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장. 3일 천하의 끝, 30년 천하의 불씨 (4) >
30장. 3일 천하의 끝, 30년 천하의 불씨 (4)
양상쿤의 질문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방 안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중국의 인민을 (명목상) 대표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 전인대의 의원도, 인민해방군의 한 군구를 총괄하는 사령원도, 중국 공산당을 좌지우지하는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일원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양상쿤과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은 그들의 눈빛에서 암묵적 동조를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물론 덩샤오핑 동지의 개혁개방 정책이 모두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오, 하지만 보시오, 개혁개방을 시작한 이래로 우리 중국은 줄곧 치욕을 당하고 국제관계에서 난관을 겪어왔소. 오랜 혈맹 북조선은 우리를 남 보듯 하며 중국의 목구멍을 막고 있는 떡이 되었고, 서방에 조종당하는 국제사회는 우리 내정에 간섭하여 경제제재라는 따귀를 날렸지. 안 그런가, 쉬 부장?”
양상쿤은 숨겨둔 회심의 카드를 꺼내듯 방 안에 모인 군중 속에서 일부러 한 사람을 따로 지목하며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의도된 그 연출의 결과에 의해서, 방안에 모여 있던 몇몇 사람들은 흠칫 놀라며 앞으로 걸어 나오는 국가안전부 부장, 쉬용유를 보고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까지 가담했다면 이미 덩샤오핑은 집권 후, 어쩌면 본인의 정치 인생 최대의 위협을 마주한 거나 다름없었다.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주석 동지!”
“덩샤오핑 동지는 우리 중국의 노선이 도광양회(韜光養晦), 앞으로 적어도 50년 간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야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툴 만 하다고 했소. 하지만 그동안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와 중국의 성장으로 인하여, 미국은 벌써부터 중국의 성장을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있지.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 치욕을 당하고 참아야한단 말이오?”
“아닙니다, 동지!”
조금 전 양상쿤의 말에 맞장구쳤던 쉬용유를 시작으로, 방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그중에서도 얼마 전 고민 끝에 양상쿤의 휘하에 들기로 결정한 쉬용유는 양상쿤과 그의 일가, 최측근들로 이루어진 선양군구를 축으로 하는 계파, 양가군(杨家軍)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더욱 세차게 저었다.
사실 그가 양상쿤을 따르기로 한 건 고작해야 며칠 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을 봐서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 하하하.... 자네가 내 편을 들어주니 이거 두려울 게 없군, 이제.
- 그럼 이제 저도 양가군의 일원이 된 거로군요. 주석님을 제 아버지처럼 대하며 분골쇄신하여 공화국과 중화민족의 영광에 기여하겠습니다.
‘물론 그래봐야 진짜 아들 취급은 못 받겠지만 말이야.’
중국인들이 흔히 ㅤㄲㅘㄴ시를 다질 때 쓰는 말을 주워섬기며 양상쿤의 환심을 사려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쉬용유는 양상쿤의 진짜 아들, 그의 뒤에 서있는 당 원로들의 2세들인 홍얼다이(紅二代)들을 보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마치 아버지들을 보위하듯 서있는 그들이야말로 이번 ‘거사’의 중진들이자, 차세대 중국 공산당을, 나아가 이 중국을 영도할 신진들이기도 했다.
양상쿤의 아들 양샤오밍(杨绍明)부터, 양상쿤과 마찬가지로 8대 원로 중 한 명인 보이보(薄一波)의 아들 보시라이(薄熙來), 천윈의 아들인 천위안(陳元)까지.
이미 그들은 중국 공산당 내에 태자당(太子党)이라 불리는 세력을 형성하여 자기 아버지들의 이름을 등에 업고 당이든 군이든 정이든 아니면 민간 재계든(사실 이쪽이 제일 많았다) 한 자리씩을 맡아 차지하고 있었다.
“그동안 덩샤오핑 동지는 개혁개방을 비롯해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이제는 덩샤오핑 동지도 그의 개혁개방도 족함을 알고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소. 뿐만 아니라 덩은 마오 동지 시대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70세가 넘는 간부들은 더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말자고 결의하고서 자신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상무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해왔소. 군사위 주석으로서 자기가 한 말도 지키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양봉음위(陽奉陰違)하는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오?”
양상쿤을 편들어주듯 더 직접적으로 덩을 공격한 이번 발언은 천윈(陳雲)의 입에서 나왔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덩샤오핑의 막후 영향력 행사를 비난하는 그의 말은 좀 많이 뻔뻔스러운 것이었는데, 당장 천윈 본인은 물론이고 양상쿤, 천윈, 보이보 이 세 사람의 노인도 그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덩사오핑과 함께 중공팔대원로로 불리는 이 세 사람은 지금 이 방에서 가장 위치가 높고 덩에 버금가게 막강한 당내 영향력으로 공식, 비공식적으로 계파 간 합의와 타협을 통해 중국을 움직이는 인사들이었다.
게다가 1년 여 전 제 13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모든 당직을 사임하고 명목상 평당원이 되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덩샤오핑과 똑같이 그들 역시 측근들, 자식들을 통해 암중에서 정국을 통제하는 중이었으니 지금 천윈의 발언은 덩샤오핑이 들었다면 그야말로 기가 막혀 했을 말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서 그걸 지적할 만큼 간이 배밖으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리고 그건 쉬용유도 마찬가지였다.
‘천윈 중앙고문위 주임까지 가담했다면 그의 계파인 리펑(李鵬) 총리도 넘어온 게 확실하군. 그럼 덩샤오핑 동지 쪽에 남은 건 차오스 총서기, 그리고 남은 한 명은.....’
“여기 모인 동지 여러분은 내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개혁개방, 그리고 중국의 시장경제체제 도입에 대해 반대해왔기에 불안해하는 분들이 있는 걸 아오. 하지만 그동안 여기 양상쿤 주석을 대표로하는 다른 동지들의 설득으로 인해 나 역시 마음을 조금 고쳐먹었소.”
“그리고 천윈 동지의 그 통 큰 양보로 인해서 지금 이 사람이 여기 우리와 뜻을 함께할 수 있었소. 나오도록 하게.”
천윈과 보이보의 소개를 동시에 받으며 한 사람이 다시 방에 운집한 당원들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자신이 오늘의 유일한 뉴페이스인 줄 알고 있었던 쉬용유는 의아해서 고개를 쭉 빼고 걸어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려 노력했다.
대체 누구의 등장이 준비되어 있길래 국외 방첩활동을 전담하는 국가안전부의 수장인 쉬용유 자신의 합류보다 더 기대를 받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쉬용유는 국가안전부장이라는 자신의 지위도 잊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쩌민(江澤民)! 장쩌민 총서기 동지? 정말 당신이오?”
“말도 안 돼... 어떻게 당신이...”
“양 주석 동지, 장쩌민 총서기가 우리와 함께 하는 겁니까?”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치밀해 보이는 인상의 육십대 남자였다.
안경을 쓴 노인이었지만 결코 유약해보이지는 않는 노인, 장쩌민의 등장에 놀란 건 쉬용유만이 아니었던 게 확실했던지 작은 방 안이 순식간에 군중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런 만큼 장쩌민 현 당 총서기의 등장은 대단히 의외였는데, 장쩌민은 개방특구인 상하이 시장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여 대표적인 개혁 개방 우호론자이자, 덩샤오핑의 발탁에 의해 중앙 정계로 진출한, 정법위 서기 차오스와 함께 대표적인 친(親)덩샤오핑 계 인사였던 것이다.
장내의 소란스러움을 즐기듯 양상쿤과 3인의 원로들은 잠시 군중들이 웅성대는 것을 놔두었다가, 이내 살짝 목소리를 높혀 장쩌민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여기 장쩌민 총서기 동지도 개인적인 친분을 뒤로 하고 우리와 함께 중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동참하기로 했소. 장 동지, 여기 우리 동지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오.”
“여기 계신 분들 대부분이 알 듯 나는 상하이에서 출세를 시작하여 덩 동지의 도움으로 중앙에 진출하게 되었소. 하지만 최근 덩 동지가 나이가 들어 전횡을 반복하며 그러한 전횡의 소산으로 상하이, 나아가 이 중국 전체를 위태롭게 되는 것을 더 두고 볼 수 없게 되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여기 양 주석 동지와 뜻을 함께 하게 되었소이다.”
‘그런 거였군.’
일부러 중국 앞에 개혁개방의 상징이지만 그래봐야 일개 도시일 뿐인 ‘상하이’를 강조해서 말하는 장쩌민을 보며 쉬용유는 그제서야 그가 가담한 이유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쩌민의 정치적 기반은 그 자신이 방금 말했듯 상하이다.
예전부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상업도시 상하이는 개혁개방 특구로 지정된 이후 중국 시장경제체제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런 상하이의 숨통을 쥐고 있는 상하이 시장부터 시작해서 모든 당직들은 지방직이면서도 거의 중앙의 베이징 당직 못지않은 요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중국의 거점도시 상하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른 파벌이 상하이 시장 출신이었던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上海帮)이었다.
그런데 천안문 ‘진압’ 이후 가해진 국제적 대규모 경제제재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역시도 바로 이 상하이였던 것이다.
경제제재에 회사는 도산하고 거래처는 사라졌으며 투자금은 하늘로 날아갔다.
주로 경제관료, 전인대 위원 자리를 맡을 정도로 부유한 사업가들, 해외에서 사업을 일으켰으나 고향으로 돌아온 화교 자본가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 계파에서 엄청난 불만이 터져 나온 건 당연지사였다.
장쩌민은 이전부터 상하이에 개혁개방과 함께 들이닥친 서구화, 민주주의의 물결을 잡음 없이 잘 제어하면서도 성과를 내서 주목받았던 인물이었지만 그런 그가 덩샤오핑 반대편에 선 것에는 그런 상하이 방 구성원들의 불만이 큰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들인 상하이방 수장인 장쩌민이 자신의 정치적 은인이기도 한 덩샤오핑에게 등을 돌리고 양상쿤과 천윈, 보이보로 이루어진 보수파에 가담한 건 언뜻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지만,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사람인 쉬용유는 그 배경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장 총서기 동지의 큰 결단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당 선배로서 많은 조언과 지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사석에서 제가 대형이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보시라이 동지, 마오 동지와 함께 대장정에 참가한 당 원로 중 원로인 보이보 동지의 자제분과 이리 연을 맺게 되니 내가 영광일 따름이오.”
‘이미 서로 노선 타협을 끝냈다는 거군! 그럼 남은 건 논공행상인데... 하기야 장쩌민도 덩샤오핑 동지가 늙어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지존의 자리에 오르고 싶기야 하겠지.’
육십 넘은 노인에게 그 사이에 재빠르게 다가가 넉살 좋게 대형(大兄)이라고 부르겠다는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와 그걸 또 받아들이는 장쩌민을 보며 쉬용유는 내심 침을 삼켰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은 피할 수 없다.
그럼 남은 건 민간에 대해서 정부, 당이 통제권을 얼마나 가질 지에 대한 수위조절인데 장쩌민을 받아들임으로서 양상쿤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는 개혁개방에 대한 유연성을, 장쩌민은 자신이 이끄는 상하이방에 대한 정치적인 보호막과 8대 원로와 동급의 대우를 받는 개인적 출세를 거래한 것이다.
게다가 덩샤오핑은 장쩌민을 불러올릴 때부터 그와 비슷하게 상하이를 기반으로 성장한 중앙정법위 총서기인 차오스와 경쟁을 시켰는데 장쩌민으로서는 이러한 조치가 못내 불만이었다.
공안을 쥐고 있는 정법위 서기인 차오스와 자신을 경쟁시키는 이유가 무엇이겠나, 후임자인 자신에게 딴 생각하지 말라는 거 아닌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덩샤오핑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후견인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짐을 두고 있을 바에야 모험을 해보겠다....가 장쩌민이 오늘 이 자리에 오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이었다.
이쯤 되면 더 이상 개혁개방이니, 계획 경제니 하는 이념이나 노선 차이는 아무래도 상관없었고, 권력 다툼의 복마전만 남은 것을 보며 쉬용유는 새삼 2년 전 천안문 진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리에 모인 원로들은 전부 그 때 강경진압 명령을 내린 사람들이군.’
당시 피를 보라는 명령의 최종책임자는 물론 덩샤오핑이었지만, 대표적인 군내 보수파인 양상쿤은 당시 동원된 선양군구에 양가군(杨家軍)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영향력이 큰 원로였다.
보이보도 사건 당시 ‘자유주의 지식인들에게 선동당한 어린애들이 국가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라고 격분하며 온건한 태도를 취했던 후야오방 총서기를 몰아내는 데 일조했고, 천윈 역시 당시 국무원 총리였던 리펑(李鵬)을 통해 간접적으로 강경진압을 지지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합류한 장쩌민도 중앙에 올라오게 된 계기가 상하이에서 베이징과 같은 유혈 진압 없이 ‘조용히’ 민주주의자들의 요구를 짓눌러버려서 주목을 받게 된 인사였고.
반면에 장쩌민의 라이벌 차오스는 공안의 수장이라는 직위에 걸맞지 않게 이전부터 당의 질서보다 인권을 우선시하는 서방 자유주의자적인 면모를 보인 적이 있어 당 내외로 알게 모르게 말이 많았다.
우연인 듯 우연이 아닌 듯 이 기묘한 동맹을 보며 쉬용유는 오늘의 최고 손님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쓴 입맛을 다실 뿐 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귀신 같이 파악한 양상쿤은 노회한 미소를 지으며 쉬용유에게 그가 관심에서 완전히 소외되지 않았다는 걸 일깨워주려는 듯 일부러 물었다.
“하하하.. 드디어 형제들이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결의했군. 그럼 이제 어떤 식으로 행동에 나서는 게 좋겠소, 쉬 동지?”
“흠, 덩 동지는 이미 인민들과 저희 상하이 방 내부에서도 큰 존경을 받고 있으니 직접적으로 공격해서는 안 될 겝니다. 공개적으로 모욕을 줘서 정치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하는 것만으로도 족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안타깝지만 그래야겠지. 이미 덩 동지는 혼자서 너무 큰 권력을 가지고 있네. 마오 동지 시절의 권력집중으로 인한 일인숭배의 오류를 막고 이 중화의 더 밝은 미래를 개척해나가려면 피눈물을 머금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겠군.”
쉬용유는 속으로 양상쿤이 덩샤오핑을 완전히 숙청해버리기에는 그의 권위와 현재까지의 행적이 너무 거대해서 무리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리고 짐짓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양상쿤의 옆에서 보이보가 한 마디 거들었다.
“해외에서도 천안문 진압에 대해 안 좋은 여론은 덩 동지의 책임으로 알고 있으니 덩 동지가 물러나면 경제제재도 자연히 철폐될 걸세. 그럼 장쩌민 동지의 상하이 방 친구들도 우리와 손을 잡겠지.”
“....굴욕적이지만 지금은 인내해야합니다! 인민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만큼 당의 처사와 결정이 결과적으로 모두 중화를 위하는 길이라는 걸 효과적으로 납득시키는 방법은 없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원로 동지들과 원로님들의 의지를 이어받은 우리 혁명 2세들이 이 중국과 인민을 영광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2세 하니까 그 친구 생각나는군. 그 북조선의 젊은 총서기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친구도 세습이었지?’
미래의 권력에 대한 흥분과 긴장으로 얼굴이 벌게져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는 보시라이를 보며 쉬용유는 엉뚱하게도 현재 걸프전 참전과 친미 행보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북조선의 총서기 김정환을 떠올렸다.
최근 몇 년간의 파란을 전부 음지에서 지켜본 쉬용유의 입장에서, 김정환의 갑작스런 등장은 카드 집처럼 얼기설기 엮어 세운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균형을 삽시간에 무너뜨린 산들바람 같은 것이었다.
중국의 뒷문을 지키는 소국 정도로 여겼던 북조선의 지도자를 과대평가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김정일이 실각하고 김정환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자, 그럼 이제 거사의 성공과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건배하세, 건배!”
“건배!”
방 안이 우렁찬 건배소리로 가득 찼다.
목구멍으로 술을 넘기며 쉬용유는 잔뜩 흥분한 보시라이와 양사오밍 등 혁명 2세대들을 슬쩍 곁눈질했다.
어차피 거사가 성공해도 양상쿤이나 천윈, 보이보 등은 나이가 나이라 얼마 못 살 것이다.
다음 대권은 아마 장쩌민이겠지만, 그 다음으로는 아마 저기 혁명 2세대들, 태자당을 이루는 핵심인 그들이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이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시발점인 김정환도 왕자, 자기 아들을 낳으면 북조선의 왕 자리를 물려주겠지.
그때의 북조선은 지금의 북조선보다 조금 더 부유하고 인민들이 조금 더 행복하겠지만, 그 점은 미래의 중국과 같을 것이라는 예측에 쉬용유는 한 점 의혹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국가 안전부와 가장 충실했던 심복까지 돌아서면서,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실용주의자, 그리고 동시에 천안문의 학살자였던 덩샤오핑에게 서서히 몰락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