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21화 (121/350)

< 39장. 혼돈의 신의주 (1) >

39장. 혼돈의 신의주 (1)

오랑캐, 이민족, 집시, 야만인, 부랑자, 바르바리,

혈통주의, 그리고 그것에 근거한 민족주의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긴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으로 성립되기에 그만큼 강력하다.

그리고 그 원초적 본능이 가지는 강력함은, 자신의 민족, 겨레, 조국, 뭐라고 부르든 자신들이 소속된 집단을 타 민족, 타 집단에게 침범 받았을 때(아니면 침범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그대로 아주 손쉽게 분노와 살의로 치환된다.

그 근원적인 분노와 살의의 위력이 사랑, 자애, 자비, 배려 같은 감정을 얼마나 쉽게 압도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압도가 어떤 참극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지금 보스니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고 연방에 속해 있던 국가에서 생생하게 실현되고 있었다.

- 미국과 EC(유럽공동체)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독립을 승인함과 함께, 보스니아에서는 민족 간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주도권을 쥔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민병대가 상대적 소수자인 보스니아계 무슬림들과 크로아티아계에게 공격을 가하면서, 이 혼돈은 점차 민족 간, 종교간 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현지 망명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세르비아계에 의한 학살과 인종청소, 성폭행 등이 자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순수혈통, 핏줄에 대한 집착과 배타주의, 제노포비아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는 것을 증명하듯, 구 유고 연방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신의주 계획특구에서도 그즈음 서로 다른 세 집단 간 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야, 이 거러지 뙤놈 새끼들아! 오늘 느 죽고 나 죽자! 걸리기만 하면 손모가지를 채썰어주갔어!”

최무룡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저 멀리 사라지는 중국 번호판을 단 써비차(서비스Service 차: 택시)를 뒤쫓아 갔지만 이미 헛수고였다.

옆에서 그와 비슷하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다른 택시 기사들도 그 광경을 보고서는 바닥에다 침을 탁 뱉었다.

“저거 저거... 기름 발라놓은 거처럼 조선말 해 손님 꼬이더니만 저거 뙤놈이 아니라 조선족 아새끼구만 기래. 동포라고 꼬리치는 새끼들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아주 저놈들이 뙤놈보다 더해! 젓갈을 담궈도 모자랄 놈들!”

“벌써 이거이 몇 번째 간? 보안원 아새끼들 요즘 공화국 사정이 나아져서 잘 처먹으니 물러터지기만 해가지고...! 우리가 현직에 있었을 때는 안 이랬는데... 에이!”

최무룡은 ‘그리운 옛날’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분통이 터져 못 참겠다는 듯 발을 굴렀다.

그의 직업은 차로 손님을 옮겨다주고 요금을 받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일, 요즘 북조선 내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써비차’,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택시라고 불리는 운송업종의 종사자였다.

물론 방금 전 최무룡 본인이 분통에 못 이겨 ㅤㅇㅡㄼ조렸듯이 처음부터 택시 기사였던 건 아니었고, 그의 전직은 이래뵈도 나라의 녹을 먹는 직업이었다.

최무룡, 그리고 그와 함께 이곳 신의주에서 택시 기사 일에 종사하는 동료들은 한 때 대부분이 조선인민군 정치국 소속 하급 정치장교였던 것이다.

“저 꺼드럭거리던 뙤놈의 새끼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자기들은 대국이고 우리는 소국이니 자기들만 보면 방아깨비처럼 인사를 해야 한다고 을러대던 건 언제고. 이제 와서 저거들 사정 안 좋아지니 여기까지 기어 들어와서 남의 장사를 망쳐? 동무들! 우리가 지금은 비록 당의 녹을 먹지는 않아도 언제 조선민족 남아의 의분을 보여줘야 되지 않간?”

“무룡 동무 말이 참으로 맞소! 저 뙤놈들, 아니, 내 뙤놈들은 둘째 치더라도 저 조선족 놈의 새끼들은 반드시 날을 잡아 치도곤을 내야 하갔소. 내 말이 틀리오? 동무들?”

“옳다! 그 말이 참으로 옳다! 저들 잘 먹고 살 때는 단둥 시 사는 대국 인민이라고 거드럭대더니, 이제 우리 공화국이 더 부유해지니 이제 와 같은 공화국 신의주 피붙이 동포끼리 돕고 살아야 한다 어쩐다 주둥아리를 나불대는 모습을 더는 봐줄 수가 없디!”

최무룡을 비롯한 북조선 택시기사들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거기 모여 있던 택시 기사들 대부분이 한 때 군관이었던지라 다들 나름 한 성질, 한 체격했는데, 그런 자들이 한데 우르르 모여 열불을 내며 주먹을 흔드니 그 기세가 그야말로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최무룡을 비롯해 한 때 당당한(?) 조선인민군 정치장교로 행세하던 그들이 왜 지금 신의주 - 단둥 국경 조중우의교 부근에서 이러고 있는지 알려면 몇 년 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 정치위원이 뭐 이리 많아? 군 지휘체계를 이렇게 꼬아놔서 유사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겠나? 오늘부터 군 정치부는 정훈국으로 격하시키고 인원을 대폭 줄이게. 뭐? 아, 이 친구들 먹고 사는 방안은 마련해 줄 테니 그건 걱정 안 해도 되고.

그들이 군복을 벗고 ‘민간경제’로 뛰어든 데는 이제는 북조선 내에서 김일성 수령님의 유일무이한 후계자(중간에 한 명이 더 있기는 했는데 다들 그 사람은 의식적으로 말을 안 하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온 광명성 쯤으로 신격화된 경애하는 총서기 동지의 군 개편 때문이었다.

총서기 정환이 군축을 진행하면서 가장 칼질을 많이 한 곳은 시대에 뒤처진 인민군 정치위원들이 모여 있는 정치부였는데, 말이 감축이었지 사실상 부서 폐지 수준으로 숫자가 줄어들자 (능력 있는 극 소수를 제외하면) 최무룡 같은 정치위원들 대다수는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체제와 수령에 대한 충성심만을 뼈에 사무치게 교육 받았던 정치부원들을 그냥 길바닥에 내버리면 자칫 젊은 수령의 신체제에 대한 극렬 불평분자를 양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던 정환은 아니나 다를까 이들을 달랠 당근 하나를 내밀었다.

- 이 동무들에게 우선적으로 운수사업권을 배당하게. 아무리 같은 군관들 감시하는 거 빼고는 능력 없는 정치부원이라도 큰 기술 필요 없는 택시 회사 운영 정도는 하겠지. 안 그래도 대중교통 체제가 정비되기 까지 공화국 이곳저곳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려면 철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는데 잘됐군.

사실 이 수법은 한국에서 신군부 시절 불필요하게 늘어난 정치군인들을 은퇴시킬 때 그들의 불만을 달래려고 쓰였던 방법을 정환이 벤치마킹한 것인데, 다행이 북에서도 잘 먹혀서 소수 반동들 빼고 대부분의 정치부원들은 큰 반발 없이 짐을 쌌다.

그야말로 조선인민군 창립 이래 역대급 인원감축이었지만 비교적 불만이 적었던 이유는, ‘전대 장군님’ 시절이었다면 그들 중 대다수는 이조차도 받지 못하고 그대로 집에 들어앉아 낮전등 신세가 되었어야 했을 것이라는 점을 많은 정치부원들이 내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우, 총서기 동지도 무심하시지. 동지의 말 한마디면 섶을 지고 불 속에라도 뛰어들 우리들에게 한 번, 딱 한 번만 기회를 주셨더라면 최일선에서 그 분을 보위할 영광스런 총폭탄이 되었을 터인디... 어쩌다가 이 신세가...”

“어허, 이 동무 큰일 날 소리를... 어디서 그런 반동들이나 할 망발인가! 군 나올 때 공화국과 인민대중이 살려면 바뀐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는 홍계성 차수 동지 호소 못 들었간? 기리고, 우리가 지금 이 꼴인 게 총서기 동지 탓이간? 저 쳐죽일 단둥 뙤놈들, 그놈들이랑 붙어먹는 조선족 간나들 때문이디!”

“그거는 그렇디....”

사실 최무룡도 그렇고 상당수 ‘전‘ 정치부원들은 내심 군복을 벗고 자본주의 장마당 돈벌이에 뛰어드는 것에 기대감도 없지 않았는데, 그들도 공화국이 변하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더 이상 ‘유일령도체계를 위한 10대 원칙‘도, 인민영웅훈장도 자신과 안해(아내),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말 그대로 장마당에 뛰어들어 요령껏, 능력껏 벌어야 당이 단 한 번도 먹여주지 못했던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고, 운이 따라주면 돈주도 되고 자본가도 될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다들 알게 모르게 그런 체감을 하고 있던 차에 마침 당에서 그들을 놔주며(?) 능력껏 벌어 공화국에 보탬이 되라고 써비차 사업 권리라는 사탕까지 던져주니, 제2의 인생이 열렸다고 기대했던 자들도 상당수 였던 것이다.

최무룡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고, 군 시절 상관이 택시 회사를 열고 그와 옛 동무들을 채용했을 때는 군관 시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돈 버는 재미와 보람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몰랐다.

실제로 개혁개방을 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공화국 내 대중교통수요에 맞춰 써비차 사업은 꽤 잘 됐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보안원 믿고 넋 놓고 앉아있는 것도 한 두 번이디, 신의주 기차역 앞 목 빼앗기고, 외국 손님들 들어오는 국제 호텔 앞 목 빼앗기고, 이제 저 놈까지 들어오는데 저 목도 뙤놈들과 조선족 놈들에게 넘겨주면 우리는 뭐를 먹고 사니?”

동료 중 한 명이 몇 년 전부터 신의주 시내를 떠들썩하게 달군 화제의 건물, 이제 막 개장만 기다리고 있는 건물에 대고 삿대질을 하자 최무룡을 비롯해 많은 북조선 택시기사들이 동의한다는 듯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평양에서 써비차 영업을 했던 최무룡은 이내 큰 맘을 먹고 가족과 함께 신의주로 오게 되었는데, 물론 그 이유는 신의주에서 장사를 하는 게 더 돈이 잘 벌린다는 소문에 솔깃해서였다.

신의주 계획 특구는 조선시대 때부터 중국과 인접한 무역과 물산의 거점도시였고, 그래서 처음 정환이 계획 특구로 지정했을 때도 당에서 육성에 가장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한 곳이었다.

개방을 한지 3년, 지금에 이르러 신의주 시는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건물들이 올라가고 음식점과 가게가 문을 열어 손님들을 유혹하며 중국과 러시아와 북조선 3개국에서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국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호주머니가 넉넉한 이들 외국손님들이 목적지까지 발 아프게 걸어 다닐 리도 없어서 최무룡과 동료들의 택시 사업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러한 황금 같은 사업 기회에 눈독을 들인 게 그들만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 저거이 뭐야? 아니, 제 뙤놈들이 왜 여기서 장사를 하고 있간?

- 저저저....! 저 놈들이 우리 손님을 다 훔쳐 간다! 저 쳐죽일 놈들....!!!

신의주 써비차 업계에 새로운 경쟁자가 출현한 것이었는데, 그 경쟁자란 바로 다리 하나 건너 단둥시에서 영업하던 중국, 조선족 택시기사들이었다.

신의주와 단둥은 원래 그 거리가 가깝고 둘 다 동맹국인 조선과 중국으로 들어가는 국경도시라 이전부터 주민들이 서로 이웃동네마냥 왕래하며 살아왔지만, 그 관계는 솔직히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단둥의 중국인들은 대국이라는 거만함과 중화사상에 젖어 신의주의 북조선인들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하면서 단둥 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자 이제는 대놓고 북조선인들을 하인 취급하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북조선인들 역시 조선로동당에서 세뇌시키다시피 한 ‘조선민족은 세계제일의 우수민족’이라는 민족주의에 젖어있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던지라 중국인들을 소 닭보듯 했고, 단둥과 신의주 양쪽 모두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족들은 자기들 이득에 따라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를 반복하던 게 몇 년 전까지의 추세였는데....

그러다가 정환이 총서기로 취임하고 북조선이 개혁개방을 하며 거의 동시에 천안문 사태로 인해 중국이 경제제재를 당하자 모든 게 바뀌었다.

상황이 역전되었던 것이다.

- 이제는 우리가 더 잘 먹고 잘 산다! 이 뙤놈들아! 언제까지고 네놈들 세상일 줄 알았더냐? 공화국 만세! 총서기 동지 만만세! 크하하하하....!!!

- 이 신의주 바닥에 뭐 주워 먹을 거 있나 기어들어오지들 말거라이, 이 중국 돼지새끼 놈들..., 그리고 너거 조선족 아새끼들, 너들도 이제 어디 줄을 타야 할지 잘 알디? 수틀리게 놀면 재미없을 줄 알라우!

- 에베베베....! 요 뙤놈 새끼들. ‘등소평 오마니는 곱사등이 병신 언청이’ 함 해보라우! 그리고 김정환 총서기 동지 만세! 조선민족 만만세 한번만 하면 이 일제 과자 하나 맛 보여주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각국으로부터 당한 경제제재는 당연히 무역도시인 단둥에도 영향을 미쳐서 단둥으로 들어오는 트럭과 차들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들먹거리던 중국 무역상들의 얼굴에는 시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압록강 건너편에서 불야성을 이루던 단둥의 야경은 한층 어두워졌다.

반면에, 평양의 중앙당에서 계획특구로 지정되고 돈과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한 신의주는 경제제재에 신음하는 단둥과 대비라도 이루듯 날이 갈수록 바뀌어 갔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최무룡과 택시 기사들은 어느 날부터 단둥 쪽 택시기사들이 슬금슬금 신의주로 이동해서 자신들의 영업구역을 타고 앉아 황금 같은 손님들을 채가는 걸 발견했다.

- 저 놈들 안 잡고 동무들은 대체 뭐하는 기요?

- 아, 동무들, 저쪽은 우리 공화국 인민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복잡하다고 했잖소? 신의주 도당위원회에 보고 올리고 거기서 평양 외무성에 협조 요청하고 하면 이거 한 세월 걸릴 기요. 거 우리 공화국 인민들도 어려울 적에 단둥 넘어가서 장사해 먹고 살았는데 조중우호를 위해서 웬만하면 아량을 좀 베푸시오들.

“조중우호가 우리 아가리에 밥 멕여주니? 이거이 참고만 있을 수 없지비!”

지금 그들이 여기 모여 작당을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먹고 사는 문제, 소위 말하는 ‘상권 침해’였다.

불경기가 닥친 단둥에서 조중우의교를 넘어 건너온 중국 택시기사들은 머릿수와 조직력을 무기로 점점 세를 불려 최무룡 같은 북조선 택시기사들의 고객들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의주 역 앞에서 손님들을 채가는 걸로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국제 호텔 앞, 이제는 신의주 중심가에 들어오는 새 돈벌이 건물 목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다.

최무룡을 비롯한 그들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근래에는 중국인들이 일제 무전기까지 들여와 조직적 체계를 이루어 북조선인들이 쉬는 시간을 노려 손님을 채가거나 심지어 노상에서 일부러 북조선 택시기사들의 운전을 방해하는 일까지 빈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통은 조선인데 국적은 중국인 조선족들은 그들 사이에서 약삭빠르게 거간꾼, 통역사 노릇을 해가며 수수료까지 받아 챙기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자기 손님을 채가려는 중국 택시기사들에게 북조선인 택시기사 한 명이 둘러싸여 몰매를 맞는 일까지 일어나자, 이제 그들은 결단의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모레가 신의주에 새로 들어서는 으리으리한 기업소 문 여는 날이디? 지금 뙤놈들이 그 근방에 한데 모여 벌써부터 눈을 뒤룩뒤룩 굴리고 있지 않간? 이대로 가면 다른 목들처럼 그 곳도 두 눈 시뻘겋게 뜨고 빼앗길 기야!”

“가자! 가서 조선민족 주먹이 매운 줄을 뙤놈들에게 단단히 갈쳐주자!”

함성과 함께 최무룡을 비롯한 북조선 택시기사들은 일제히 떼를 이루어 신의주 노상을 생계수단인 택시를 타고 질주했다.

말은 주먹이었지만 차 화물칸에 나무 막대기며 몽둥이, 쇠지렛대까지 가득 실렸으니 누가 하나 죽어나도 죽어날 분위기였다.

이윽고 결연한 표정으로 신의주 중심부에 당도한 그들은 문제의 건물, 며칠 후 개장하기만 하면 신의주와 단둥 일대에서 돈을 쓸어 담을 새 합작 기업소 앞에 도착했다.

‘트럼프(Trump) 카지노 호텔 in 신의주 - 이틀 후 대개장!’

-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가 이런 말을 했지. ‘중국인들에게 다른 건 다 하게 할 수 있어도 도박을 못하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라고. 신의주 같은 국경에 위치한 계획특구에 중국인들 돈을 끌어들이려면 사행성 산업이 제일일세. 물론 우리 공화국 인민들은 출입을 금지해야겠지만.... 응? 카지노가 뭔지도 모르는 인민들이 대다수인데 여기 투자할 민간 돈주들이 있겠느냐고? 걱정 말게. 부동산 개발에 경험이 많은 미국 기업인과 합작 사업을 주선하면 되니까. 그 사람도 지금은 사정이 급할 때니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걸세.

계획특구 개발 당시 총서기께서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해 외국인 대상으로만 카지노 영업을 허가하면서 착공에 들어간 이 건물은 (특이한 이름의) 외국 기업가 반, 벌써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 공화국 내 돈주들이 반씩 투자해서 만들어진 도박장, 카지노였다.

지난 몇 년 간의 건설을 거쳐 개장을 앞둔 현재는 명실상부하게 날이 갈수록 모습을 바꾸어가는 현 신의주 내에서도 가장 화려한 야경을 조성하는 데 크게 공헌하는 건물이었다.

당연히 이 카지노에 드나드는 손님들 역시 외국에서 오는 부유한 손님들이 대다수라, 그들이 던져주는 요금만으로도 그들 택시기사들은 먹고 살 걱정이 전혀 없을 정도였다.

마침내 최무룡과 동료들은 이 금맥 앞에서 벌써부터 떼거지로 진을 치고 다른 택시기사들을 내쫓고 있는 중국인들을 발견했다.

“저기 있다! 쳐라! 본 때를 보여주라우! 두 번 다시는 이 조선 땅에 발 못들이게 된 맛을 맛보여주라!”

“이 간나 새끼들, 살려달라고 벌벌 빌게 해주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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