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S5 : 35화
차원의 문이 열리고 연이은 마계의 공습으로 초토화가 된 오스트레일리아. 오세아니아 지역.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가장 먼 곳.
지구 반대편 북미 지역.
미국 오클라호마 주 애넌다코.
그 드넓은 애넌다코의 목장 위에는 급하게 지어둔 UHD 의 진지가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 해 지어둔 UHD 의 후방 기지였다.
UHD 의 황금 인장을 박아 넣은 명패와,
마음만 먹으면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담.
1층으로 된 UHD 단층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주변 지역은 기존과 같이 그대로 드넓은 목장의 들밭이 펼쳐져 있었다.
번쩍!
그리고 허공에서 UHD 의 전진기지이자 항공모선. 마더쉽이 밝은 빛과 함께 나타났다.
“선체 이착륙 시작합니다!”
쉬유우우웅-.
서서히 균형을 잡은 채 수직으로 느릿느릿 내려온 항공모선이 후방 진지 가운데 빈 공간.
마치 항공 모선을 위해 비어둔 것 같은 그 자리로 서서히 내려갔다.
바닥에서 튀어나온 서포트 장치들이 모선과 결합했고.
천천히 자리를 잡고 안착하는 UHD 전진기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요. 지금으로선 지켜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수술이라든가 필요한 게 아닙니까? 의료수술은 모두 준비 되어 있어요!”
칠성의 몸을 살피는 장영실 소장과 의사를 다그치듯이 재촉하는 성진.
“그러려고 해도, 무리입니다.”
의사는 당황스러운 기색으로 말을 이어갔다.
칠성과 현재 마신으로 추측 되는 인물이 싸운 것은 거의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일 이었다.
칠성이 맞은 것은 단 일격!
하지만 칠성의 몸 상태는 치명적이었다.
수술이라면 백번이라도 이미 벌써 들어갔음이 옳았다.
하지만 의사가 어떤 손도 쓰지 못 하는 것은....
“현대 의학기술로는 무리 일 겁니다.”
장영실 소장이 말을 붙였다.
칠성은 모든 뼛조각이 부서질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즉사 했어야 할 부상.
하지만 의사가 손대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바로 경악 할 만 한 칠성의 회복속도!
더군다나 그저 상처가 빨리 아무는 수준의 회복이 아니었다.
어긋나 있는 뼈가 저절로 제 위치로 돌아가고, 내 출혈로 막혀버린 장기의 혈흔을 스스로 태워버리는 수준이었다.
마치 칠성을 있는 그대로 보존 하겠다는 이 세계의 힘이 작용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의학적 수술은 그저 방해가 될 뿐.
그것이 의사와 장영실 소장이 합의한 내용이었다.
다만 산소와 마나를 뿜어내는 회복실에 있는 칠성에게,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마나를 제공하고,
바티칸의 주교들이 찾아가 회복을 돕는 리제네레이션 주문을 걸어주는 것으로 조치를 대신 한 상황 이었다.
꾸드드득!
“하아.”
그리고 이런 장영실 소장의 판단은 올바른 판단이었다.
고작 그 정도 조치만으로도 칠성의 몸은 자가 회복에 성공했다.
칠성이 정신을 차린 것 은 핏빛가죽 카르샤크와의 전투 이후 2시간 뒤.
가쁜 숨을 들이키며 눈을 뜬 칠성.
“제기랄.”
뭐였지?
눈을 뜬 칠성이 욕지기와 함께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졌다.
눈을 뜸과 동시에, 자신이 패배한 결투를 머릿속에서 복기 해 보며 원인을 분석하는 것 이다.
빛나는 승부사의 기질이다.
여기저기 우득 뼈 소리가 나는 관절들을 일으켜 회복실 밖의 발코니에 몸을 기대는 칠성.
저 멀리 호수가 보이고,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아름다운 관경이었으나 칠성에겐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이야 했지만.”
사실은 가장 걱정하던 경우가 벌어진 것 이다.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상대방은 마신의 상징과도 같은 마신의 심장을 가진 마족이었다.
그 뿐 아니다.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 또한 탁월하다.
강대한 마력을 자신의 핏줄과 뼛속에 흘려 육체 자체를 생명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육체의 대부분이 마나로 치환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이었다.
주문에 있어서도 뛰어나다.
칠성이 난사한 고위 마법들을 맨몸으로 받아 내었을 리가 없다.
그랬다가는 제 아무리 마신의 심장의 소유자라고 해도 일단은 몸이 산산조각 난다.
다시 감쪽같이 복구되는 한이 있다 해도 말 이다.
육체와 마법.
양쪽의 실력 모두 칠성과 동급.
혹은 그 이상.
게다가 더 중요한 것 은 마력이었다.
문자 그대로 끝 도 없는 마나 수용량을 지니고 있다는 마신의 심장.
그런 마신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상대는 애초 그 누구라도 대적하기 힘들었다.
마신의 심장과 마신의 관.
마신의 두 가지 상징.
이것들의 주인을 이길 수 있는 확률 이란 것 은 0 에 수렴한다.
마신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수준이 어느 정도만 뒷받침 된다면 그야말로 절대 무적.
더군다나 그런 사람이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주체라니.
가장 두려운 상황이 벌어 진 것 이다.
다만 이상 한 것이.
‘확실히 관이 안 보였는데...’
무슨 일 인진 몰라도 녀석은 마신의 관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마신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
은백색의 관인 마신의 관은 영혼병기의 일종으로, 상대방이 쓰고 있었다면 적어도 수준 높은 마법사인 칠성의 눈에는 보였어야 한다.
이 점을 이상하게 여긴 칠성.
담배를 한 대 빼어서 입에 물고,
다른 한 대를 발코니의 한편에 세워둔다.
“보이드, 도와줘.”
어둠의 정령 보이드가 발코니 한편에 세워진 담배의 그림자로부터 뻗어 나와 원형의 마법진을 그린다. 소환의 진.
“*코코*”
칠성이 부르자 마법진 위로 소환되어 튀어나오는 서큐버스 코코.
“응.”
칠성의 질문에 코코는 자기가 들어서 알고 있는 것,
마계의 소문.
그리고 자신의 추측을 덧대어 대답 해 주었다.
“핏빛가죽 일족은 불가촉천민 이었어.”
일종의 계급 사회였던 마계에서 가장 밑바닥.
마계의 표현으로 귀족의 하인이 쓰는 행주보다도 천하다는 불가촉천민.
핏빛가죽 일족의 카르샤크는 그러한 현실에 뜻을 품고 일어났다.
기존엔 마나를 전혀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있던 핏빛가죽 일족.
하지만 그것은 약소민족에 대한 헛소문에 불과했다.
그들이 불가촉천민임을 정당화 시키는 억지 논리였을 뿐 이다.
오히려 오래전, 그들에게 위협을 느낀 고위 마족들이 그들에게 마력에 대한 접촉과 교육 기회를 박탈했을 뿐.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가능성은 어떤 종족에도 뒤처지지 않았다.
결국, 강대한 마나를 손에 얻은 카르샤크의 등 뒤 에선 기존엔 없던 날개까지 자라났다.
불가촉천민인 카르샤크의 등 뒤에서 나온, 고위 마족들의 자랑인 검은 날개.
그의 존재 자체가 기존 마계의 질서를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 이었다.
핏빛가죽 일족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카르샤크.
“그래서 그런 거야.”
카르샤크는 예언에 등장한 일곱별의 마왕이 자신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몇몇 행성의 주민들에게 안타까운 점은 그의 예언 해석 방식이었다.
카르샤크는 일곱별의 주인 이란 말을 일곱 개의 별에서 추출한 마나의 주인으로 해석했다.
그리하여, 일곱 개의 별의 생명체들에게서 마나를 수확해 모아 천계의 신을 죽이고 핏빛 가죽 일족을 영원히 존귀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마나의 저금통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마계의 보물, 마신의 심장.
카르샤크의 사상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원로원은 카르샤크에게 정식 대관식을 해 주지 않고 있다고 했다.
카르샤크는 정식으로 마신의 관을 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원로원들을 살려두고 있는 중 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일곱 번째 별이 지구야.”
이미 치러진 6번의 수확.
6개 행성의 주민들의 전멸.
그리고 그 학살의 대행진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지구.
“그래. 말 해 줘서 고맙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칠성의 담담한 인사.
떨리는 눈으로 칠성을 잠시 바라보던 코코가 고개를 떨구곤 마법진 속으로 들어간다.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슥.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코코.
“짜식, 미안하기는.”
희미하게 웃은 칠성이 다 피운 담배의 재를 비벼 끈다.
끽-!
“여기 있었어? 깜짝 놀랐잖아!”
발코니의 문을 열고 튀어나온 금발 머리의 미모의 여성. 한솜이다.
칠성의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뛰어온 한솜이.
그런데 칠성이 누워있어야 할 회복실이 텅 비어있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다 발코니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칠성을 발견 한 것 이다.
“사람 놀래 키고 정말!”
칠성에게로 뛰어드는 한솜이.
“아 읏, 잠깐 잠깐.”
품속으로 뛰어든 한솜이에 비틀거리는 칠성.
“앗, 아파? 괜찮아?”
기겁하며 떨어지는 한솜이.
괜히 장난이 치고 싶어진 칠성.
“윽, 나는 괜찮은데. 너는 괜찮아?”
“나?”
“응. 못 생긴 건 좀 괜찮아 졌어?”
“.......”
당연히 농담이다.
누가 봐도 예쁜데.
다만 바로 이 반응이 너무 재밌는 것 이다.
어라, 이쯤 되면 뭔가 날아올 법 도 한데.
그런 반응 대신 물끄러미 칠성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던 한솜이.
“진짜 걱정했단 말이야 바보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칠성의 품에 안기는 한솜이.
진짜로 걱정 했나보다. 바보같이.
안도일까, 착잡함 일까. 덩달아 칠성이 작은 한숨을 뱉었다.
“맞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의사 선생님 불러올게!”
“아냐아냐, 괜찮아.”
칠성이 심각하게 다친 환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린 한솜이가 화들짝 놀라며 의사를 불러오겠다고 했지만 칠성이 품을 벗어나는 한솜이의 팔목을 잡으며 말렸다.
“진짜 괜찮아.”
“그래도...”
“알았어. 걱정 되면 나중에 검사 받아보면 되잖아.”
칠성의 정체를 모르던 시절,
일반적인 헌터로 오해하던 시절의 한솜이 라면 지금 당장 의사한테 달려갔을 것 이다.
하지만 칠성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이상 본인이 극구 괜찮다니 일단은 멈춰선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괜찮다는데 어찌 토를 달까.
“괜찮아?”
“진짜 괜찮다니까.”
“아니, 그거 말고....”
칠성의 얼굴을 조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한솜이.
칠성도 한솜이의 물음이 이번에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님을 눈치 챘다.
“걱정하지 마.”
칠성이 한솜이를 다독였다.
그냥 평범한 존재, 평범한 헌터였다면 별 일이 아니었을 수 도 있다.
적에게 패하고, 쓰러지고, 잠시 의식을 잃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지구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가 적에게 패했다.
그것도 순식간에.
정확한 정황은 주변인들에겐 보이지도 않았지만, 칠성이 무참히 패배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UHD 는 붕괴 직전이었다.
당연히 언론에는 칠성의 패배사실이 보도되지도 않았다.
모든 수단을 다 쓴 뒤에 나타난 적.
김칠성의 패배는 사실상 인류의 패배라고 할 수 있었다.
칠성 역시,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결론을 내렸다.
“다 방법이 있어.”
이기지 못 할 것 같은 적 이라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후후후....”