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42화 (14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142화

‘민주주의에 관련된 불온서적이 대학가에 퍼진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부터 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기는 했어.’

긴장한 얼굴들의 당원들 앞에서 마이크에 대고 핵심당교에 선발되는 당원의 선발 방식과 받게 되는 교육을 읊으면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개혁개방 후 3년, 그동안 각종 기관들과 매체를 통해 열심히 차단하고 검열하고 처벌해왔지만, 사실 체제의 중심에 서 있는 그 조차도 외부세계의 물결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다.

개방 후인 지금도 (민주주의와 시민의 권리를 그 혹독한 투쟁을 거쳐 쟁취해왔고, 지금도 쟁취 중인) 한국과의 직접적 교류는 여전히 크게 제한되어 있지만.

점점 정보통신이 발달해 가는 이 시대에 고립된 섬으로 남아있는 건 체제와 국가의 모든 에너지를 거기에 쏟지 않고서야 불가능했다.

게다가 애초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손을 잡은 것이라고 해도, 현재 북조선 안에 가장 많이 들어와 있는 외국인부터가 민주주의가 국가 근본이념인 미국의 국민들, 미국인 아닌가.

미국과 손을 잡겠다, 최소한 대립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는 그 미국의 모든 체제와 사상과 북조선이 양립가능하다는 뜻이고…….

그 말은 암묵적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라고 인정한 것이다.

정환도 각 개개인이 권리를 가지고 평등한 개인으로 존엄성이 있다는 것까지는 민주주의에 동의했다.

하지만 정치 참여는 다른 문제였다.

장성택이 철직당한 이유는, 그가 유혜림에 대해 쑥덕거린 모욕이 정환의 심기를 긁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가 혈통 세습을 추진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시대가 정말로 바뀐 줄은, 그리고 정환이라는 지도자가 김일성이나 김정일과는 전혀 궤가 다른 인간임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새로 설립되는 핵심당교는 공화국 인민이면 누구나 입교가 가능하며, 자본주의 시장경제, 철학, 수학, 금융공학, 국제관계학, 화술, 기초적인 예술 소양, 체육 등에 이르기까지 차기 공화국의 핵심에 필요할 모든 것을 가르칠 것입니다. 당교의 위치는 평양이 될 것이며, 초대 교장은 저, 김정환 총서기가 겸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입학시험만 통과하면 학비는 전액 무료이며, 원한다면 유학비용도 전부 당과 국가에서 지원할 것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기상 인민들을 설득하기 매우 좋다는 거지. 지금 러시아 돌아가는 꼴을 보고도 민주정을 시행하자고 할 사람은 용감한 놈이 아니라 멍청한 놈일 테니까.’

지금 발표하는 신고 포상금 제도뿐만 아니라, 이미 북조선 인민들로 하여금 민주주의를 스스로 거부하게 만드는 정환의 공작은 시작되어 있었다.

그중 제 일보는 바로 로동신문과 지상파 3사 같은 관영 방송을 통해 옐친 휘하에서 민주주의를 급속하게 도입한 러시아의 ‘참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프로파간다라고 하기도 뭣한 게, 러시아의 개혁, 급격한 민주주의 도입을 적극 지지했던 서방과 미국의 학자들까지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만큼 러시아는 1년여 만에 망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환과 그의 지시를 받든 현영숙, 그리고 (검열위원회의 통제를 받는) 민관 방송사들이 한 일은 그 혼돈을 날 것 그대로 인민들에게 보여주는 일밖에는 없었다.

물론, 인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양념’을 약간 쳐서.

-……불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 방송을 보시는 공화국의 인민 시청자 여러분, 지금 우리는 너무나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로씨야의 인민대표회의장, 국회의사당이 포격을 받아 불타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러시아 인민들의 참담한 얼굴에 저희들까지도 가슴이 미어질 것 같습니다.

-이 사태는 로씨야의 국가지도자, 옐친 동지와 민주주의 의회 간의 극단적 대립이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쏘련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사태를 지켜본 한 로씨야 인민의 인터뷰를 인용해보겠습니다.

‘자유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무책임과 혼돈이었다. 옐친 동무의 민주주의 도입을 지지한 그 당시가 후회된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라는 군요.

-함께 사회주의의 붉은 깃발 아래 서 있던 동지 국가의 인민으로서 현 로씨야의 비극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총서기 동지와 같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나라의 비극일까요? 아, 말씀드린 순간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인 남조선에서 날아온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몇 달 전 남조선의 박이삼 대통령 동지가 공직자 재산 공개를 명함에 따라, 날이 갈수록 정부 고위 관리들과 군 장령 등 고관대작들의 부패, 착복 혐의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분노한 남조선 인민들의 신세한탄과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언론을 통제하니 이럴 때 편하군.’

요컨대 언론플레이, 땡전뉴스(아니, 땡김뉴스인가)의 시작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박이삼의 취임을 기점으로 금융실명제 및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제도가 출현하는 것에 맞춰서 정환은 현영숙에게 남조선 뉴스를 보도하는 것을 허가해주었다.

사실 러시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환과 조선로동당의 나팔수가 된 조선중앙방송이나 선전선동부장 현영숙이 대놓고 거짓말을 한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현 시점에서 한국의 정경유착이 북조선보다 극심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선전선동부에서는 저 모든 부패와 혼란의 원인이 지도층의 부덕으로 인해 체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의도적인 해석을 덧붙여 방송을 내보냈을 뿐이다.

사실 현재 북조선의 부패가 한국보다 덜 심각한 것은, 정환과 반부패수사국의 지속적이고 엄혹한 단속(일정 액수 이상 걸리면 사형) 덕도 있었지만.

그냥 북조선이라는 나라가 현재 고위층들이 뭔가를 크게 해먹을 만큼 부유한 나라가 아직은 아니라는 점이 더 크기는 했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인민들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이 있기를 바라며, 이상으로 오늘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짝짝짝짝……!

정환이 마음속으로 민주주의라는 자신에 대한 새로운 위협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피오니 홀딩스 본사착공 기념 축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고 곳곳에서 총서기 만세를 외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정작 당사자인 정환은 딴 생각을 하느라 영혼 없이 읽은 축사였지만, 듣는 인민들과 당원들 입장에서야 자신들의 운명과 직결된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집중해서 들을 수밖에 없었다.

“다녀왔어.”

“수고하셨습니다, 동지.”

연단에서 내려와 유혜림의 옆에 앉아서, 정환은 아직 가림 막에 가려져서 기단부만 슬쩍 보이는 북조선 최초의 마천루, 평양국제금융센터를 곁눈질했다.

사실 이번 행사에서 이례적으로 대중 연설까지 한 정환의 진정한 ‘연출 의도’는 바로 이 마천루의 완공 시점에 있었다.

이 마천루의 총 공사 기간은 4년하고도 6개월, 즉 저 건물이 완공되어 평양에 그 위용을 드러낼 때 즈음이면 20세기는 마지막 몇 년을 남겨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자신만이 아는 정보지만 그때쯤 대한민국 아니, 남조선에는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적 위기, 외환위기가 닥쳐 경제 주권이 넘어가느냐 마느냐 하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고작 10년 만에 평양에 거대한 마천루를 세우고 경제적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북조선과, 달러가 급해서 IMF를 비롯한 외세에게 손을 벌리는 남조선의 모습은 어떤 자가 보아도 극명하고도 처절한 대비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공화국의 모든 인민들은 그때야말로 뼈에 사무치게 깨달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헛된 꿈이며 오로지 당과 총서기(정환 뿐만이 아니라 그 뒤를 이을 새로운 총서기도 포함해서)에게 충성하며 그 영도를 따르는 것이야말로 자신들이 살 길임을.

* * *

20세기의 마지막 10년도 슬슬 반 가까이 지나가면서, 북조선은 날이 갈수록 몰라보게 변하고 있었다.

사회주의 통제경제체제를 버리고 자본주의를 도입했으니 빠르게 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중 가장 급격하게 변한 것 중 하나는 민간 경제, 인민들의 생활뿐만이 아니라 당(黨), 즉 조선로동당이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환의 연설과 그 이전 장성택의 철직은 당원들 모두에게 일종의 경고였다.

이제 변해야 한다는 경고.

그리고 그러한 경고는 정환의 연설 이후 본격적으로 법제의 모습을 갖추고 현실화되기 시작되었다.

고위공직자 재산 백지신탁 제도, 체제 위협분자 신고포상금 외에도 몇 가지 대표적인 변화를 들자면, 세정(稅政)위원회(국세청)의 도입, 산업체들의 자금 조달을 위한 산업은행 설립 등등이 있었지만 로동당 당원들에게 가장 와닿는 변화는 바로 경쟁체제 도입이었다.

-앞으로도 우리 로동당이 북조선이라는 국가에서 인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일당우위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로동당원들이 먼저 일일신 우일신을 실천해나가야 할 것이다.

연설 내용 중 로동당원들로 하여금 가장 우거지상을 짓게 한 대목이었지만 정환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생각하는 북조선의 미래상은 자의든 타의든 국가주도의 개발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러자면 정부와 당의 말단신경과 손발이 되어줄 공무원 중 무능하고 복지부동인 철밥통들은 부패와 함께 최대최악의 적이므로 가급적 빨리 멸종시켜 버려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으니까.

인사고과, 다면평가제도, 신입당원을 위한 연수제도가 실시되었으며 한국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당원기율위원회가 정치국 산하에 신설되었다.

또한 김대의 심리학자들과 행정학 전문가들은 특명을 받아 다국적 기업 인적성 검사를 모티브로 한 당무기초자질 시험을 설계하였고.

물론 그러한 ‘자질’ 중에서 로동당의 강령, 수령의 1인 지도체제에 동의하고 자신이 그 체제의 선봉이자 말단이라는 점에 대한 이해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였다.

이제 조선로동당의 당원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 8: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했다.

타국가의 공무원들 기준으로 보면 거의 민간 대기업 수준의 노력을 요구하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난관이었지만 정환은 핵심 당교 입교자들을 최고로 뽑기 위해서는 ‘1차 통과자’들인 일반 당원들도 소양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쯤, 중국에서는 예상하던 반응이 진행되고 있었다.

“장성택 동무가 숙청당했다고?”

“네, 장 총서기 동지. 생사는 불명입니다만, 아마도 조선 내부의 권력 다툼에서 진 게 아닐까 하는 게 대사관의 추측입니다.”

“흐음…….”

장쩌민은 복잡한 심경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젊은 친구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 친구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장쩌민은 지난 번 에 첫 북중회담 때 만났던 정환, 조선로동당 총서기의 얼굴을 떠올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기본적으로 조선의 내부 문제는 조선 인민들과 조선로동당이 알아서 할 일이다.

중국과 조선이 상하관계가 분명한 우방국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미국에 붙어버린다던가 하는, 대놓고 삐딱선을 타지 않는다면 중국도 북한의 지배세력, 김씨 왕조와 조선로동당의 권위를 최소한도로 존중해줘야만 했다.

아무리 장성택이 친중인사에, 중국 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 이념에 자주 지지와 은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해도 내부 인사 문제에까지 훈수를 두는 것은 엄연한 내정간섭이다.

‘안 그래도 티베트 자치구 같은 내부의 문제가 만만치 않은데…… 일단 불러서 타일러봐야겠군. 정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히 하고.’

예전부터 중국의 소수민족 중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던 위구르 무슬림들에 티베트부터, 얼마 전부터는 파룬궁인가 하는 명상수련 집단이 공산당에서도 단순한 기공수련집단이라 보기 힘들 만큼 신도를 모으고 있다는 보고가 연일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티베트야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공안을 동원한 폭력으로 때려잡고 있었고, 파룬궁 역시 더 세를 키우면 불법집단으로 규정해서 해체해버리면 그만이지만, 위구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요즘 장쩌민의 새로운 골칫거리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파키스탄 주류민족 파슈툰 족들이 위구르인들과 종교는 같지만 민족적으로 거리가 멀고, 그나마 튀르크 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터키는 자기들 일 신경 쓰느라 바쁘다는 게 그나마 위안거리였는데…….

그런데 이 와중에 이제는 태평양으로 향하는 뒷문을 지키던 북조선까지 뜻밖에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 양 주석이 병석에 누워있다는 것이니…… 태자당 그 겁 대가리 없는 어린 애송이 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에 김정환 동지를 불러서 잘 달래야겠어. 이 기회에 경제적으로 조약도 몇 개 더 체결해야겠고 말이야.’

갑작스럽다 못해 거의 충격적이었던 장성택의 철직에 인민해방군과 중앙군사위를 중심으로 뭉친 당내 보수파들은 벌컥 화부터 냈지만, 다행인 것은 그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양상쿤이나 천윈이 요즘 들어 시름시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골골하는 거야 전혀 이상할 게 없었지만, 그들의 뒤를 이어야할 2세대 태자당들이 아직 장쩌민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 영향력이 강하지 못한 게 장쩌민과 정환 양쪽 모두의 행운이었다.

“주조선 대사관에 연락을 넣게. 김정환 총서기에게 내가 조만간 한 번 더 보자고 전달해달라고.”

여기까지 말한 장쩌민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생각났다는 듯한 마디 덧붙였다.

“경제문제라고 하는 거 잊지 말게. 어차피 말은 이렇게 해도 그쪽에서도 장성택 동무 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테니.”

“옛! 장쩌민 총서기 동지!”

* * *

그렇게 물밑에 깔린 미묘한 긴장과 신경전, 그리고 정치적 계산속에서 조중 2차 정상회동의 판이 깔렸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저 멀리 지구 반대편, 소말리아에서는 또 다른 태동이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바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에 의해 군벌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ed Farrah Aidid)의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 작전이 개시되었던 것이다.

작전명 고딕 서펀트(Gothic Serpent), 후일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이라는 대중적인 이름으로 알려지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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