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55화 (55/350)

14장. 나비의 날갯짓은 반대편 대륙에서 핵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1)

14장. 나비의 날갯짓은 반대편 대륙에서 핵폭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 (1)

“총서기 동지께 경례!”

“위대한 총서기, 김정환 동지를 단결의 중심으로 받들어 모십니다!”

“공화국 영도의 유일 중심, 총서기 동지 만세!”

“..........................”

정환은 당사 앞에 차를 세우고 내려서 자신을 맞이하는 한 떼의 군관 무리를 뭐라 형용하기 힘든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사불란하게 오와 열을 맞춰 선 250여 명의 군관들은 정환이 탄 차가 당사에 가까워지자 하늘이 떠나갈 듯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며 주먹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함께 출근길에 오르던 유혜림까지 멍하게 정환의 옆에 서서 이 아스트랄한 광경을 지켜보던 순간, 정환은 눈을 빛내며 군관들의 맨 앞줄에 서서 그들을 지도하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순식간에 이해하고 쓴 웃음을 지었다.

“젠장, 능구렁이 같은 영감. 무리를 해서라도 진작에 제일 먼저 날렸어야 했는데.”

“.....네? 총서기 동지. 이건 대체....? 저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아무것도 아니야, 유 소좌. 그냥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지. 마침 주동자께서 저기 오시는군.”

정환의 말대로 행렬 제일 앞, 상대적으로 나이와 지위가 좀 더 있어 보이는 군관들 중 최선두에 있던 중노인 한 명이 정환이 도착했음을 알고 급히 먼저 다가왔다.

그 노인은 물론 조선인민군 차수, 홍계성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총서기 동지. 날이 추운데도 일 아침 일찍 등청(登廳)하시니 그야말로 공화국의 모범이십네다.”

“날이 추운 걸 알면 왜 아침나절부터 귀한 군관들 모아놓고 당사 앞에서 소란들입니까? 거기다 다들 낯이 익은 거 보니 다 홍 차수 동지의 후배들 같은데....”

실제로 당사 앞에서 요란하게 이벤트(?)를 벌이고 있는 군관들은 전부 지난번 거사의 주축이 되었던 프룬제 출신 군관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방금 전까지 홍계성이 서있던 줄에는 백승철도 함께 끼어 정환에 대한 충성의 다짐을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정환의 심드렁한 질문에도 홍계성은 전혀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노회하게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

“고거야... 물론 충성맹세입네다.”

“충성의 맹세라?”

“하하, 그렇습네다. 오히려 그동안 정작 총서기 동지 본인께서 별 말씀이 없으셔서 눈치를 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짧은 기간 동안 보여준 것만으로도 총서기의 영도력을 알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니 총참모부장인 제가 앞장서서 주도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네까?”

‘다 아시면서 뭐 그러십니까’하고 말하는 듯한 홍계성의 아부에 정환은 잠시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전 생에서도 TV로 북한 정권 교체기에 군이 새 주인에게 이런 충성맹세 행사를 하는 걸 본적이 있기는 한데... 설마 그걸 이 타이밍에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군.’

정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슬쩍 주위로 돌렸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 군관들 뿐 만 아니라 서기실, 당사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이 광경을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군관들은 당사 부지 경계를 넘어가지 않고 정확하게 정문 바로 앞에서 충성맹세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으니 경비 문제를 트집을 잡을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냥 넘어가주기에는..... 정환은 솔직히 말해서 약이 올랐다.

“.............아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충성맹세 의식은 3군의 지휘관들 모두가 모여서 공식적으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어째 홍 차수와 친한 군관들 밖에 없는 것 같군요?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는 거 보니 다른 군관들과는 달리 뭐 찔리는 거라도 있으신가 봅니다들?”

그간의 사정을 잘 알면서도 정환이 일부러 모르는 체 하려는 듯하자 홍계성은 느물느물하게 웃으며 맞받아 쳤다.

“흐흐... 고거야 저와 제 후배들이 총서기 동지에 대한 충성심이 유별나서가 아니겠습네까. 앞으로도 총서기 동지가 영도하실 공화국을 최선두에서 총폭탄이 되어 전진할 생각이니 부디 저와 휘하 군관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실기(失機:기회를 놓침) 했군!’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홍계성을 보며 정환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원래 어제까지만 해도 정환의 계획은, 반부패수사국을 통해 프룬제 일파를 크게 약화시키고 최종적으로 시간을 들여 해체시키는 것이었다.

어제 김일성까지 불러다놓고 일부러 백승철을 도발해서 화를 돋군 것도, 그가 무슨 오판이라도 하면 그걸 빌미로 수사 대상에 그를 포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면 이번 기회에 홍계성까지는 무리라도 백승철까지는 엮어서 잡아넣을 수 있지 않을까.....하고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사태가 뒤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그의 옆에 선 유혜림도 이런 전후사정을 파악하고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 된 것을 보며 정환은 홍계성에게 넌지시 물었다.

“보자... 백승철 그 머리만 뜨거운 얼간이가 이런 고단수 계교를 생각했을 리는 없고... 이건 홍계성 차수 당신 생각이겠지?”

“하하, 계교라니요, 저희는 그저 총서기 동지께서 4대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이왕이면 다른 동지들보다 더욱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군요.”

‘내 행보에서 방해되는 놈들은 자기들이 앞장서서 치울 테니 우리도 한 몫 떼어 달라? 이 할배는 군인이 아니라 정치인을 했다면 몇 배는 출세했겠군.’

눈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며 그렇게 말하는 홍계성을 보고 정환은 그렇게 생각하며 얼굴을 살짝 구겼지만 어쩔 수는 없었다.

이런 중인 환시리에 시키지도 않은 충성맹세를 할 정도로 ‘알아서 기는’ 상대방을 처벌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체면을 손상하는 쪽은 오히려 정환이 되는 것이다.

‘이번 총서기는 아량이 좁다’, ‘충성을 맹세해도 돌아오는 게 없다’, ‘군을 지휘할 그릇이 안 된다’ 같은 평가를 알게 모르게 듣게 될 테니까.

결국 당분간은 홍계성을 정점으로 하는 프룬제 일파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대기는 힘들어진 것이다.

‘뭐 이렇게 된 이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지. 군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를 했으니 이제 다른 곳에 신경을 쏟아도 되겠군.’

“백승철 중장 동지. 앞으로 내가 총서기로서 중장 동지에게 충성을 기대해도 되겠나?”

“.....맡겨만 주십시오! 총서기 동지! 저희 조선인민군 평양방어사령부는 총서기동지 결사옹위에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

일부러 그를 골라 시험하듯 물어보는 정환의 질문에 숨도 쉬지 않고 대답하는 백승철을 보며 정환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홍계성이 사전에 단단히 주의를 준 게 분명했다.

“.........류무영 중좌 동지의 처벌에 관한 일은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알기로 어제 당사에 나의 그 처사에 대해 항의하러 온 것으로 기억하네만?”

“................!!!”

정환의 질문에 백승철은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목소리를 더욱 높여 대답했다.

“류무영 중좌가 아끼는 후배이기는 해도, 부패 엄단이라는 총서기의 직속 명령을 어기다가 적발되었으니, 오로지 총서기의 처분에 맡길 뿐입니다!”

“.................”

“다만 감히 말할 기회를 허락해주신다면, 류 중좌는 잠시 탐욕에 눈이 멀었을 뿐 기본적으로 력량 있는 군관이니 이번 한 번만 아량을 베풀어주신다면 차후 공화국과 총서기의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 불속에도 뛰어들 인재라는 것을 이 백승철이의 이름을 걸고 장담 드립니다!”

아마 이 정도가 백승철이 말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당사 정문 앞에서 지나가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아래, 정환은 잠시 백승철과 다른 군관들을 지켜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류무영 중좌 동지에게는 소좌로의 강등, 6개월 혁명화 교육을 명한다. 또한 돌아온 이후로도 증인 보호를 위해 평양경비사령부가 아닌 다른 곳으로의 전출도 이루어질 것이다. 이게 총서기로서의 내 결정이다.”

“......................!!! 감사합네다! 총서기 동지! 은혜에 보답하여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총서기 동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총서기 동지에게 충성! 전군은 총서기 동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

정환의 결정에 백승철을 시작으로 프룬제 군관들이 감사를 외치는 소리에 당사 앞마당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런 그들과 안심했다는 미소를 짓는 홍계성을 뒤로 하고 정환은 당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 이런 소란을 듣고 급하게 달려온 듯한 현영숙 선전선동부장을 목격한 정환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마디 했다.

“총서기 동지, 이건 대체.....”

“기삿거리 생겼군요, 현 부장. 즉시 사진 찍어서 내일 아침 전 인민들이 로동신문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시죠.”

“아, 알겠습니다, 총서기 동지.”

‘이제 본격적으로 뭔가 바뀌는군.’

당사로 들어서며 정환은 이제 자신이 북조선의 실권을 확실하게 쥐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비록 아직 많은 불안요소, 조금씩이지만 회귀자인 자신의 지식 밖으로 바뀌기 시작한 역사가 문제로 남아있지만, 분명히 한 발을 내딛은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정환의 행보에 따라 역사는 점점, 하지만 확실하게 바뀌기 시작할 것이다.

정환이 북조선 평양에서 또 한 걸음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을 무렵, 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예기치 못한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 북경시 해정구, 마오쩌둥 기념당 근처.

국가안전부(國家安全部, Ministry of State Security : MSS) 본부의 사무실에서는 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격론이 오가고 있었다.

격론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은 크게 두 패로 나뉘어 있었는데 두 세력 간의 언쟁은 곧 말다툼으로까지 변질될까 우려될 정도로 뜨거웠다.

“이건 우리 국안부(국가안전부의 줄임말)와, 덩샤오핑 동지, 나아가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면전에 대고 침을 뱉은 거요! 이런 도발을 참고만 있자는 이야기요, 동지들은?”

“그런 말이 아니잖소? 상대는 소련이오, 일단 같은 사회주의 우방국이라는 점을 빼놓고 생각하더라도 거대하기 그지없는 상대란 말이오. 아무리 조선이 우리에게 혈맹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에 있는 요충지라 해도 동지들의 제안은 너무 과하오. 그냥 외교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하는 게....”

“당했으면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해야 무시당하지 않는 게 외교가의 섭리요! 우리 중국의 뒷문에 대고 이런 도발을 해왔는데 가만히 있다면 우리 국안부가 대체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이오? 대놓고 공격하자는 것도 아니고 소련에 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반군 세력을 지원을 강화하자는 거 아니오?”

“덩샤오핑 동지의 기본적인 외교방침을 잊었소? 수치스러운 일이지만 아직 우리 중국은 힘을 드러내기에는 너무 이르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고 이슬람 교에 심취해있는 자들이니 우리가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소.”

“쉬용유 부장 동지! 이 일에 대해서는 국장 동지께서 결단을 내려주셔야 할 듯 합니다. 저는 지난번 조선의 쿠데타 사주를 우리 중국에 대한 중대한 도발로 간주하고 국안부 차원에서 소련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보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강력히 건의하는 바입니다.”

이내 사무실의 모든 시선이 가장 상석에 앉아있는 중년 남성에게로 집중되었다.

시선의 주인공, 국가안전부 부장 쉬용유는 잠시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이징의 중심부에 위치한 국안부 본부인만큼 창문 밖에는 길게 이어진 자금성의 성벽과 중산 공원, 태묘(太廟), 천안문까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침묵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쉬용유는 결국 덩샤오핑 주석 동지의 기본적인 방침 노선 위에서 결론을 내렸다.

“지금 중국은 미래를 대비하는 시기일세. 후일 이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이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여의주를 음지에서 준비하는 게 우리 국안부의 역할이자 본질이지, 동지들.”

“그 말씀은.....”

“아프가니스탄에 무자헤딘을 비롯하여 친 중국 세력을 형성하고 지원하는 건 단순히 소련을 견제하기 위함만이 아니네. 지난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우리 국안부가 승부를 내지 못한 이래, 중국은 자원의 보고,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내내 제한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지. 이제 그걸 타파할 때가 되었네.”

“................”

“미래는 자원 전쟁일세. 석유가 대표적이지만, 희토류부터 시작해서 그 종류는 끝도 없지. 이 자원을 조기에 확보한 주체는, 나라든 개인이든 큰 힘을 가지겠지만 그 반대는 미래가 어둡지. 특히나 우리 중국처럼 이제야 개혁개방을 시작한 나라는 더더욱.”

쉬용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가리키고 손을 크게 저었다.

“저 앞의 광장, 천안문과 북경대로가 자전거가 아닌 자동차로 가득 차는 날을 떠올려보게, 동지들! 그게 우리 중국의 미래, 덩샤오핑 동지가 그리는 미래일세! 모든 인민들이 자동차 한 대 씩을 가진다면 우리 중국은 석유가 어마어마하게 필요할거야. 그리고 그 자동차들을 움직일 엄청난 석유를 미국 회사들에게서 사고 싶은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면 지금부터 준비에 나서야겠지. 무자헤딘이건 어디건 상관없네. 그 근처 중동, 나아가 북아프리카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의 확장과 자원확보를 도와줄 세력이면 우리 지원을 받을 걸세. 어차피 소련 놈들이야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는 중이니 명분이 있을 때 움직여야지.”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걸 안 지원파들은 이내 기쁜 표정을 지으며 한껏 들떴다.

그런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쉬용유는 다시 자리에 앉아 푸념을 했다.

“경제발전에는 아무 짝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슬람교 나부랭이나 믿는 놈들이 전세계 석유의 보고위에 틀어앉아 있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위구르 놈들도 그렇고 하늘은 가끔 축복을 쓸데없는 놈들에게 퍼준단 말이지. 그러니 우리가 그 축복을 좀 가져와도 누가 뭐라 하겠나?”

그리고 그 날로, 쉬용유가 결단을 내린 후 곧 국가안전부의 요원들은 자신들의 첨병이 되어줄 적당한 세력을 물색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이제까지 무기지원 정도에 그치던 중국의 무자헤딘 지원이 원 역사보다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지원’이 아니라 ‘조종’으로 발전하며 나비효과가 불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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