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80화 (80/350)

< 21장. 공화국의 새로운 태양 (2) >

21장. 공화국의 새로운 태양 (2)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갑자기 긴급속보가 떴다.

국영방송인 조선중앙텔레비죤 뿐 만 아니라 올해 개국한 평양TV와 JBS 그리고 다른 방송들 전부 똑같이 정규방송을 중단했다.

그리고 울먹이는 아나운서의 침통하면서도 착잡함을 이기지 못하는 듯한 목소리가 비보(悲報)를 먼저 전달하자 전 공화국은 한순간에 일시 정지되었다.

평양 시내 거리에는 아낙네들, 중년 남성들, 노인, 어린아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일손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보며 울부짖었다.

보안원들 역시 이를 말리기는커녕 주저앉은 공민들을 위로하거나 자신들도 하늘을 바라보며 수령의 죽음에 탄식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모든 라디오로 이제 상주(喪主)가 된 젊은 총서기의 공식발표가 흘러나왔고, 슬픔을 좀 일찍 이겨낸 사람들이나 이 변화에 대해서 타 인민들과 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재빠르게 눈물을 닦고 라디오의 음량을 올렸다.

- 전 공화국 인민 동지 여러분께. 저는 이 자리에서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슬픔을 참으며... 전 공화국 인민들에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셨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신 김일성 동지께서 어제, 1989년 11월 17일 3시에 급병으로 서거하셨음을 알

리는 바입니다. 장례식은 두 달 후 신년 첫 날에 평양에서 거행될 것이며 당의 모든 간부들과 그분의 유훈을 이어받은 저 본인, 김정환 총서기가 장례위원회를 이끌어 모든 추모를 주도하게 될 것입니다.

공식발표가 끝나자 라디오와 TV의 모든 채널에서는 ‘인터내셔날 가’를 포함해 혁명 가곡과 장송곡, 선전선동부에서 배포한 김일성의 찬양가를 틀었다.

전례를 깨고 이 찬양가들은 야심한 밤까지 계속되었다.

곳곳에는 조기가 걸렸으며, 평양의 공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 앞으로 향해 조화를 바치거나 감정이 복받인 자들은 땅을 치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말없이 묵념을 하며 비교적 담담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인민들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학생이나 청년들이었던 것에 비하여, 세상이 멸망한 것 마냥 서럽게 우는 사람들은 주로 주름이 가득한 노년층들이었다.

- 아이고... 주석님께서 하늘로 가셨으니 우리 공화국은 이제 어떻게 하나... 대체 그분 말고 누가 우리 조선민족을 이끌어 남조선을 미제에게서 해방시키신다고...

- 너무 슬퍼하지 마십쇼. 노인 동지. 그 분의 영명하신 아들 총서기께서 자리를 이었으니 이제부터는 공화국이 더욱 발전하여 강성대국으로 향하게 될 겁니다.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총서기가 나이가 젊은데 어찌 주석님의 결단력과 지도력을 따라갈 수 있을까... 김정일 장군님이 역도들의 손에 돌아가신 게 고작 1년 전인데, 하늘이 우리 공화국의 발전을 시샘하나 보구나.

- 에이, 동지.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고, 그래도 총서기가 지난 1년 동안 잘 해오지 않았습네까? 주석님께서도 지난해에 평양에서 일어난 난리에서 그 분을 후계로 내세우기도 하셨고... 어쩌면 주석님보다 공화국을 더 잘 이끌 수도 있지 않습네까.

- 뭬이야? 지금 네놈이 주석님의 업적을 폄하하는 거이얏!

- 제가 언제 그랬다고... 그러는 동지야말로 주석님의 후계자 고르는 안목을 폄하하는 거이 아니오? 일단 주석님께서 육성으로 현임 총서기를 후계자로 지명하시지 않았습네까? 그 분이 보시기에 총서기가 공화국을 잘 이끌 거 같다 생각해서 그랬을텐데. 지금 노인 동

지는 주석님의 영단에 반대하는 거이오?

- 아, 아니, 그거이 아니라...

이런 여러 속삭임들이 오가는 가운데, 평양의 외신기자들은 급히 이 소식을 공화국 외부로 타전했고, 불과 몇 시간 만에 한반도 남쪽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의 언론사들은 ‘붉은 왕’(프랑스 언론사의 표현이었다) 의 죽음을 대중에게 알렸다.

한편 이러한 시대의 격동에 가려진 또 하나의 격동이 평양 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콰아아앙!!!! 문이 거칠게 열려지며 물밀 듯 쏟아져 들어온 건장한 군인들은 파랗게 질린 노인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포박했다.

노인들은 전부 최소 70세가 넘은 자들이었으며, 군복에 각종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오진우 전 차수! 리을설 전 원수, 최광 전 참모장, 조명록 전 총정치국 국장! 이 반동 놈의 개간나 새끼들, 털끝이라도 까딱하면 내 직접 대갈통을 날려 버리갔어! 모두 꼼짝 말라!”

“배, 백승철 중장 동무! 초, 총서기를 한 번만 뵙게 해주오! 그, 그동안 우리 원로들이 공화국과 혁명에 기여한 바를 봐서라도....”

거칠게 일으켜지는 노인들은 전부 겁먹은 얼굴로 자신의 아들 뻘인 체포자, 백승철 중장에게 빌기 시작했다.

그 때, 열린 문으로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오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의 옆에는 굴비 묶이듯 꽁꽁 묶인 노인들보다는 젊지만 그래도 육십이 넘은 한 노인이 공손하게 그를 보좌하고 있었다.

“소원이라면 보게 해주지. 안 그래도 나도 몸이 안 좋으신 아바디 주석님을 겁박해 이 공화국을 찬탈하려 했던 반동들의 얼굴이 궁금하던 차였으니.”

“초, 총서기!”

“홍계성 차수!”

들어온 젊은이는 오진우 전 차수를 필두로 부들부들 떠는 노인들을 쭉 ㅤㅎㅜㄼ어 보더니 피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다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놓고, 대체 뭐가 더 그리 탐났나? 몸 담던 보직에서 전부 해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죽을 때까지 일반 공민들은 꿈도 못 꾸는 호사를 보장해준 걸로 아는데.... 뭐 그래도 덕분에 대성산 혁명열사릉 묘 자리는 아꼈군.”

문으로 들어온 총서기, 정환의 비웃음에 다른 노인들은 얼굴이 벌게지며 고개를 푹 숙였지만, 우두머리 격인 오진우만큼은 그래도 악에 받친 목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간나 새끼가! 네 놈은 반드시 이 공화국을 망하게 할 놈이디! 내 반드시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 놈 모가지를 자르고 말테니 각오하고 있으라우!”

“아아, 이거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군. 거 동무들, 아무리 혁명 원로라도 나이 들어서 노망이 나면 어쩔 수 없구만 그래. 그러니 그전에 안락을 선사해주는 게 수령으로서 도리일 듯 하군. 그렇지 않나?”

“이이이...!!!김정일 장군님도 너랑 홍계성이 저 간나가 죽였다는 거이를 내 모를 줄 알았니? 주석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네놈 수작이 아이야? 거기에 이제 이 공화국을 미제에게 팔아치우려고....”

“더 못 들어주겠군. 끌고 가. 쓸데없는 말 못하게 죽을 때까지 재갈 물리는 걸 잊지 말고.”

이내 목청이 떠나가라 고함을 지르는 오진우 차수를 비롯한 군 원로들은 복면과 재갈이 씌워진 채 밖으로 끌려 나갔다.

단 한 번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은 정환은 옆에 있던 홍계성에게 지시했다.

“잘 가둬두게, 처형 집행은 내가 새해에 취임한 후 하기로 하지.”

“..... 지금 바로 없애 버리는 게 낫지 않갔습네까?”

“지금은 상중일세.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아바디의 항일 빨치산 원로들을 공개적으로 사형시키면 그림이 안 좋지. 무엇보다 최우선은 공화국을 안정시키는 거니까. 죄목이야.... 뭐 적당한 걸로 만들면 되겠지.”

처음 정환은 김정일 때처럼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대한 암살 기도 혐의를 뒤집어 씌워 오진우 등등을 처형시킬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공화국 인민들의 마음속에 김정일과 김일성이 가지는 위치는 엄연히 다른데다 자칫 그들이 정환이 총서기에 취임한 후에도 공화국의 태양 김일성이 암살당하게 놔두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곤란하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오진우 일파를 처형하지 않겠다는 정환의 결정에 홍계성의 얼굴에 미세한 불만이 드러나자, 그의 마음을 읽은 정환은 그를 슬쩍 떠보았다. “아무튼 퇴임한 뒤에도 장령들과 군관들 상당수를 쥐락펴락하던 노인네들이 다 떨어져 나갔으니, 이걸로 군은 전부 홍 차수 것이 되겠군. 축하하네.”

정환의 가벼운 떠보기에 홍계성은 움찔하면서도 금새 침착을 찾으며 고개를 푹 숙여 감사를 표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그저 총서기 동지의 명을 받드는 종놈일 뿐이니 제 충심을 알아주시길 바랍네다! 저희 인민군은 앞으로 공화국과 총서기 동지가 보내시는 곳 어디든 최전선에서 총폭탄의 각오로 복무하갔습니다!”

“내가 이 체포를 김영일 국장이 아니라 자네와 백 중장 동무에게 맡긴 의도는 알리라 믿네. 군 일은 군 내부에서 알아서 하라는 존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제 홍 차수와 그 주변 군관들을 믿으니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일세.”

“알고 있습네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갔습네다!”

‘뭐, 김영일의 머리를 좀 식혀야 할 필요도 있었지만 말이야. 어쨌든 이걸로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김정일 지지 세력은 완전히 사라졌군.’

이 공화국에서 김 씨 일가의 흔적을 지우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일단 김정일은 벌써부터 공화국 인민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김일성 주석은 그것보다 좀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제 자본주의의 물결이 급속하게 들이닥치면 주체사상과 김일성 또한 언젠가는 냉정하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날이 올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정환이 완전히 입지를 다질 때까지 떠받들어 줘야겠지만.

정환은 한 켠에서 부하들을 지휘하던 백승철에게 다가가 넌지시 물었다.

“흠, 중장 동무쯤 되는 군 장령이 직접 지휘하고, 보기 좋군 그래.”

“아닙네다! 총서기께서도 이 역도들을 잡는 데 노고를 쏟으시는데 제가 어찌 자리에 앉아만 있겠습네까?”

“그렇지. 좋은 자세군. 이대로만 하게. 앞으로 지켜볼 테니.”

‘기회를 줄 때 잘해라. 이 말을 못 알아들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실제로, 백승철은 머릿속에서 정환이 기대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군에서 내 머리 위로는 홍 차수와 총서기밖에 없다. 저 늙은이들만큼은 아니지만, 홍 차수도 나이가 적지 않고, 총서기도 군 내에 홍 차수의 견제세력이 필요할 테니 잘만 처신한다면 이십년 내에 내가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는 것도 꿈은 아니다. 기회

가 올 때 잡아야 한다!“

입에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도 자신의 눈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정환에게 백승철은 침을 꿀꺽 삼키며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목청을 더욱 높였다.

“저 백승철이, 공화국을 이끄는 민족의 령도자 총서기 동지께 영원불멸의 충성을 맹서합네다! 견마지로를 다하겠으니 부디 믿고 맡겨주십시오!”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군은 젊은 사람들이 이끌어야 되는 법이니. 다 죽어가는 늙은이들이 어디 총이나 제대로 쏴서 이 공화국을 지킬 수 있겠나? 백 중장 동무에게는 내 기대하는 게 많아.”

묘한 뜻을 담은 묘한 말에 앞으로 군권을 틀어쥘 생각에 흥이 나있던 홍계성 역시 급하게 자세를 바로 했다.

홍계성은 이제 육십을 갓 넘긴 나이, 일반적인 기준으로 절대 적은 나이가 아니지만, 무려 80을 넘긴 퇴역 장성들이 혁명 원로니 하는 명목으로 군권에 간섭하는 북조선에서 연차로 위세를 부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그와 동년배인 원로들이 모두 제거된 지금, 정환을 제외하고 군 통수권을 쥘 생각에 희희낙락하던 홍계성에게 정환은 딴 생각을 했다가는 언제든 그도 원로들과 비슷한 최후를 맞이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잠시 묘한 분위기가 흐르는 가운데, 정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지시했다.

“난 이만 가보겠네. 그럼 뒤처리는 부탁하지.” 그리고 다시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후, 1990년 신년이 밝았다.

어느 국가나 새해 첫날은 중요하듯이, 북조선에서도 새해 첫날은 대단히 중요한 명절이다.

여타 새해 첫 날이라면 한국과 대동소이하게 북조선도 당과 수령의 이름으로 떡과 선물(재정문제 때문에 요즘 들어 이건 줄어들었다.)이 보내지고, 수령의 신년사가 발표되지만, 이번 새해 첫 날은 타 해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공화국의 국부인 김일성의 장례식이자, 동시에 1년 간 공화국을 이끌어 온 총서기가 진정한 수령으로 취임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장례식과 취임식, 새해 첫 날을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치를 거라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반적인(물론 이제까지 이런 경우가 좀처럼 없었기에 딱히 일반론이라고 부를 건 없지만) 분석과는 달리, 장례위원회에서는 세 행사를 한꺼번에 치르기로 결정해서 사람들을 놀라

게 했다.

식순 중 주된 행사는 망자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인 주체사상 창시를 기리기 위해 주체사상탑이 있는 동대원구역에서 대동강구역을 지나 모란봉구역까지의 행진이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새로운 총서기, 김정환 시대의 개막을 알리기 위한 취임식은 북조선을 상징하는 광장인 중구역의 김일성 광정에서 개최되어 화룡점정을 찍게 될 계획이었다.

지난 한 달 여 간의 장례일정에서 총서기의 이름은 모든 명단에서 가장 윗줄을 차지했으며, 거의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장례 관련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하는 조선중앙방송과 로동신문에서도 총서기의 행보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이쯤 되자 공화국 인민들은 물론이고 한국 국민들까지 누가 김일성의 빈 자리를 이어 공화국의 새로운 태양이 될 것인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눈발이 희끗희끗하게 날리는 새해 첫 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검은 색의 거대한 영국제 롤스로이스 운구차가 김일성의 관을 싣고 천천히 인민들 앞을 지나가자, 주체사상탑 앞에 모인 인민들은 가슴을 쥐어뜯고 통곡했다.

반면 외신기자들은 운구차 주변을 둘러싸서 행렬을 이룬 8명의 장례위원회 위원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중 단연 시선을 끈 사람, 지금 운구차 안에 누워있는 김일성의 아들이자 후계자, 이제는 총서기에서 명실상부한 수령이 된 오늘 행사(장례식+취임식+신년축하)의 진정한 주인공, 김정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냐 하면....

‘에이, 더럽게 춥군. 무게 잡고 있는 것도 힘든데 차는 또 왜 이리 천천히 움직여?’

정환은 겉으로 보이는 엄숙한 표정과는 전혀 다르게, 지난 생 고향, 대한민국과는 또 다른 차원인 평양의 추위에 슬쩍 코를 훌쩍였다.

물론 속으로야 투덜댔지 머리로는 이 빌어먹을 롤스로이스 운구차가 굼벵이 기어가듯 움직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이 행사는 말하자면 단순한 장례식이 아니라 일종의 선포다.

선대(先代) 수령을 기리는 동시에 이제 누가 다음 공화국을 이끌어 나갈 건지 인민들과 나아가 세계만방에 선포하는 의식.

그러니만큼 가급적 천천히,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차세대 공화국 중추들의 얼굴을 잘 인식할 수 있게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게 좋은 것이다.

물론, 주위에 늘어선 인민들 중에는 이런 권력 구조의 구조조정 문제와는 무관하게, 순수하게 자신들을 이끌었던 주석 동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도 많겠지만, 정작 행사의 주관자인 정환의 가슴 속에는 슬픔이라고는 단 0.1%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 아버지도 아니고, 환생하고 나서도 4년 동안 얼굴 맞대본 적이 기껏해야 열 번 될까 말까 하는 인간의 죽음을 어떻게 진심으로 슬퍼해?’

김일성이 한국전쟁의 수괴니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를 개인의 사유물로 전락시켰느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그냥 그에게 김일성은 어쩌다 만난 남 정도인 것이다.

지금 정환에게 더욱 신경 쓰이는 문제는 지금 평양의 온 이목이 집중된 운구차의 김일성보다, 자신의 어머니, 김명애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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