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소용돌이치는 공화국 (1)
8장. 소용돌이치는 공화국 (1)
콰콰콰콰콰쾅!!!!!!!
“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엎드려! 유 상위!”
폭음과 비명소리가 들리자마자 정환은 옆에 있던 유혜림을 덮쳐 함께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곧이어 사방이 흔들리고 깨지고 무너지는 와중에서, 정환은 머릿속에는 뭔가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물론 그 사이렌의 이유는 지금 주변에서 혼돈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지만.
‘이런 빌어먹을! 폭탄이 너무 일찍 터졌어!!!’
방금 전까지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장성택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는지 허둥지둥 바닥에 엎드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우르르르르르릉...............!!!!!
후두두두두둑...............!!!!
폭음이 일어나고 조금 후, 마치 쓰나미가 밀어닥치듯 잔해와 먼지의 파도가 그들을 덮쳤다.
76층짜리 건물이 쓰러지는 여파는 아무리 사전에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해도 맨정신으로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먼지가 하늘을 뒤덮었고 돌조각이 소낙비처럼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 정환은 바닥에서 살짝 머리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유 상위, 괜찮아?”
“저,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환 동지. 이건.......”
“그래, 맞아. 뭔가 잘못된 거 같아.”
아직도 옆에 엎드려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장성택을 슬쩍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정환이 신호하자 유혜림은 눈치 채고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장 부장 동지, 일어나보십시오. 어디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나, 나는.... 이게 대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호텔이 무너졌습니다. 어서 김일성 수령님과 김정일 장군님을 찾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수 수령 동지.... 그렇지! 김일성 수령님, 그리고 장군님을 찾아야 한다! 호위국 군관들은 다 어디서 뭐하고들 있나!”
‘수령님’, ‘장군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장성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가려 했다.
그런 그의 등에다 대고 정환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 마디를 던졌다.
“제 덕에 한 목숨 건지셨군요, 장성택 부장 동지. 그러니 아까 전 제가 한 말은 잊어주시길 바랍니다.”
“...............!!!!”
그 말에 막 천막의 잔해 밖으로 달려 나가려던 장성택은 그 자리에 딱 멈춰섰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정환 동지, 방금 뭐라고.........?”
“아, 제가 ‘우연히’ 장 부장님을 이곳으로 부르지 않았다면 부장 동지는 지금쯤 연단에 계셨을 거 아닙니까. 이게 다 오래 살아서 공화국을 위해 더 헌신하라는 하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 그렇지.”
“그럼 어서 가보십시오. 그리고 이건 제 의견입니다만, 보위부 동지들은 다 외지에 나가있고, 호위국도 피해가 클 테니 당 휘하의 사회안전부에 부장 동지가 지시를 내리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군권에 손을 대는 게 아니니 차후에 장군님도 이해해주실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여기까지 말한 후에도 장성택은 여전히 뭔가 말할 게 남은 듯 머뭇거리며 천막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마음을 짐작한 정환은 눈을 빛내며 먼저 입을 열었다.
“........뭐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정환 동지, 아까 나를 부른 것 말인데..... 용무가 뭐였나?”
“아, 그저 사소한 당의 업무 때문입니다. 지금 와서 보니 별 쓸데없는 일인데 장 부장 동지가 천운을 타고나신 모양이군요. 장군님도 기뻐하실 겝니다.”
“사소한 당의 업무 때문이라.... 그게 정말인가? 다른 의도는 없었고?”
뭔가 의미심장한 장성택의 질문에 정환은 얼굴의 먼지를 닦아내며 슬쩍 웃음을 보였다.
“하하하.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저 같은 당의 일꾼이 뭐 다른 의도니 하는 게 있을리 있겠습니까? 괜시리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니네. 덕분에 한 목숨 건졌어. 장군님도 무사하셨으면 좋겠군. .........아닐 공산이 높지만.”
마지막에 변명하듯 말을 흘리고 장성택이 사라지자 정환은 바로 유혜림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는 여기에 남아서 구조 작업을 돕지. 지금 바로 식장을 떠났다가는 의심을 사기 딱 좋아. 유 상위는 즉시 홍 상장과 다른 동지들에게 연락해. 가장 중요한 사람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빌어먹을.”
“동지, 아까 뭔가 잘못됐다는 말은 역시.......”
“그래.”
정환은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 난장판이 된 바닥에 발을 굴렀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까딱 잘못 했다가는 모가지가 줄줄이 날아갈 수 있는 일에 자기 혼자의 이익을 앞세우다니.
“백승철 이 씹어 먹어도 모자랄 새끼. 폭탄을 30초나 일찍 터트렸어. 김일성과 김정일이를 동시에 제거할 속셈으로 말이야. 빌어먹을. 내가 김일성은 살려놔야 한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 세 번째 조건, 죽이는 건 김정일이 하나 뿐 이오. 김일성 주석은 살려 두시오.
처음 류경호텔의 공사장 옆에서 백승철과 만났을 때, 정환이 내건 세 가지 조건 중 마지막 조건은 바로 ‘김일성의 생존’이었다.
공화국 내에서 이미 신격화된 김일성까지 죽여 버리면 권력의 진공 현상이 일어나 변수가 너무 많아진다는 문제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환 자신이 순조롭게 권력을 이어받고 정통성 있는 수령이 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조건은 프룬제 일파, 정확히는 백승철 소장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기도 했다.
- 정환 동지는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혹시 주석님이 정환 동지의 아바지라는 혈육의 정에 의한 것이라면.......
- 그런 건 까무러쳐도 없으니 집어치우시오, 그리고 말이 되지. 김일성까지 죽였다가는 공화국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휘말릴 거요. 나중에 상징성만을 남겨서 실권 없는 노인네로 남겨두더라도, 절대로 죽이면 안 되오. 그 순간 백 소장과 프룬제 일파는 온 공화국의 적이 될 거요.
- 그럼 좋소, 그래도 굳이 호텔을 무너뜨려서 죽여야 할 이유는 뭐요? 김정일이를 죽일 방법은 많소, 총으로 쏘거나 독을 타거나 그것도 아니면 고사포로 날려버리거나... 왜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 반드시 이 방법이어야 하오. 이건 인민들의 민심을 사야 한다는 두 번째 조건하고도 맞물리는 일이니까. 평양의 전 공민들에게 자기들 장군님의 실패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해주어야 하오.
류경 호텔을 무너뜨려 김정일을 제거하겠다는 계획의 요체는 이미 상당히 전부터 정환이 세워놓은 것이었다.
이미 공화국 내에서 김정일은 자기 아버지 김일성만큼이나 강력한 실권을 휘두르고 있었고, 역사대로 몇 년 만 지나면 그나마 남은 권력까지도 아버지에게서 빼앗아 명실상부한 수령에 등극할 것이다.
호위총국부터 시작하여 보위부 등 각종 무력집단은 이미 대부분 그에게 넘어간 후였고 평양공민들을 필두로 모든 공화국 사람들이 그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차기 수령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김정일에게 지도자로서의 능력이야 쥐뿔만큼도 없지만 대부분의 인민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알 수도 없다.
언론의 자유는 진작에 엿 바꿔 먹은 북한에서 이미 아버지 김일성의 눈과 귀까지 막기 시작한 김정일이 아무리 무능과 실정을 거듭해 봐야 인민들은 그걸 알 도리가 없으니.
그렇다면 도저히 감출 수 없을 정도의 대실패, 부인할 수 없는 오점을 창조해내자.
온 평양 공민들을 다 모아놓고 그 앞에서 김정일이 입이 부르트도록 자신의 공으로 선전해왔던 혁명과업, 자기 아버지 김일성의 생일선물이 눈앞에서 먼지가 되는 꼴을 보여준다면, 김정일의 신뢰도는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보위부가 통제를 하고, 어떤 신문에도 나지 않을 정도로 검열이 철저해 지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모든 사람의 입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참 편리하게도 김정일은 자신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가장 믿을만한 핵심계층만 평양에 골라서 모아놓은 덕에, 모든 일이 훨씬 더 쉬워졌다.
‘백승철 이 천하의 모지리 새끼만 아니었다면 말이지!’
잇새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정환은 천막 밖으로 나가며 생각했다.
천막 밖은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인민들의 절규와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의 신음소리, 폭발음을 듣고 몰려와 구조작업을 시작한 군부대원들로 난리법석이었다.
물론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된 구조작업의 최우선순위는 당연히, 공화국의 두 태양 김일성 주석과 그 아들 김정일 장군의 생사였다.
‘30초나 일찍 폭탄을 터트리다니! 이 새끼는 까딱 잘못했다가는 자기 삼족이 맷돌에 갈려나가는 콩비지 신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폭파암살이라는 위험천만한 계획에서, 정환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도 행사에 참석하겠다는 모험을 감수했다.
공사 자재를 전담한 정환이 참석하지 않았는데 사고가 벌어진다면 누가 봐도 너무 수상쩍으니까.
물론 사전에 할 수 있는 대비는 전부 해두었다.
잔해가 떨어지는 범위를 계산해서 가장 안전한 곳에 위치한 가장 튼튼한 천막 두 개 중 하나가 정환이 조금 전까지 몸을 피하고 있던 곳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물론, 김일성 주석이 앉아있을 곳이었다.
- 대단하군, 정환 동무. 이런 요령은 어떻게 알게 된 거요?
- 제 지인 중에 뒤가 좀 구린 일을 하는 부동산업자 한 명이 있어서 말입니다.
원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잘 되었더라면, 김일성이 단상에 오른 김정일과 악수를 마치고 내려가 천막에 자리를 잡고 단상에 김정일밖에 남지 않은 순간 폭탄이 터졌을 것이다.
폭탄 설치는 백승철 휘하의 믿을만한 군관이 맡았다.
애초에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 중 상당수가 그가 지휘하는 평양방어사령부 소속 군인들이라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기폭장치를 백승철 자신이 가지겠다고 끝끝내 고집을 부렸던 것이다.
- 걱정하지 마시오, 정확히 정환 동지가 일러준 시간에 터트릴 테니.
"정확히 일러준 시간은 얼어 죽을.........!!!“
찜찜하기는 했지만, 정환은 혹시라도 자신이 기폭장치를 가지고 있다가 탄로 날 경우 생길 뒷감당을 생각해서 끝까지 반대하지는 않았다.
원래 그들이 합의했던 계획에서, 폭탄은 30초는 늦게 터졌어야 했다.
그래야 김일성이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고 당초 목표인 김정일과 호위총국 병력들만 몰살시킬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백승철 이 얼간이가 김일성까지 한 번에 제거하려는 욕심에 아직 김정일이 단상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폭탄을 기폭시킨 것이다.
“으으으으으으,.........!!!!!”
“아아아악.....!!!! 오, 오마니........!!!”
천막 밖은 산이 무너지는 듯한 고층 빌딩의 잔해에 그대로 직격당한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물론 군이고 보안원이고 할 거 없이 수많은 병력들이 달려와 잔해를 치우고 부상자를 구조하는 데 손을 보태고 있기는 했다.
문제는 그 인력 대부분이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귀중한, 공화국의 수령 김일성과 그 아들 김정일 장군님을 찾는데 투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외 다른 사람들은 그야말로 안중 밖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정환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기 기둥 밑에 사람이 깔렸시요! 누구든 손 좀 빌려 주시요!”
“지금 가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근처에서 들려온 다급한 구조요청에 정환은 바로 달려가 무너진 잔해를 붙잡고 끙끙대는 사람들 무리에 힘을 보탰다.
“어이차! 어이차! 좀 더 힘 좀 써보시오들!”
끼이이이이익.....
쿠르르릉....
쿠웅!
여러 사람이 힘을 모으자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한 쪽으로 밀려나며 그 밑에 갇혀있던 사람들은 생의 기쁨에 환호성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요, 학생 동지!”
“이 은혜 잊지 않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내가 이 사고를 일으킨 주범이라는 걸 알면 무슨 표정을 지으려나....’
공화국과 김정일 장군에게 충성스러운 당원을 연기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 남아 구조를 도우면서도 드는 그런 생각에 정환은 내심 복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의도한 일이기는 했지만 계획을 세울 때는 생각의 저편으로 밀어두었던 그 피해자들이 생생하게 눈앞에 보이자 정환은 잠시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한 본능적인 죄책감과 연민을 느꼈지만, 곧 그는 고개를 저어서 생각을 떨쳐냈다.
‘어차피 오늘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양에 거주하는 핵심계층들, 군관들이다. 많든 적든 자의건 타의건 지구상에서 가장 부패한 이 공화국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작자들이니 그 대가를 조금이나마 치른다고 생각해라.’
사실 정환이 아직까지도 이 사고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의심을 피하기 위한 까닭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가 더 주요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란 당연히.........
“장군님을 찾았습네다! 어서 의무관 동지를 물러오시오!”
“장군님! 상하신 데는 없으십니까? 뭣들 하나! 어서 직승기(헬리콥터)를 준비하지 않고! 군이든 어디든 되는 걸로 빨리 끌고 오란 말이다!”
“의사 동지들 다 불러오라고! 다른 부상자들은 상관없어! 어서 장군님부터 보살펴야 하지 않갔나!”
“.......................!!!!”
행사장 한 쪽 구석에서 울려 퍼진 환호성과 다급한 요청에 정환의 온 몸에 싸늘한 냉기가 전류처럼 달렸다.
김정일이 살아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