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98화 (98/350)

< 26장. 월북(越北) (4) >

26장. 월북(越北) (4)

- 잘 알겠습네다. 과연 미국 놈들의 중재가 있으니 일사천리로군요.

- 하하.. 부시 대통령이 연합국기구(유엔)에 동시 가입하자는 내 제안을 남에 전달해준 덕이지. 이미 남조선 당국에 김영남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고위급 실무회담 제의를 해놨으니 머지않아 합의문에 서명하게 될 걸세.

- 총서기 동지의 령도력과 혜안에 이 장성택이는 그저 감읍할 따름입네다. 일본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 공화국에서 직접 보고 드리겠습네다!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전화가 끊어지자 장성택은 내심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하필 7년 후일까? 물론 아무리 회장의 지지가 있다 해도 남조선의 기둥 같은 기업의 핵심  력량을 공화국으로 인수하는 데 일이년 걸릴 리야 없겠지만...’

위성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수령의 목소리를 들으며 장성택은 갸우뚱했지만 어쩌겠는가?

최고지도자가 7년이라면 7년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 7년이라는 총서기의 기한보다 더욱 장성택의 뇌리를 가득 채운 것은 방금 독대한 정문영 회장이라는 자의 존재감이었다.

직위상 공화국 밖 소식에 귀를 열어두고 남의 신문도 자주 읽는 그였기에 남조선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당이나 정부의 요인보다 기업가가 더 큰 힘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공화국에 여전히 만연한 전근대적 발상에서 우러나온 ‘그래봐야 장사치’라는 인상이 짙게 남아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조선시대 사농공상 식 계급제도에 가까운 인식이었지만, 북조선은 어느 의미로 조선 말기보다 더욱 교조적인 나라였고 장성택은 그런 곳에서 거의 인생 대부분을 보내왔으니까.

그런데 이번 일본 출장을 가기 전 공화국의 최고지도자 총서기가 정문영이라는 남의 자본가를 끌어들이기 위해 당에서 총서기 다음가는 자신까지 직접 파견하고 여러 가지로 신신당부하는 모습을 보며 장성택은 한 가지 사실을 절실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기업가란 때로는 당 간부보다 더 윗줄에 있을 수 있는 존재로구나! 고작 장사꾼 하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 총서기가 저렇게 애를 쓰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성택의 머릿속에 들 수밖에 없는 생각은, 머지않아 이 공화국에도 저런 광경이, 당 간부와 자본을 가진 기업가가 대등하게 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국가의 미래에 대해 논의하는 광경이 펼쳐질 거라는 것이었다.

처음 총서기가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해도 멀게만 느껴졌던 그 시대는, 7년이라는 구체적인 기한이 제시되자 더욱 장성택의 피부로 체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공화국에서, 지금 총서기 아래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장성택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

김일성 공화국, 김정일 공화국을 버텨온 그였지만, 앞으로 다가올 김정환 공화국은 이전까지의 두 공화국과는 명백히 다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자본주의 조선 공화국에서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 장성택 자신의 지위와 복락은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도 있고, 바닥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장성택은 추락하고 싶지 않은 쪽이었다.

“7년이라.....”

장성택은 그렇게 의미모를 총서기의 기한을 뇌까리며 미래에 대한 구상, 그리고 그 미래에서 자신이 변하고 지향해야 할 모습의 구상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지금 도쿄에서 저 멀리 떨어진 북조선의 서기실에서 전화하는 정환이야 그 7년이라는 기한에 담긴 의미와 곡절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 6, 7년 후, 1998년이면 대한민국의 경제주권이 IMF라는 외국인들에게 넘어가고 실업률은 폭증하며 한 달 만에 기업 3천개가 도산하는 초유의 경제적 재앙이 닥쳐오니까.

'물론 안기부든 청와대든 바보 천치만 있는 게 아닌 이상 근대가 그냥 넘어가는 걸 보고 있지는 않겠지만.... 정문영 회장도 은퇴하겠다, 기업 분할을 해야겠지.‘

자본주의 사회 기업에서는 지분 많이 가지고 있는 놈이 왕이라지만,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 1위 재벌이라는 근대가 통째로 북한 기업이 되는 건 국가안보차원에서라도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 뻔했다.

원 역사에서 곧 대통령이 될 박이삼이든, 유민중이던 그건 마찬가지일 테고 설령 외환위기 와중이라도 초법적인 수단까지 동원할 가능성이 높으니 한 번에 다 먹으려고 하다가 체하지 말고 처음부터 일부만 가져오는 게 정환의 계획이었다.

‘이거 한 때 대한민국 국민이었던 사람으로서 국민적 트라우마가 된 국난(國難)을 이용하게 되는 꼴이니 가슴이 아프군. 그래도 나도 나름 IMF 그늘 아래서 자란 세대인데... 지금 내가 말해준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닐 확률이 높지만 씁쓸하구만.’

어렸을 때 심각하기 그지없던 얼굴로 집 문 밖을 나서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자 정환의 입가에 고소가 서렸다.

북한 국가지도자라는 입장에서도 주한미군이 주둔해있는 한국이 너무 망해버리면 곤란하니 그나마 할 수 있는 한 도와주는 게 맞겠지만, IMF의 주원인이 된 한국 대기업들의 부채비율은 벌써부터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가고 있었다.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누리며 북한을 경제적으로 확실하게 제치고 10년이면 (슬슬 망조가 보이는)일본까지도 따라잡을 지도 모른다는 단꿈에 전 국민이 젖어있을 지금, 막 취임한 북한 지도자가 ‘재벌들의 무분별한 차입경영과 사업 확장을 경계하라’고 말해봐야 조롱이나 안 들으면 다행인 것이다.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잘해봐야 달러를 좀 융통해줘서 IMF 총재 미셸 캉드쉬의 야매 구조조정 수술만 안 받게 도와주는 것 정도? 어차피 맞을 매 내가 도와줘야 한 대라도 덜 맞을 테니 말이야. 물론 본인들이야 그 사실은 영원히 모르겠지만....’

회귀자의 지식이라는 초자연적 능력으로 철인 통치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에 젖어있었는데, 막상 현실에서 뻔히 일어날 것을 알고 있는 재앙을 못 막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지. 무역과 상호 경제교류 조항을 수정한 남북 기본 합의 초안은 거의 완성됐으니 한국에 제의하는 시점이 문제로군.’

지난 북미 정상회담과 국빈 방문 이후로 이런 외교적 쇼크에 대한 한국 및 주변국의 정세변화는 그야말로 각양각색이었다.

우선 북조선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걸프전 이후 현재는 관계가 살짝 냉랭해진 감이 남기는 했지만) 혈맹인 중국은 떨떠름해하면서도 일단 관망세를 취한 듯 했다.

그러한 신중함은 어찌 보면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달리 없는 측면이 강했는데, 중국은 외부적으로는 천안문 사태, 아니, 천안문 참사 이후 펼쳐진 대 중국 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외교전에 몰두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극심한 내흉을 앓고 있었다.

베이징을 가장 자주 왔다갔다하는 장성택의 말과 대외정찰총국에 소속된 조선족 출신 중국 요원들의 증언을 종합해본다면, 현재 베이징에서 북조선에 대한 중국 고위층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나뉘어 있었다.

- 조선이 미국 편을 들어 걸프전에 참전한 게 별로 기분 좋지는 않지만, 현재 미국은 세계패권국이며, 달러는 기축통화로서의 위치가 공고하다. 오히려 이번 일은 어찌 보면 우리 중국의 외교적 패배다. 미국이 국제여론을 모아 대의명분 하에 다국적군을 결성하고 중동에까지 손을 뻗치며 혈맹 북조선까지 끌어들이는데도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를 못했다. 일단 최선을 다해 경제제재에 가담한 국가들에게 세계 무역에서 중국의 필요성을 납득시키고 제재를 해제하여 개혁개방 정책에 박차를 가한다면 빠른 시일 내에 조선 역시 남조선과 친한 미국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중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 뻔하다.

이건 주로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중심으로 한 관료들의 시각, 그중에서도 개혁개방을 찬성하는 덩샤오핑과 차오스, 장쩌민 등 실용주의자 파벌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국가주석 양상쿤과 중앙군사위를 중심으로 한 군부 원로들, 천윈 등 보수파 관료들은 생각이 달랐다.

걸프전 참전이야 자국민 구출이라는 명분이 너무 확실해서 뭐라 군소리를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조차도 이미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의뭉스런 시선을 보내는 자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 엄연히 자국 내정 문제인 ‘천안문 폭란 진압‘에도 비난 성명을 발표하더니, 최근 들어 조선이 40년 혈맹 관계를 등한시하고 미국에 가담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이는 덩샤오핑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 내부의 시장주의자들의 오류다. 이번에 새롭게 조선의 최고지도자가 된 김정환 총서기부터 중국은 단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으면서 걸프전 승전 기념행사를 핑계로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는 게 무슨 뜻이겠나? 아무리 미국이 패권국이라도 이러한 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다. 이러한 덩샤오핑 동지의 행보는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상 정환과 북조선의 태도를 매개 삼았을 뿐, 실제로 이 비난의 타겟이 덩샤오핑과 개혁개방론자들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일본의 경우, 일단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대부분의 매체들이 북미정상회담을 ‘세기의 회담’, ‘냉전 완전 종료 선언’, ‘납북자 문제 해결의 실마리?’ 등 선정적이다 못해 과격한 제목을 붙여가며 열심히 보도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반응이 끝이라는 점이었다.

당장 올해 3월에 발표된 대장성의 대출 총량규제는 그야말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은 제 3의 원폭 투하라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로 부동산 시장에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었다.

원체 일본 민간인들 자체가 국제정세에 무지, 무관심한데다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탈아입구사상의 잔재로 인하여 아시아의 변방 북조선이 어떻게 돌아가든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당장 북미정상회담도 회담 당일만 신문 1면을 차지했을 뿐, 바로 다음 날부터 신문 1면은 나날이 날개 없는 추락을 보여주고 있는 닛케이지수에 모든 지면을 배당했다.

소련은 그저 올 게 왔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반응이었다.

이미 폴란드에서는 자유노조가 압승하고, 루마니아에서는 차우셰스쿠가 처형당하며 다른 동구권 국가들까지 공산당에서 독립 선언을 하는 마당에, 북조선이라고 소련의 날개 아래 남아있을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일부 외교관들만이 북미 수교로 인하여 소련도 이제 좀 더 편하게 경제에 도움이 될 한국과 수교함으로서 자본주의의 체제경쟁 승리가 확실해졌다는 논평을 내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 가장 주요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반응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한국의 진보 보수 양 쪽 모두 일종의 ‘사상적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4월의 북미정상회담은 그 자체로도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지만, 이념과 이념, 진영과 진영 간 갈등으로 크게 비화되는 계기가 된 건 1달 후 벌어진 대학생들의 분신 사건이었다.

4월 26일, 한창 부시와 정환의 만남으로 한창 온 나라가 떠들썩한 찰나 명지대학교에 다니는 한 대학생에 가해진 백골단의 구타치사와 이에 대해 항의의 의미로 이어진 분신자살은 안 그래도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진보단체에 향해진 국민들의 의구심 어린 시선에 석유를 끼얹었다.

아직 그들 자신은 감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속에 피어나는 진보 단체들, 아니 한때의 민주화 투사였으며 최루탄 연기를 마셔가며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주역들, ‘운동권’이라 더 자주 호칭된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그것이었다.

- 국민 여러분! 왜 우리가 미국의 전쟁에 피 흘려야 합니까? 40년에 걸친 분단도, 한국전쟁도 우리 한민족은 결국 미국을 비롯한 외국 강대국끼리의 대리전에 희생양으로 동원되었을 뿐이라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1년여 전 걸프전 파병에서도 드러났듯이, 이 나라의 군사정부는 강대한 미 제국주의자들의 하위 협력자이자 꽃다운 학생들을 외국의 전장에서, 시위 행렬에서 죽음으로 내모는 민족반역자들의....

- 야! 늬들이 말하는 그 한민족 북한 빨갱이들 대장이 미제 수괴 대통령하고 악수하는 거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거 못 봤냐? 세상 바뀐 거 아직 몰라?

- ..........!! 신문이고 방송국이고 다 믿으면 안 됩니다, 아저씨! 언론들은 어디고 다 보도지침 같은 군사 정부의 조작 날조 선동공작의 한패거리나 다름없는....

- 지금 영국이고 일본신문이고 다 그 이야기뿐인데 조작은 무슨 얼어 죽을... 그리고 젊은 애들 죽인다 희생양이다 해 쌌는데 그러는 너희 ㅤㄲㅝㄴ들은 만날 누구 하나 억지로 분신시키고 해서 시체 팔이 해먹잖아! 이번에 죽은 그 명지대생도 너네들이 떼밀어서 죽은 거라며! 북한 빨갱이들보다도 더 대가리 굳은 놈들이 대통령이고 정부고 욕해봐야 퍽이나 믿어주겠다, 쯧쯧... 야! 시위 놀이 그만하고 들어가서 학생의 본분에나 매진해!

비록 모든 운동권들이 북한을 추종한다거나 더 나아가 적화통일을 주장한다는 건 신군부의 프로파간다였지만 그들 대부분이 북한 최고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이 다정하게 산책하며 회담하는 모습에 지동설을 처음 접한 중세인 수준의 컬쳐 쇼크를 받은 건 부인할 수 없었다.

반미(反美), 민족주의를 사상의 기조로 삼아오며 북한을 연대 내지는 통일의 잠재적 상대, 미국을 한민족을 억압하는 외국 압제자로 설정한 민족주의 진보 좌파 세력은 북한의 급변에 발맞추어 논리를 제 때에 재정비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 같으면 전국적인 시위와 학생운동을 불러일으켰을 구타 치사 사건, 분신항쟁도 이제는 젊은이들의 죽음에 지친 국민들에게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정타는, 고려일보에 게재된 한 시인, 운동권들에게는 민주화 운동의 대선배 격으로 불리던 사람의 비판 사설이었다.

<젊은 벗들이여, 역사에서, 그리고 현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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