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9화 (29/350)

7장. 류경 호텔 (1)

7장. 류경 호텔 (1)

“기래? 정환이 고 놈이 이번 회담 성사에 기여를 해? 고 아새끼가 무슨 재주로?”

“면바로는(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장군님이 주신 외환을 종잣돈 삼아 외화를 상당히 벌어들인 것 같습네다. 장군님도 아시겠지만 요즈음 쪽바리들 위세가 대단하지 않습니까.”

“....고놈, 어쩐지 예전부터 골이 잘 돌아간다 해서.”

김정일은 자신의 앞에서 조심스럽게 보고하는 측근, 장성택의 말을 듣고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마사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공화국 모처에 위치한 초대소, 혹은 소위 ‘특각’이라고 불리는 김정일, 김일성 전용의 별장이었으며 김정일과 김일성은 휴양 차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는 했다.

이제까지 김정일은 장성택을 앞에 세워두고 자신은 누운 채 마사지를 받으며 그의 보고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공화국에서 신화 속의 인물과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는 김일성 주석을 제외하면, 김정일 다음 가는 권력자라고 할 수 있는 청년사업부 부부장 장성택을 앞에 두고 실로 무례하기 그지없는 태도였지만, 그게 바로 김정일이었다.

오히려 장성택 쪽이 혹시라도 자신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듯 했다.

“가보라.”

“받들겠습니다, 장군님.”

그가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내젓자, 이제까지 돌아누운 김정일에게 마사지를 해주던 미모의 젊은 여성 마사지사는 즉시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하지만 김정일이나 장성택이나 그녀의 존재는 신경 쓰지도 않는 듯 했다.

그들에게는 지금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기래, 기럼 외화를 써서 이번 회담을 유치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말이지?”

“그렇습네다. 그리고 제게도 이번 기회에 공을 세워 평양으로 돌아가 장군님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고 싶다고 청을 올렸습네다. 기것도 자리 욕심 같은 건 없으니 오로지 충심을 증명할 수 있게 미관말직 하나만 달라고 했습네다.”

“충심을 증명하고 싶다라.... 말해보라, 장 부부장. 그 외환의 액수가 대략 얼마나 되는 거 같나?”

“고저.... 그것이.....”

이제까지 막힘없이 대답을 하던 장성택의 얼굴에 처음으로 약간의 망설임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판단한 정환의 재산 규모를 지나치게 크게 말했다가는 이번 북일 비밀 접촉 성사의 공을 전부 빼앗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작게 말했다가는 김정일을 속이고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무리 당 내 2인자니 김정일의 매부니 해도, 그를 속인다는 것은 죽음과 직결되는 행위였다.

결국 고민하던 장성택은 그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액수를 불렀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미화로 1억불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기래? 정환이 고 놈 거 재주도 좋구만, 아바이께서 말년에 골이 기똥찬 자식을 두셨구나야.”

장성택의 말을 들은 김정일의 실눈이 빛나면서 처음으로 그도 약간이나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1억 달러라는 돈은 북한의 절대자인 그로서도 쉽게 생각하기 힘든 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정환에 대한 그의 경계심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 북조선의 지도자라고는 하지만 김정일은 그 누구보다도 금전의 위력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1억 달러 정도면 아직도 그의 앞에서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장령들, 당 간부들의 충성심을 다는 아니더라도 상당수는 살 수 있는 액수였다.

“.....골이 너무 잘 돌아가는 것도 때로는 제 명에 뒤지지 못할 이유가 되는 법이지. 기렇지 않나, 장 부부장?”

“두, 두말하면 잔소리입네다. 장군님 말씀이 백 번 지당합니다만, 한 번만 다시 생각하여 주십시오.”

“..........?”

김정일의 말에 담긴 냉기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장성택이었지만, 그런 그가 머리를 조아리며 재고를 요청하자 김정일은 잠시 묻는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다른 간부 같았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그나마 장성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지, 지금 장군님도 아시다시피 류경 호텔 공사가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고 있습네다. 무엇보다 쓸 만한 자재가 부족해서 공사기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는데, 정환 동무가 이 부분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확언을 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더 숙고를 해주시길 간청 드립니다!”

“........기래? 류경 호텔?”

“그렇습니다! 정환 동무는 저에게 평양의 주석님 생신에 맞춰 개관하기로 한 류경 호텔 사업이 늦어지는 게 안타깝다고, 자신을 류경 호텔 사업에 참여하게 해주신다면 말씀 올린 1억 불을 전부 일본에서 공사 자재 수입하는 데 쾌척하겠다고 약조를 했습니다. 만약 일본으로부터 자재를 수입할 수만 있다면, 류경호텔 공사에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니 부디 한 번만 기회를 주시길 바랍네다, 장군님!”

“.............!!!!”

장성택의 읍소에 김정일은 드물게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현재 평양에 지어지고 있는 (완공이 된다면) 사상 최고층 호텔, 류경 호텔의 완공이 기한 안에 끝날 수 없다는 건 이미 기정사실이었다.

류경 호텔.

84년 김정일 자신이 남조선의 63빌딩을 보고 체제 우월성 선전 차원에서 건설지시를 내린 이 건물은 평양시 보통강구역 류경동에 위치해 있었다.

당초 계획은 지상 105층, 지하 3층, 무려 330m의 높이를 자랑하는 이 현대판 피라미드는 작년 8월에 착공했지만 공사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벌써부터 수많은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안전 수칙과 설비를 전혀 신경 안 쓴 까닭에 공사 중 수많은 군인(이라고 쓰고 인부라고 읽는다)과 민간인의 희생이 난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돈이었다.

“하기사 지금 꼬라지를 보면야 하늘이 뒤집어져도 원래 일정대로 아바디 생신에 맞춰 개관할 수 없기는 하디.”

“그, 그렇습네다. 정환 동무의 일본에서의 사업 수완과 자금을 생각해보면, 정환 동무에게 장군님을 향한 충심을 증명할 기회를 한 번쯤은 주시는 것이....”

“충심이라...”

그 말을 입 속에서 굴려보며 뭔가를 고민하던 김정일의 눈이 야수의 그것처럼 번쩍 빛났다.

뭔가 좋은 생각이 난 것 같았다.

“이 세상에서 절대 믿으면 안 되는 거이 다리 둘 달리고 머리 검은 짐승이라고 우리 아바디가 그러지 않간? 충심을 증명하는 방법은 역시 하나디. 그거이 뭔지 아나, 장 부부장?”

“......모, 모르겠습니다.”

“자기 심장을 꺼내서 바쳐야 하는 기야. 이 김정일이의 환심을 사고 싶으면, 즈이(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심장을 끄집어내서 팔딱거리는 심장을 자기 두 손에 올려들고 와야 하는 기지. 정환이 고 아새끼가 일본에서 번 돈이 다해서 총 1억불 이라고 했디?”

장성택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김정일은 음흉한 미소를 머금으며 결론을 내렸다.

“기럼 그걸 은쟁반에 받쳐 들고 와야디. 따지고 보면 그게 다 이 공화국의 재산, 조선 중앙은행에서 들고 나간 종잣돈으로 이룩한 거이니, 고게 당연한 기지. 아니야?”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정환이 그 놈이 그러지 않는다면, 그 아새끼는 분명히 역심(逆心)을 속에 품고 있는 기야. 한 마디로, 고 1억불을 고대로 이 김정일이에게 갖다주지 않으면야, 나는 정환이 고놈을 평생 믿을 수 없다 이 말이야. 알갔디?”

“그, 그렇습니다, 장군님. 그럼 정환 동지에게 곧 전보를 보내서....”

“아니, 아니야. 장 부부장은 내 말을 아직도 잘못 이해했구만.”

“..............?”

장성택이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김정일은 곧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자기 손으로, 가져와야 하는 거이야. 이게 중요한 거디. 내가 다그쳐서 억지로 갖다 바치면야 안 가져올 놈이 있간? 온갖 죽을상을 하면서도 갖다 바치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도 뒤에서는 언제고 내 뒷빡을 후려갈길 셈을 하는 게 사람이야. 고거이 믿을 수 없지. 그렇지 않나, 장 부부장?”

“장군님, 그 말씀은.....”

“말하지 말라우. 정환이 그놈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땀 흘려 일군 전 재산을 제 발로 갖다 바칠 수 있을지 한 번 시험해 봐야디. 이놈이 충심으로 이 김정일이와 공화국에 충성하려는 지, 그것도 아니면 뒤에서 무슨 수작질을 하려는 속셈인지 한 번 알아 보갔어.”

“아.......예! 참으로 훌륭한 계책입니다, 장군님!”

‘악독한 놈!’

장성택은 속으로는 온갖 욕을 퍼부어대면서도 자신이 생각해낸 좋은 수에 만족스럽게 웃는 김정일의 눈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생각해보니 김정일은 처음부터 이럴 속셈이었다고 장성택은 이제 와서야 눈치 챘다.

처음부터 김정일은 정환의 재산을 어떻게 해서든 빼앗을 속셈이었다.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될 만한 존재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만한 힘도 남기지 않는 다는게 김정일이라는 인간의 방식이었으니까.

(물론 1억 불에 대한 욕심도 큰 몫을 했겠지만.)

문제는, 그런 짓을 대놓고 했다가는 김일성의 적통(嫡統)이자 다음 대 공화국 수령인 자신의 체면이 크게 상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이복동생의 돈이 탐나 억지로 뺏은 것이니 남이 보기에 좋을 리가 없었다.

이미 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제외하면 이 공화국 내에서 무엇이든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김정일이 왜 체면을 신경 쓰냐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장성택은 오랜 경험으로 권력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체면이란 형식이다.

그리고 형식이란 권위이며 권위는 곧 권력의 다른 말이다.

그러므로 체면이 손상되는 것은 김정일 자신의 권력에 해가 가는 일인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렇기에 김정일은 정환이라는 곁가지의 재산을 ‘빼앗는’ 형식이 아니라 ‘자기 발로 공화국에 헌납한’ 형식을 취하고 싶은 것이다.

“지시하신대로 정환 동무의 동정을 지켜보겠습니다.”

“기래, 그만 나가보라우, 그리고 나가면서 김영룡 보위부장 좀 들어오라고 하라우.”

보위부장이란 방첩, 사상경찰 활동을 통해 김 씨 일가의 권력을 보위하고 사수하는, 말 그대로 친위대나 다름없는 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장을 말한다.

현재 보위부장인 김영룡은 얼마 전 퇴직한 이진수 보위부장의 자리를 정식으로 인계받은 게 아니라 직무대리라는 어정쩡한 형태라, 그만큼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김정일에 대해 더더욱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자였다.

방을 나가는 장성택과 교대하듯 들어온 김영룡은 김정일을 보자마자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방금 장 부부장과의 이야기, 전부 들었디?”

“넷! 장군님!”

“김 부장 휘하 해외반탐국에 명해서 정환이 그놈이 해외에 도피시켜 놓은 돈푼이 있지 않나 샅샅이 뒤지라. 스위스부터 시작해서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모나코, 싸그리 다. 39호실과 협력해서 철저히 수색하라우.”

“알갔습니다, 장군님!”

39호실이란 조선노동당에서 각종 사업을 통해 조성한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부서를 말한다.

불법적인 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도가 튼 조직인 만큼 39호실의 조사에서도 안 걸린다면 정말로 정환의 전향을 믿어도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김정일은 다시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이 용건이 끝났으니 이제 물러가라는 뜻임과 동시에, 마사지사를 다시 들이라는 신호임을 빠르게 알아들은 김영룡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방 밖으로 나갔다.

곧 젊은 미모의 마사지사, 아니, ‘5과 조원’들이 다시 들어오자, 김정일은 다시 돌아누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노동당 5과, 공화국 밖에서는 ‘기쁨조’라는 속칭으로 더 유명한 곳에 속한 이 여성들은 고르고 고른 인재들답게 언제나처럼 김정일의 의중을 바로 짐작하고 자신들의 옷을 벗어 바닥에 떨어트렸다.

‘흐흐.... 터럭만한 의심이라도 있다면 그 즉시 대갈통을 날려 버리갔어, 이게 꿩 먹고 알 먹기 아니간?’

정환이 1억 불을 제 손으로 들고 찾아온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다.

공화국 내에 조직이나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댈 때라고는 외환뿐인 그가 돈마저 잃는다면 정환은 그야말로 날개 잃은 기러기가 되니까.

만약 1억 불을 들고 오지 않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돈을 숨겨놨다고 해도 어차피 결과는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회수하고 감히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죄로 그를 형장의 이슬로 없애버리면 그만이다.

즉 어떻게 해도 그가 손해를 볼 일은 없다는 확신에 김정일은 온몸을 더듬는 5과 조원들의 손길을 느끼며 좀처럼 보기 힘든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렸다.

그러나 이런 김정일조차도 가장 일어날 법 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시나리오가 불과 이틀 후에 일어났다.

고작 이틀 전 그가 조사를 지시했던 대상, 그의 이복동생 김정환이 미화 1억 3천만 불이 담긴 스위스 은행 계좌를 들고 그대로 공화국으로 귀국해 김정일에게 전재산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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