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67화 (67/350)

17장. JBS, 조선방송공사(Joseon Broadcasting System) (1)

17장. JBS, 조선방송공사(Joseon Broadcasting System) (1)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관광객들의 핫 플레이스이자 버킹엄 궁전과 함께 IRA 같은 아일랜드 무장 투쟁 세력의 제 1목표였다.

하지만 이 오래된 건축물을 가장 유명하게 하는 점은 역시 바로 이곳이 영국의 국회 의사당이자 정치의 중심지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바로 이곳 웨스트민스터에서, 전통적으로 매주 수요일마다 하원의 관례로 정해져 있는 수상에 대한 질의(Prime Minister's Questions)에 한 여성이 답하고 있었다.

“하원의장님(Mr Speaker), 제가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한 달 쯤 전 존경하는 여기 총리님이 외무장관을 통하여 국제해사기구 회의에서 동아시아의 한 국가로부터 관계를 개선하자는 외교적 제스처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제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습니까?”

“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의원님.”

여성, 구김 없는 여성용 정장에 검은 색 구두, 장신구라고는 수수한 목걸이밖에 걸치지 않은 그 노년의 여성은 의장석 반대편에서 날아온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순을 넘겨 이제 난롯가에서 손자의 재롱을 감상할 나이임에도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여성의 말에 집중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의원들 중에는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거나 귓속말을 나누며 가끔은 여성을 삿대질하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그 여성을 깔보지는 못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야말로 철의 여인(Iron Lady)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현직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였기 때문이다.

“허, 부인하지도 않으시는 군요. 제가 알기로는 그 국가의 이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러니까 북한(North Korea) 맞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총리님은 외무장관을 통해 전해진 그 제의를 받아들여, 북한의 유학생들을 이 영국에 받아들이기로 하셨고, 나아가서는 민간분야의 협력, 심지어는 정식 수교까지 긍정적으로 검토해보라고 지시하셨다고 하는 군요. 제 말이 맞습니까?”

“역시 맞으니 굳이 확인해 보실 필요 없습니다. 의원님. 제 귀는 멀쩡하니까요. 물론 영어능력에도.”

부우우우---~~~

우우우~~!!!

휘이이익!!!

일부러 과장된 어조로 하나하나 진위여부를 확인해보는 야당 의원에게 대처가 까칠하게 대답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 측 의자에서 야유와 조롱이 날아들었다.

여타 국가의 국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신랄하다 못해 전투적이기까지 한(실제로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의회에서 진짜 칼부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영국의 하원에서는 흔한 풍경이었다.

“맙소사, 의장님, 총리님이 작년에는 BBC를 민영화하겠다고 하시더니 이제는 외교적 판단능력까지 민영화해버리신 건 아닌가 의심스럽군요! 대답해주시죠, 총리님, 북한이 어디에 붙어있는 어떤 나라인 줄은 아십니까? 그러니까 일본 옆에 있다는 거 빼고 말입니다.”

“동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공산주의 진영의 미니언(Minion) 국가죠, 원래 한 나라였던 남한과 30여 년 전 내전을 치렀고, 현재는 휴전상태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지만 세습이라는 아시아적 전통에 따라 지도자가 세습되고 있고... 얼마 전 2대 세습에 성공했죠.”

“잘 아시는군요! 그리고 이것도 아시나 모르겠는데 바로 그 내전에 우리 영국도 군을 파견했습니다. 남측 코리아의 원군으로 말이지요. 즉 북한은 우리 영국과 전쟁을 치렀던 적국이라는 말입니다. 총리님은 그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데다 과거의 적국이었던 공산 독재 국가와 수교하실 의향이 있으신 겁니까?”

대처의 손자뻘 밖에 안 되어 보이는 젊은 야당 의원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클라이맥스를 연기하는 연극배우처럼 대처를 조롱했다.

야당 의원의 공격이 거세짐과 동시에 역시 이번에도 야당 의석에서 대처에 대한 야유와 조롱이 터져 나왔지만, 그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직 그럴 생각은 없지만, 저와 우리 내각은 영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지옥의 악마하고도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고만 해두죠.”

“아하! 그 북한에서 올 학생들이 소련의 스파이일 가능성은 생각 못해보셨습니까? 하원 외교위원회와 시크릿 서비스(SIS)에 따르면, 김이라는 그 국가의 젊은 새 지도자는 KGB와 크렘린의 꼭두각시라는군요! 의장님! 이쯤 되면 존경하는 대처 여사님과 보수당이 과연 뭘 생각하고 있나 의심스럽....”

“......그렇다면 더더욱 그 꼭두각시가 자기 팔다리에 연결된 실을 끊는 걸 우리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 도와줘야겠죠, 안 그렇나요?”

지금까지 수세를 보이던 대처가 등을 꼿꼿이 세우고 드디어 반격에 나서자, 지금까지 열변을 토하던 젊은 의원은 찔끔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뿐만 아니라, 대처가 입을 열자 지금까지 시장통처럼 왁자지껄하던 하원의 소음이 크게 한 풀 잦아들며 여야 할 것 없이 대처의 입을 바라봤다.

철의 여인이라는 명성은 포커 쳐서 딴 게 아닌 것이다.

“우리 자랑스런 연합왕국은 중세시절부터 유럽의 균형을 수호해왔으며, 냉전 기간 내내 서방세계와 자유진영에서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과 함께 싸워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을 저는 총리로서 여기 의원님들께 분명히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총리.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북한이 우리의 최고 우방 미합중국의 적국이요! 그 김이라는 젊은 서기는 세습 받은 독재자지! 왜, 총리님께서는 우리 영국의 힘과 자원으로 독재자를 돕는 게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한 명으로는 부족하시오?”

“..........대체 언제부터 이 그레이트 브리튼이 미국인들의 눈치를 보며 외교노선을 결정하게 되었나요? 그리고 의원님은 이 자랑스런 왕국이 그러한 처지에 놓이는 것에 대해 전혀 부끄러움이 없으신 거 같군요, 제가 맞게 봤나요?”

“...........!!!!”

순식간에 하원 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처의 차가운 비아냥에 꺼질 듯 했던 공격의 기세를 올리려 했던 야당 의원은 바로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아, 아니, 총리님, 내 말은... 그러니까....”

대처의 강경한 발언에 다시 공격의 기세를 올리려던 그는 물론이고 야당 의원들은 잠시나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논쟁의 대상이 된 젊은 북한 지도자가 러시아의 꼭두각시라는 비판의 논지가 힘을 잃자, 그가 사실상 독재자라는 투로 논점을 바꿨는데, 대처가 능숙한 솜씨로 그것을 회피해 버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영국의 영광과 국익이 그 어느 것보다 우선’ 이라는 자신에게 유리한 입지를 구축하며 야당을 수세에 몰아넣어 버리기까지 했다.

야당 의원들의 당황과 웅성거림 속에서도 철의 여인은 여전히 냉랭한 어투로 자신의 판단 근거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외교 정책에 대해서 조리 있는 설명을 계속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공산주의에 맞서 서방세계의 자유와 영국적인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저는 악마와도 손 잡을 수 있습니다. 독재자는 별 것도 아니고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의원님과 야당의 너무 너무 소중한 친구, 미국인들도 이 사실에는 동의를 할 거 같군요, 자기들에게도 익숙한 일 일 테니.”

“............!!!!”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은 국제 외교가의 상식입니다. 만약 그 김정환이라는 젊은 친구는 친러 군부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잡았지만, 비공식적 라인을 통해 자신은 공산주의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영국의, 나아가 서방세계와 손을 잡을 의향이 있다고 분명히 밝혀 왔습니다.”

“......................”

“그리고 그가 우리 영국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우리의 도움으로 자국 내 친러 강경파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잡는다면, 우리 영국은 전통적인 적수인 러시아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이는 셈입니다. 그렇지 않은 가요, 의원님들?”

짝짝짝..........!!!!

대처의 응수에 이번에는 여당인 보수당 쪽에서 총리에 대한 지지의 의미가 담긴 박수소리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대처는 살짝 고개를 기울여 자당 의원들의 격려에 감사를 표하고는, 연설을 이어나갔다.

“그럼 노동당의 숙녀 분들(Ladies), 이제 결단의 시간이군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적인 반대나 외치실 건가요? 아니면 아시아 변방의 낙후한 공산국가가 우리 영국의 도움으로 안 좋은 친구들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자유와 번영의 문명세계에 편입하는 데 한 손을 거드실 생각인가요? 선택은 여러분들 몫이에요.”

곧 하원의장의 주도 아래 거수가 시작되었다.

거수 결과, ‘영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학술 교류 및 민간 분야에서의 협력에 대한 지지결의안’은 찬성 측이 상당한 우세를 점하며 통과되었다.

이 결의안의 통과로 인하여 영국과 북한 양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에 합의하게 되었다.

- 북한 김일성 대학교는 런던 정경대를 포함한 영국의 6개 대학에 향후 3년에 걸쳐 300여 명 규모의 교환학생을 파견하게 됨.

- 이 합의에 의해 영국 석유회사인 브리티시 페트롤륨(British Petroleum)는 북한 조선로동당의 협조 하에 유정 및 천연가스에 대한 탐사와 시추, 투자를 허가받으며 향후 기술 이전과 합작회사 설립도 가능해짐.

- 영국은 평양에, 북한은 런던에 각각 대표부(代表部 : representative)를 설치하고 공관장을 파견하며, 정식 수교 전까지 상호 공동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것.

그렇게 결의안이 통과되자 하원은 잠시 폭풍이 지나간 후의 소강상태에 빠졌고, 양 당은 다음 사안에서 있을 후반전에 대비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럼 이제 문제 하나를 마무리지었으니 다음 질의로 넘어가겠습니다, 총리님. 인두세 적용 범위에 관해서인데, 이걸 정말로 실업자들에게까지 물리셔야 속이 시원하실....”

“이봐, 그런데 코리아가 어디 있는 나라인가? 그러니까... 우리 편이 사우스(South) 맞지? 나쁜 놈이 노스(North) 쪽이고?”

“아마 그럴 걸세, 일본하고 중국 사이에 있는 나라였나? 내가 듣기로는 하원의장이 쓰고 있는 가발이 한국제라는데.....”

(사실 오늘 질의에서 진짜로 중요한 의제였던) 인두세 이야기가 도마에 오르자, 의원들은 뒷좌석에서 시선을 피해 단잠에 곯아떨어졌던 늙은 의원들을 깨웠다.

대부분은 곧 하원에 도입될 새로운 미디어 혁명, TV를 통한 의회 생중계가 시작되기에 즐길 날이 얼마 안 남은 농땡이를 즐기던 의원들이었다.

한편 지구 반대편의 북조선에서도 일종의 미디어 혁명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도입 경유와 과정은 영국과는 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쉬이이이이익............!!!!

“어떠십니까, 총서기 동지, 우리 공화국 공군 최초의 4세대 전투기입네다. 이것으로 우리 조선인민군의 작전반경은 크게 확장되고 우리 공화국의 국토를 넘보는 놈은 누구든 불벼락 미사일을 맛보게 될 것입네다.”

“훌륭하오. 과연 소련 친구들이 추격기(전투기) 하나는 잘 만드는군. 아, 물론 예정된 수량보다 싼값에 더 많이 도입할 수 있었던 건 홍 차수와 백 중장을 비롯해 많은 고위 장령들이 중간에서 열성적으로 활약을 해줬기 때문이지만.....”

정환은 공기를 찢는 소음을 내며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비행기, 조선인민군 공군의 최신예 추격기 Mig - 29기 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미래에서 돌아온 정환에게 Mig - 29의 스펙은 지금 옆에서 호들갑을 떠는 홍계성보다도 훨씬 자세하게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만, 어쨌거나 이번 쏘련에서 이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프룬제 일파 장령들의 공이 컸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장성택이 뭔가 뻐기는 표정으로 슬쩍 끼어들었다.

“공화국을 위해 큰 공을 세우셨소, 차수 동지. 아, 물론 우리 당 재정경리부와 중앙군사위 예산 심의회에서 예산을 추가 배정해주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 했겠지만....”

정환이 홍계성을 치하하는 것을 불편하게 보고 있던 장성택이 질세라 한 마디 하자, 홍계성은 얼굴을 붉히며 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게 어째서 당의 공이요? 원래 로스케들이 스무 대 남짓만 팔려고 했던 것을, 우리 프룬제 출신들이 쇠 신발이 닳도록 국경을 넘어서 협상 전투에 임하지 않았다면 당의 재정은 더욱 소모되었을 게 뻔하오! 지금 장 부장 동지는 우리 군의 공을 가로채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소!”

“그거야 공화국을 수호하기 위해 최신식 추격기는 필수불가결이라는 총서기 동지의 명에 총폭탄의 각오로 임하는 건 당연한 거이 아니오? 게다가, 그 쪽과 친한 소비에트 동지들이 요즘 워낙 돈이 급하지 않았다면 과연 가격을 싸게 후려쳐서 부품까지 들여오는 게 가능했을 것 같소? 요즘 총서기 동지가 가장 질색하시는 게 공을 과장하는 거짓보고라는 사실인 걸 잘 알면서 그러시오?”

“장 부장 동지! 지금 우리 인민군과 한 번 해보겠다는 거이...”

“잠깐,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소.”

쌍안경을 내려놓은 정환의 말에 막 설전을 벌이려던 두 사람은 싸움을 급히 멈추고 정환의 입을 바라보았다.

정환이 혹시 이 분쟁에서 누구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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