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128화
44장. 김정환 인민과 김정일 인민
‘본의는 아니었지만 내가 박이삼을 도와준 격인가? 아니, 한국 정치의 질적인 성장에도 간접적으로 기여했다고 자평한다면 누가 믿어줄 런지 모르겠군.’
정환은 26세에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시작하여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고 마침내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박이삼의 이력을 조망하는 고려일보 기사를 쭉 읽어보며 그렇게 쓴 웃음을 지었다.
물론 유민중의 불출마 사실 자체야 잘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하여 박이삼이 낙승할 거란 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나비효과인지 그동안 정환이 남쪽 신문을 꽤 열심히 봤음에도 그가 살던 시대에서도 유명했던 모 복집에서 ‘우리가 남이가’ 사태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원 역사와는 다르게 여권 내 돌발변수가 돼서 대선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정문영이 지금 북의 그의 곁에서 일하게 됨으로서 승산이 적다고 판단한 야권 내 최대 기대주 유민중이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덕분에 80년대부터 정치인들이 조장하고 적극 이용해오며 이번 대선에서 정점에 달해 터져 나왔어야 했던 영호남 간 지역감정도 제 풀에 김이 빠지고 슬슬 꺾이기 시작한 모양새였다.
불출마 선언 직후 고려일보를 비롯한 보수 계열 언론들은 ‘유민중의 대통령 병이 드디어 나았나 보다’며 비웃음 섞인 기사를 냈지만 동시에 경계감이 가득 섞인 듯한 신호도 감지되었는데, 대통령이 된 박이삼이 그전부터 예고했던 대로 개혁의 칼을 빼들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발전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북한도 변했고, 지금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 대한민국이 안 변해서야 되겠습니까? 영호남 지역감정, 정경유착! 그리고 무엇보다 군부의 정치 개입! 이 모든 구태들! 악습들! 마이 묵었지 않습니까? 이제 고만해야 합니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올해, 그러니까 93년 신년 초부터 군사반란에 참여했던 하나회 출신 장성들을 우수수 쳐내면서 박이삼이 한 말이었다.
겉으로는 표현 못해도 수면 아래서는 많은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지역감정 같은 걸 이용했다는 정치적 부채도 없이 무려 60%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박이삼 대통령에게 다른 말을 할 수 있을 리 도 없었다.
* * *
“미국 측에 재선 축하 공문은 뭐라고 보낼까요, 총서기 동지?”
“별로 길게 쓸 필요 없네. 그냥 이길 줄 알고 있었다고 쓰게.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함께 해내기를 기대한다고도.”
뭐 사실이기도 하고.
클린턴이 마리화나 게이트로 인하여 나가떨어진 후, 무주공산이 된 미국 대선판은 현직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여유 있게 승리했다.
정환 자신은 태평양 반대편에 앉아 중요한 시기에 몇 번 등을 떠밀어 준 것밖에는 없고, 또 자신이 부시의 재선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떠벌릴 생각도 없었지만 균형 안보재단의 소장, 대처는 생각이 좀 다른 듯 했다.
“재선을 축하드려요, 대통령 각하. 저는 미국인들이 옳은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한 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조지라고 부르시죠, 마거릿. 그나저나 오프 더 레코드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만,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쪽 재단의 인터뷰 덕에 빌 그 친구가 이번에 아주 쓴 맛을 봤습니다. 항상 여유만만 하던 그 뺀질뺀질한 얼굴이 일그러지는 꼴을 보니 이거 속이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하하하!
“그러게요. 의도한 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이제는 저도 공직을 벗어난 몸이니, 입장을 떠나서 제 작은 조언이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저희 동북아 균형 안보재단으로 연락해주시기를 바래요. 저희 재단은 설립은 얼마 되지 않았어도 미국 내의 다른 어떤 씽크 탱크보다 미국과 아시아의 공동안보 방향 설정에 있어서 다양하고 전문성 있는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답니다.”
-항상 염두에 두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빚을 진 셈이니 언제 저나 장관 한 명 그쪽 행사에 보내서 축사 하고 오라고 시켜두지요. 말 나온 김에 체니 그 친구는 어떻겠습니까?
대처는 기회를 놓치는 걸 아주 싫어하는 자신의 천성을 증명하듯, 이번 대선에 있어서 우연치 않게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던 동북아균형안보 재단을 (당연히 막대한 금액의 로비와 후원금을 포함해서)은근슬쩍 미국 정재계 전반에 홍보했다.
물론 이는 결과적으로 재단의 소장인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정환으로서는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었기에 북조선과의 직접적인 연결 고리만 드러내지 말라는 당부만 하고 상당한 재단 기금 지출을 허가해 주었다.
동기와 수단 모두를 구비한 수장에 의해서, 이대로 10년만 지난다면 동북아시아 균형 안보재단은 처음 정환이 목적했던 대로 미국에서 순조롭게 여론과 정책 결정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단 한 가지 나쁜 소식이라면…….
* * *
“딕 체니, 이 양반이 유임되었다는 거군.”
새롭게 발표된 부시 2기 내각은 상당 부분 전 내각의 구성원들이 유임되었고, 그중에는 당연히 딕 체니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거라면 이제 더 이상 국방장관이 아니라 비교적 실권이 없는 직위인 부통령으로 옮겨갔다는 거지만…….
“뭐 그래도 자기 아들이 아니니 당분간 휘둘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일단은 지켜봐야겠군. 그보다도…….”
정환은 한미 양국의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동안 어느새 지나가버린 작년, 1992년 동안 북조선의 경제 성장을 보고한 보고서로 시선을 옮겼다.
그동안 정비와 인력 보강을 거쳐 신뢰도를 올린 당 통계부서에서 발간한 것이니 믿어도 될 것이다.
여러 가지 고무적인 수치가 나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정환의 시선을 가장 끄는 것은 역시 한해 GDP 성장률 이었다.
그리고 거기 적힌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올 한해 전년 대비 공화국 명목 GDP 성장률 : 16%
“개발도상국은 이래서 좋아. 조금만 발판을 만들어줘도 성장률을 쭉쭉 뽑아내니까.”
그동안 그가 집권한 이후 해왔던 모든 조치들, 자영농 증진, 교통 인프라 정비, 천연자원 개발과 수출, 해외 투자 유치, 국영기업소의 조심스러운 민영화, 즉 시장경제체제 도입으로 대표되는 이제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었다.
거기다 라선-청진 중공업 지대의 조성이 결정되고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속도로 빠르게 착공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는 곧 조선중앙방송 등 3대 방송을 통하여 대대적으로 공화국 내부에서 홍보되었다.
장성택 조직지도부장과 정환, 정문영 회장이 기공식에서 동시에 첫 삽을 떴고.
그 장면은 도로를 가득 메운 트럭, 쉴 새 없이 화염을 뿜어내는 석유 시추탑과 함께 총서기 신년사 영상에도 포함되는 등 새로운 공화국의 상징이 되어 인민들의 뇌리에 박혔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이제 더 이상 공화국 내에서 ‘돈 버는 일’, 즉 사익추구가 더 이상 감춰야 할 일이나 죄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인민들은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고 신분상승을 이루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신천지의 새로운 규칙, ‘자본축적’을 위해 뛰어들고 있었고, 그 욕망의 중심지 평양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공장과 가게, 사업체가 문을 열고 있었다.
물론 석유라는 치트키에 힘입은 바가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대로만 가면 ‘중진국 함정’에 부딪히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순조롭게 성장할 듯 했다.
사실 늦든 빠르든 다가올 그 중진국 함정에 대한 대비도 IT 인프라 보급과 태양광 같은 미래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투자 등 대비를 나름 하고 있었으니…….
10년 후 국민 평균 소득 1만 달러라는 정환의 마음 속 목표도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경제성장의 길을 앞서 걸어온 한국도 앞으로 4년 후 96년에야 그 고지를 돌파할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무리한 목표일수도 있지만,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할 유전의 존재와 한국보다 적은 인구수를 감안하면 결코 꿈이 아니라고 정환은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정환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경제의 양적인 성장보과는 궤가 좀 다른 문제, 바로 분배에 관해서였다.
“김정환 인민과 김정일 인민이라…… 참 민심이란 언제나 적나라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단 말이지.”
며칠 전 받은 유혜림에게 받은 보고를 떠올리며 정환은 쓴 웃음을 입에 머금었다.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면서, 아직까지 사회주의의 때를 완전히 벗지 못한 인민들을 위하여 정환은 소득분위제를 도입해 특정 분위 이하의 인민들에게는 제한적으로 배급제를 유지하도록 조치했다.
지나치게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기회를 놓쳤거나 환경을 잘못 타고 났거나 그것도 아니고 그냥 운이 없었던 이들은 반드시 나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된 자들은 사회 불만 세력으로 쉽게 변하기 마련이고, 당장은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아도 나중에는 그 분노가 쌓이고 쌓여 정권을 뒤집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실제로 이런 걱정을 증명하듯 정환은 며칠 전 인민들 사이에 물안개처럼 은밀하게, 하지만 빠르게 퍼져나가는 풍문을 유혜림의 입을 통해 들었던 것이다.
“총서기 동지. 혹시 이런 말 들어보셨습네까? ‘김정환 인민’과 ‘김정일 인민’이라는 말…….”
“……아니, 금시초문이군. 대체 그게 무슨 뜻인가?”
“근래 들어 인민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퍼져나가는 말입니다. 당에서 나오는 배급이나 타먹고 사는 인민은 여전히 이전 공화국, 사회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김정일 인민’이고, 자기 손으로 벌어 일제 테레비도 사고 미제 청바지도 사 입고 잘 사는 인민은 총서기 동지가 안겨준 새로운 공화국,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 ‘김정환 인민’이라는 뜻입니다. 공화국의 인민들도 이제는 다 같은 인민들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 인민들 사이에 벌써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인가?”
“총서기 동지야 원래 생활에 부족함이 없으셨으니 모르실 법도 하지만, 예전부터 이런 일이야 내놓고 말하지만 않았을 뿐이지 비일비재했습니다. 당장 저부터 군에 들어오기 전 대학에서 외국을 자주 나다니는 간부집 자녀들은 외산 물건도 많이 쓰고 먹고 입는데 부족함이 없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는 했습니다. 그렇지 못한 집 아이들은 왜 우리 집 부모님은 공화국 밖으로 출연 한 번 못할까 한탄하고는 했죠.”
유혜림의 말에 따르면, 이 ‘김정환 인민’은 공화국의 새로운 상징이자 부러움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비하여, ‘김정일 인민’에 속하는 인민들은 앞에서는 별 말을 안 들어도 뒤에서는 무능력하고 쓸모없다고 뒷말을 듣기 일쑤라고는 했다.
‘김정일 인민’ 집 아이들은 ‘김정환 인민’ 집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놀이에도 끼워주지 않으며, 그 집 주부들은 새해 떡국에 고기도 제대로 못 넣어먹는다며 대화에서 씹히기 마련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초래한 이 적나라한 시대상의 민낯에 정환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에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런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그가 어떻게 해볼 수는 없었다.
미래를 아는 입장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경제 체제에서 뒤늦게 빠져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 전에 도태된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식의주와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일 정도였다.
사실 슬슬 밀어닥치기 시작한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한 이런 미봉책조차도 석유가 안 나고 의사결정 과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국에서는 해주기 힘든 게 현 시대였다.
이 모든 건 결국 속도조절의 문제 아닌가.
조금씩 시장경제 물을 들여가는 지금도 이런 판국인데, 그 개혁개방의 둑을 한 번에 열어버린 러시아는 그야말로 대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혼란의 과정에서 정환은 자신이 이끄는 공화국의 지속발전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챙길 것을 챙겨야만 했다.
오늘 있을 이 보고도 바로 그 혼란의 와중에서 챙겨야 할 이득에 관한 것이었다.
“총서기 동지. 백승철 상장 동지와 리종수 대외정찰총국장 동지입네다.”
“들여보내게.”
곧 서기실 문이 열리고 경례를 깍듯이 붙이는 두 사람에게 정환은 대충 손을 흔들어 자리를 권했다.
“좀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들 받게. 그럼 자리들 앉고. 자, 그럼 이제 그동안 공들인 결과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지. 서면으로는 꽤 대어가 걸렸다는데, 역시 그쪽 동네를 잘 아는 자네들에게 맡기기를 잘했어. 그렇지 않나?”
“어흠, 이제는 오로지 공화국과 총서기에게만 백골난망 일심불란하게 충성을 다할 뿐입네다.”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오늘의 보고자, 인민군 상장 백승철과 정찰총국장 리종수는 서로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만을 했다.
다행이 정환은 그런 그들을 더 곤란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들어보지. 그러니까 여기 이 친구들이…… 앞으로 우리 공화국 인민군대 공군을 위해 일할 사람들이란 말이지?”
“앞으로 더 늘어날 계획입네다! 총서기 동지! 저희 대외정찰총국은 그동안 서기실에서 사용 허가를 내려주신 금액과 휘하 전사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총폭탄 정신, 신기묘산으로 무장하여 다음과 같은 전과를 이룩했습네다! 부디 들어주시기를 바랍네다.”
* * *
대략 두 달 정도 전.
벌써 1992년의 끝이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우유 한 통 사기 힘든 근래 러시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하듯 블라디보스토크 대부분의 서민들은 표정이 영 밝지를 못했다.
그러나 이런 칙칙한 블라디보스토크의 분위기와 유일하다시피 동떨어진 한 건물이 있었는데, 다른 곳과는 다르게 휘황찬란하게 총천연색의 불을 밝히고 모피코트를 입은 부유하고 때깔 좋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그곳은 지나가는 주머니 가벼운 러시아 서민들의 눈총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눈총에는 경멸과 동시에 부러움과 질시도 가득 담겨있었는데, 그 환락의 건물에 드나드는 자들은 현재 러시아의 99%와는 다르게 주머니가 두둑하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어와 영어로 ‘달러만 받습니다.’라고 정문에 크게 써놓은 그 건물의 정체는 바로 카지노였다.
그리고 지금 그 블라디보스토크 최대의 카지노에서, 아나톨리 페르미노프는 일생일대의 행운을 만나고 있었다.
“카드 오픈, 풀하우스 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또 이기셨군요, 손님.”
‘좋았어!’
뒤에서 동료들의 탄성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자신의 눈앞으로 밀려오는 붉고 검은 칩들의 파도를 보자, 감정표현을 자제하는 러시아인, 그것도 신분상 군인인 페르미노프라도 입술이 실룩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놓여있는 칩스의 산 중 10분의 1만 가져가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 전원이 반년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돈이기 때문이었다.
아니, 루블화의 가치가 날이 갈수록 무섭게 떨어지고 있는 시절이니, 페르미노프의 뇌리에는 지금 게임에서 따낸 칩스를 꿍쳐 놨다가 최대한 늦게 환전할수록 이득일 거라는 실없는, 하지만 현재의 러시아에서는 농담만은 아닌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다음 종목은 텍사스 홀덤입니다. 베팅하시죠, 손님들.”
“1천!”
“1천 받고 3천!”
“3천 받고 5천!”
기세 좋게 레이즈를 해대는 때깔 좋은 외국인 손님들 사이에서, 마침내 페르미노프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런데 미친 듯이 판돈을 올려대는 손님들 사이에서, 아까부터 그를 기분 나쁘게 힐끔거리던 동양인 하나가 그를 도발하듯 판돈을 크게 올렸다.
“5천 받고…… 1만! 1만 달러!”
“오오……!”
‘이놈 봐라?’
하필이면 자신의 바로 앞 차례에서 돈을 올린다는 건, 누가 보아도 페르미노프를 돈으로 죽이려는 게 분명했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그에게 시비를 걸지 못해 안달인 것 같더라니, 그 뿐만 아니라 페르미노프의 뒤에서 그가 판을 휩쓰는 것을 응원하던 동료들도 덩달아 표정이 안 좋아졌다.
‘도전을 거절하면 러시아인이라고 할 수 없지!’
저 동양인에게는 안 된 일이었지만, 오늘 행운의 여신은 페르미노프의 편이었다.
아니, 사실 오늘뿐만 아니라, 블라디보스토크에 공무차 방문한 그가 호기심에 카지노에 출입하기 시작한 이래로 패가 족족 그의 손에 붙더니, 오늘로 그 운이 절정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기현상이 소위 말하는 초심자의 운이라고 생각한 페르미노프와 동료들은 의심 한 번 해볼 생각 않고 요 몇 주 간 카지노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사실 의심을 해봤다 하더라도, 그리고 페르미노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현재의 러시아에서 이만한 거금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결국 러시아 군 전략 미사일 로켓군 중령 아나톨리 페르미노프는 흥분 반, 욕심 반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꾼 그 한 마디를 해버리고야 말았다.
“Хорошо(알았어)! 묻고 더블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