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16화 (116/350)

< 35장. 기업가 정신 >

35장. 기업가 정신

“태양광이라고?”

“네, 그렇습네다! 총서기 동지!”

“당으로 올라온 자네 계획서는 서기실을 통해서 읽었지만,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게, 나 뿐 만 아니라, 여기 최승일 동지에게도 말이지.”

정환의 말에 함께 당사 회의실에 앉아있던 최승일도 흥미가 돈다는 듯 고개를 슬쩍 끄덕이자 그들의 앞에 서있는 젊은 청년, 스스로를 최동명이라고 밝힌 김책 공대 출신 유학생은 긴장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 그도 당에 기안서를 제출할 때부터 잘해봐야 당 과장급 정도가 나오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설마 다른 이도 아니고 무려 총서기께서 직접 나올 줄은 꿈에도 예상 못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고 존엄의 오른 팔(사실 이건 사람마다 의견이 달랐다)이자 국영 투자회사 피오니 홀딩스 사장, 당 내외에서 ‘총서기의 금고지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최승일까지,...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지만, 최동명은 스스로에게 되뇌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침착하자, 잘만 하면 이건 내 인생을 바꿀 일대 전환점이 될지도 모른다. 설마 기대도 안하던 일이지만 공화국 돈줄을 책임지는 최승일 사장이 여기 있다는 건 아주 꿈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제가 지금부터 보고드릴 아이디어....어흠흠, 그러니까 이건 착상이나 발상의 영어 표현인데, 시정하겠습네다, 제가 외지에 오래 있다 보니... 그러니까 이러한 사업 구상은 사실 이미 저기 일본이나 도이췰란드(독일)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연구와 실용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만, 저는 이러한 나라들보다 저희 공화국의 실정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당에 보고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점은 당에서도 이미 들어 알고 있네. 계속하게.”

“태양열 발전이란 원래 저기 미제, 미국 항공우주국에서 인공위성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동체에 판넬(패널)을 붙여 에너지를 공급받는 데서 기원했습네다. 그런데 1970년대, 그러니까 대략 10여년 정도 전에 저기 아랍 놈들이 오일쇼크를 일으키면서 그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만, 현재는 유가가 다시 안정되면서 여러 국가들에서 이에 대한 투자가 부진해지기 시작했습네다.”

설명을 시작하면서 긴장과 압박감으로 부들부들 떨렸던 최동명의 다리는 꼿꼿이 펴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그에게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이 비즈니스가 자신에게는 큰 경제적 이득을, 나아가 공화국과 인민들에게도 큰 효용을 가져다 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최동명은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하며 여기까지 들고 온 직사각형의 거대한 거울 같은 것을 꺼냈다.

웬만한 성인 키만한 그 ‘거울’은 유리는 아니지만 반들반들해서 전등 빛을 반사하는 재질의 검은 비늘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공화국 내에서 일반 인민들은 물론이고, 당 간부들도 ‘뭐에 쓰는 물건이간?’하는 표정을 지을법했지만, 다행이 이 방에 앉아서 설명을 듣고 있는 최승일과 정환 둘 다 해외 사정에 밝은 사람들이었다.

“두 동지께 제가 오늘 보여드릴 최첨단 물산은 앞으로 공화국 인민들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할 뿐만 아니라 공화국의 첫 수출 역군이 되어 개혁개방의 새로운 린민영웅으로 우뚝 설 기업소의 대들보가 될 놈입네다. 이걸 뭐라고 부르냐면....”

“......태양전지판 아닌가.”

“........!!! 아! 알고 계셨군요, 총서기 동지! 이게 바로 그 태양 전지판이라고 불리는 물건입네다, 오늘 여기 가지고 온 이놈은 제가 모교 김책 공대 재료공학과에서 협조를 얻어 실험실에서 만든 것인데, 이걸로 전기를 어떻게 생산하느냐 하면....”

“광기전(光起電)효과에 의해 전지판에 빛이 쬐어질 경우 전자가 전압으로, 즉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이야기지. 기술적인 부분은 넘어가게. 최 사장과 나는 사업성에 주목하고 있으니까.”

이야기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최동명은 조금 전까지의 자신감은 간데 없고 딱 벌어지는 자신의 입을 닫느라 고생을 해야 했다.

설마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젊은 수령이 아직 서방에서도 대중화되지 않은 태양전지 기술에 대해 저리 잘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리 쉽게 포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 네! 지, 지금 여기 보시고 계시는 태양광 판넬은 보시다시피 여기 어설피 만든 놈으로도 1제곱미터 당 10w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변압기와 함께 설치한다면 평양 뿐 만 아니라 일반 공민들 살림집에서도 전기를 각자 생산하여 필요한 곳, 그러니까 온열, 난방, 랭동고(냉장고), 전등 빛까지... 말 그대로 자력갱생을 이룩할 수 있습네다.”

“....흠, 아직 일반 공민들 살림집 전반에 전기를 일일이 공급하지 못하는 공화국 사정에 솔깃한 이야기군.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태양광 발전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들었네만.”

옆에서 듣고 있던 정환이 최동명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듯 하자 최승일은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일부러 어깃장을 놓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실무 책임자로서 결정권자인 정환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직언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였다.

“태양광 발전은 아직 발전량이 적고 그 생산도 고르지 못해서 나라마다 기후와 지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들었네. 물론 현재 공화국에 전력 사정이 좋지 못한 살림집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서기 동지 취임 직후 당에서는 남포와 원산에 원자력 발전소 두 기를 발주하고 이미 착공에 들어갔다는 걸 동무는 아나?”

“........동지의 지적이 참으로 옳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공화국의 모든 전력수급을 태양광에만 집중하자는 말뜻이 아니고, 전지판 역시 날씨가 며칠 흐려도 축전지를 함께 팔아서 남는 전력을 저장하면 일반 살림집에서 소모하는 전력 정도는 충분히 충당할 수 있습네다, 사실 공화국 일반 공민들이 서방 국가 국민들만큼 전기를 잡아먹는 전자제품을 많이 소유하고 있지도 않지 않습니까.”

“......흐음. 그건 맞는 말이지만...”

“게다가 원자력 발전소라는 거이 하루아침에 지어지는 것이 아닐 텐데 그때까지 암흑천지 속에서 살아야 하는 인민들에게 이 태양 전지는 자나 깨나 인민들 걱정에 여념이 없으신 당과 총서기 동지의 큰 은혜를 느끼게 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친구는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재주가 있군 그래. 여기 평양이 아니라 실리콘 밸리에 갔어도 잘 됐겠는데?’

정환은 호소와 논리를 잘 섞어 돈 자루를 쥔 최승일을 열심히 설득하는 최동명을 보며 내심 중얼거렸다.

물론 저런 열성이 자기가 하는 말처럼 순수하게 인민들의 복리와 공화국을 위해서 라고는 당연히 믿지 않았지만, 최소한 정환은 최동명이 시류를 보는 눈과 그 안목을 자신의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시키는 비즈니스 맨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했다.

실제로 5년만 있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교토 의정서가 체결되고, 재생에너지 붐이 일며 그 거품이 꺼진 후에도 태양광은 오래 산업적 생명력을 유지했으니, 확실히 미래를 보는 선구안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전세계에서 은둔한 공산주의 세습 왕국, 북조선에도 서구식 기업가 정신을 가진 새싹들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한 것이다.

“........왜 당에서, 그러니까 피오니 홀딩스에서 인민들의 돈을 동무의 사업에 투자해야 하는지 좀 더 설명해 보게. 지금 공화국 자체 기술력만으로 태양전지판을 생산 가능하겠나?”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정환이 다시 입을 열자 최동명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최고지도자께서 저렇게 상세히 물어보신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사업에 단순히 호기심 이상의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최동명은 짧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이 파악하고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정환에게 이야기 했다.

단 한마디라도 속이려 했다가 들통 나면 그 즉시 죽음인 절대 권력자의 질문이다.

그는 지금으로서는 그저 정직이 최고의 보신이라고 판단했다.

“.....눙토히 말씀드리자면 몇 년 간은 기술독립이 어렵습네다. 앞으로 전세계 태양전지판 시장은 실리콘 웨이퍼를 이용한 전지판이 주류가 될 텐데, 현재 공화국에서는 자체적으로 생산이 불가능한 자재이니, 현실적으로 보면 당분간은 남조선 근대전자 동무들에게 웨이퍼를 사와야 할 겁네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하, 하지만 실리콘에도 종류가 있는데, 태양전지판에 쓰이는 다결정 실리콘은 단결정 실리콘 보다 훨씬 만들기도 쉽고 값도 눅습네다! 지금부터 설비 투자에 공을 들이고 몇 년 만 기다려주시면 전지판의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몽땅 공화국 자체 기술력으로 생산할 수 있습네다!”

정환이 아무 말 않고 고민하는 듯 하자 최동명은 애가 타는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필사적으로 정환을 설득하는 데 몰두했다.

“총서기 동지! 제가 한 목숨을 걸고 장담드리겠습네다. 이 태양전지판이 전 공화국에 보급되면, 평양부터 저 멀리 라선의 낙도까지 전깃불이 번쩍번쩍하게 인민생활을 개선할 수 있을 것 입네다! 전지판은 관리도 쉬워서 소학교도 안 나온 무식한 인민들도 한 나절만 배우고 익히면 사용법부터 기초적인 수리까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겁네다!”

“최 동무.”

“타 국가들은 이미 원자력 발전소 같은 설비로 전력을 충분히 확보하기에 인민들이 전지판을 따로 살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아직 전력 사정이 열악한 저희 공화국에서는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자체 수요가 있으니 인민 생활 개선 뿐 만 아니라 비즈니스 면에서도 충분히 현실성이 있습니다! 초기 설비 투자 금액이 좀 들겠지만, 지금 잠시 일본과 미국 같은 곳에서 주춤할 때 공화국 차원에서 집중 투자를 하셔야 기술격차를 따라잡고 나아가 수출 시장에서 싸워볼 수 있을....”

“당과 피오니 홀딩스에서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을 거 같군.”

다급하게 말하는 최동명은 정환이 투자 결정을 내리자 십 년 감수 했다는 표정으로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승일 역시 ‘이제 남의 나라가 아니라 이 공화국 토종 기업에 투자를 해야 할 시기지’라고 생각하며 납득한 듯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정환 역시도 최동명의 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은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질 때까지 전력 부족에 대한 단기적 대책과 미래에 태양광 사업이 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민들에게 견본을 보여줘야 하거든. 모름지기 성공한 기업가의 성공신화만큼 창업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좋은 동기 유발제가 없으니까.’

언제까지나 나라에서 국영기업을 통해 인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할 수는 없었다.

시장경제체제의 중심은 결국 민간기업이고, 국가경제의 성장을 견인하며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역시 민간 기업에서 한다.

정환은 최고지도자로서 국가경제가 나아갈 대략적인 방향을 설정해 주고 그 등을 떠밀어 줄 뿐이지 북조선 인민들 스스로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않으면 그건 결국 소련식 계획경제 시절에서 조금도 발전한 게 아니니까 말이다.

“자세한 투자액은 여기 최승일 사장 동무와 상의해보게. 회사 이름은 정했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총서기 동지. 사실은 이미 생각해둔 이름이 있습네다.”

그리고 혹시라도 정환이 투자 결정을 철회할까 그야말로 신을 숭배하는 신도의 표정으로 엄숙하게 자신이 생각해둔 이름을 말했다.

“그렇군. 말해보게.”

“오로지 총서기 동지의 과감한 투자결정과 당의 은혜를 입어 설립될 수 있던 기업입니다. 해외 손님들이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영어도 써야하겠지만, 인민의 혈세를 투자받아 설립된 인민 기업소에 외래말만 쓸 수야 없겠지요.”

“아...... 최 동무의 당에 대한 충성심이 참으로 감격스럽군. ....그래서 결론이 뭔가?”

“이 기업은 태양광 사업을 하는 기업입네다. 그리고 총서기 동지께서도 이 공화국에서 인민들에게 하늘의 태양과 같은 위치의 최고 존엄이시니, 영어로 태양을 뜻하는 솔라(Solar), 그리고 총서기 동지의 존함을 넣어 ‘김정환 솔라’라고 짓겠.......”

“....그냥 ‘솔라 원(Solar One)'으로 짓지. 태양광 분야에서 1등을 하라는 뜻일세. 이의는 받지 않겠네. 자세한 사업계획과 양산까지 걸리는 시간을 정리해서 서기실로 올리도록 하게.”

정환은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정으로 질색하며 최동명에게 손을 휘휘 저었다.

이만 나가보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설립된 김정환 솔라, 아니 솔라 원은 평양에 본사를 정하고 근대 전자와 김책 공대 연구진의 도움을 받아 시범사업에 들어갔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할 부지를 물색하던 결과, 정환도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소득(?)이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삼림을 다 파헤쳐 놓고 농경지로서 효율은 꽝이니 그 빈 자리에 태양광 패널만 도배하면 그만이로군. 설마 그놈의 다락밭이 이런 데서 도움이 될 줄은 나도 몰랐어.”

그 의외의 소득이란 과거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교시인 주체농법의 일환으로, 남쪽보다 산간 지역 비율이 높은 북한의 농업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계단식 경작지, 다락밭이었다.

강우량도 안 도와주고 만드는데 노동력은 엄청나게 들어가면서 정작 수확량은 영 아니라 삼림만 파헤쳐 놓은, 문자 그대로 ‘삽질’이었다는 게 드러나 지나간 시절의 애물 단지 취급을 받던 다락밭이었지만, 태양광 패널의 설치 장소로는 최적이라는 게 드러나게 되었다.

원래 농사를 짓겠다고 갈아엎어놓은 곳이라 연간 일조량이 충분한 곳에 위치한 곳이 대부분이었고, 태양광 패널이 전기를 생산하고 남는 전기는 돈 받고 팔 수도 있다는 걸 당에서 (보조금과 함께) 알려주자 발만 동동 구르던 땅 주인들 역시 ‘어서 옵쇼‘하고 환영을 표했다.

정환 대부터 관민을 동원해 강력한 삼림 복원 정책을 추진했지만 삼림이라는 게 일조일석에 조성되는 게 아니다 보니 아직도 대부분 흉물스러운 붉은 속살만 드러내고 있던 많은 북조선의 산등성이가 전혀 의외의 용도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물(홍수) 예방과 환경 보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삼림을 유지관리해야 한다고 지정된 지역 외에는 대부분 태양광 패널의 설치 장소로 내정되었다.

“친환경 에너지인 태양광 발전을 증진하겠다고 정작 산림 환경을 파괴하는 타 국가들의 아이러니를 이 공화국에서 재현할 필요는 없어서 다행이랄까. 파괴할 삼림이 한 발 먼저 파괴되었으니 말이야! 이거 참 지도자로서 울어야 될지 웃어야 될지 원....”

패널 양산 후 태양광 발전 단지 설치에 적합한 장소가 공화국에 너무나도 많아 패널이 부족할지도 모른다고 서술한 당 과학발전부 보고서를 받아본 정환이 최승일에게 이렇게 농담했다는 후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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