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류경 호텔 (6)
7장. 류경 호텔 (6)
“................”
홍계성의 질문에 정환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입을 다물었다.
정적이 내려앉은 사무실에서 홍계성을 포함한 프룬제 일파의 수뇌들은, 특히 그중에서도 백승철은 눈을 빛내며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곧 정환의 입이 열렸다.
“.....보위부 문제를 해결해드리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군요.”
“물론 그 이야기는 백 소장에게서 들었소. 그 지긋지긋한 보위부 간나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야 정환 동무는 우리 거사에 실로 큰 기여를 하는 게지. 하지만.........”
홍계성은 말을 잠시 멈췄다가 이내 슬쩍 다른 수뇌부들을 살폈다.
그들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정환은 홍계성과 백승철을 포함한 그들 전부가 오늘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정환 동무의 기여도 문제를 떠나서, 거사를 결행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소.”
“.....넘어야 할 산이라면.....?”
“정환 동무도 잘 아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김정일과 김일성 주석은 그동안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이 공화국의 군대와 모든 당 조직을 상호감시체제 하에 복잡하게 꼬아놨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자신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말이지.”
홍계성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 말이 직접 그의 입으로 나오자 정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보위부가 그중 비중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부서들이 남아있지요.”
“그렇소. 우리도 그런 문제를 인지하고 그동안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어 우군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첩첩산중이지. 백 소장 동지?” , ”
“알갔습니다.”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백승철은 홍계성의 부름에 손가락을 들어 하나하나 접어가며 거사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걸림돌들을 정환의 면전에서 열거했다.
“우선 인민군 보위국(保衛局), 군내의 불온분자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만일의 사태를 예방하는 곳이니만큼 우리가 가장 먼저 경계하고 포섭을 시도한 곳이오.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했지. 보위국장을 제외한 절반 정도는 거사가 일어나면 우리 편을 들 것이오. 최소한 김정일 편을 들지는 않겠지.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요.”
백승철은 정환이 무슨 반응이라도 할까 궁금했는지 그의 얼굴을 살피며 손가락을 하나 접었지만, 여전히 정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런 그의 반응에 실망했는지 백승철은 미묘하게 입술 끝을 일그러트리며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두 번째는 사회안전부. 주 임무는 군이 아니라 인민들 내부의 반란을 통제하는 거라지만 이들도 결국 궁극적으로 김정일이에게 충성하는 건 매한가지지. 게다가 엄밀히 따지자면 군 휘하가 아니라 당 내무성 휘하에 있어 우리 쪽에서 건드리기 곤란한 점도 있소.”
“...........”
백승철에 지적에 정환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후일 인민보안성으로 개칭되는 사회안전부는 백승철의 말대로 한국으로 따지면 군이라기보다는 경찰에 가까운 곳이지만, 간부들은 인민군과 동일한 계급을 가지고 있는데다 군과의 순환근무도 이루어지고 있어 반란진압에도 참여하게 될 것은 틀림없었다.
물론 이런 사실을 사전에 알고 있던 정환은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 사회안전부의 포섭대책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을 제거하고 그들이 정권을 잡는 데 있어서 가장 중대한 걸림돌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정환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이건 정환 동무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굳이 본인 입으로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지. 설마 우리 수령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동무가 이 공화국의 행정체계조차 모를 리는 없을 테니 말이오.”
백승철의 발언에는 정환에 대한 비아냥거림이 짙게 깔려있었지만 정환은 그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한 마디만을 내뱉었다.
“호위총국.”
“바로 그거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홍계성은 이제까지 보여줬던 노회한 모습답지 않게 한숨까지 내쉬며 정환의 말에 동의했다.
이제까지 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고심하고 있었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김정일과 김일성 주석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자들이지. 그런 만큼 출신성분이나 충성심 역시 다른 자들과 차원을 달리하오. 당 간부도 8촌까지밖에 하지 않는 신원조사를 무려 17촌 조사까지 할 정도이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소? 보위국 일부까지 끌어들인 우리도 호위총국 인간들은 말조차 꺼낼 생각을 하지 않았지. 자살행위니까.”
홍계성의 푸념에 그의 옆에 앉아있던 다른 간부들은 물론이고 백승철까지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정환은 그걸 보면서도 별로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환 본인의 사전조사와 계획에 있어서도 호위총국은 그만큼 난관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위부가 김정일의 오른팔이라면 호위총국은 김정일의 왼팔이다. 일개 성원도 전부 체격이 건장한 자들로 선발된 정예 중 정예인데다가, 비상사태 발생 시 인민무력부와 육해공 어느 부대의 장비, 기갑차량이든 끌어다 쓸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니... 머리가 아플 만도 하겠지.’
특히나 호위총국에서도 제1 호위국은 김정일과 김일성의 지근거리를 호위하며 배속된 3000 명이 넘는 정예병력이 김 씨 일가를 24시간 호위한다.
어쩌면 보위부 이상의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벽, 이 호위총국을 공략하지 않고서 김정일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요원한 일에 불과했다.
“........그럼 이제 정환 동무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지. 정환 동무는 이런 난관들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소? 이제 그만 심중에 있는 생각을 털어놔 보시오.”
“..................”
“백 소장 동무의 말에 의하면 아직도 구체적으로 본인의 계획을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던데.... 그래서야 호상 간에 우리가 믿을 수 없을 게 뻔하오. 골이 좋다고 들었는데 어디 이런 문제들을 전부 해결할 수 있을지 한 번 들어나 봅시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와 거사의 지분을 나누겠다는 것은 안 될 말이오.”
“.......이곳은 도청당하지 않는 게 확실합니까?”
정환이 확인하듯 묻자 홍계성은 자신을 뭐로 보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한 번 확언했다.
“그건 염려 마시오. 보위국 놈들이 아무리 설쳐대도 인민군 부총참모장인 이 홍계성이의 집무실에까지 손을 뻗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주석이 살아있을 때까지의 이야기일 거요. 그 아들 김정일이가 권력을 잡게 되면 그야말로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설쳐댈 게 뻔하지.”
“그렇다면 말씀드려도 되겠군요. 우선 사회안전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정환이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중대 선언에 백승철을 필두로 수뇌부들의 표정이 모두 확연하게 바뀌었다.
선뜻 정환의 말을 믿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왜 그렇소? 아까도 말했듯이 사회안전부는 국무원 소속이라....”
“바로 그래서입니다. 상장 동지를 비롯해 여기 계신 분들은 군을 담당해주셨으니, 당과 내각은 제가 구슬리는 게 합당하겠지요. 그러면 저도 이 거사에서 제 몫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그리 쉽게 넘겨줄 리 없지. 이 나라와 인민들을 진심으로 걱정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안위와 생존, 그리고 권력이 주된 목적이니.’
뭐 나도 남 욕할 처지는 아니지만.
정환은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그는 아무리 체브리코프의 후방 지원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프룬제 일파가 자신을 수령으로 고분고분 섬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저들 사이에서 못해도 서열 5위 안에는 드는 백승철을 어떻게 협박하는 데 성공했다손 쳐도, 고작해야 유혜림과 김용건 정도를 제외하면 혈혈단신인 자신을 만만히 보는 게 당연하니까.
그래봐야 얼마 전에 간신히 추방자 신세에서 벗어난 정환 자신이 아직까지 그나마 이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할 수 있는 건, 순전히 체브리코프가 넘겨준 파일과 아직 공화국에서 신화적인 존재인 김일성의 혈육이라는 명분이 이유의 전부였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지. 정권 전복 후 나를 말 잘 듣는 허수아비로 써먹으려는 심산 말이야.’
정환은 이미 그들이 속에 어떤 흑심을 품고 있는지 훤히 짐작하고 있었다.
아무리 프룬제 일파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김일성 - 김정일로 이어지는 1인 숭배 체제에 대한 반항이라고는 해도, 30년 가까이 굳어진 인민들의 정신세계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때로 신앙이란 그 대상의 유무가 중요하지 방향성은 그다지 문제가 아닐 때도 있는 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공산주의 국가 이전에 철저한 유교 혈통제 국가다.
느닷없이 나타난 듣도 보도 못한 군관들 무리보다야 ‘공화국의 태양 김일성 주석님의 백두혈통‘을 타고난 정환이 (표면적인) 수령에 오르는 게 훨씬 인민들이 받아들이기 쉽다는 점을 프룬제 일파들도 모를 리가 없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는 건 자신들이어야 하겠지만, 당연히 정환은 이름 뿐 인 수령으로 허수아비 행세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정환은 마침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승부수를 던졌다.
“.......물론 사회안전부를 판에서 제할 수만 있다면야 우리도 정환 동지를 믿고 우리와 이 공화국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거요. 하지만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군. 보위부도 멀리 보내버렸을 뿐 언제든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판에.....”
“청소년 사업부 부장 장성택 동지를 끌어들이겠습니다. 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 부장 동지가 우리 편이 되어준다면 당의 삼분의 일은 우리 것입니다.”
“.........뭐, 뭐요?”
“그건 말도 안 되오! 그 사람은 김정일의 매부인데....”
“제기, 이건 터무니없군. 완전히 망상 아니오, 그건!”
마지막 욕설이 섞인 발언은 백승철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정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역설했다.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산의 왕이라지만, 여우가 여러 마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여우들끼리 물고 뜯고 싸우는 동안, 사냥꾼은 그 두 마리를 모두 자신에게 잡아 바칠 사냥개를 기르면 되는 거야.’
“가능합니다. 장 부장 동지는 이미 혁명화 교육을 한 번 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김정일에게 원한이 깊을 테니.....”
“그리고 김정일이 누이인 김경숙의 서방이기도 하지! Говно! 홍 상장 동지, 더 볼 것 없습니다. 이 자는 우리 거사를 위험하게 만들 미친 자이니 당장 쫓아내고 거사 당일까지 어디에 감금해놓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
“.....잠깐만, 백 소장 동지. 정환 동무의 말을 한 번만 들어보지.”
과연 아수라판보다 살벌하다는 북한 군부에서 오래 살아남은 자답게 홍계성은 침착했다.
백승철을 잠시 진정시킨 후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정환을 주시했다.
정환의 얼굴은 아까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결코 일시적인 열세를 모면하기 위해 되도 않는 말을 주워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 가지는 확실하군, 이 동무는 이 일을 상당히 오래 준비해왔어. 어쩌면 우리들보다도 말이야’
“엄청난 말을 하는군, 정환 동무, 하지만 그렇게 호언을 늘어놓기 위해서는 근거가 있어야지. 어디 털어놔보시오, 도대체 김정일이의 가장 측근인 장성택 부장을 회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근거가 뭐요?, 아니, 그 전에.........”
이제는 백승철도 입을 다물고 정환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니, 이제는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정환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아하니 장성택 동지를 포섭하는 것도 전체 그림의 일부분인 듯 한데, 대체 노리는 게 뭐요? 지난 번 백 소장이 전해준 조건이니 뭐니를 들었을 때는 머리에 먹물만 찬 철없는 이상주의자인 줄 알았지만 오늘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건 아닌 거 같고... 분명히 해낼 자신이 있으니 그런 조건을 걸었겠지. 그걸 말해보시오.”
“여기 있는 분들이 프룬제 일파를 대표하고 있다고 봐도 확실하겠습니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말하는 일은 가급적 없었으면 합니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시오, 정환 동지. 여기 방에 있는 우리 5명의 손에 조선인민군의 4할이 틀어잡혀 있소.”
“...........그렇다면 저도 여러분들을 믿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말이 그렇지, 정환은 결코 그들을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음 5분 간 그가 설명한 것은, 그가 지난 3년 간 계획하고 준비한 것의 80%, 아니, 90%에 불과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대부분 그렇지만, 남은 10%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윽고 정환의 이야기가 끝나자, 홍계성 상장을 비롯한 프룬제 일파의 입에서는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체브리코프 동지의 말이 맞았군. 어쩌면 동지야말로 정말 수령이 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군.”
“과찬이십니다.”
정환은 웃음을 흘리며 그렇게 화답했지만, 이번만큼은 백승철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방금 정환이 말한 계획의 여파는 아직도 그들을 휘어 감고 있었다.
“........그렇다면 홍 상장 동지, 백 소장 동지를 포함해 제가 여러분 프룬제 일파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많이 위험한 계획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있군. 설령 실패해도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 말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방법이 아니면 모든 난관들을 일거에 제거할 방법을 찾기 힘드오. 여러분들 생각은 어떻소?”
그것은 말이 질문이었지 사실상 권유였다.
제일 먼저 홍계성이 정환의 말에 동의하면서 다른 이들을 쭉 ㅤㅎㅜㄼ어보자, 다른 이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하나 둘 씩 고개를 끄덕였다.
“백 소장 동지, 자네는?”
“.......저도 찬동합네다.”
마지막까지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찬성을 표하지 않은 백승철도, 홍계성의 재촉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의견이 모아지자, 정환은 짐짓 미소를 지으며 건배를 제의했다.
“하하하.... 그럼 이제 정말로 상장님과 제가 한 배에 탄 거로군요. 오늘처럼 기쁜 날에 건배가 빠질 수 있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그럼 건배하지. 공화국의 앞날을 위하여!”
잔에 술이 부어지고, 건배사가 외쳐지자 하늘 높이 들어올려진 잔들에서 떨어진 위스키 방울이 집무실 바닥을 뒤덮고 있는 터키산 양탄자에 떨어졌다.
하지만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정환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비웃었다.
그들은 아직 가장 중요한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그 날 밤, 정환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비록 일본에서 돌아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동안 있었던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어머니’ 김명애에게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머니, 불초 소자 정환이 절 올립니다. 그동안 건강히 잘 지내셨습니까.”
“어이구, 어서 오너라, 참말로 고생 많았다. 이번에 당에서 중책을 맡게 되었다며?”
평양 시내에 위치한 예의 아빠트(아파트)에서 변함없이 살고 있던 김명애는 정환이 마치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에서 돌아온 양 그를 꼭 끌어안으며 다독였다.
정환도 오래 보지 못하다가 다시 보게 된 그녀의 얼굴에 왠지 모를 감흥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감싸 안았다.
아마 그것은 3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눈에 띄게 노쇠한 그녀의 얼굴과 흰머리가 자라난 머리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한 때 김일성의 마음을 뒤흔들었을 정도로 아름다웠을 김명애의 미모는 외로움 때문에서인지 아니면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부 장군님과 수령님의 배려 덕입니다.”
“그래,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구나. 이 오마니는 정환이 네가 큰 일을 해낼 줄 알았다. 진작에, 진작에 알고 있었어. 내 자랑스러운 아들....”
몇 번이나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김명애에게 정환은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의 체온을 체감하며 속으로 뭐라 말 못할 감정을 느꼈다.
비록 그녀의 친아들, ‘진짜’ 김정환이라는 사람은 그도 모르는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리고 아마 그것을 그녀에게 털어놓는 일은 평생 힘들 테지만, 이 차가운 도시 평양에서 정환의 귀향과 영전을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은 그녀 정도밖에 없을 거라는 감상에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지기에는 너무 위험한 시기였다.
“어서 자리에 앉거라, 밥은 먹었니?”
“네, 어머니, 하지만 그 전에 묻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뭐이니?”
“3년 전에, 김일성 수령님에 대해 해주셨던 이야기에요. 혹시 그걸 좀 더 상세히 들을 수 있을까요?”
그날 밤, 정환은 밤 늦게까지 어머니와 못 다한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