에서나 곧 한계에 부닥치고 한국 국민소득 넘기 힘들 거라고 전망하는데…… 진짜 통일이라도 하면 모를까, 끌끌.”
그 지적에 최상석의 50대 남성, 정문영의 차남 정양구 사장은 조금 전과는 달리 약간 유보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여전히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확실히 동생들의 말대로 그의 숙원사업은 처음 아버지를 따라 근대에 들어왔을 때 부품과 과장으로 시작해서 손에 기름때를 묻혀온 자동차 사업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견지에서 볼 때, 북에서 자동차 사업을 전개하고 키우는 건 한계가 있었다.
특히나 자동차 사업은 후발주자가 미리 앞서간 일본과 독일, 미국의 기업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국내 내수시장이 받쳐주면서 기술력과 자본 축적의 기간을 가져야 했는데.
북한의 성장세가 계속된다고 해도 인구수라는 근본적인 벽을 넘기는 힘들지 않은가.
그러니 결국 근대는 죽으나 사나 애국심 마케팅이 가능한 남에 남는 것이 살 길이고, 그러자니 근래 여론의 동향은 ‘국산품 애용’이라는 정책적 배려 아래 국내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자동차 장사하던 정양구 사장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편애를 받는 다섯째, 지금 자신과 말다툼을 치른 정양헌 사장이야 경영권 보장만 된다면 이북 진출에 관심이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에게는 영 아니올시다, 였다.
‘이번만큼은 아버지가 잘못 판단하신 거다. 정 아버지 뜻이 확고하시면…… 그때는 근대와 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내가 결단을 내려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