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36화 (36/350)

7장. 류경 호텔 (8)

7장. 류경 호텔 (8)

파파파파팡!!!!

불꽃놀이가 평양의 하늘을 수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호상비판, 감시 체제가 자리 잡은 북조선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벤트였다.

오늘 초대된 사람들은 북조선에서 일부인 핵심계층에 속하는 평양 공민뿐이었지만 그들은 들뜬 얼굴로 큰 글자의 플래카드들이 걸려있는 행사장 안으로 들어갔다.

- 류경호텔 건설 400일 전투 목표 조기 달성! 주석님과 장군님의 영도력으로 공화국의 역사적인 혁명과업 이룩!

- 주석님의 76회 탄신일 경축! 만수무강하셔서 이 조선을 오래오래 이끌어주십시오!

주로 당 간부들, 군관들과 그들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인파들은 철저한 경비 하에 꽃가루가 날리는 행사장으로 입장했다.

그리고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들의 눈에 띈 것은 바로 단상을 등지고 있는 거대한 류경 호텔의 전경이었다.

행사장으로 진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거대한 위용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짜여진 식장 배치 덕에 의자의 바다라고 해야 할 법한 관객석의 가장 뒷줄에서도 류경 호텔의 자태를 구경하는 데에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저것 좀 보게. 가까이서 보니 더 거대하구먼. 다 지어지지 않아도 저 정도인데 공사가 끝나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안 가지 않간?”

“길티, 우리 공화국이 강성대국이 되긴 한 모양이야, 이게 피양(평양)사는 맛이지. 저 머리 꼭대기에서 옥류관 냉면 한 그릇 하면 지상락원이 별 거간?”

“공사 기간 중 군 하전사들이 많이 죽어났다던데, 저 정도면 그 동무들도 개죽음이 아니었디. 저승에서 눈물 흘리며 기뻐할 기야.”

“쉿! 이 사람아! 경사일에 그게 무슨 망언인가? 저기 호위총국 군관들 안 보이간?”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류경 호텔을 배경으로 등지고 선 단상 주변에는 오늘 행사의 경비를 전담한 호위총국 제1국의 건장한 군관들이 도끼눈을 뜨고 들어오는 입장객들을 일일이 노려보고 있었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호위총국 중에서도 핵심인 제1국, 그중에서도 제1호위부 소속의 정예 병력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호위국 내 사정에 좀 더 정통한 이라면 그들의 숫자를 보고 오늘 있을 행사에 좀처럼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공화국의 두 ‘태양’, 김일성과 김정일 양 쪽 모두가 한 행사에 얼굴을 보이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북조선에서 외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호위총국 군관이 한 데 모인 것을 보고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이가 있었다.

‘여기까지는 계획대로다. 이제 백승철이 내가 말한 대로 따라주기만 한다면....’

“에, 그럼 지금부터 공화국의 력사적 혁명과업, 류경 호텔의 76층 준공 기념식을 시작하도록 하갔습니다. 식순을 진행하기 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 경애하는 수령 동지, ‘김일성 장군님의 노래’를 제창하도록 하겠습니다.”

30분

“장~백산 ~ 줄기 줄기~”

북한의 (실질적인) 국가인 김일성의 찬양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들으며 심란한 표정으로 단상 근처에 앉아있던 정환은 초조하게 일제 손목시계를 흘낏거렸다.

좀처럼 당황하는 일이 없는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의 긴장을 숨기느라 무진 고생을 해야 했는데, 오늘이야말로 그동안 그와 프룬제 일파들이 준비해온 ‘거사’의 결행일이었던 것이다.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는 이미 들었다. 백승철 그 자식이 괜한 헛짓거리만 안 한다면, 오늘로 그동안 참고 기다려왔던 모든 일이 결실을 맺는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끝나고 서열이 낮은 순대로 단상의 귀빈석을 한 명씩 채우는 당과 군의 요인들을 보며 정환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자신은 아직 저 연단에 올라갈 수 있는 지위가 되지 못해 호위총국 경호원들의 벽에서 백여 미터 정도 떨어진 천막의 ‘공사관계자’석에 앉아있지만, 정환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앞으로 20분 정도 후면, 가장 중요한 목표인 김정일을 포함해 저 연단에 앉아있는 사람은 모두 죽게 되니까.

20분

‘만일을 대비해 플랜 B를 세워두기는 했지만... 쓸 일이 없었으면 하는데....’

“민족의 영도자이시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원한 수령 동지, 김일성 장군님이 입장하고 계십네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지며 안경을 쓰고 뚱뚱한 체구에 목덜미에 큰 혹이 난 노인이 식장으로 들어섰다.

공화국에서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없는 전 인민의 어버이 김일성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있는 평양 공민들은 절규 같은 환호성을 터트렸고, 그 중 일부는 복받치는 감격에 눈물까지 터트렸다.

비록 최근 들어 군 인사권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실권을 아들 김정일에게 양도했지만 여전히 공화국 내에서 김일성이 갖는 위치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메이크업과 의상, 조명의 마술로도 완연한 노화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김일성은 단상에 앉은 주요 간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는 연설대 앞에 서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곧 살아있는 신의 목소리가 식장에 울려퍼지자, 자리하고 있던 평양 공민들 중 상당수는 수령의 육성을 직접 듣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기까지 했다.

그들과 호응하듯 정환도 손수건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았지만, 그건 당연히 감격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연설이 시작되자 정환은 몸을 돌려 옆에 앉아있던 여성에게 지시했다.

“지금, 국가와 민족, 겨레의 위기에 즈음하여 전당, 전군, 전민은 사회주의 이념의 두리 아래 일심단결하여 조선로동당의 지도를 받아 건국 40주년에 류경호텔이라는 강성대국의 진입.......”

10분

“유 상위, 뭘 할지 알지? 그 사람을 불러와.”

“알갔습니다. 그보다 정환 동지.”

“......뭐지? 서둘러야 해. 이제 10분도 안 남았....”

“동지 손이 떨리고 계십니다.”

“................!!!!!”

의외로 자신보다 담담한 옆의 여성, 유혜림 상위의 지적에 정환은 흠칫하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정말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정환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는 부인하려 했지만, 눈앞에서 곧 벌어질 일생일대의 거사를 앞에 두고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볼썽사나운 추태군, 이거. 이리 담이 작아서야 백승철 소장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걸.”

“손 줘보십시오.”

“.......응?”

덥썩

“.............!!!!”

느닷없이 자신의 손을 타고 전해져오는 따뜻한 체온에 정환은 한순간 망연해서 유혜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두 손으로 정환의 한 쪽 손을 꼭 잡고 떨림이 멈출 때까지 잠시 그대로 있던 유혜림은 해사하게 웃으며 정환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제 안 떨리는군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동지. 다 잘 될 겁니다.”

“.............”

“.....설령 뭔가가 잘못되더라도, 저는 동지와 끝까지 함께 할 겁니다.”

“........어서 가. 누가 보기 전에.”

정환은 그렇게만 말하면서 시선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유혜림의 시선을 피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김일성의 연설에만 집중하느라 자신들을 보지 못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짝짝짝짝짝..................!!!!

“곧이어 김일성 장군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평양 시내 보통중학교 동무들의 꽃다발 전달식과 찬송의 노래 경연시간이 있겠습네다.”

5분

김일성의 연설이 끝남과 동시에 유혜림은 사전에 정환이 지시했던 어떤 사람을 데리고 오기 위하여 빠르게 인파 속 어딘가로 모습을 감췄다.

연단에서는 붉은 스카프를 맨 당원의 자녀들이 민족의 영도자 김일성 주석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꽃다발을 전달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마지막 꽃다발까지 전부 전달되자, 사회자가 긴장한 얼굴로 김일성의 등장을 알릴 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우렁찬 목소리로 오늘 행사의 진짜 주인공이 등장함을 알렸다.

“김일성 장군님의 후계자이시자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군사위원, 당서기이신, 경애하는 수령 동지, 김정일 장군님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아아!!!!”

환호성과 함께 사람들이 뭔가에 씌인 듯 자리에서 일어나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인민복을 입은 작고 땅딸막한 체구의 남성, 김정일이 저 멀리서 나타나 단상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차 단상에 앉아 김정일의 도착을 기다리던 당 간부 중 한 사람이 사라졌음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환만은 그, 장성택 청년사업부 부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1분

“정환 동무, 대체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기에 이런 중요한 행사에 나를 불러낸 기야?”

“어서 오십시오, 장성택 부장 동지. 행사는 잘 즐기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즐기고 뭐고, 그쪽이 나를 불러냈는데 즐길 경황이 있을 리 있갔어? 무슨 일인지 빨리 털어놓게. 자네 휘하 군관이 나에게 급히 전할 말이 있다고 하지만 않았어도 지금 저 단상에서 장군님을 영접하고 있어야 하는데... 어서 말해보게. 뭐길래 나를 여까지 불러냈나?”

“별 거 아닙니다. 지난 번 제가 장군님 집무실에서 뵐 때, 에스토니아 관련해서 드렸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유혜림이 불러낸 간부, 장성택은 급하게 불려나와서인지 불만에 가득찬 표정이다가 정환이 지난번 이야기를 꺼내자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그는 이내 눈을 빛내며 정환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캐물었다.

30초

“안 그래도 그 일에 대해 묻고 싶었네. 실제로 2주 쯤 전에 자네의 예견대로 에스또니아에서 엄청난 규모의 소요가 일어났어. 대체 무슨 신통력을 발휘해서 그걸 알아낸 기야?”

“신통력이라니요, 그저 사실에 기반한 예측일 뿐입니다. 이 공화국에서 신통력을 발휘하는 건 수령님과 장군님 뿐 아닙니까? 축지법이라든가 말입니다.”

“.................”

정환의 말에 담긴 비꼬는 투에 장성택은 자신도 모르게 주위를 돌아보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가 댔다.

다행이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알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환은 전혀 다른 이유로 손에 땀이 고일 지경이었다.

10초

‘이제 1분 정도 남았다. 김일성이 단상에서 내려가고 김정일이 연설을 시작하고 나면....’

6초, 5초, 4초, 3초, 2초, 1초...........

“입 조심하게, 지난 번 자네가 나를 한 번 봐준 공이 있어서 방금 그 발언은 넘어가겠네. 하지만 지난번 자네의 예측이 대체 무슨 조홧속에서 나왔는지 속히 털어놓지 않는다면 자네의 반혁명적 발언을 고발할 수밖에 없디! 혹시 자네 미제의 스파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본래 정환은 장성택의 거만한 협박에 입을 열어 한마디 하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아니 평양에 있던 사람들 중 극소수만이 알고 있던, 심지어 정환조차 알고는 있었지만 정확한 시기는 모르고 있던 일이 일어났다.

퍼어엉!!!!

정해진 시간이 되자 행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식장의 뒤에 백두대간처럼 서있던 류경 호텔의 내부, 기단부를 지탱하는 철골조 어딘가에 설치된 폭탄 몇 개가 폭발했다.

비록 그렇게 큰 폭발이 아니라 김정일의 과장된 연설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던 식장의 아무도 폭발음을 듣지는 못했지만, 폭탄을 설치한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효과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끼기기기기이이이이이이...........

쿠르르르르릉......................!!!!!!

곧 신음소리 같은 불길한 소리를 내며 류경호텔은 하단부에서부터 가로로 금이 가며 붕괴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은 폭탄 몇 개가 폭발했을 뿐이었지만, 고층 건물 공사에 적합하지 않은 철근 콘크리트 시공, 전반부와 지나치게 질적 차이가 나는 후반부 공사 자재, 무엇보다 속도에 치중한 부실공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맞물린 결과였다.

무너지기 시작한 류경 호텔의 잔해의 상당부분은 기단부가 붕괴되자 하중을 못 이기고 제풀에 주저앉아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그 웅장했던 위용에 걸맞게 결코 적지 않은 잔해는 콘크리트와 금속의 해일이 되어 연단을 시작으로 식장을 그대로 덮쳐버렸다.

“저거, 저거, 저거..........어어어어어어..............!!!!!”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살려주시요!!”

“오마니...........!!!!”

쿠콰콰콰콰쾅............!!!!!!!!!!

잔해의 파도는 연단은 물론이고 그 주위를 철통같이 경호하고 있던 호위총국의 정예부대원들까지 순식간에 집어삼켜버렸다.

그들 중 대부분은 그대로 즉사했으며 살아남은 자들 중 나머지도 잔해가 덮친 후 5분이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날 벌어진 사고로 인하여 김정일과 김일성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호위총국 제1국의 정예부대원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그러나 후세에 ‘류경 호텔 붕괴사고‘라고 알려진 사건 이후 약 한 달간 평양에 몰아친 피비린내 나는 암투와 권력투쟁의 서막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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