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97화 (97/350)

< 26장. 월북(越北) (3) >

26장. 월북(越北) (3)

“아, 그거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북쪽도 이제는 바뀌는 거 같군요, 허허...”

내심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문영은 방에 들어선 지 처음으로 옅게나마 웃음 지었다.

근대중공업 노조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강성노조들의 강경하다 못해 전투적인 파업에 아주 학을 떼고 있었던 그였기에, 노조 같은 게 없다는 장성택의 장담은 참으로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처음에는 터무니없이 들리던 장성택의 제안이 정문영의 머릿속에서 뼈대를 갖추며 사업으로서의 구체적인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보자, 우선 빨리 받아낼 수 있는 것부터 쓸어 담아야 한다. 평양에 근대건설 지사를 설립하고 쿠웨이트 건설 물량부터 수주해야겠군. 북쪽 중계로 쿠웨이트 현지 관리와 도장 찍고 나면  이후에 저쪽에서 오리발을 내민다 해도 헛고생은 아니다. 거기까지 아무런 마찰이 없다면 천천히 중공업, 전자, 조선, 자동차, 하나씩 들여놔도 되겠지.’

기회비용과 매몰비용, 북에 투자할 경우 생길 그룹 내외의 반발과 북에서 얻을 기대수익이 그 반발을 감내할 수 있을지, 저쪽에서 약속을 어길 경우나 예상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경우 발을 뺄 방법까지, 사업가 정문영의 뇌는 벌써부터 손익을 계산하느라 분주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왕회장 정문영을 흥분시킨 것은 남에서 성공하여 북쪽의 태어난 고향으로 금의환향한다는 원초적인 보상심리도 있었지만, 노인은 어디까지나 능란하고 노련한 사업가였기에, 근대가 북으로 사업을 옮길 경우 얻게 될 혜택이 더 아른거렸다.

노인이 되어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했던 정문영의 황무지 같은 가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이를 잊은 격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정 회장 동지. 이제 북녘 고향땅으로 귀한 손님이 되어 돌아가고 싶은 의향이 좀 굳어지셨습네까?”

“하겠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고향 땅 일가 피붙이들 돕는다고 생각하고 적극 투자해보지요. 정부 허가만 나면 저희 근대건설이든 중공업이든 휴전선 넘어 평양으로 달려가겠습니다. 물론 그 최일선에는 제가 앞장설 것 이구요. 허허...”

“하하하... 참으로 현명한 용단이오. 정 회장 동지. 과연 남에서 알아주는 사업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려.”

남과 북의 두 정재계 요인은 그렇게 함께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장성택은 일단 도쿄까지 직접 온 1차 목적은 달성했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었다.

총서기가 장성택 그에게 털어놓고 맡긴 장기적 복안, 이 회동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 진짜 목적은 단순히 근대그룹에게 단발적 투자를 받는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니었으니까.

비록 불가능에 가깝게 어려워 보이고 얼마 전의 그라면 터무니없다고 비웃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장성택이 아는 총서기는 허황된 목표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당장 몇 년 전 이 도쿄에서 만났을 때 만해도 자신보다 한참 아래였던 그가 몇 년 만에 김정일을 물리치고 아바디 김일성에게 공화국 수령의 직위를 물려받을 거라고는 장성택 그도 전혀 상상도 못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하늘이 그를 도와주는 건지 아니면 공화국을 도와주는 건지 몰라도 그가 수령이 된 이후부터 석유부터 국부펀드, 미국과의 수교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과업이 척척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총서기가 만들 새로운 공화국의 2인자로서 권력과 (그에 자연히 따라오는)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번에 그에게 맡겨진, 도무지 믿기 힘든 혁명과업을 달성해내야만 했다.

“험, 그렇다면 정 회장 동지께서 생각하는 투자규모는 얼마나....”

“아, 그건 이 자리에서 바로 대답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혼자 결정할 수 없다 보니 사장단 의견도 들어봐야 하고, 너무 아닌 밤중에 접한 급작스런 제안이다 보니...허허...”

“.......................”

‘이것도 총서기가 말한 대로군. 자본가들이란 나라에서 혜택은 최대한 받아 처먹으려 하면서 자기들 돈 나갈 약속은 최대한 늦춰 말하는 족속이라더니... 하지만 이 공화국이 그렇게 헐치 않다는(쉽지 않다) 건 곧 알게 될 게다.’

즉답을 내놓지 않으며 웃음으로 얼버무리는 정문영을 보며 장성택은 속으로 냉소를 흘렸다.

총서기의 당부에 따르면 근대그룹 회장 정문영이라는 자는 사업에서 계산보다 직관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재고 따지며 시간을 보내다 기회를 놓칠 바에야 순간적인 직감을 믿고 뛰어들어 지금의 근대그룹을 일구어낸 사람이기에 적대국인 북조선에 투자해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본 자본가가 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사업가이기에, 그리고 정경유착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왔기에 정문영 회장은 남이나 북이나 정치인들의 약속이란 서푼가치만도 못할 때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하지만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고. 저쪽에게 오히려 돈만 뜯기고 약속이행은 하나도 못 받아낼 공산도 있다. 일단 관리들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보고 난 다음에 투자규모를 결정해도 늦지는 않겠지!’

북의 고위 관리라는 저 장성택이라는 자가 근대에 약속한 세금 감면이나 파업을 모르는 고분고분한 노동력은 물론 탐이 났다.

고향 강원도 통천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 역시 굴뚝같았고, 이 일이 잘 풀리면 아예 그곳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마음 속 한구석에서 슬며시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 믿고 자신이 평생 일구어온 근대의 부를 북에 갖다 바칠 정도로 정문영은 허술한 인간이 아니었다.

한국 재계의 신화라는 위치에 오른 후에도 여전히 그는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고 다니는 구두쇠 아닌가.

정문영이 투자 승낙은 해놓고 정작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자 장성택은 총서기가 준비해준 제2의 패를 꺼내들었다.

“아, 그리고 총서기 동지께서 특별히 정 회장 동지께만 전하고 싶다고 하신 말씀이 있으셨소.”

“총서기라면.... 그....”

아, 그 젊은 친구? 라고 말하려다 정문영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나이로 따지면 자신의 손자뻘이긴 하지만 저쪽에서는 백두혈통, 현인신 같은 존재 아닌가.

게다가 자신이 한국에서야 재계의 1인자, 돈이라면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지만 북에서 사업을 하게 되면 어느 의미로 대통령보다 더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사람이 그 젊은 친구인 것이다.

한국 대통령은 임기라도 있지 북한은 권좌에서 밀려나지 않는 이상 종신직이니까.

내심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정문영의 마음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성택은 슬며시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정문영에게 몸을 굽혔다.

“그게 뭐냐하면... 총서기께서는 정 회장 동지가 북으로 오시면 직접 만나 뵙고 당으로 모셔서 자본주의적 노하우를 많이 배우고 싶다고 하셨소.”

“.....자본주의적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라?”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공화국은 변하고 있소. 아직 일반 인민들에게는 가타부타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남과 같이 시장경제체제로 이행하는 것, 배급을 타먹고 사는 게 아니라 장마당에서 능력껏 벌어 사는 사회가 되는 거이 우리 총서기 동지께서 의도하시는 바요.”

“.....그렇겠지요.”

“그런데 이게 곤란한 점이 있단 말이지요, 기술이야 가르치면 되고 물건이야 내다 팔면 된다지만, 경험 많은 사람, 자본주의에 능란한 일꾼은 도무지 구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요. 일반 인민들은 고사하고 개혁개방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당원들조차 그중 절반은 은행계좌가 뭔지도 모르는 판에 자본주의화가 쉽게 진행될 리가 없지 않소? 세상에서 제일 바꾸기 힘든 거이 사람 마음가짐인데 말이오.”

“...............”

“그래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총서기 동지께서는 남에서 기업가를 초빙하여 자본주의 노하우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자 하시는 거요. 자본주의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기업 아니겠소. 그리고 그 기업 활동에 대해 북쪽 인민들에게 가장 잘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정문영 회장동지 말고 또 누가 있갔소?”

이제 슬슬 정문영 회장은 장성택이 어떤 암시를 주고자 하는지 알아채고 입이 쩍 벌어졌다.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그라지만 이런 제의는 황당함을 넘어서 경악스러웠다.

즉 이건 자기보고 북에서 기업 활동만 하는 게 아니라....

“지금 저보고 북으로 넘어오라 그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월북하라 이 말이지요? 허허... 정부 관리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그냥 앉아서 두고 보겠습니까?”

“아, 물론 정 회장 동지의 처자식 다 버리고 맨몸뚱이로 넘어오라 이런 말은 당연히 아니오. 동지 호적은 남에 두고 국적도 여전히 남조선 사람일 거요. 하지만... 사업가에게 국적이란 게 무슨 소용이갔소? 나도 자본주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 아는 거지만, 사업가들에게 국적이란 겉옷처럼 입고 벗는 것에 불과하지. 자기 돈을 가장 많이 예치해 둔 나라가 곧 사업가의 국적 아니갔소?”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그건 자본주의 국가끼리나 통용되는 법칙 아닙니까?”

“내 말이 바로 그거요. 머지않아 우리 공화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이고 그 전에 맺어질 아까 언급한 북남간 기본 합의에는 경제협력에 관련하여 한 가지 조항이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이오. 물론 아직은 구상에 불과하니 남의 관리들은 모르고 있지만..... 그 조항이 뭘 것 같소?”

알쏭달쏭하고도 포괄적인 질문이었지만, 노령에도 불구하고 정문영은 머리가 둔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게다가 장성택과의 전후 대화로 유추해 볼 때, 그가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북한에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제가 있었다.

“......남북간 상호 재산권 보호, 상호존중 조항이겠지요. 그래야 기업가들이 돈 떼일 걱정 없이 북에 투자할 테니.”

“그렇소. 자본주의 사회는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하오. 은행에 예치해둔 자산이나 사업이 불법적으로 당국에 압류될 수 있다면 앞으로 대체 누가 우리 공화국에서 마음 놓고 사업을 하려 들거나 땀 흘려 일하려 들겠소? 이 부분은 우리 총서기께서도 신신당부하신 조항이오.”

“..............”

“내가 알기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회사는 주주의 의사가 제일이오. 지분을 많이 갖고 있을수록 목소리가 커지지 않소? 자본주의 국가끼리 주주가 경영상의 이유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옮겨서 사업하겠다고 하는데, 그걸 정부가 억지로 막는다면 그거이 말이 되는 이야기오? 그야말로 공산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날 일이지. 하하하.”

나름의 조크까지 던지며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장성택을 보며 정문영은 그제서야 장성택의 믿기 힘든 제의가 완전히 터무니없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 진지하게 고려해보게 되었다.

‘이건.... 가능성이 있군. 아니, 그럴 낌새만 내비쳐도 근대한테는 10할 이득이다.’

정문영은 신중하게 장성택의 제의를 다각도에서 검토해보았다.

물론 이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 사인을 할 생각이야 없었지만, 말만으로도 유혹적으로 들리는 제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상호합의가 실제로 체결된 이후에 고민해 봐도 될 문제지만, 정말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하면,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군바리들에게도 대한민국에서 근대그룹의 가치를 상기시키는 경고장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이렇게 세법도 노동법도 거지같은 나라에서 더 기업 못해먹겠으니 앞으로는 북에 가서 사업하겠다’라는 낌새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근대에 비판적인 정치인들의 표는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요즘 국민들이 정문영을 보는 눈이 차가워졌다고 해도 근대그룹은 여전히 한국의 대표기업이었고, 그런 기업을 ‘빨갱이들’(물론 합의가 체결된다면 더는 빨갱이들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에게 눈 뜨고 빼앗긴다면 어느 당이든 다음 총선에서 이길 생각은 깨끗하게 접어야 할테니.

거기까지 계산이 서자 이번에 정문영은 어쩌다 북에서 이런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에서 내가 정계 진출할 거라고 도는 소문을 엿들은 모양이군. 나와 근대의 자본을 북으로 끌어들이려는 꾀임의 일환이겠지만, 또 완전히 꼬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게 문제인데....’

엊저녁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했던 국가에 자본주의적 마인드가 일조일석에 이식되는 게 아니니 기업가들 초빙해서 배우겠다는 장성택의 말은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세간에 도는 소문대로 분명히 그, 정문영 회장은 정계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니,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도가 아니라, 어처구니없는 추징세를 당한 이후로 격분해서 이럴 바에야 자기가 직접 정치해서 뜯어고치겠다는 생각이 떠난 적이 없었다.

앉아서 추징세 1300억 뜯길 바에야, 차라리 그 돈으로 대통령 출마 한 번 하겠다고 술자리에서 취기를 가장해 직원들의 반응을 슬쩍 떠본 적도 있을 정도니까.

‘돈으로 권력을 살 수 있다고들 하지만, 권력이 없으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벌어놓은 돈을 지키지 못하고 눈 뜨고 빼앗기는 법이지. 물론 북쪽에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거 싫어하는 놈들이야 천지에 널려 있겠지만, 그건 남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쨌거나 이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약속할 필요가 없다.

그저 북한에게 있어서 정문영 자신이, 그리고 근대의 자본이 어느 정도로 절실한지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번 도쿄행은 결코 헛걸음이 아닌 것이다.

계산이 선 정문영은 주름살이 자글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내 적극적으로 검토해보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제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다른 일을 좀 해보고 싶어서 좀이 쑤시던 차였는데... 사장단들, 아들놈들 반발이야 있겠지만, 이 내가 책임지고 설득할 테니 장 부장 윗분께는 이 정문영이가 한 팔 든든히, 최소 미화 1억 불 이상 거들 테니 믿으셔도 된다고 보고 드리면 됩니다.”

드디어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자 장성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스위트룸 미니 바로 다가가 잔 두 개에 위스키를 넘치도록 부었다.

“하하하... 정 회장 동지가 함께하겠다니 이거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구려. 과연 이 일본까지 날아온 게 헛고생이 아니었소. 앞으로 공화국에서도 남에서 보여준 역량을 잘 보여주길 바라겠소.”

“허허, 나도 마찬가지에요. 간만에 기업인을 우대해주는 분을 만나니 참으로 기쁠 따름입니다. 이거 요즘 한국은 하도 돈 많은 사람들한테 눈 부라리지 못해서 안달이라....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치권력이 없으니 이거 아무 쓸모가 없더란 말입니다. 그런 차에 참 잘 됐습니다.”

“그럼 확답을 받았으니 이제 서로 우의를 나누는 술 한 잔 해야겠습네다. 민족의 큰 일을 도모하는데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렇고말고요, 이거 내가 접대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머지않아 남에 오시면 제가 장 부장한테 크게 사겠습니다, 하하하....”

술이 부어지고 두 사람의 잔이 부딪혔다.

“근대 그룹을 위하여! 새로운 자본주의 공화국을 위하여! 조선민족과 겨레를 위하여!”

잔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스위트룸에 번졌다.

두 사람은 북남 접촉의 대략적인 일정과 대북 투자 발표 시기를 조율한 뒤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정문영의 모습이 방에서 사라지자 장성택은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조금 전 정문영 회장과 나는 대화를 스스로 곱씹어봤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정치권력이 없으니 이거 아무 쓸모가 없다라.... 남이나 북이나 똑같군.”

장성택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머리를 한 번 휘젓고는, 여전히 문밖을 경호하고 있는 검은 정장 남성들에게 한 마디 던졌다.

“도청 방지 장치 켰나?”

“염려 마십시오, 장 부장 동지. 안심하시고 하실 말씀 나누시면 됩네다.”

오늘 이 자리에 그를 수행한 사람들은 이번에 새롭게 개편된 공화국의 정보기관, 대외정찰총국(對外偵察總局)의 요원들이었다.

과거 보위부와 보위국, 사회안전성 중 충성심이 검증되고 능력이 뛰어난 정예 요원들만을 골라 편성된 이 새로운 조직은 앞으로 공화국의 보이지 않는 칼이자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통신 안전이 확보되자 장성택은 전화기를 꺼내들고 자신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을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총서기 동지, 장성택이입네다. 일은 잘 마무리됐습네다. 가장 중요한 회장 동지의 마음을 돌려놨으니, 머지않아 말씀하신 대로 근대그룹의 대들보를 남에서 뽑아 공화국에 옮겨올 수 있을 것입네다.

- 수고했네. 장 부장 동무. 목표기간은 7년일세. 7년 후까지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근대그룹의 알맹이를 우리 북조선으로 옮겨오는데 남조선 동무들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어떤 하자도 없어야 하네. 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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