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16화 (16/350)

4장. 흑막 (4)

4장. 흑막 (4)

“곧 있을 NTT의 기업공개에서 얼마나 챙기실 생각이십니까?”

“........!!!........!!!”

등 뒤에서 들려온 정환의 말에 막 문지방을 넘어가던 나카오의 발걸음이 그대로 굳어졌다.

단지 한 마디였을 뿐인데도, 방금 전까지 여유작작했던 나카오의 몸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모든 동작을 멈추었다.

그 모습을 즐기듯이 바라보다가 찻잔을 기울여 목을 축인 정환은 문간에 서있는 그의 등에 대고 한 마디를 더 던졌다.

“상장이 내년, 그러니까 1987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한 2월 쯤 되겠죠? 왜 제 합작 제안을 거절하시면서 야마노테 선 공사에 그렇게 목을 매시는지 이해가 가는군요. 주식 상장 전까지 충분히 자금을 확보해야 할 테니까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자네가 그걸 어떻게.......!!!!”

재차 가해진 후속타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몸을 돌린 나카오의 얼굴은 숨길 수 없는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총리 관저의 가장 깊은 곳, 가스미가세키의 몇몇 사무실에서 은밀한 속삭임으로나 전해지던 정보를 저 애송이가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흠, 일단 자리에 앉으시고 제 제안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여기까지 말씀드려도 장관님이 제가 거래상대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

“저를 바로 공화국 쪽에 알리지 않은 점은 감사합니다. 그러니 저도 장관님께 한 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교섭마저 장관님이 무시하신다면 즉시 제가 아는 모든 사법 당국, 검찰을 포함해서 언론, 총리 관저, 야당에까지 전부 일본 최대 통신 기업 민영화에 사상 최대의 부정부패가 연관되어있다고 동네방네 떠벌릴 겁니다. 그걸 감수하실 자신이 있으십니까?”

“.....................”

정환의 말에 나카오는 입술을 일그러트리면서 얼굴색을 여러 차례 바꿨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정환은 얄밉게 히죽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지는 마십시오, 장관님. 조선 사람들은 남이나 북이나 허세도 잘 부리지만, 질투심도 심해서 나 밟고 넘어가는 놈이 잘 되는 건 죽어도 못 보는 성격이거든요. 혹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조선 속담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 모르겠군요.”

후룩하고 다시 한 번 차를 들이키는 정환을 나카오는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평정을 회복했다.

그리고 그는 몸을 돌려 다시 다실로 들어와 정환의 맞은편에 착석하고는 중얼거렸다.

“......내가 잘못 생각했군. 자네의 제안은 들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네.”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정환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웃었다.

NTT(Nippon Telegraph and Telephone Corporation), 다른 말로는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 (日本電信電話株式会社)라고도 한다.

원래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직후 전기통신성의 주도 아래 창설되어 초기에는 ‘일본전신전화공사’라는 이름이었고 주 사업은 전신망 같은 통신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주 사업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일본의 경제력이 급상승하고 그에 따라 전신전화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당연히 전화공사의 업무범위도 크게 늘어나 나중에는 일본 내에서 ‘통신’과 관련된 사업이라는 사업에는 어떤 식으로든 한 다리 걸치는 거대 공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밥그릇이 크면 파리들도 많이 꼬이는 법이어서, 곧 부정부패 문제가 불거지자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는 안 그래도 심각한 공기업 특유의 비효율과 관료주의를 혁신하기 위해 통신 산업의 민영화를 결정한다.

그리고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던 철도, 담배 산업과 함께 1985년 특별법 제정으로 인해 일본 최대, 세계에서도 수위권인 통신기업이자 후일 NTT 그룹의 지주회사가 될 NTT,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가 설립되게 되는 것이다.

후일 무선통신이 발달하면서 유선통신이 주력인 NTT의 자회사로 NTT 도코모가 떨어져 나오게 되지만, 지금 1986년 시점에서 그건 미래의 이야기다.

“회사 설립이 작년, 그러니까 1985년 4월이었는데 아마 그 때부터 노려오신 거 아닙니까? 전후 최대 호황기라는 현 경제 여건상 상장만 되면 NTT 주가는 미친 듯이 뛰어오를 테고.... 이시바시 부동산 회사는 야마노테선 부지 거래로 남아도는 자금을 투자할 곳이 필요할 테니 시기상 딱 좋군요. 사정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군가가 내부 정보를 알려줬을 거라 의심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안 그런가요?”

“.......어떻게.... 알았는지... 가르쳐 줄 수 있겠나?”

“기업비밀입니다.”

애써 당혹함을 참으며 그에게 묻는 나카노를 약 올리며 정환은 그렇게 딱 자르듯 이야기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정환도 나카노가 1987년 2월에 있을 NTT 기업공개에서 내부자거래로 이득을 챙길 거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아는 건 단지 책과 자료에서 본 세계 굴지의 통신회사, NTT의 기원과 출범에 관한 역사 정도니까.

한 마디로 넘겨짚은 것이지만, 정환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면 그건 넘겨짚은 게 아니라 추측과 추론으로 불러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NTT의 전신인 체신성, 운수통신성은 원래부터 나카오의 담당 부처인 건설성과 연계가 강할 수밖에 없다.

통신 인프라를 확충한다는 게 곧 전신주를 더 세우는 것과 같은 의미인 1980년대에, 국토전반에 전신주를 건설하고 관리하는 건 건설성의 관할업무이기도 하니까.

비록 부처가 다르다고는 해도 21세기에 들어 문제의 운수통신성은 건설성과 부처 간 통합으로 국토교통성으로 거듭날 정도로 업무가 겹치기에, 건설상에다 총리직속인 내각조사실의 보고서까지 받아볼 정도로 발이 넓은 나카오라면 NTT의 상장 시기를 미리 알고 이득을 노리고 있을 거라고 추론한 것이다.

‘간도 크군. 혼자 먹으면 체한다는 속담은 일본에 없나보지?’

정환은 아직도 의뭉스런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는 나카오를 응시하며 그렇게 생각했다.

1987년 2월 있을 상장에서 NTT는 주당 150만 엔에서 시작해서 4월에는 사상 최고가인 318만 엔 까지 오르며 이에 놀란 대장성이 다시 몇 회에 걸쳐 주식을 풀 정도로 엄청난 상한가를 치게 된다.

물론 지금의 버블이 끝나면 대부분의 부동산이나 주식처럼 NTT 역시 일시적으로는 거품이 꺼져 그 가치가 크게 떨어지게 되지만.........

누가 공기업 아니랄까봐 국가의 지원과 직후 닥친 IT 버블로 인해 통신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21세기에도 여전히 일본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기업 중 하나가 바로 NTT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금덩이나 다름없는 주식이 걸린 이 비즈니스를 나카오가 그냥 넘길 리 없다는 게 정환이 판단한 근거였다.

“내부자거래 같은 금융범죄는 액수가 클수록 중형이죠. 설령 일본 검찰 특수부가 갑자기 미치거나 아니면 어떤 외압을 받아서 야마노테 건은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이 건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을 겁니다. 국가자산에 직접적으로 손을 댄 거니 말입니다.”

“............조건을 말해보게.”

‘좋았어.’

정환은 나카오의 마음속 저울에서 추가 반대쪽으로 기울어졌다는 걸 눈치 채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런 티를 내지 않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그를 구슬렸지만.

“조건은 아까 전과 변한 게 없습니다. 야마노테선 부지를 반 양보해주시면, 저희 타카야마 부동산에서 좋은 가격으로 사드리겠습니다. 한 평당....삼천만 엔 정도로.”

“........그게 전부인가?”

“조금만 더 들어주십시오. 저는 차후로도 장관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 말했던 대로 저희 타카야마 부동산의 지분 절반을 장관님께, 그러니까 이시바시 부동산에 넘겨드리겠습니다. 대신.....”

“대신?”

“앞으로 있을 장관님의 ‘사업’에 저희도 항상 같이 끼워주시죠. 물론 NTT 건도 포함해서.”

“......................”

“서로 부담은 줄이고 수익은 나누자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아까 제가 했던 말을 기억해주시죠.”

“....무슨 말 말인가?”

“제가 김정일의 경쟁자라는 아까 전 말씀을 뜻하는 겁니다. 돈을 버는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쌀 때 사고 비쌀 때 파는 거죠. 그럼 그게 사람이나 인맥, 커넥션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설마....!!”

“저는 장관님에게 저라는 주식을 쌀 때 미리 사놓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투자해도 지금 당장 손해날 건 없고, 나중에 혹시라도 오른다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쯤 말하면 알아들었겠지.’

내각정보조사실에게까지 발을 뻗어놓은 나카오가 인맥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원래 인맥에는 양지의 인맥, 음지의 인맥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는 법이다.

예를 들어 북조선의 차기 지도자라던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국의 장관직까지 오른 사람이 그 가치를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정환의 뜻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나카오는 이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이 정도면 나도 그리 손해나지는 않는 거 같군. 자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하... 감사합니다. 역시 실무자들이 아닌 상관 끼리 만나서 합의를 보는 게 이야기가 빠르군요. 과연 이 일본의 미래를 이끌어 가실 대(大) 정치가다우십니다.”

합의가 성사된 기쁨에 정환은 마음에도 없는 아부를 떨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카오는 크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대 정치가라. 허허... 나도 이런 말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곧게 들을 수 없는 칭찬이군. 왜냐하면 요즘 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조금씩 의문이 들고 있거든. 유사 이래 없다는 대호황을 맞이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으니 참 신기한 일이야. 그렇지 않나?”

“...............??”

“이 나라 일본은 단 한 번도 민중이 자기 손으로 자기 권리를 쟁취해 본 적이 없네. 현재는 일단 민주주의 국가라는 외피를 취하고 있지만, 그건 밑으로부터 얻어진 민주주의가 아니야. 패전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이 이식한 것이지. 그리고 우리 일본인들은 마치 온순한 양처럼 그걸 받아들였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것을 진정으로 얻으려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는지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고 말이야.”

“.......그런 고민이 굳이 필요하겠습니까?”

정환은 뜬금없이 한탄을 늘어놓는 나카오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그렇게 반문했다.

북조선 사람들의 9할 9푼은 꿈에서도 상상 못할 엄청난 부를 현재진행형으로 누리고 있는 나라가 이게 무슨 배부른 소리란 말인가?

“어차피 북조선이나 일본이나 대부분의 민중은 자국의 정치체제에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이 관심 있는 건 하루하루의 빵과 술, 스포츠 경기 정도 아닙니까. 배부르게 먹여준다면 독재건 민주주의건 중요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일본은 매우 성공한 나라입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현재 일본의 정치체제는 실질적으로 순수한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닌 어정쩡한 체제라는 게 문제일세. 민중은 물론이고 정치가들도 눈앞의 부에 눈이 멀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을 안 하고 있으니까. 아무도 그런 고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거지. 일본에는 누구도 민주주의를 바라지 않네.”

“................”

“흔히들 일본 정치를 두고 흑막(黑幕) 정치라는 말들을 하지. 오랫동안 그 정치판에 몸담아온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평가가 맞네. 일본은 사실상 민주주의라기보다는 과두정이지. 민의가 아닌 계파 간 합의와 타협으로 정권이 수립되는.... 국민들은 메이지 이전부터 내려온 귀족들, 윗사람들이 뭘 하든 별로 관심도 없고 말이야.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만.”

“나름 합리적인 정치체제로군요. 요즘 아랫동네 남조선에서 헌법수호니 직선제니 뭐니 하면서 바람 잘 날 없는 걸 보고 있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한 정환을 슬쩍 응시하면서 나카오는 오늘 두 번째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다실에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달리 그의 눈주름이 유독 깊어 보인다고 정환은 생각했다.

“뭐, 그냥 늙은이의 넋두리라고 생각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나도 지시를 받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답답해서 해 본 소리네. 나도 한 때는 젊었지. 지금과는 많이 달랐네. 아까의 자네처럼 나에게는 상관 같은 건 없다고 호언할 수 있는 패기가 부럽군. 그래도 조언을 하나 해주자면, 속마음을 숨기는 법을 좀 더 배우게.”

‘..........지시를 받는다고?’

“정치가는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에게든 자기 속마음을 절대로 100% 드러내서는 안 되는 법이야. 하지만 아까 자네가 자네 속마음을 잠시나마 드러내보였으니, 나도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서 내 속마음을 조금 보여주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뭔가가 더 있다는 걸 감지한 정환이 막 방문 쪽으로 나가는 나카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아까 자네는 이번 일에서 상관 같은 건 없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있네. 아까 내가 자네의 교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건, 만약 이번 일이 밖으로 새나가면 그 여파는 내 선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일세. 나는 흑막이 아닐세. 내 뒤에 진정한 흑막 한 명이 더 있지. 나는 그 사람을 대리해서 이 자리에 나온 것일 뿐일세. 어떤가? 일본 정치는 정말로 흑막 정치 아닌가?”

“.............!!!!”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나카오의 말에 정환은 입술을 살짝 실룩였다.

건설성 장관인 나카오의 흑막이 될 만한 사람, 그리고 나카오가 누구의 심복인지를 감안한다면......

‘하하... 그런 거였나? 여기도 북조선 뺨치는군.’

“연락은 비서를 통해서 또 하도록 하지. 차 잘 마셨네. 그럼 다음에 또 보세.”

그 말만을 남기고 사라진 나카오의 뒷모습을 정환은 의미모를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야마노테 선의 노선 연장 공사가 발표되면서 노선으로 예정된 부지의 지가는 한 평당 5천만 엔까지 치솟아 올랐고, 해당 부지의 8할을 각각 나누어 보유한 두 개의 회사들은 부지를 팔아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그중 한 회사는 그 전부터 업계에 정평이 난 이시바시 부동산이었지만, 나머지 한 회사,  타카야마 부동산 이라는 그 전까지 듣도 보도 못한 부동산 회사의 이름에 사정을 모르는 세인들은 그저 고개만 갸우뚱 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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