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부패와의 전쟁 - 총서기 전성시대 (3)
13장. 부패와의 전쟁 - 총서기 전성시대 (3)
반부패수사국의 구성에는 국장 김영일을 중심으로 장성택 휘하 사회안전부 감찰국과 수사국의 인원들이 대거 가담했다.
비교적 오랫동안 군에서 거리를 두고 지내온 인원들인데다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내사에는 도가 튼 인물들이기에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반부패수사국의 직무를 더 원활히 수행하게 도와줄 거라는 정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출범 직후부터 반부패수사국, 수사국은 곧바로 적극적이고 맹렬하게 수사를 개시했다.
- 반부패수사국이오. 당 농업부 과장 김강국 동지 맞소?
- 맞소만... 동지들 무슨 일이요, 기래?
- 동지가 지난 해 함경도 배추 작황에 대한 통계를 상부에 허위보고 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증언도 이미 다 모아놨으니 잠자코 따라오기를 바라오.
- 자, 잠시만! 이, 이런 허위보고는 나만 하는 게 아니잖소? 이미 당 내외로 생산량 부풀리기를 하는 건 흔하게 있는 일인데...
- 그건 어제까지의 이야기고, 총서기 동지께서 굳은 결단을 내리셨소. 불만이 있다면 총서기 동지의 명령을 받드는 김영일 국장 동지께 이야기하도록 하시오.
- 이, 이보시오 동지들!
곧 수사국은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당군정을 가리지 않고 각종 부패와 통계조작, 갈취 등 대민범죄를 잡아내기 시작했다.
수사국의 조사 대상은 당과 내각에도 상당수 포진해 있었지만, 아무래도 인민군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 훨씬 더 많은 인력이 배당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인민군의 규모도 규모지만, 병영 국가라는 북조선의 특성상 일정 규모 이상의 비리나 부패에는 반드시 인민군 조직이 어떤 식으로든 한 다리 걸치고 있는 이유가 컸다.
게다가 애초에 수사국의 창설 계기가 된 사건이 바로 인민군 전연군단에서 공장과 기업소의 생산물을 갈취한 사건 아닌가.
당(과 총서기 정환)의 눈치를 보기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군을 중심으로 수사하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군관이라는 자들은 일반 당원들과는 달리 그냥 호락호락하게 끌려가주는 작자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예정된 듯 수사국과 수사대상이 된 군관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무력이 동원된 건 당연지사였다.
- 815 기계화 군단 제107전차 사단 전차대대 대대장 로경철 소좌! 소좌 동지가 하전사들을 앞세워 인근 주민들을 겁박하고 식량과 기타 물화를 착취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소. 수사국의 지시에 따라주길 바라겠소.
- 이, 이게 무슨 짓이오? 이런 일이라면 정치국이나 보위국을 통하는 게....
- 동 부대 정치군관이고 뭐고 다 한통속인 거 모를 줄 알았소? 게다가 보위국이라고 했나? 지금 김정환 총서기 동지께 감히 이빨을 들이댄 그 반동분자 원흥희가 이끄는 기관을 말하는 거지? 어서 끌고 가라!
- 야! 이 개 같은 간나 새끼들아! 그럼 보급이 충분하지 않은데 다들 앉아서 강냉이에 풀 때기, 두부쪼가리만 처먹고 있으라는 거이네? 백날 그딴 거만 먹고 앉아서 어떻게 남조선 반동들이랑 미제 놈들과 싸우라는 거이간?
- 지금 체포에 불응하겠다는 건가? 인민을 지키는 인민군대에서 인민을 갈취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 총서기 동지의 엄명이다!
- 빌어먹을! 모두 나오라! 어디 누가 이기는 지 한 번 붙어보자우!
결국 충돌이 발생했다.
전방 군단의 비리를 조사하던 수사국 수사원들은 오히려 몰매를 맞고 해당 부대 주둔지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그나마 부대원들이 완전히 정신나간 놈들은 아니었는지 목숨은 붙어서 돌아왔지만, 이제 반부패수사국장이라는 자리에 앉게 된 김영일은 이 사태에 대해서 여지껏 그에 대해 알아왔던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 총서기 동지! 보고 드릴 긴박한 사안이 있습니다.
- 아, 형님... 아차차, 이제 김 국장 동지라고 불러야겠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 815 기계화 군단의 비리 사실을 조사하던 저희 수사국 성원들이 오히려 해당 부대원으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 .........흐음, 그거 심각한 일이군요, 그래서 제가 뭘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 이 범죄의 주동자 놈들은 당군정을 가리지 말고 부정부패를 엄단하라는 총서기 동지의 엄명을 우습게 본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총서기 동지의 이름으로 이 반동들을 즉시 교화소에 처넣고 그중 책임이 큰 놈들은 총살형에 처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제 입장이 좀 곤란한 게 말입니다. 저는 당 총서기이지만 동시에 중앙군사위 위원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사국과 인민군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어주기 힘든 입장입니다. 형님이 이 아우를 이 점에 있어서 좀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물론입니다. 오갈 데 없는 이 김영일이를 불러내어 당직에 앉혀주신 총서기 동지의 은혜를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 하지만 그렇다고 형님, 그러니까 김 국장 동지의 수사국이 얻어맞고 다니는 걸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제가 내린 부패엄단이라는 지시가 유명무실해질 테니 그걸 그대로 놔둘 수도 없고...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 ......................??
- 제가 직접 관여할 수는 없지만, 반부패수사국에 실질적인 힘을 쓸 수 있는 무력 조직 하나를 새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총서기인 제 직속 명령을 받은 수사국 성원들 눈이 밤탱이가 됐으니 명분도 충분하고... 그럼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겠지요.
- 참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총서기 동지! 하지만 어디서 그 조직의 성원들을 구해올지.... 그리고 그런 자들이 군 경력 하나 없는 제 명령을 따를지 모르겠습니다.
- 그 문제는 여기 장성택 부장 동지가 협조해주실 겁니다. 장 부장 동지 휘하의 사회안전부 기동중대에서 간부급 인원 십 수 명을 차출하고 그들의 지휘를 받을 하급 군관들과 하전사급 병력들은....제가 지난 번 말씀드린 거 기억하시겠지요, 장성택 부장 동지?
- 으음.... 기억하고 있습니다. 총서기 동지의 지시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지난 번 거사 이후 요즘 군관들의 세가 너무 커져 오만방자해지는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제 놈들이 당보다 위에 있다는 듯 구는 놈들에게 버릇을 가르쳐주는 것이니 전력으로 협조하갔습니다.
- 하하하... 역시 믿을 건 부장동지 뿐입니다. 지난 번 거사에서 체포당한 자들 전부를 언제까지 사회안전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도 힘들 텐데, 이 기회에 그들 중 개심한 자들에게 새 기회를 주는 것도 좋겠지요. 자, 그럼 이제......
(이 부분에서 정환은 눈을 빛내며 눈에서 불을 뿜고 있는 김영일 국장에게 은근한 미소를 보냈다.)
- 앞으로도 당무 수행을 적극적으로 해주시기 바라오. 김 국장 동지.
- 충성을 다 바치겠습네다! 총서기 동지!
그 날도 평양경비사령부 소속 류무영 중좌는 ‘장부’를 들여다보면서 행복한 감상에 젖어있었다.
부대 내 회계담당도 아닌 그가 들여다보고 있는 장부의 정체는 바로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부대 내에서 빼돌린 유류품을 민간에 판매해 얻은 수익금 장부였다.
이런 짓이야 꽤 오래 전부터 해오던 거지만, ‘거사’ 이후에는 가끔씩 적당히 해먹으라며 눈치를 주던 정치군관의 입도 조개처럼 꽉 다물어 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류무영 중좌의 프룬제 유학 시절 직속선배가 바로 평방사 사령관이자 현재 조선인민군 중장인 백승철이었기 때문이다.
‘흐흐, 지난 거사에서 중추가 되어 현 총서기 동지를 옹립하는 데 큰 공을 세운 게 백 중장 동지인 건 인민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내가 뒤로 꿀물을 좀 마신다고 해서 누가 감히 뭐라할 수 있간?’
류무영은 수첩 가득 빼곡이 적힌 숫자(빼돌린 유류품과 그 판매수익)를 보며 자기합리화에 여념이 없었다.
애초에 따지고 보면 한때나마 조국에 충실한 군인이었던 자신이 이렇게 ‘장사’에 열을 올리게 된 것도 프룬제에 있을 때와는 천지차이나는 이 조국 조선의 열악한 대우 때문 아니냐는 말이다.
그렇기에 류무영은 자신이 이 조선인민군의 피 같은 군용비축유를 조금 빼먹어도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라도 해서 돈을 벌어 가끔 보드카와 (밀수)사치품을 써주지 않으면 답답한 군 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백 중장 동지도 뒤로 해먹을 건 다 해먹고 있지 않간? 그러니 누가 나를 뭐라고 할 수 있어? 보자, 이번 달은 좀 줄었는데 하전사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좀 줄이면....’
“평양경비사령부 차량화 대대 류무영 중좌 동지! 우리와 함께 가주어야겠다!”
“......뭐, 뭐야?”
류무영은 느닷없이 사무실에 들이닥친 한 떼의 제복 군관들을 보며 놀라서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잠시 상황파악이 안 돼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류무영은 그들 중 선두에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 김영일이?”
“오호라, 이거 오랜간만이구만. 그동안 천지가 많이 뒤바뀌었지 않았나, 류무영 중좌동지?”
군관들의 선두에서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걸어 나오는 사람은 바로 반부패수사국장 김영일이었다.
하지만 류무영이 놀란 이유는 그 얼굴 허연 얌생이 김영일이 수사국장이 되어 나타났다는
사실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한 때 호위사령부에 몸을 담았던 류무영의 경호(감시) 대상이었던 자가 바로 김영일과 그 가족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백두혈통이라도 핵심에서 한참 떨려난 곁가지고 너는 장차 이 공화국을 이끌어갈 중추라고 그동안 많이도 거들먹거렸겠다? 호위사령부 시절 네놈 새끼가 나와 내 피붙이들에게 수모를 준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을 거다. 그렇지 않나?”
“이, 이봐, 김영일이.... 그 때는 다 지나간 일 아닌가... 나도 그 때는 그냥 상부 지시라서 어쩔 수 없기도 했고...그리고 그 때는 김정일 장군님 아래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그저... 아, 아니, 그러니까 장군님이 아니라 김정일이가...”
“아가리 닥쳐! 그래도 하늘이 무심치 않아서 총서기 동지의 은혜로 드디어 네놈에게 갚아줄 날이 왔구나. 어차피 끌고 갈 테지만 그 사이에 내가 좀 놀음을 즐겨도 총서기 동지께서 뭐라 하지는 않으시겠지. 저 공화국을 좀먹는 반동 놈에게 동지들 주먹 맛 좀 보여주게!”
“이, 이 간나들이....!!! 나를 건드리면 백승철 중장 동지부터 우리 프룬제 동무들이 가만있을 것 같...... 크어억!!!!”
곧이어 날아온 매운 주먹에 류무영의 이빨이 부러지자 근처에 있던 류무영의 부하들이 바로 달려와 가세했다.
상황은 바로 인민군들끼리의 난투극으로 변했지만 숫적우세에도 불구하고 밀리는 쪽은 놀랍게도 류무영의 부하들 쪽이었다.
게다가 어째 주먹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려있어서인지 김영일이 끌고 온 병력들은 그야말로 토끼 떼를 덮치는 호랑이들처럼 사납고 맹렬했다.
류무영 휘하 평양경비사령부 병력들도 그다지 약골들은 아니었지만, 처음에 기껏해야 사회안전부 보안원들 정도겠지 하고 우습게 봤던 탓에 류무영의 부하들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일이간? 대체 어디서 이런 특급전사들이 튀어나온 거야? 거기다 저 중 몇몇은 틀림없이 면이 익은 놈들 같은데....?’
타앙! 타앙!!
이런 류무영의 생각은 사태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김영일이 허공에 대고 발사한 백두산 권총의 총성에 중단되었다.
“이제 그만! 이 정도면 족하다! 저기 류무영이를 비롯해서 가담한 놈들은 전부 엮어서 끌고 가라! 저놈들의 처분은 총서기 동지에게 맡길 것이다.”
하지만 원한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류무영을 쏘아보는 김영일의 눈을 보아하니 사태가 그다지 곱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 평양경비사령부 병력들은 이윽고 유류품 횡령이라는 명목으로 굴비두름처럼 엮여서 반부패수사국 트럭에 올라타 힘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김영일은 분노에 가득 찬 한 손님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측근들 중 한 명이 잡혀가 화가 날대로 난 그 손님의 이름은 바로 평양방어사령부 사령관 백승철 중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