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버블 (1)
3장. 버블 (1)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무성 아시아국 일본과의 과장 겸 통일전선부 해외담당과 학습조 조장 김용건은 요즘 들어 고민이 많았다.
얼핏 그의 고민은 공감을 사기 어려운 게, 그는 북조선 내에서 인정받는 엘리트 계층 중 하나인 외교관이었고 일찍 그 능력을 인정받아 주요 부서인 아시아국에서도 40대 초반의 나이에 요직을 차지한, 소위 ‘잘 나가는 인생’이었던 것이다.
김용건 개인도 타고난 똑똑한 머리와 좋은 출신배경으로 출세를 거듭, 일찍이 평양에 거주가 허락된 핵심계층 집안의 처녀와 결혼해 자식까지 두고 있었기에 남이 보기에는 부러울 것이 없는 인생이었지만, 그럼에도 그의 고민은 심각했다.
그 고민이란 넓게 보자면 조국의 미래였고, 좁게 보자면 김용건 자신의 미래이기도 했다.
‘후우,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내심을 단 한사람에게라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이대로 간다면 우리 공화국의 미래는 어둡기 그지없을 것이다.’
김용건은 줄담배를 피우며 자신의 근무지, 사실상 주일본 북한 대표부 역할을 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在日本朝鮮人総聯合会), 약칭 조총련의 창문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에 잠겼다.
도쿄의 심장부인 치요다구(千代田区)에 위치한 조총련의 위치상 그가 서있는 창문에서는 도쿄 역을 비롯해 도쿄 중심부에 위치한 관청들, 상사와 기업체들의 본사가 그대로 보였다.
그리고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일본 경제를 상징하듯 하루가 다르게 그 찬란함을 더해가는 빌딩들, 도로들, 전철역들을 보자 김용건의 고민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이런 발전을 과연 현재의 우리 공화국이 따라가기라도, 아니, 흉내라도 낼 수 있을까? 평양에 있는 당의 일꾼 중 과연 몇이나 이런 문제인식을 하고 있을까. 공산주의로는 더는 안 된다. 이대로는 조국의 경제를 파탄시키고 동포를 굶기게만 할 뿐이다.’
김용건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도 처음 김대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성하던 젊은 시절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조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자부심은 비할 데가 없었다.
김일성 주석을 신처럼 믿고 따랐고 공화국의 체제에 대한 믿음은 철벽 같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외무성의 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히 일반적인 북조선의 주민들이 볼 수 없는 게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시아국 일본과의 과장이 되어 조총련의 운영과 재일조선인들의 관리를 책임지게 되는 자리에 오른 지금, 김용건의 가슴속에는 자부심이 아니라 위기감만이 가득했다.
‘내일 평양에서 주석님의 숨겨진 아들이 도착한다. 이름이 김정환이라고 했지? 어떤 동무인지는 몰라도 스물을 갓 넘긴 새파란 애송이라고 들었는데, 철 모르는 응석받이만 아니면 좋겠군.’
안 그래도 심란한데 골칫거리가 하나 더 는다는 생각에 김용건은 씁쓸하게 웃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체제에 대한 사상교육, 북조선은 김일성 주석님의 영도력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부유한 나라이며 남조선에는 거지만 들끓는다는 세뇌는 국외에 나가면서부터 조금씩 효력을 잃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화국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건 바로 이곳, 조선민족을 36년 간 박해하고 수탈했다는 ‘간악한 섬 쪽바리들이 떼로 몰려 사는 나라’, 일본에 도착해서부터였다.
처음에게는 이 쪽바리들이 한민족에게서 수탈한 부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는 말을 들었기에 경계감과 적대심을 가지고 일본 열도에 도착한 김용건이었으나, 정작 그가 일본에서 본 건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발전상이었다.
- 이게 전부 우리 민족을 수탈해서 이뤄낸 거란 말인가? 공화국 보통학교에서 이조(李組 : 조선왕조)는 가난하기 그지없었다고 배웠는데, 그런 가난한 이조를 수탈해서 어떻게 이런 발전을 일궜단 말인가?
1980년대 일본 기업들은 전자기업들을 필두로 세계를 석권하고 있었으며 세계 어딜 가나 ‘재팬 애스 넘버원(Japan as No.1)'이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중 일본 기업들이 절반을 넘게 차지했고 서구 국가들이 겪던 실업과 인플레이션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항상 타도를 외치지만 김용건을 비롯한 외교 일꾼 들은 내심 절대로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자본주의 부르조아들의 총본산, 미제에서도 일본의 성장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연일 들려왔다.
반면, 자신의 자랑스러워야할 조국인 공화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부정적인 것들 일색이었다.
오늘은 어느 공업소에서 석유가 동났다느니 유럽 모국에서 외채를 빌려왔다느니 하는 이야기만 들려왔고 ‘마르크스 동지의 장손 국가’ 라고 배웠던 소련도 슬슬 휘청이는 게 그의 눈에 보였다.
아니, 이 모든 문제를 집어치우고서라도, 북한 밖 세계를 전혀 모르는 일반 주민이라면 모를까 그들 외교일꾼에게는 이미 공화국이 뒤처지고 있다는 건 너무나 명백하게 보였다.
죽기보다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일반인민들의 생활수준에서부터 국가적인 생산능력에 이르기까지, 김용건은 적어도 경제에 한해서만큼은 이 ‘열등한 섬원숭이들의 국가’ 일본이 공화국에 비해 한참 위에 있다는 게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러한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는) 격차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공화국 본토에는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지금 김용건이 안고 있는 고민의 근본 원인이었다.
“과장 동지, 내일 내방하시는 정환 동지의 선물로는 뭘 준비해 놓을까요?”
“일제 카세트 테잎 플레이어... 워크맨을 하나 준비해놔. 젊은 동지라니 껌벅 죽겠지.”
옆에서 묻는 비서의 말에 김용건은 요즘 북에서도 (물론 암암리에) 최고의 인기상품인 전자제품 구매를 지시했다.
전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도 없는 데가 없는 이 제품 역시 ‘민족의 백년 원수’ 쪽바리 들의 작품이었다.
남조선은 이와 비슷한 물건을 베껴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라도 있었지만, 공화국은 수입해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 이런 전자기기 뿐 만 아니라, 현대국가의 생명줄이라 할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조차 서독이나 쏘련, 로므니아(루마니아)에서 수입해 오는 것들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었다.
한 때는 이런 사정을 언급하며 당 중앙에 자신이 느끼고 있는 바를 슬쩍 흘린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동지는 해외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타락한 자본주의 부르조아 물이 들었군, 호상비판(상호비판) 시간에 보오’하는 차가운 대응만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정작 수령님과 장군님도 공화국에서 만든 게 아니라 외제만 좋아하시지.’
외교일꾼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김 씨 일가의 사치품을 구해 평양으로 보내는 일을 생각하며 김용건은 쓰게 웃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김정일 장군님은 일본 초밥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해산물을 구해다 냉동포장해서 가져다 바친 적도 있었다.
‘부디 내일 이 총련에 오게 될 김정환 동지는 장군님처럼 취향이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하지만 외교 일꾼 자녀들이 부모를 따라 일본에 와서 공화국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던 온갖 재화를 보며 눈이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 그리고 문제의 김정환 동지가 조선중앙은행에서 막대한 외환을 가지고 온다는 걸 볼 때, 김용건의 앞날은 명백했다.
그 김정환 동지라는 애송이는 아마 외제 쇼핑을 하러 일본에 오는 것이리라.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수령님의 이쁨을 받는 아들이 공화국 내에서 뭔가 사고라도 쳐서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인 게 분명했다.
김정환 동지가 아예 권력에서 밀려난 곁가지라면 모를까, 아마도 당분간 김용건과 총련 직원들은 이 젊은이의 미쓰비시 백화점 쇼핑백이나 들고 다니는 신세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한가닥 기대를 걸어보자면, 김정환 동지는 김대에서 수재라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니, 만약 잘만 비위를 맞춰준다면 중앙당에 자신이 현실의 격차에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라도 전달해 줄지도 모른다.
“우리 애들은 나중에 어디서 키워야하나... 공화국에서 자라나면 고생할 거 같은데...”
혹시라도 보위국원 귀에라도 들어가면 바로 교화소로 보내질 수도 있는 생각이었지만, 김대 생각이 떠오르자 김용건은 자기도 모르게 멀리 있는 딸을 생각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현재 정환과 비슷한 연배인 그의 딸은 장차 미래의 공화국에서 자신의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살게 될 공화국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믿어 의심치 않았던 ‘지상락원’하고는 거리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게 김용건은 가슴이 아팠다.
내일 보게 될 김정환 동지는 단 한 번도 이런 고민을 해본 일이 없겠지, 백두혈통이니까.
김용건은 자신의 처지와 아들딸의 미래를 비관하며 속으로 그렇게 한탄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과 예상은 다음날 정환을 만나자마자 완전히 뒤집혔다.
“어서 오시라요, 김정환 동지, 이쪽은 우리 총련을 책임지고 있는 외교일꾼, 김용건 과장동지 입네다.”
“정환 동지, 미제의 괴뢰 일본 땅 최전선에 마련된 공화국의 전진기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기 정환 동지를 위해 마련된 선물이....”
“이거 일제 워크맨 아닌가?”
다음 날 정오에 총련에 도착한 김정환이란 사람은 역시나 20대를 갓 넘긴 새파란 젊은이였다.
옆에는 비서인지 첩실인지 모를 고운 녀성 호위사령부 군관을 한 명 달고 김용건의 사무실에 도착한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목소리는 별로 유쾌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요즘 최신 유행하는.........”
“흐음, 과장 동지는 방금 전 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미제의 괴뢰라고 호칭해놓고 그 미제 괴뢰의 물건은 잘도 쓰는 모양이군?”
‘뭐지?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초면부터 불만이 가득 담긴 정환의 비꼬는 목소리에 김용건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이 젊은이의 심기라도 건드렸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외교 일꾼의 좋은 점은 공화국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풍족한 외국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만, 나쁜 점은 아무래도 중앙의 권력 구도로부터 소식이 늦게 들어온다는 점이다.
‘혹시 너무 눅은(싼) 선물을 준비해서 뿔이 난 건가? 역시 중앙은행으로부터 외환 반출 허가를 받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이런 워크맨 따위에 마음이 움직일 리가...’
“시정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좀 더 좋은 것으로...”
“누가 지금 그런 걸 이야기했나? 과장 동지는 수령님의 은혜를 받아 공화국의 간부급 일꾼으로 당의 녹을 먹으면서 우리 민족을 36년 간 수탈한 간악한 일제 원숭이들의 물산을 구매한단 말이지. 이건 반당(反黨)행위지. 내 지금 당장 중앙에 보고를 올려서.....”
“자, 잠시만....”
도대체 말이 통하지 않고 화를 내는 이유도 짐작이 안 가는 김정환이라는 인간에게 당혹한 김용건은 순식간에 필사적이 되어 변명할 거리를 찾았다.
그동안 중앙에서 사람이 오면 항상 가장 먼저 찾던 것을 줬을 뿐인데, 이 격렬한 반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정환 동지, 공화국의 다른 해외 대사관에서도 현지에서 구매한 물산을 자주 씁니다. 이곳은 실질적으로 일본의 공화국 대사관 역할을 하는 만큼....”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게. 그리고 다른 대사관과 일본 총련이 같다고 생각하나?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우리 조선민족을 수십 년간 수탈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심장부야! 그런 곳에서는 더더욱 우리 공화국의 물산만을 고집해야지! 과장 동지 말대로 이곳이 공화국의 전진기지라면 전진기지의 사상무장 상태가 이 모양이란 말인가?”
‘이건 또 무슨 억지냐, 아니, 그보다, 아무리 해외에 나와보지 못했다고 해도 김대의 수재라는 자가 이토록 공화국 외의 형편에 장님이란 말인가?’
전혀 뜻밖의 상황에 김용건은 이제 당황함을 넘어 슬슬 분노까지 치솟아 오르기까지 했다.
평소라면 아무리 곁가지라도 감히 백두혈통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상상도 못했겠지만, 아직 그의 가슴속에는 어제 느꼈던 분함, 절망감, 그리고 답답함이 그대로 서려있었다.
차라리 그가 미리 예상했던 대로 외환을 펑펑 써가며 긴자 쇼핑 심부름이나 시켰다면 화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화국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것도 김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는 수령님의 혈육이 이토록 현실을 모른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하루가 다르게 벌어져가는 타국과의 격차라는 현실에 눈 감은 장님이 된 당과 수령의 모습이 지금 김정환이라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듯 했다.
마침내 현실을 모르는 당 중앙에 대한 분노와 조국에 느끼는 실망감에 가득 찬 김용건은 항상 두르고 있던 미소라는 위장막을 벗어버렸다.
그리고 결국은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정환 동지는 말씀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뭐라고?”
“김정일 장군님도 일제 물산을 사서 쓰시지 않습니까. 총련에서도 몇 번이나 장군님이 쓰실 일제 물산을 평양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럼 정환 동지의 말은 김정일 장군님도 반당 분자라는 말씀입니까?”
“.................!!!!!!”
김용건의 사무실에 급작스런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환의 옆에 앉아있던 유혜림이라는 여성 군관은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부릅떴고 김용건의 비서는 저승사자를 눈앞에서 본 사람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정환의 입이 다시 열리며 스산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김용건 과장 동지, 방금 뭐라고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