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37화
48장. 지식재산권
동서고금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젊은이들은 유행에 민감하다, 그리고 그건 세계제일의 폐쇄국가인, 아니, 폐쇄국가였던 북조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거, 진짜 확실한 거이지?”
“그러믄입쇼, 소문 듣고 찾아오신 거 아닙네까? 저 리용환은 이제까지 태어나서 손님께 개나발을 분 적이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없습네다.”
나이도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평생 운운하기는…… 하고 오늘의 손님, 평양 내 대학 신입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은 속으로 비웃었지만 그 감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현재 모든 그의 눈과 귀는 현재 이곳, 평양 평천 구역 어딘가에 위치한 유명한 장마당의 한구석에 펼쳐진 리용환의 노점에서 구한 물건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 물건은 일제 카세트 플레이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워크맨이었다.
“이거이 진짜 그…… 일제 워, 워크…….”
“워크맨이요, 워크맨! 손님. 요즘 총서기 동지 밑에서 공화국 바뀐 지가 언제인데 뭘 가슴 졸이며 말씀하십네까. 요즘은 그거 가지고 보안원이 뭐라 안 그럽네다. 뒷돈은 좀 고여도…….”
그조차도 근래는 반부패수사국(날이 갈수록 힘이 세지고 있었다.)의 단속으로 인해 합법적인 사업장에서는 불가능하고 용환 같은 불법 업자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찔러 넣어주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환 같은 노점상들 사정이었고, 그의 손님이 걱정하는 것은 이 워크맨이 진짜냐 아니냐 뿐이었다.
“진짭니다, 진짜. 제 부모님을 걸고 맹세하갔습네다. 여기 표딱지도 제대로 붙어 있진 않습네까? 대학생 동지라 그랬으니 저보다 잘 알갔지요? 진짜! 틀림없는! 일제 쏘니(Sony) 워크맨입네다!”
“음…….”
이제 갓 지방에서 평양으로 올라온 듯한 그 젊은이는 목소리 높여 외치는 용환의 장담에 실눈을 뜨고 표딱지, 카세트 플레이어 브랜드를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가 비록 대학 입학을 위해 저 멀리 함남 시골에서 평양까지 올라왔다고 해도 카세트 플레이어가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시험 삼아 테이프를 넣고 재생을 시켜보니 음악(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도 시원하게 들리는 게 진짜가 맞는 듯했다.
손님이 이렇게 카세트 플레이어가 진짜인지 아닌지에 집착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는데, 지방에서 살다 온 시골뜨기인 그가 평양에서 또래 동무들 사이에서 면이라도 좀 세우고 처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는 외산을 들고 다니지 않고서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경애하는 총서기 동지의 개혁개방 이후, 공화국에 급속하게 들이닥친 시장화의 물결 최전선에 서 있는 평양, 그리고 그 평양에서도 최신 유행의 선도자는 남쪽과 비슷하게 단연 대학생들이었다.
지금 용환에게 일제 워크맨을 사려는 대학생 동무 역시 시골에서 갓 상경해 넉넉지 않은 형편에 동문들, 즉 ‘좀 산다는 당 간부집’ 자녀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좋아, 여기서 눅은(싼) 값으로 구할 수 있다고 들어서 찾아왔는데 확실히 이 값이면 되갔군. 여기 있네.”
“감사합네다! 또 찾아주시라요!”
방아깨비처럼 허리를 숙이는 용환의 배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손님은 싱글벙글하며 시끌벅적한 평천 장마당을 떠나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용환은 굽혔던 허리를 바로 세우고 바닥에 침을 탁 뱉었다.
“제에기, 젊은 놈이 뭐 저리 의심이 많아? 자기도 눅은 값에 싸려고 여기 찾아온 주제에……. 대학까지 다닐 정도면 돈푼깨나 있는 집안 놈일 텐데 손 작기는…….”
자기는 집안 형편도 여의치 않고 무엇보다 고향에서 중학교도 간신히 나와 평양으로 온 몸이라 대학을 다니고 싶어도 못 다니는 신세다.
가끔 상학시간(수업시간)이 끝나고 하교하는 또래들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자신보다 좀 더 축복받은 환경에서 태어난 그들을 질투해 본 적이 없지는 않지만,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앞으로 이 공화국은 학벌이 아니라 돈이 전부가 될 것이고, 진짜 돈을 벌려면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사업을 해야 한다는 건 아직 스물도 안 된 용환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저 대학 나와서 꺼떡대는 것들을 내 발가락으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부려줄 테다.’
그렇게 속으로 독기를 품은 용환은 좌판을 주섬주섬 치우고 슬슬 오늘 장사를 마감할 준비를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 하던 배달 일을 그만뒀던 건 한푼 두푼 돈이 좀 모이자 그 스스로 장사를 꾸릴 결심을 품게 되어서부터였다.
돈이 모자라서 아직 정식으로 업장을 차리거나 당에 사업자 등록을 할 수는 없어서 이렇게 노점 좌판을 차릴 수밖에 없었지만, 배달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를 주워들으며 요새 ‘뜨는 아이템’이 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일단 이렇게 닥치는 대로 장사를 해서 밑천을 모아 언젠가는 진짜 큰돈을 벌어줄 사업을 하는 게 용환의 꿈이었다.
“자, 기럼 서둘러서 도매상한테 가봐야겠구만. 요즘은 너도나도 이 장사에 뛰어드니 얼른 가야 공장에서 막 떼오는 즉시 받을 수 있갔어.”
용환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짐 보따리를 싸 자리를 떴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워크맨 같은 전자제품을 포장하던 종이 곽만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종이 곽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It's a Somy
So‘m’y.
그렇다, 용환이 도매상에게 떼와 팔던 건, 그때쯤 한창 공화국에 자생적으로 자라나기 시작하던 전자제품 조립 공장에서 제조되고 유통된, ‘짝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은 서기실과 총서기 정환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 * *
“하하하…… 이거 참…… 동무들, 이건 어떻게들 생각하시오?”
“…….”
정환은 참 간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복잡한 표정을 한 정치국 위원들 사이로 문제의 So‘m’y 워크맨을 툭 던졌다.
정치국 회의 테이블 위에는 문제의 워크맨 빼고도 오늘 회의석상에서 ‘증거자료’로 제시하기 위해 공화국 각지의 장마당에서 돌아다니는 짝퉁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 종류와 다양성, 그리고 독창성(?)은 원역사를 통해 이미 이런 현상을 어느 정도 짐작했고 또 메이드인 차이나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정환도 헛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아‘비’다스(Abidas) 운동화. ‘카’넬(Khanel) 향수, 오‘뮤’가(Omuga) 시계, 캘빈 클‘레’인(Calvin Clein) 청바지까지…….
전자제품부터 옷, 향수 같은 사치재부터 과자 같은 소모성 식자재에 이르기까지, 국적도 일본, 프랑스, 미국 등 다종다양했다.
망부석처럼 말이 없는 정치국 간부들 앞에서 정환은 장마당에 유통되는 북조선산 짝퉁(가품이라는 말로 순화하기는 했다)에 관한 보고서를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흠, 중국산도 상당수 섞여 있지만, 개혁개방 후 근래 들어서는 공화국 내 민간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한 짝…… 아니, 가품들도 점점 유통되고 있다는 말이지. 게다가 나름 불티나게 팔린다라? 하기야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생기겠지. 장 부장 동지.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 그거이……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네다…… 총서기 동지……. 아직 저희 공화국의 공업력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에 많이 못 미치는지라…….”
얼굴을 붉히며 짜내듯이 말하는 장성택의 말은 정치국 위원들과 당 간부들의 곤란한 심경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세상에 자기 나라 기업소들이 다른 나라 기업 브랜드들을 조잡하게 흉내 내서 팔아치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할 국가수반은 없다. 최소한 정신이 제대로 박혔다면 그렇다.
게다가 보고를 듣는 총서기는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모래알을 달러로 바꾸는 신묘한 재주를 부려 온갖 좋은 것이란 좋은 것은 다 먹고 입어본 사람 아닌가.
그런 사람이 공화국에서 타국 브랜드를 흉내 낸 짝퉁을 생산하고, 또 자기 인민들이 그걸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광경을 보고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고 짐작했다.
이전에도 있는 집 자식들은 다 외산 같은 건 공공연하게 가지고들 있었고, 답답한 공화국 풍조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팔리기도 했지만 근래 들어 평양을 중심으로 공화국에 갑작스러운 ‘짝퉁 외산 열풍’이 불어 닥친 건 개혁개방 외에도 필유곡절이 다 있었다.
얼마 전 중앙 검열위 위원장 현영숙을 통해 들어온 보고도 바로 그런 세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영숙 부장 동지. 이걸 좀 보십시오, 요즘 평양을 중심으로 대학생 동무들 사이에서 이런 게 퍼지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건 다음 검열위원휘 백과에 반영하셔야 하실 것 같습네다.
-……? 동무, 이제 공화국도 바뀌고 있으니 인민 생활에 직접적으로 불건전한 영향을 주거나 총서기 동지와 로동당의 체제에 직접적으로 반대되는 것만 아니면 허용하라고 했을…… 이게 뭔가요?
-그 소위 패션 잡지입네다. 요즘 평양 녀성 대학생 동지들 사이에서 이놈이 그렇게 인기라는군요. 주로 째포들이 일본에서 들여와서 팔고 있다는데……. 평양 시내 미용실에서는 벌써부터 이놈을 항상 비치하고 있답니다. 이건 어디서 어떻게 검열을 해야 할지 잘…….
짝퉁 생산과 유통의 갑작스러운 증가는 정환도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기인했는데, 그건 바로 대학 교육의 평등화였다.
원래 예전, 그러니까 김정일 장군님 시절 같으면 평양에 소재한 대학, 김대는 물론이고 이공계의 김책 공대, 예술계의 김원균평양음악대, 무용대 등 모든 평양의 대학교들은 반드시 출신 성분 검사를 통과해야만 입학 여부가 결정되었다.
학생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부모가 북한의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가 더욱 중요했고, 그중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줄기’에 속하면 김대쯤은 어렵지 않았다.
김일성 주석과 함께 빨치산 투쟁을 하고 이 공화국을 세운 ‘백두산 줄기’, 조국해방전쟁(6.25)에 참전한 유가족들 후손인 ‘낙동강 줄기’, 그리고 김정일 장군님과 동문인 ‘룡남산 줄기’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핵심계층들이 모여 사는 평양에서 신입생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환이 총서기로 집권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출신 성분이 성분인 만큼 권력 이동에 민감한 평양 공민들 사이에서는 다음에는 어느 줄기가 권력의 핵심부에 들어갈 것인가가 한동안 관심거리였는데, 서기실에서 전혀 뜻밖의 포고가 있었던 것이다.
-김일성 대학 및 공화국 모든 대학은 앞으로 전적으로 실력주의에만 기반한다. 출신 성분이 안 좋아도 전혀 상관없으니 공평하게 상학(수업) 성적과 시험 결과에 따라서만 대학생을 뽑도록 하라. 또한 로동당 입당 절차도 마찬가지로 당성과 실력으로만 가부를 결정한다.
어느 순간 소리 없이 사라진 김정일 장군님의(전 보위부장의 쿠데타로 돌아가셨다고 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장례식과 애도 기간이 너무 짧아서 뭔가 수상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룡남산 줄기가 몰락하는 거야 기정사실이었지만, 이건 예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새 총서기는 일본에서 잠시 도피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고 김용건 외무부장이 측근이라고 하니 째포(재일교포)들이 중심이 되는 소위 ‘후지산 줄기’가 대세가 될 거라는 예측도 상당히 우세했는데, 그 예상이 보기 좋게 엎어진 것이다.
그리고 실력주의로 평등하게 경쟁을 하니 당연히 평양뿐 아니라 공화국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또 생전 처음 본 평양의 ‘세련된’(북조선 기준) 최첨단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은 정환이 취임 이후 열심히 복구시킨 교통, 통신망을 타고 지방에까지 밀어닥쳤다.
그리고 이러한 ‘평양 스타일’의 풍조는 개혁개방의 여파와 함께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제껏 없었던 사치품 소비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양의 대다수 공민들, 그것도 갓 상경한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이나 젊은 녀성들이 평양 보통강 거리 중심가에 들어서기 시작한 ‘진짜’ 까르띠에나 프라다 매장에서 쇼핑을 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아니었으니, 결국 그 대체재로 등장한 게 이런 짝퉁이었던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이렇게 전문적으로 짝퉁을 생산하는 업체는 공화국 내에 수십여 곳이 넘으며 이 업체들은 도매상에게, 그리고 이 도매상들은 다시 소매상에게 넘겨 유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평양 평천 구역을 중심으로 한국의 동대문 거리처럼 거대한 짝퉁 전문 장마당과 그곳에 물건을 대는 인력들이 형성되어 있고 그곳에서 용환처럼 좌판을 펼치고 장사하는 공민들만 해도 수천 명 단위라는 게 오늘 회의에서 정환이 들은 보고의 골자였다.
하지만, 불호령을 예상했던 장성택을 포함한 당 간부들의 예측과는 달리, 정환은 의외로 태연했다.
“이건 좋은 징조일세. 안 그런가?”
“……즉시 공화국 국산품 사용 증진 운동을 실시하고 장기적으로는 경공업력 향상과 공화국 토종 기업 육성에 더욱 힘을 기울여 이 치욕을…… 네?”
“좋은 징조란 말일세. 이제 이 공화국이 기업 육성의 첫 단계를 밟아나가고 있다는 얘기니까 말이야.”
“지, 진심이십네까?”
“물론 진심이지.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럼 장 부장 동지는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 공화국 기업들이 순수하게 자력으로 세계적인 상표를 만들어낼 줄 알았나?”
문제의 So‘m’y 카세트 플레이어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정환은 중얼거리자 대부분의 당 간부들은 한편으로는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외라는 듯 정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특히 정환이 인상적으로 생각한 것은, 구찌나 프라다 같은 외산 명품의 짝퉁뿐만이 아니라, 이 카세트 플레이어처럼 소비자 가전제품에 대한 짝퉁도 중국뿐만이 아니라 상당수가 북조선 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디자인이나 상표 정도만 베끼면 되는 의류와는 달리, 전자제품은 아무리 짝퉁이라도 최소한 구매 후 한 달 정도는 문제없이 돌아가야 소비자를 속일 수 있다.
그러니 이건 곧 북조선 민간 기술자들이 외산 카세트 플레이어 데드 카피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뜻 아니겠나.
당장 이 Somy 카세트 플레이어만 봐도 그랬다.
‘짝퉁치고는 제법 괜찮군.’
부품이야 상당 부분 수입해 온 것이고, 당연히 진짜 일제는 물론이고 한국산 마이마이보다 만듦새나 완성도는 많이 떨어졌지만, 이제까지 중앙당의 통제를 받는 국영 기업소나 공장에서 만든 것에 비하면 그나마 봐줄 만한 품질이었다.
‘더 고무적인 건, 이런 걸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제조하고 유통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거지. 물론 아직 자체적인 기술력이나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뭐 다들 이렇게 시작하는 법 아니겠어.’
게다가 이러한 짝퉁들의 생산, 그리고 소비는 공화국 인민들의 평균적인 소득 수준이 일정 궤도에 도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런 짝퉁들은 대개 사치재다, 그리고 사치재를 소비할 여유가 있다는 건 일단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는 뜻 아닌가.
‘뭐 한국 기업들도 처음에는 다 이렇게 자본과 기술력을 축적해서 자체 브랜드를 시작했으니까, 당장 나도 어릴 때 장롱 뒤져보면 나이키 짝퉁 나이스(Nice) 운동화가 나왔으니까. 본격적인 개방 3년 만에 이 정도면 꽤 빠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짝퉁의 범람을 마냥 방치해 둘 생각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총서기 동지께서는 인민들의 이런 외제 물산 복제를 그냥 놔두실 의중이시라는…….”
“물론 그건 아닐세. 외국 기업에 피해가 가서 그들이 공화국에 투자를 망설이게 되는 건 일단 부차적인 문제고, 혹시 정말로 참신하고 경쟁력 있는 아이디어를 가져올 공화국 기업인들이 이런 가품의 범람으로 기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건 나아가 우리 공화국 전체의 피해니까.”
즉, 한마디로 이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국가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체계적, 법률적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