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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122화 (122/350)

< 39장. 혼돈의 신의주 (2) >

39장. 혼돈의 신의주 (2)

곧이어 트럼프 카지노 호텔 앞에서 두 집단 간의 때 아닌 난투극이 벌어졌다.

처음에 중국인 택시 기사들은 나름대로 주먹을 휘둘러 맞서보려 했으나, 아닌 밤중의 기습이었던 데다가 북조선 택시 기사들의 기세가 워낙 흉험한데다 습격자들 중 상당수는 손에 무기까지 들고 있어서 중국인 기사들 대부분은 싸우기 보다는 차를 타고 내빼는 쪽을 선택했다.

“엇! 저놈들 봐라! 달아뺀다(달아난다)! 붙잡으라우!”

“놓치지 말라! 된 맛을 보여주라!”

상대방이 맞서지 않고 후퇴할 조짐을 보이자 용기백배한 북조선 측은 더욱 기세가 올라 달아나려는 중국 기사들의 차를 막고 운전석에서 그들을 끌어내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이 기회에 아예 같은 업계에서 경쟁을 못하게 만들려는지 사이드 미러를 몽둥이로 쳐서 부숴버리거나 타이어에 펑크를 내버리는 자도 있었다.

그때, 난투극 속 흥분과 긴장으로 눈을 번들거리며 (역시 쇠 지렛대 하나를 붙잡고 열심히 휘두르던) 최무룡은 급하게 운전석에 올라타려는 익숙한 얼굴을 보고 눈을 빛냈다.

“저…… 저 간나 새끼 저거, 저 잘 만났다, 요놈!”

그 익숙한 얼굴의 정체는 바로 그 날 최무룡의 손님을 탈취(?)해 달아나던 조선족 택시기사였다.

대강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역시 비슷하게 생계의 압박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땟물 진 옷과 야간 영업을 뛰느라 잠을 못 자 초췌한 얼굴이 묘하게 익숙했다.

아마 생활환경이나 성장 배경 같은 건 최무룡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약이 오르던 차에 주먹을 휘두르며 한껏 흥분해있던 최무룡은 자신을 골탕 먹인 놈을 만나자마자 앞뒤 생각도 않고 바로 쇠 지렛대를 휘두르며 뛰어들었다.

“이놈! 오늘이 네놈 제삿날인 줄 알라!”

“크억!”

한달음에 달려온 최무룡의 쇠 지렛대에 상대방이 고꾸라지자 그는 바로 몸 위에 타고 앉아 흥분해서 손에 든 쇠 지렛대로 상대방을 마구 구타했다.

인민군을 전역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다가 간신히 생계 수단을 찾아서 내심 안심했던 최무룡이었다.

아니, 그건 생계 뿐 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문제였다.

앞으로 총서기의 개혁개방 체제에 따라 북조선에 돈이 돌면 최무룡 본인 대에는 무리더라도 자식 대에는 아들딸을 잘 키워 김대에 보내면 장차 중앙당 간부도 될 수 있고 돈주, 요즘 말로 사장 동지, 회장 동지도 되는 미래를 생각하며 내심 기분 좋은 미소를 짓던 그였다.

그런데 지금 쓰러져서 손으로 머리를 가리는 이 조선족 놈이 그 미래에 어깃장을 놨다고 생각하니 최무룡은 단순한 분노를 넘어 살기에 젖지 않을 수 없었다.

퍼억! 퍽!

“이놈! 죽어라! 죽어! 어디 남의 땅에 와서 남의 장사에 죽탕을 치려고! 20년 군에서 썩다가 그 대가로 받은 써비차다! 이 간나야! 어디서 뙤놈들 똥구멍이나 핥던 민족 배반자가 감히 이 신의주에서…… 응?”

미친 듯 조선족을 구타하던 최무룡은 문득 상대방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처음 한 대 내리칠 때만 해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머리를 가렸던 것은 기억나는데…….

그러고 보면 자세히 관찰해보니 숨도 안 쉬는 거 같았다.

“어…… 어이, 그러고 있지만 말고 좀 움직여 보라.”

“…….”

“어, 어서 일어나지 못하간? 지금 일어나면 같은 동포라는 정을 봐서 관대히 용서를 해줄…….”

“…….”

“이, 이거이……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패닉에 빠진 최무룡이 멍한 눈으로 들고 있던 쇠 지렛대가 바닥에 떨어졌다.

어느새 싸움은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고 최무룡의 동료들이 경악한 눈으로 그의 주위로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었다.

저 멀리서 뒤늦게 신고를 받고 달려온 보안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 * *

“하하하. 이거 만나서 참으로 반갑소. 김 총서기 동지. 그동안 40년 혈맹 중조관계가 소원했던 감이 없지 않았는데, 여기서 총서기의 얼굴을 직접 보니 그런 근심이 싹 가시는 거 같구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장 총서기님. 이전부터 상하이 특구에서 근무하시며 대국 중국의 개혁개방을 진두지휘하신 것을 전해 듣고 저 역시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곳 베이다이허(北戴河)의 경치가 참으로 훌륭하군요. 환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칭찬해주어 고맙소. 중조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곳 아니요?”

저 멀리 펼쳐지는 수평선과 해변의 풍광을 보면서 정환은 아직 그다지 익숙지 않은 중국어로도 의식적으로 덩샤오핑의 직접적 언급은 피했다.

그동안 중국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며 잘 듣고 있었고.

그래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남자,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는 군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와 함께 지금의 공산당을 양분하는 상하이방의 거두니까.

일부러 불편한 주제를 꺼내지 않아도 이번 방문, 조선로동당 총서기이자 북조선 최고지도자인 정환의 첫 공식 방중(訪中)에서는 민감한 사안이 많기도 하고 말이다.

단둥과 이웃한 신의주에서 중국인과 북조선인 사이에 상권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져 중국인 하나가 사망했던 게 불과 이틀 전이었다.

이미 방중이 정해진 시점에서 이런 일이 터지자 회담을 주선한 장성택부터 정치국 위원들은 당황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정작 정환은 태연했다.

‘이, 이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총서기 동지? 만약 대국에서 이 일을 걸고넘어지면…….’

‘수선들 떨 거 없네. 장쩌민 동지가 나를 불러서 고작 그런 ‘작은 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을 테니 말일세.’

‘자, 작은 일이요? 정말 저, 정말 그러겠습네까, 총서기 동지? 대국에서 우리 공화국의 치외법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건 심각한 갈등거리가 될 수도 있습네다.’

‘중국은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닐세. 자국 국민의 희생은 더욱 큰 정치적 이득 앞에서 가려질 수 있거든. 내말을 믿게. 이번 회담의 목적은 그런 사소한 일이 아닐 테니…….’

‘뭐 그래도 저쪽 체면은 좀 세워줘야겠지.’

“며칠 전 신의주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런 사고가 일어나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오. 조사과정에서 우리 인민도 그쪽 보안원에 뇌물을 주고 자기 편의를 봐달라고 한 사실이 드러났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합시다. 그보다…….”

정환이 이 신의주에서 발생한 사고가 이번 방중에서 그리 큰 이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신의주에서 영업하는 중국인 택시기사들은 북조선 보안원들에게 뇌물을 바쳐가며 자신들을 대충 눈감아달라고 하고 있었다는 것이 조중 공동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던 것이다.

반부패수사국은 그 설립 목적이 목적이었던 만큼 평양 고위 당원들의 부패는 잘 잡아냈지만, 신의주 같은 지방 말단 당원들의 부패는 행정력과 인력의 한계가 있어 놓치는 경우가 제법 됐는데, 어찌 보면 이번에는 그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중국과 조선의 고위층 모두 이 민감한 사안을 여론에 흘리지 않고 조용히 덮어버려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게 되었으니까.

‘중국의 인민이 (공산당 지도부의 천안문 학살로 인해 벌어진) 미국 경제제재로 인해 생계의 곤란을 겪게 되어 조선으로 넘어가 당국에 뇌물을 주며 장사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되었다.’라고 인민 일보에 공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몇 달 전 덩샤오핑이 사실상 축출이나 다름없이 권좌에서 쫓겨났다는 걸 모든 사람이 아는 상황에서, 장쩌민을 비롯한 공산당 지도부는 국내외의 불안을 해소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공인받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근래 들어 좀 경색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전통의 우방인) 북조선의 젊은 지도자가 처음으로 방문했으니, 시기상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자신들의 ‘조공국’ 비슷한 위치인 북조선에게 정권 이양 인정과 상국 대접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받아내는데 최대한 주력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엄연히 자국민이 살해당한 살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장쩌민의 태도는 그런 정환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체주의 국가의 장점이자 단점이 이거지. 국익 앞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뭐 거기에 장쩌민 개인의 민족주의 성향도 있겠지만.’

정환이 중국 측에서 이 사고를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장쩌민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역사에서도 티베트 족 같은 소수민족들의 봉기도 직접 현장에 나가 철모를 쓰고 진압을 지휘할 만큼 소수민족 권리 주장에 강경한 인사였고, 그 점이 양상쿤 같은 보수파와 코드가 맞아 정권을 양분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번에 신의주에서 살해된 중국 택시기사는 국적만 중국이지 한족이 아니라…….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조선에서도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발적인 살인이었으니 우리 쪽에서 살인자를 잡아 처벌하고 배상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이런 민감한 시기에 그런 ‘사소한 문제’로 인해서 중조관계라는 국가지대사가 영향을 받아서야 되겠소? 그래도 우리를 배려해주어 고맙소. 총서기가 중조관계를 중히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으니. ……그런데 문제는 말이오, 나는 그렇게 생각해도 우리 당원들 중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인사들이 꽤 있단 말이오.”

‘이 젊은 친구는 덩샤오핑 동지 시절에 한 번도 방중하지 않았다고들 했지. 그래서 향간에서는 조선이 이제 미국 쪽으로 기우는 거 아니냐는 예측이 돌았지만…… 지금부터 그걸 알아봐야겠어.’

정환이 립서비스를 해주며 고개를 꾸벅 숙이자 장쩌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슬슬 ‘진짜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해 전 총서기가 내린 걸프전 참전 결단에 대해서…… 솔직히 우리 당과 정부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소. 아, 물론 인민을 위해 내린 결정이라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고 그 사담 후세인이라는 놈이 워낙 미치광이처럼 행동했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으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장쩌민은 헛기침을 하면서도 번뜩이는 눈으로 정환을 훑어보며 할 말을 다 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그런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총서기가 공개적으로 확답을 해주었으면 하오. 동지의 아버지와 형님…… 아 실례, 아무튼 전대 수령들 대에 이어서 조선이 앞으로도 중조관계를 그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을 것이지…….”

“…….”

“……아니면 새로 사귄 친구들의 감언이설에 휩쓸려 과거의 우정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할 것인지 말이오.”

‘아주 대놓고 협박하는군. 겉으로는 예의를 차려줘도 받아낼 건 확실히 받아내겠다 이거지? 자신을 키워준 덩샤오핑의 뒷통수를 후려치고 출세한 인간다워.’

이번 방중, 장쩌민이 정환을 이 베이징 베이다이허로 초대해서 듣고 싶었던 말이란 바로 이것, ‘너 누구 편인지 확실하게 인증해라.’라는 것이었다.

지난 걸프전 참전 후, 이어진 부시 대통령의 방문, 서방 국가들과의 수교 등 북조선은 그야말로 일대의 외교적 방향전환을 해왔다.

그리고 바로 옆에 위치한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으로 통칭되는 미묘한 관계의 국가, 북조선의 이러한 행보를 보며 공산당 내의 의견은 크게 두 패로 나뉘었다.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패의 의견은,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선언했으니 세계 경제 패권국인 미국과 관계를 안 맺을 수는 없다. 이 정도 가지고 조선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다고 볼 수는 없으니 좀 더 기다려보자’였고.

군 내 보수파를 중심으로 한 다른 한 패의 의견은 ‘새 총서기가 취임 후 이제껏 단 한 번도 방중을 하지 않았는데 이게 딴 마음이 생긴 게 아니고 무어냐?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단속을 해서 조선이 어느 편인지 확실하게 해야 한다’였다.

신의주에서 벌어진 택시기사 살해 문제니, 치외법권 존중 등등은 모두 이런 대국적인 문제에 비하면 모두 양보와 타협이 가능한 사소한 문제였다.

그리고 정환은 이내 마음을 정하고 이런 장쩌민이 가하는 무언의 압력에 확실한 답을 주었다.

“그런 걱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희 조선은 여전히 40년 전 대국이 베풀어준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조중은 앞으로도 영원한 혈맹일 것이니 마음을 놓으시기 바랍니다.”

“……확실하오? 미안하지만 나도 이 일만큼은 소홀히 넘어갈 수 없소. 나도 당 내에서 입장이 있으니 말이지.”

“제 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개인적으로 장담 드립니다. 그리고 아무리 저희 조선이 미국과 친해진다 해도 조선과 미국은 근본적으로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 아닙니까? 설마 장 총서기께서는 제가 미국이나 근래 남조선처럼 민주주의를 도입해 인민들로 하여금 선거로 지도자를 뽑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

“대국에서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듯, 북조선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조선 속담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지 않겠습니까?”

“국제관계는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일이 흔하지. 그런 일이 중조관계에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체제가 판이하게 다른 국가는 일시적 이해관계에 따라 손을 잡을 수는 있어도 결코 혈맹이 될 수는 없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조선이 정말로 대국을 등한시하고 미국과 가까워지려면 최종적으로 남조선처럼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할 겁니다. 장 총서기께서는 제가 미국과 손잡으려고 조선로동당의 일당지도체제를 버릴 정도로 우매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장쩌민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정환이 자신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그건 불가능하지. 자기 미래와 권력유지를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정환의 설득에 장쩌민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일등 동맹국들은 국제정치학을 조금만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알다시피 영국(Britain), 캐나다(Canada), 호주(Australia)로 대표되는 ABC 동맹국들이다.

이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들, 일종의 혈맹이라 불릴 만한 국가들의 공통점은, 앵글로색슨 백인 계들이 사회주류이며, 영어를 구사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동맹국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이스라엘조차 이들을 제외하면 미국의 외교관계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물론 군사반란이 일어난 당시의 한국처럼 독재를 하더라도 지정학적인 중요성에 따라 동맹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도 한국 군사정권은 미국에게 적지 않은 눈총을 받고 한미미사일사거리 제한 등 여러 외교적인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물며 북조선 같은 일당 일인 독재 국가와 혈맹에 준하는 동맹을 맺는다는 건 미국의 건국이념이나 국가 시스템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정환은 지금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조선 인민들 역시 민주주의 보다는 저와 로동당의 영도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가 옐친의 민주주의 도입 이래 어떤 꼴을 겪고 있는지 세계인들이 다 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흐음.”

“오래 전부터 대국에서 권유하셨던 개방을 통한 부강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서방에게 고개를 숙일지는 몰라도, 저희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은 언제나 중국과의 우정을 기억 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저희 김가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그럴 수밖에 없고 말입니다.”

“……!”

마지막 문장에 담긴 미묘한 암시에 장쩌민은 일단 북조선과 정환에 대한 의심을 일차적으로 내려놓았다.

김가의 안위 운운하는 정환의 마지막 말은 완곡하게 표현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런 뜻이었다.

‘민주주의 하려면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이 권력을 인민들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나도 그러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나는 내 안위를 위해서라도 미국에게 올인하지 않고 비슷한 체제의 중국의 후원을 받고 싶다.’

이런 개인적인 속내까지 슬쩍 드러내보이자 장쩌민은 정환이 이제 좀 믿을 만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최소한 민주주의를 조선에 도입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건 북조선과 미국이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기 힘들다는 뜻이었다.

민주주의 도입은 정환이 자기 권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없으며, 그동안 그의 통치 아래 억눌려온 당 내부 정적들의 그리고 내부 반동분자들의 위협에 스스로를 알몸뚱이로 내팽개치는 일인데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안위를 가장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고, 특히 정치인은 항상 자기 보신책, 탈출구를 마련해두는 게 정상이다.

마오쩌둥 이래로 최고의 권위를 지녔다던 덩샤오핑도 자신의 계파를 보호하고 은퇴 후를 안전하게 보장받으려다가 실패해서 말년에 자신을 포함한 정적들에게 그런 꼴을 당하고 비참하게 죽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장쩌민은 이 젊은 총서기가 자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좋소. 이 정도로 확답을 받았으면 나도 안심이오. 양 주석을 비롯해 다른 당원들의 의구심도 이 정도면 충분히 진정되겠지.”

“하하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이제 앞으로의 중조관계에 대한 의심이 가셨으니, 그 관계를 더욱더 깊고 확실하게 다지는 방법에 대해 의논해 봅시다.”

여기까지 말한 후 장쩌민은 베이다이허의 수려한 풍광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래 전부터 당 간부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으며 이름을 떨쳤던 베이다이허는 어느새 곳곳에 리조트와 호텔이 올라가는 현대적 관광지로 탈바꿈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장쩌민이 보여주고 제안하려는 것 역시도 그런 것이었다.

“신의주와 단둥을 이 베이다이허처럼 바꾸는 일에 관해서요. 중국과 조선이 신의주-단둥을 공동 특구로 지정하고 양쪽의 자본을 투자하여 공동 개발하면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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