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S5 : 38화
쿠르르릉-!
김칠성이 원로위의 인도로 순식간에 이동한 곳 은 마계의 마신의 회당.
원형의 회당은 사방이 검붉은 구름의 폭풍이 둘러싸고 있었다.
김칠성의 대관식은 전례 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마음을 굳히신 겁니까?”
단상 위에 선 백회색 로브를 입은 원로위원의 물음.
칠성은 말없이 당연하다는 듯 회당의 가운데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고개를 마주 끄덕여 보인 원로의 지시에 따라 시작된 대관식.
12명의 원로가 주문을 외자 서서히 마계의 뿌리가 작성한 계약서가 허공에 투명한 판의 붉은색 글씨로 나타났다.
번뜩!
마나가 충만해진 칠성이 눈을 뜨자 주문 추적자로 인해 주홍빛 눈동자가 타올랐다.
콰르르르릉!
천지가 개벽하듯 한 소음과 함께 마신의 계약서에서 뻗어 나온 황금빛 사슬이 칠성의 심장을 파고든다.
“으아...아아아악!!”
칠성이 이내 가쁜 절규를 내뱉으며 고통에 몸을 비튼다.
취시시시식-!
황금빛 사슬에서 온 몸으로 뻗친 기운이 칠성의 온몸을 훑으며 칠성에게 남아있던 인간의 육체를 모조리 불살라 태워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타들어간 자리는 모두 마족에 어울리는 그것으로 채워진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칠성의 온 몸을 마신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온 몸을 두들겨 개조에 들어간다.
오랜 세월의 전투로 고통에 대한 상당한 내성이 쌓여있는 칠성이나,
온몸을 뒤바꾸어 버리는 불타는 마나의 격통에 여지없이 비명을 내지른다.
마치 대동맥과도 같은 마나의 통로가 확장 공사를 이룬 고속도로처럼 넓혀지고,
그 가운데를 검고 끈적끈적한 불타는 마신의 마나가 힘차게 흐른다.
취치치치치칙-!
칠성의 온 몸에 마신의 계약자이자, 마신의 상징인 마법진들이 문신처럼 새겨져간다.
그 모든 과정을 담담히 지켜보는 원로 위원들.
“헉...헉...크르르르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칠성.
어쩐지 짐승 같은 목젖을 긁는 소리를 낸다.
이어서 원로위들이 조심스럽게 소환의 방진을 펴자,
허공에서 은빛의 찬란한 왕관이 하나 나타난다.
마신의 관이다.
“우리 원로위원회는 선조들의 붉은 피와 세계수의 빛나는 뿌리에 대고 그대 김칠성을 마계의 수호신 이자 영원한 보호자. 군림하지 않는 신성이자 균형의 성배. 마계의 일곱 번째 마신으로 추앙한다.”
산타클로스 같은 수염을 가진 마계 원로 위원들의 대표가 칠성의 머리위에 관을 씌워준다.
파치치치칙-!
칠성의 머리위에 얹어진 마신의 관이 창연한 빛을 내 뿜으며 칠성의 정신과 동기화 된다.
슉슈슈슈슉-!
칠성의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마계의 전경이 펼쳐진다.
관을 쓰는 순간 모든 마계의 풍경이 머릿속에 오롯이 들어온다.
마치 안개 같은 구름 속을 뚫고 창연한 빛이 내리듯 마계에 대한 삼라만상이 칠성의 머릿속으로 그대로 내리 꽂혀 들어온다.
마신이 어떤 존재인지,
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하여, 지금 바르샤크 같은 족속에게 왜 원로위가 목숨을 걸고 마신의 자리를 주지 않았는지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이해되었다.
마신의 관을 받은 칠성이 벌떡 일어섰다.
칠성의 발치에서 부터 황금빛의 마나가 불타오르듯 허공으로 뻗어 올라간다.
스훕-!
마치 마계의 모든 것.
지나가는 바람에서부터 발에 체이는 돌덩이 하나까지도 칠성과 같이 호흡하는 듯 공명한다.
마계의 가장 위대한 지성을 가진 마족에서부터 방금 태어난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까지 칠성의 귓가에 미친다.
“마신이시여!”
“저희 열둘의 원로위는 제자로서 스승을 모실 것입니다.”
“마신이시여!”
분연히 일어난 칠성의 주위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예를 올리는 원로위.
원로위는 태초부터 마신의 제자들 이었다.
그로인해 새로운 마신은 자연스레 원로위원들의 스승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칠성.
“그래....”
너무나도 이상한 일 이지만, 이 모든 급작스러운 일 들이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예견 되어왔던,
당연히 했어야만 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길 정 가운데에 서 있음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 같던 원로위원들 조차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 저건.”
파치치치칙-!
마치 약속이라도 한 양,
칠성이 쓰고 있는 은빛의 관 가운데의 문양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일곱 개의 별을 상징하는 보석 장식들로 탈변했다.
사용자의 속성에 따라 변화하는 영혼병기 중 하나인 마신의 관.
그 관이 칠성에 반응해 이뤄낸 변형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왕관의 가운데에서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일곱 개의 별.
계약서의 황금의 고리로 인해 불타버린 칠성의 웃옷을 대신해 여성 마족들로 구성된 마신의 신관들이 칠성의 몸에 마신의 검은 도포를 걸쳐준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지구로 돌아가 마신의 심장을 훔쳐간 카르샤크를 벌하겠다.”
칠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고개를 끄덕인 원로.
“기억 하십시오. 카르샤크를 징벌하신 뒤 48 시간이 지나면 마계로 돌아오시게 될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칠성.
“알고 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촤악-!
칠성이 검은빛의 날개를 폈다.
아니, 사실 칠성에겐 날개가 없었다.
귀족 마족들의 날개를 흉내 내어 펼쳐진 것은,
사실 그림자 군주 보이드가 만들어낸 그림자 날개였다.
애초에 물리력이 없기에,
필요할 때만 극단의 마력을 주입해 물리력을 얻어내는 보이드 였으나,
강대한 마력이 뒷받침 된 그림자 날개는 진짜 날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위용을 뿜어낼 수 있었다.
펄럭!
칠성이 날갯짓과 함께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동시에 원로위들의 주문으로 인해 칠성의 몸이 빛에 휘감겨 차원을 찢으며 사라졌다.
훙~!
칠성이 사라져 버린 자리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리는 원로 위원.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일곱별의 대왕이시여....”
예언은 실현되었다.
* * *
“인류 최후의 날,
칠성(七星)의 대왕이 문을 열고 강림한다.
인류의 모든 유산은 그 앞에서 한줌 재가 될 것이며, 그의 강대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을 것 이다.”
- 그리스의 예언가 나나테스.
여러 차원의 세계에 내려졌던 엇비슷한 예언들.
하지만 지구의 예언가 나나테스가 한 예언엔 무언가 다른점이 하나 더 있었다.
‘그의 강대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감당할 수 있을 것 이다.’
파괴할 존재를 막아설 존재에 대한 언급이다.
* * *
그리스의 예언가, 나나테스는 UHD 가 주관하는 피난 행렬에 참가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예지력이 말 해 주는 가장 안전한 장소,
다시 말해 자신의 산속 거처에서 명상 중 이었다.
번뜩!
가부좌를 틀고 명상이자, 기도 중 이던 나나테스가 두 눈을 떴다.
“.......”
저 먼 허공을 바라보는 나나테스의 눈동자.
“예언이 이루어 졌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드디어.
그가 꿈속에서 보았던 것들이 현실로 일어났음을.
나나테스는 몸을 일으켜 제자들에게 이 기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 * *
지구의 창공.
“네놈은 도대체 무엇 하는 놈이기에, 왜 내 앞을 막아서느냐.”
우락부락한 근육질 상반신을 드러낸 마족 카슈나족의 중년 남자.
불에 그을린 듯한 핏빛 피부와 커다란 뿔을 드러낸 남자가 창대한 검은색 날개로 창공에 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카르샤크.
핏빛가죽 일족의 현제 지도자이자,
마신의 심장을 훔쳐간 도둑.
장차 일곱 개의 별을 희생시켜 모은 힘 으로 신들에게 도전 할 도전자였다.
그리고 카르샤크의 앞을 막아선 것은 다름 아닌 김칠성.
그 두 사람의 주변에는 수많은 카르샤크의 부하들이 있었지만, 그 아무도 칠성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장내를 지배했다.
칠성은 마족으로 완벽히 변화한 상방신은 마신의 도포를 대충 걸치고 있었고,
등 뒤에서 솟아나온 검은빛의 그림자 날개는 카르샤크의 그것에지지 않았다.
마치 주문 추적자와 완전히 하나가 된 듯 빛나는 주홍빛 동공까지.
결코 카르샤크와 크게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칠성의 머리위엔 마신의 관.
카르샤크는 지금 당장이라도 칠성을 죽여 버리고 관을 빼앗고 싶은 심정이었다.
“말 해 보아라. 무슨 일로 내 앞을 막아서는 것 이냐? 네 녀석은 굳이 이런 일을 떠맡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흐음...”
남자의 질문에, 조용히 한숨을 뱉은 칠성이 바짓단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든다.
이제는 큰 의미 없어져 버린, 수헌부의 사원증 카드다.
지나친 보안에 대한 강박을 가진 장영실 소장이 만들어낸 보안용 붉은 카드.
칠성은 카르샤크에게 자신의 얼굴과 직위가 적혀있는 카드의 면을 들이밀어 보여준다.
“공무집행 중 이다.”
“뭐라...?”
눈을 가늘게 뜨고 카드를 살펴보며 의아해 하는 카르샤크에게 씩 웃어 보이는 칠성.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칠성과 카르샤크 둘 모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신의 심장이 응당 주인이어야 할 마신인 칠성에게도 마나를 공급 해 주고 있음을!
칠성의 마음 같아선 마신의 심장의 공급이 카르샤크에게 닿는 것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당장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강대한 마력.
하지만 그것을 공유하는 상태!
이제 마력의 양은 문제가 아니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누가 더 잘 싸우냐의 문제.
“시작 해 보자.”
“원하던 바다!”
어쩐지 자신을 한 수 아래로 보는 듯한 칠성의 말에 발끈한 카르샤크가 이를 갈며 덤벼든다.
쐐애애애액-!
두 검은 날개가 펼쳐진다.
서로에게 음속의 속도로 덤벼든 카르샤크와 칠성의 주먹이 충돌한다.
콰까아아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하는 소음.
“크아아아!”
“끼엑!”
마치 두 개의 유성이 부딪히는 듯한 충격!
그 충격파에 주변에 산재 해 있던 마족과 키메라들이 휘청거리며 비명을 지른다.
쿠르르르륵-!
대기를 둘러싼 구름이 휘청이며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크크크크... 이름을 기억할 만 한 상대 같군. 네 이름은 뭐냐?”
“김칠성이다. 네 녀석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상대가 될 터이니 기억 해 두도록.”
역시나 깔보는 듯한 카르샤크의 말투에 조금도지지 않고 받아치는 김칠성.
콰칙! 파차창!
두 사람을 오가는 마법의 격전.
그 와중, 카르샤크의 손끝에서 뻗어나간 검은색 전격이 대기를 뚫어 버린다.
콰치칭!
제기랄!
칠성의 눈에는 찢어진 대기가 너무나도 엄청난 마법의 위력에 채 복구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며 구멍을 채우지 못 하는 게 보인다.
‘이러다간 싸우는 중에 지구가 작살나겠군.’
“에잇!”
쓔우우우웅!
칠성은 순식간에 날개와 바람 마법을 섞은 질주로 최고속도로 카르샤크의 품에 덤벼든다.
“큿!”
카르샤크가 이를 갈며 칠성의 등판에 구멍을 뚫었지만 칠성의 육체도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뚫린 주먹 만 한 구멍이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마력에 의해 복구되었다.
그리고 카르샤크를 껴안은 칠성이 땅에 격돌하는 그 순간!
좌악!
땅 위 대지에 갑작스럽게 뻗어진 그림자.
보이드가 펼쳐낸 것은 차원 이동의 마법진.
그 거대한 법진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펼쳐지고, 순식간에 마력을 머금었다.
번쩍!
쉬유우웅!
다음순간 칠성과 카르샤크가 날고 있는 곳 은 칠성에게 비교적 익숙한 세계, 판브르크 대륙!
고속으로 같은 방향으로 서로를 쫒으며 날아가는 두 사람.
너무나도 빠른 속도,
원형의 행성인 판브르크 대륙의 세계가 마치 볼링공처럼 밑에서 빠르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자식이!”
파치치치칙!
카르샤크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원형의 검은 구체.
그 구체가 마치 대지를 찢어버릴 검이라도 된 듯 거대한 검은색 격류로 변해 휘둘러진다.
가볍게 날개를 놀려 피하는칠성.
콰카카칵!
칠성 곁을 스쳐간 검은색 마나의 기둥이 판브르크 세계의 땅 어딘가를 커다랗게 찢어놓는다.
칠성도 다양한 마법으로 응수한다.
어떠한 마법을 사용해도 마신의 마법으로 재해석된 마법이 뻗어나갔다.
전격과 얼음, 폭풍우와 폭발.
라그라노크 까지도!
씩씩 숨을 몰아쉰 카르샤크가 칠성의 뺨을 부여잡았다.
슝!
이번에는 카르샤크의 힘으로 다시 한 번 차원을 뛰어넘은 두 사람.
이번에 나타난 세계는 마계다.
쾅! 콰카캉!
서로를 향해 마법을 난사했지만 둘 모두 마법을 튕겨내거나 피해낼 뿐 이다.
양손에서 마법을 난사하며 서로 마계를 때려 부수는 두 사람.
“큿!”
카르샤크가 이를 간다.
마계는 이미 칠성과 호흡조차 같이하는 존재.
자신의 고향이기 때문에 고른 전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 자체가 이미 칠성의 적인 카르샤크에게 적대감을 표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의 공격은 한번 한번이 마치 칠성이 로또에라도 당첨 된 양 너무나도 어이없게 빗겨나갔고.
칠성의 공격은 마계에 들어온 이후부터 점차 날카로와져 카르샤크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번쩍!
이내 카르샤크는 칠성을 내버려 두고 차원을 넘어 도망치는데 이른다.
“튀기는.”
하지만 거기서 멈출 칠성이 아니다.
징-!
잽싸게 주문 추적자를 발동시킨다.
칠성의 눈에 잠들어 있던 영혼병기인 주문 추적자가 카르샤크의 차원이동 주문을 분석 해 낸다.
번쩍!
바로 카르샤크를 뒤따라 잡은 칠성.
“헉..헉! 제길!”
칠성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치는 카르샤크.
당황한 카르샤크가 도망가며 마법을 난사한다.
파칭!
하지만 평정심을 잃은 것 일까.
마신의 심장을 탈취한 뒤로, 자신과 호각인 상대를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난 카르샤크는 당황해서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사이 칠성의 마법들이 적중해 카르샤크의 몸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퍼엉!
쉬시식!
하지만 카르샤크의 몸체는 마치 모래알 같았다.
모래알처럼 작게 나누어진 몸의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순식간에 다시 모여들어 원래 형태를 이루어냈다.
카르샤크 특유의 재생 방법인 것 같았다.
그 뒤로도 수 십 번의 차원이동.
전장 역시 수 십 번이 바뀌었다.
휙휙 바뀌어가는 풍경들.
그리고 난사되는 마법들!
퍼펑 퍼펑!
두 사람의 마법을 포함한 난투에 이름 모를 행성은 초토화 되어 원시의 그것으로 돌아가 버린다.
적중률에 있어선 칠성이 앞서고 있었으나,
신비로운 재생 능력에선 오히려 카르샤크가 한 수 위 였다.
칠성이 세 번 정도 때리고 한 대를 맞아야 간신히 이득인 수준이었다.
물론 그런 카르샤크의 재생력을 밀어주고 있는 것은 마신의 심장.
그것도 여섯 개의 행성에서 추출한 마나를 품고 있는 그것.
이래서야 전투가 영원히, 영원히 계속 될 것 같았다.
슉, 슉, 슉 슉 슉슉!
계속해서 정신없이 바뀌어가는 차원이동 속.
“이야아아아아!!!”
칠성의 함성.
칠성이 날카롭게 벼른 손톱으로 카르샤크의 목을 잘라낸다.
난데없는 육탄전에 잘린 카르샤크의 머리가 잠시 벙 찐 사이.
보이드가 펼쳐낸 마법진이 카르샤크의 잘라진 머리통 밑에서 솟아난다.
동시에, 밑쪽에 남아있는 카르샤크의 몸통에서도 또 다른 차원 이동의 마법진이 생겨난다.
놀란 눈으로 치켜 떠 지는 카르샤크의 두 눈.
“그래, 너 좆됐어.”
피식 웃는 칠성.
번쩍!
지구.
슈우우웅-.
쿠웅!
한 들판.
대기권 즈음에서 차원이동을 해 온 칠성이 작은 유성처럼 불시착한다.
칠성은 동시에 두 개의 차원이동 마법을 실행.
카르샤크의 몸통은 우주의 어딘가로.
그리고 자신은 카르샤크의 머리와 함께 지구로 온 것 이다.
카르샤크가 가진 재생의 특성을 눈여겨 본 덕 이었다.
카르샤크의 몸은 없어진 부위를 새로 창조해내지 않았다.
그 대신 붕괴의 순간 떨어져 나간 몸을 마법으로 다시 자신의 몸에 붙이는 것 이다.
덕분에 어지간한 경우에는 그 어떠한 재생 수법보다 빠른 재생을 기대 할 수 있었다.
최고레벨의 마법전에서 조차 그의 상대가 없을 것 이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 예를 들어 상대방이 잘려나간 머리를 들고 다른 차원으로 튀어버리는 경우 라던지 말이다.
툭.
말 도 안 돼 - !
칠성의 손에서 떨어진 카르샤크의 머리가 잔디밭을 구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더니 펑 소리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휘날렸다.
“후우....”
잔디밭에 대자로 뻗은 칠성은 온 몸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침대 삼아 누워 있었다.
“후우....”
칠성이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쓸었다.
끝났다.
모든 것이.
창공엔 카르샤크가 아까 전 질러둔 마법으로 인해 생긴 구름들의 계단이 저 먼 곳을 향해 뻗어 올라가 있었다.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처럼 보였다.
하늘은 잔인할 정도로 청명하게 맑았고.
어디선가 새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이 꿈인 양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훈훈한 바람이 분다.
“야... 좀 있으면, 여자들이. 짧은 치마 입고 돌아다니겠구만.”
피식 웃으며, 아직도 온 몸이 욱씬대는 상반신을 일으키는 칠성.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돌아갈 시간이다.
* * *
카르샤크가 함께 데려온 잔챙이들은 그야말로 숨 쉴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세계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였고,
칠성에게는 48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칠성을 아무리 영웅이라고 치켜세우고, 온갖 동과 명예가 있어도 아무것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조금도.
48시간.
그 중 절반 즘의 시간은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해 보냈다.
못 다한 인사와 마지막 정리였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한 특급호텔.
칠성과 같은 이불을 공유하고 있는 것 은 한솜이였다.
“...정말 괜찮겠어?”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정말로. 난 괜찮아.”
칠성의 물음에 분명한 목소리로 답하며 품에 안기는 한솜이.
어쩐지 주고받는 눈빛이 서글프다.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잠시 진지한 순간이 지나고 다시 깔깔 대며 웃으며 서로 이불 속에서 장난치는 두 사람.
그렇게 또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결혼식.
맑은 하늘 아래,
한쪽에선 해가 지며 주홍빛 석양을 흩뿌리고 있었고.
UHD 후방기지에 마련된 조촐하지만 아름다운 야외 식장.
칠성과 한솜이의 지인과 친구들. 가족들만 참여한 매우 작은 스케일의 결혼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사회는 대한민국 최고의 개그맨이.
주례는 천주교의 현 교황이 보는,
작지만 어떤 의미에선 거대한 스케일의 결혼식.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신랑과 신부.
반지를 교환하는 두 사람.
“그냥 나 잊어라.”
“웃기셔. 누구 맘대로? 평생 기억할거야.”
당돌한 한솜이의 대답에 피식 웃는 칠성.
같이 웃어 보이는 한솜이.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어 진다.
오가는 입술.
어느 순간부터.
한솜이는 눈을 뜨기 싫었다.
스스스슥-.
마계와의 계약에 얽힌 칠성의 몸이.
한솜이와 입술을 포갠 순간부터 조금씩 여기저기가 작은 불씨처럼 타올라 흩어지듯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한솜이가 눈물이 가득 그렁그렁한 눈으로 간신히 눈을 떠 앞을 보았을 땐,
칠성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뒤 였다.
“바보같이..!”
무너져 내리는 한솜이.
생애 흘려야 할 눈물을 모두 흘리듯.
백의의 신부가 흐느끼고 있었다.
모두들 함부로, 위로조차 하기 어려웠다.
한솜이의 근처에 몰려들었지만.
간신히 그 꼴을 보다 못 한 칠성의 누나만이 한솜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주례를 본 교황만이 저 먼 하늘을 보며 알일 없는 기도를 올렸을 뿐 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